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409
408
같은 시각.
뚝!
서류에 사인을 새겨 넣던 미켈레의 깃펜이 거짓말처럼 뚝! 하고 부러졌다.
“…….”
미켈레는 순간 얼어붙기라도 한 것처럼 정지하고 말았다.
오싹!
등골이 서늘했다.
한 자루 비수가 날아와 가슴 한복판에 박힌 기분이었다.
“아니겠지.”
미켈레는 애써 이 불안한 징조를 무시했다.
“일을 너무 오래 해서 그런 거다.”
미켈레는 깃펜을 너무 혹사(?)시켜서 그런 것이라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다른 깃펜을 꺼내 애써 업무를 다시 이어나갔다.
그런데.
뚝!
깃펜이 다시금 부러졌다.
“……!”
깃펜이 부러지는 것을 본 미켈레의 얼굴이 서릿발처럼 굳었다.
쿵쾅쿵쾅!
심장이 미친 듯 두방망이질을 치기 시작했다.
깃펜이 한 번은 부러질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 연속으로 부러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는 말은….
“휴우.”
미켈레는 한숨을 한 번 푹 쉬더니, 서랍을 열어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 봉투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었다.
사직서.
…라고 말이다.
***
조지 3세는 지크가 부패의 저주 바이러스의 백신과 치료 혈청을 무제한으로 판매하겠다고 선언한 순간 그만 미쳐버리고 말았다.
무려 7,000만 골드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금액을 지불하고 를 낙찰받았건만, 백신과 치료 혈청을 무제한으로 판매하겠다니?
뭐 이따위 상도덕 없는 놈이 있단 말인가?
그래서였을까?
띠링!
지크는 새로운 칭호를 획득하고 말았다.
[알림 :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칭호의 효과는 다음과 같았다.
[양아치]상도덕 없는 비매너 유저에게 주어지는 칭호.
•타입 : 칭호
•등급 : 유니크
•효과
– 없음
•참고 : 이 칭호는 불명예스럽습니다!
지크는 다른 때 같았으면 눈물을 철철 흘리며 억울해했겠지만,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재수 없는 조지 3세에게 빅엿을 날렸는데 이까짓 칭호가 무슨 대수겠는가?
‘속 쓰리지? 후후후!’
지크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조지 3세를 바라보며 매우 즐거워했다.
반대로 조지 3세는 분노로 눈이 완전히 돌아가 버린 상태였다.
“지크프리트! 이 개새끼야! 이 X발놈아!”
“어어?”
“너 일로 와 봐라! 이 X발놈아! 죽여 버릴 테니까아아아아아아!”
완전히 이성을 잃은 조지 3세는 근처에 있던 어느 왕의 수행 기사의 검을 기습적으로 빼 들고는, 지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극대노.
지크에게 당한 게 너무나도 화가 나 이 자리가 라는 걸 까맣게 잊고는 칼부림을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지크는 당황하지 않았다.
‘얼씨구. 자세 어설픈 거 보소.’
지크에게 검술의 ㄱ자도 모르는 조지 3세의 칼부림 따위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조지 3세는 지크에게 가까이 다가올 수가 없었다.
“막아라!”
“일단 막아!”
“잡아라!”
마우레키온 제국의 기사들이 재빨리 나서서 조지 3세와 그의 수행 기사를 둘러싸 제압했기 때문이다.
“놔! 놓아라! 놓으라고! 이 개새끼들아! 놔아아아!”
조지 3세는 마우레키온 제국의 기사에 의해 바닥에 처박힌 채 괴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마우레키온 제국의 기사는 조지 3세의 명령에는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왜?
마우레키온 제국의 기사들은 오직 슈트카르트 황제의 명령을 따르는 게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세계의 지배자들이 모이는 에서 칼부림을 벌였다는 건 제아무리 강대국의 왕이라고 한들 쉽사리 넘어갈 수 없는 문제이기도 했다.
