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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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BNW의 강화 방식은 대체로 다른 게임과 비슷했다.
+0인 장비가 +10까지 갈 때는 강화에 실패해도 장비가 파괴되지 않았다.
대신 강화 상태가 +0이 되었다.
1강에서 2강을 가는 데 실패해도 0강.
9강에서 10강을 가는 데 실패해도 0강.
그렇게 강화 수치가 초기화되는 것이다.
게이머들은 이런 경우를 가리켜 라고 표현하곤 했다.
지금 지크의 경우가 딱 그런 경우였다.
“이런 씹….”
지크의 입에서 본능적으로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열 번의 실패 끝에 1강에 성공했다.
뒤이어 2강에 성공했고, 뒤이어 3강에 성공했다.
그런데 3강에서 4강으로 가는 강화에 실패했다.
그리고 는 다시 강화가 되지 않은 상태인 가 되었다.
0강에서 1강을 가는 데 무려 열 번의 실패를 거쳤던 지크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푸하하하하하!”
“미끄러진 거 보소?”
“저걸 미끄러지네. 큭큭큭.”
게이머들은 지크가 3강에서 미끄러지자 매우 좋아했다.
으적으적!
심지어, 어떤 게이머는 가판에서 산 팝콘을 씹으며 지크를 지켜보고 있기까지 했다.
“으… 으으으!”
지크는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가 에픽 아이템이었기 때문일까?
열한 번의 실패에 쓴 골드의 액수만 해도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진정하자. 진정. 다들 이러면서 강화하잖아.’
지크는 앞서 11강 이상 무기의 강화에 실패했던 인생의 실패자(?)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무기를 10강까지 띄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장비를 10강까지 띄우기 위해 수백 번이나 강화에 시도하는 사람도 있을까.
어쩌면 운에 모든 걸 맡기는 10강 이상의 강화가 더 속 편할지도 몰랐다.
왜?
10강 이후의 강화는 성공하면 성공하는 거고, 실패하면 장비가 파괴되기에 딱 한 번이면 끝나니까.
그러나 0강에서 10강을 가는 건 때문에 사람 피를 말리기 마련인 것이다.
‘고작 여기서 화내면 안 돼. 그냥 될 때까지 시도하자.’
지크는 마음을 한 번 추스르고는 재차 의 강화를 시도했다.
[알림 : 님께서 의뢰하신 강화가 성공했습니다!] [알림 : 님께서 의 강화에 성공했습니다!]다행히 강화는 성공이었다.
‘신경 쓰지 말자. 강화에 성공하든 미끄러지든 그냥 10강 될 때까지 지르는 거다. 어차피 골드는 많아.’
아직 지크의 아공간 인벤토리에는 수백만 골드가 들어 있었기에, 총알(?)은 넉넉한 상황이었다.
‘자. 다시.’
지크는 를 다시금 강화기 안에 밀어 넣었다.
[알림 : 님께서 의뢰하신 강화가 성공했습니다!] [알림 : 님께서 의 강화에 성공했습니다!]결과는 성공이었다.
‘좋아. 계속 가는 거다.’
지크는 계속해서 강화를 이어나갔다.
3강은 성공이었다.
4강도 성공했다.
5강, 6강, 7강, 8강도 성공했다.
‘실패하면 실패하는가 보다 생각하자.’
지크는 욕심을 완전히 비우고 를 강화기에 밀어 넣었다.
[알림 : 님께서 의뢰하신 강화가 성공했습니다!] [알림 : 님께서 의 강화에 성공했습니다!]결과는 성공이었다.
“……!”
순간 지크는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안 돼. 동요하지 말자. 동요하면 지는 거다.’
지크는 애써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강화를 시도했다.
뿌우우우!
강화 결과가 나왔다.
[알림 : 의 강화가 실패했습니다!] [알림 : 의 강화 수치가 초기화되었습니다!]결과는 실패였다.
9강에서 강화 수치가 초기화되어 다시 0강이 된 것이다.
지끈!
지크는 가슴에서 쿡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미끄러지는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지크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시 강화를 시도했다.
***
그로부터 두 시간 후.
뿌우우우!
강화기가 증기를 내뿜었다.
[알림 : 의 강화가 실패했습니다!] [알림 : 의 강화 수치가 초기화되었습니다!]지크는 또다시 9강에서 10강으로 가는 강화에 실패하고 말았다.