“다 죽여 버릴 것이다! 모조리! 지크프리트! 네놈은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네놈이 다스리는 나라를 짓밟고! 남자들은 모두 죽일 것이며! 여자들은 성노예로 만들 것이다!”
그러나 조지 3세에 대한 여론은 별로 좋지 못했다.
“쯧쯧. 군주란 자가 저리도 품위가 없을까.”
“정말 추하군요.”
“하다 하다 이런 자리에서까지 칼부림이라니. 황제조차도 저렇게 행동하지 않는 것을.”
제아무리 강대국의 왕이라고 할지라도 군주들 사이에서 품위와 위엄을 내던진 이상 평가는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어디 프로아 왕국을 한 번 공격해 보세요. 스톤 아일랜드는 당신네 나라와의 무역을 중단할 것입니다.”
“앞으로 기사 아카데미에서 당신의 기사들의 위탁 교육을 맡지 않을 것입니다.”
“교단의 신전을 모두 철수하겠어요.”
지크와 친한 앙겔레르 통령, 아르샤 국왕, 그리고 성녀 자네트는 그 자리에서 조지 3세와의 외교 관계의 단절을 선언했다.
“이… 이이!”
조지 3세가 분노에 눈이 뒤집혔을 때.
“조지 3세.”
슈트카르트 황제가 바닥에 처박힌 조지 3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위에서 아래로.
자신의 발밑에 깔린 조지 3세를 향해서.
“갈 데까지 갔군.”
“슈, 슈트카르트 황제!”
“짐이 직접 주최하는 세계평화회의에서 칼부림을 벌이다니.”
“이보시오! 이보시오, 슈트카르트 황제! 지금 내가 열이 안 받게 생겼소? 저 모험가가 내게 무슨 짓거리를 했는지 똑똑히 보셨잖소! 저 모험가가 내게 사기를 쳤소! 그리고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었소이다!”
“그래서? 그게 군주들이 모인 자리에서 칼부림을 벌인 게 정당화되나?”
“그, 그건….”
“조지 3세.”
“말씀…하시오.”
“네놈은 감히 짐이 임명한 왕을 모욕했다.”
슈트카르트 황제가 조지 3세가 벌인 행각을 다시 한번 읊기 시작했다.
“그건 곧 짐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던 것 같은데.”
“…….”
“사사건건 아주 작정하고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를 걸고넘어지더군. 이제는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에게 한 방 먹었다고 해서 왕의 체면과 위엄을 내팽개치고 세계평화회의에서 칼부림을 벌이기까지 했다. 감히 짐이 직접 주최한 이 행사에서 말이다.”
조지 3세는 슈트카르트 황제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위, 위험하다.’
조지 3세는 슈트카르트 황제가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날리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만약 여기서 더 나아갔다간?
전쟁이었다.
세계 최강대국인 마우레키온 제국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결말은….
‘아, 안 돼!!!’
당연하게도 파멸될 확률이 100퍼센트였다.
“긴말하지 않겠다.”
슈트카르트 황제는 더 이상 구질구질하게 설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꺼져라.”
“……!”
“그리고 한동안 쥐 죽은 듯 조용히 살아라. 그게 네놈의 알량한 목숨과 허접하기 짝이 없는 나라를 지킬 유일한 방법일 테니.”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 알겠소….”
조지 3세는 그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한 채 슈트카르트 황제의 말을 고분고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끌고 나가라.”
슈트카르트 황제가 명령했다.
꽈악!
그러자 마우레키온 제국의 기사들이 조지 3세와 그의 수행 기사를 질질 끌고 행사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실례가 많았군.”
마침내 조지 3세를 처리한 슈트카르트 황제가 군주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다 짐의 불찰이다.”
슈트카르트 황제의 사과에 군주들이 답했다.
“아니오!”
“잘하시었소!”
“저는 그대의 관대함을 지지해요.”
군주들은 모두가 슈트카르트 황제를 지지-속이야 어떻든-하는 발언을 했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예, 황제 폐하.”