지크는 강화가 실패함과 동시에 애써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치고 말았다.
“으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악! 악! 악! 아아아아아아아악!”
지크는 사자후를 토해내며 허연 연기가 뿜어지는 를 움켜쥐었다.
“부숴버린다… 부숴버릴 거야… 부숴버릴 거라고….”
지크가 강화기를 부수려던 때.
“전하! 이러시면 안 됩니다!”
“고정하십시오!”
“전하! 기물 파손은 아니 되옵니다!”
비머리언 공방 소속의 NPC들이 황급히 몸을 날려 지크를 붙들었다.
“놔! 놓으라고! 내가! 저거! 부숴버릴 거야!”
“안 됩니다! 전하!”
“물어주면 되잖아!!!”
지크는 정말로 강화기를 부숴버리고 그 값을 물어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지크의 행동은 충분히 이해가 갈 만했다.
‘이게 말이 돼? 9강에서 10강을 33번 실패한다고? 이건 사기야! 사기라고!’
지크는 9강에서 10강으로 가는 강화에 무려 33번을 실패했다.
어디 그뿐인가?
0강에서 9강으로 갈 때도 번번이 실패해 미끄러지는 바람에, 다시 강화해야 할 때도 많았던 게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강 강화에 33번을 실패하다니….
“와. 저 사람 얼마를 쓴 거야?”
“저 강화비만 모아도 어지간한 10강 무기는 살 것 같은데?”
“미친….”
“나 같으면 그냥 10강 무기를 돈 주고 사겠다.”
그런 게이머들의 말은 사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에픽 등급인 의 강화 비용은 전설 등급이나 신화 등급의 아이템보다 압도적으로 비쌌으므로, 지금까지 지크가 날린 돈만 해도 어지간한 12강 무기를 사고도 남았다.
그러던 중.
“저 템….”
어느 게이머가 이 사태에 대한 한 줄 평을 내놓았다.
“똥 묻었네, 똥 묻었어.”
그 한 줄 평은 아주 귀신같이 지크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지크의 뇌리를 끊임없이 맴돌았다.
[똥 묻었네, 똥 묻었어. 똥 묻었네, 똥 묻었어. 똥 묻었네, 똥 묻었어. 똥 묻었네, 똥 묻었어. 똥 묻었네, 똥 묻었어. 똥 묻었네, 똥 묻었어. 똥 묻었네, 똥 묻었어. 똥 묻었네, 똥 묻었어. 똥 묻었네, 똥 묻었어.]똥 묻은 아이템.
게이머들이 흔히들 하는 표현으로, 딱히 이유 없이 유독 10강을 가지 못하는 아이템을 뜻하는 말이었다.
물론 팩트로 증명할 순 없었지만, 실제로 유독 강화 확률이 구린 아이템이 존재하긴 했다.
똑같은 아이템을 여러 개 강화해도 유독 자주 미끄러지는 게 있지 않던가?
“설마… 진짜로 똥 묻은 건가.”
지크는 자신의 손에 들린 를 미심쩍다는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똥파리라고 불러서 그런 건 아니겠지?”
말이 씨가 된다고, 평소에 애칭으로 라고 불렀던 게 원인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만약 가 똥 묻은 아이템이라면?
버리는 게 현명했다.
보통 똥 묻은 아이템은 버리는 게 여러모로 속 편했다.
똑같은 아이템을 하나 더 구해 그걸 강화하는 게 100번이고 1,000번이고 속이 편한 것이다.
그러나….
‘이걸 어떻게 또 하나 구해!!!’
는 대체가 불가능한 아이템이 아니던가?
에픽 등급의 아이템은 세계를 통틀어 오직 한 개만 존재하기 마련이었고, 그중 는 들어간 재료만 해도 작은 왕국 하나를 살 수 있을 정도의 값어치가 있었다.
아니, 핵심 재료인 를 만든 전설의 대장장이 헤르베르트가 사망한 이상 를 하나 더 만드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와. 저 사람 재수 옴 붙었네.”
“에픽 아이템에 똥이 묻었어.”
“어휴. 하필 똥이 묻어도 에픽에 묻냐.”
게이머들이 그런 지크를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아니야!’
지크는 고개를 저었다.
‘똥파리에 똥이 묻은 게 아니라 여기 강화기가 쓰레기인 거다!’
지크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목에 낀 가래를 있는 대로 끌어모았다.
“캬아아아아아아악- 퉤에엣!”