“경매를 계속해도 좋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렇게 지크는 조지 3세에 빅엿을 먹인 뒤 경매를 계속할 수가 있게 되었다.
***
그 후 지크는 부패의 저주 바이러스의 백신과 치료제를 세트로 500만 골드에 세계 각국의 군주들에게 팔아먹었다.
누구도 지크를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부패의 저주 바이러스의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돈을 생각해 보면, 500만 골드는 엄청나게 저렴한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한 사람.
“…….”
포르트문트 국왕은 웃을 수 없었다.
왜?
포르트문트 국왕은 조지 3세와의 영토 분쟁에 국가 예산의 절반 이상을 지출하고 있었다.
단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왕실의 식사마저도 빵 한 조각과 고기 한 덩이를 넣은 수프로 때우고 있는 포르트문트 국왕에게 500만 골드는 너무나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금액이었다.
그래서 포르트문트 국왕은 군주의 품위나 체면조차도 던져버리고, 지크에게 다가가 사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어….”
포르트문트 국왕이 조심스레 지크에게 말을 걸었다.
“지크프리트 국왕.”
“아, 포르트문트 국왕님?”
“실례지만 잠시 본인과 대화를 나누어줄 수 있겠소?”
“물론이죠. 무슨 일이시죠?”
“잠시 자리를 좀 옮겼으면 하는데….”
“그러죠.”
지크는 포르트문트 국왕이 이끄는 대로 아예 행사장을 벗어나 정원의 어느 구석진 자리로 향했다.
“지크프리트 국왕.”
“예?”
“내 그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소이다.”
“부탁이라는 게 뭐죠?”
그 순간.
털썩!
포르트문트 국왕이 지크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지크프리트 국왕. 부디 내 나라의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오.”
“예?! 가, 갑자기 왜 이러시는 겁니까! 어서 일어나십쇼! 어서요!”
지크가 황급히 포르트문트 국왕을 잡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포르트문트 국왕은 어떻게든 꿇은 무릎을 풀지 않으려 버티며 지크에게 애원했다.
“지크프리트 국왕!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시오!”
“아니! 무슨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이러시는 겁니까! 말씀을 하셔야죠! 대뜸 무릎부터 꿇으시면 제가 얼마나 당황스러운데요!”
“우리나라는… 부패의 저주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과 치료제를 구매할 돈이… 없소이다.”
“아하?”
“본국은 살루트 왕국과의 영토 분쟁에 국력의 거의 전부를 쏟아붓고 있소. 안 그래도 만백성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상황이오. 당장 나조차도 그 어떤 사치도 부리지 않은 채 동전 한 닢이라도 아끼고 있소.”
“아하.”
“도저히… 도저히 백신과 치료제를 살 여력이 없소.”
그렇게 말하는 포르트문트 국왕의 눈가에는 글썽글썽 눈물마저 맺혀 있었다.
“만약 조지 3세가 부패의 저주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면 본국은 순식간에 멸망하고 말 거요. 아니, 멸망이 문제가 아니오. 백성들이 구울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오. 지크프리트 국왕! 내 이렇게 부탁을 드리겠소! 제발 백신과 치료제를 할부로 구매할 수 있게 배려해 주면 안 되겠소?”
“할부요?”
“공짜로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소이다. 매달 적게나마 갚아나갈 테니 부디 할부로 구매할 수 있게 배려해 주시오. 나 포르트문트. 이렇게 모든 자존심을 내팽개치고 그대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것이오.”
그와 동시에
쿠웅!
포르트문트 국왕이 바닥에 머리를 쾅! 하고 찍었다.
그러자 포르트문트 국왕의 깨진 이마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와 바닥을 시뻘겋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포르트문트 국왕님!”
“나 하나쯤 어떻게 되는 건 아무렇지도 않소이다! 부디 우리나라의 백성들이 고통받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오! 지크프리트 국왕! 부디, 부디 조그마한 자비를 베풀어 주시오! 내 이렇게 빌겠소이다!”
그때였다.
띠링!
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