지크는 맥캘란 왕국의 강화기에 가래침을 뱉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다 돌아다니면서 강화해 보자. 똥 묻은 건 아닐 거다.’
지크는 애써 정신 승리를 시전할 수밖에 없었다.
왜?
에픽 아이템에 똥이 묻었다는 건 상상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일일 테니까.
***
지크는 비머리언 공방의 맥캘란 왕국 지점을 떠난 후 다른 지역에서 강화를 시도했다.
그게 지크의 순회공연(?)의 시작이었다.
지크는를 10강으로 만들기 위해 무려 열세 개의 강화기를 거쳐야 했다.
그런데.
“여, 여기도 안 된다고? 여기도? 또 미끄러져?”
지크는 수백 번의 시도 끝에 또다시 9강에서 10강으로 가는 강화를 실패하고, 절망했다.
그리고 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이거 똥 묻었네… 똥 묻었어….”
지크는 가 똥 묻은 아이템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크가 강화기에 꼬라박은 골드는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고작 10강을 가지 못해서 거의 의 값에 버금가는 골드를 잃은 것이다.
물론 골드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긴 했다.
그러나 지크는 더 이상 강화를 시도할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이거 골드 먹는 블랙홀 아냐? 혹시 이 안에 운영자가?”
오죽하면, 지크는 운영자가 임의로 의 강화 확률을 조작해 자신을 엿 먹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크의 피해망상일 뿐,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99.9퍼센트였다.
“아. 어떻게 강화권이라도 구해 봐?”
지크는 생각을 다르게 먹었다.
그러나 강화권이라는 게 그렇게 구하기 쉬운 물건이었다면, 이 게임은 진작 망하고도 남았을 게 분명했다.
강화를 건드리면 게임이 망한다는 건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었다.
강화가 쉬워질수록 파워 인플레가 벌어지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게임 자체가 완전히 망가지기 마련이었다.
그간 수없이 많은 게임 회사들이 캐시 아이템으로 강화권을 팔아 단기간에 수익을 쪽 뽑아먹고 버린 게임이 어디 한둘이던가?
더욱이, 게임을 철저히 방관하기로 유명한 벌집에서 강화권을 만들어 팔 리가 없었다.
그래서 게임 BNW에서는 강화권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장비를 10강으로 만들어주는 강화권조차도 어지간한 운이 아니고서는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웃돈을 주고 사려고 해도 매물 자체가 아예 없었다.
애초에 이 게임의 강화권이라는 게 값보다 희소성이 더 뛰어나서, 본인이 어떠한 퀘스트를 깨서 얻는 게 아니라면 돈을 주고 사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이다.
“일단 좀 쉬자… 쉬어.”
결국, 지크는 진이 다 빠진 채 프로아 왕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앓아누웠다.
“끄응… 끄으응….”
지크는 잃은 돈이 아까워 로그아웃도 하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끙끙 앓았다.
“여보, 왜 그러셔요.”
그런 지크의 모습을 본 브륜힐트가 베르단디를 잠시 유모에게 맡겨놓고 지크에게 다가와 물었다.
“우리 여보 무슨 일이세요? 어디 아파요?”
“여보….”
지크는 브륜힐트를 보고는 코끝이 시큰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큰돈을 잃고 시름시름 앓다가 사랑하는 아내를 보니 울컥했던 것이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그게요….”
지크는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어 브륜힐트에게 에 똥이 묻었단 사실을 말해주었다.
“괜찮아요.”
브륜힐트는 그런 지크를 꼭 안아주었다.
“돈은 또 벌면 되잖아요. 너무 상심하지 마요.”
“끄응….”
“괜찮아요. 토닥토닥.”
브륜힐트는 지크를 꼭 안아주면서 토닥여주었다.
“고마워요, 여보.”
“아니에요. 언제든 힘든 일 있으면 꼭 말해주기예요?”
“사랑해요.”
그 순간.
지크와 브륜힐트 사이에 사랑의 불꽃이 튀자 성인 콘텐츠가 해제되었다.
지크는 엄마아빠놀이를 피하지 않았다.
자신을 진심으로 위로해 주고 토닥여주는 브륜힐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엄마아빠놀이를 하지 않고서는 이 사랑스러운 감정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스르륵!
지크의 손이 브륜힐트의 가슴팍을 쓸어 넘길 때였다.
“전하! 안에 계십니까!”
문밖에서 미켈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