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42
041
“고스란 님.”
쇠몽둥이를 움켜쥔 지크가 고스란을 향해 물었다.
“뒈져라, 이교도여!”
그때, 오즈릭 교단의 전도사 하나가 지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퍼억!
지크의 쇠몽둥이가 그를 공격했던 전도사의 머리통을 부숴놓았다.
“커억!”
전도사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지, 지크 님?”
그 광경을 본 고스란은 놀랐다.
어떻게?
디버프 필드를 까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다던 사람이 오즈릭 교단의 전도사를 한 방에 골로 보내 버릴 줄이야.
“방금 어떻게….”
“고스란 님.”
지크가 고스란의 말을 잘랐다.
“네?”
“눈 감아요.”
“눈을 감아요?”
“이렇게.”
그렇게 말한 지크가 순간적으로 고스란에게 다가가 그녀를 전투 현장으로부터 돌려세웠다.
“지, 지크 님?”
“감고 있어요.”
지크가 놀란 고스란에게 말했다.
“돌아보지 마요. 그냥 눈 감고 가만히 계세요.”
“어째서….”
“그리고 약속해 주세요.”
“뭐를요?”
“저에 대한 정보.”
“……?”
“그 어떤 영상이나 스샷도 남기지 않을 거라고, 아무에게도 제 얘기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 줄 수 있어요?”
“그거야 당연히….”
“약속해 주시면 이 던전, 제가 깨겠습니다.”
지크로서는 큰 결정이었다.
***
이대로 던전을 포기하느냐.
고스란을 죽이느냐.
혹은 고스란의 앞에서 힘을 드러내느냐.
짧은 순간 지크의 뇌리에는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서로 대립했다.
그러던 중 들었던 생각들이 있었다.
‘지기 싫다. 물러서기 싫어.’
첫 번째는 이 던전에서 패배하기 싫다는 것이었다.
득템?
상관없었다.
던전 클리어에 따른 수입은 나중 문제였다.
‘언제까지 도망만 치며 다닐 순 없잖아.’
제네시스 길드와 대립하던 순간부터 한도 끝도 없이 도망쳐야만 했던 인생이었다.
새로운 삶을 얻다시피 한 지금에 와서도 등을 돌리기는 싫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
‘아군을 늘리지는 못할망정 적을 늘리지는 말자.’
지크에게는 적이 많았다.
지크의 적들은 그 수가 많았고, 또한 강했다.
반면, 지크는 혈혈단신 홀몸이었다.
여기서 고스란을 죽여 그녀의 원한을 산다면?
안 그래도 많은 적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되는 셈이었다.
변이 들소 무리를 끌고 왔던 앙투아네트처럼 무개념 유저가 아닌 이상에야.
그에게 호의적이었던 고스란에게까지 원한을 살 이유가 없었다.
‘믿어 보자.’
지크가 어려운 결정을 내린 이유였다.
***
[43초!] [42초!] [41초!]시간이 없었다.
“약속할 수 있어요?”
지크가 재차 물었다.
“약속…할게요.”
고스란이 대답했다.
“좋아요. 약속한 겁니다?”
“네.”
“곧 끝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그러니까….”
지크가 눈앞의 알림창을 바라보곤 덧붙였다.
“딱 40초만.”
그와 동시에 지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빡, 빠악!
덤벼들던 오즈릭 교단의 평신도 둘이 쓰러지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
파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박!!
지크의 쇠몽둥이가 적들의 머리통을 닥치는 대로 깨부수기 시작했다.
‘쩐다.’
지크는 스스로도 제 강함을 믿을 수가 없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딱히 템을 갖춘 것도 아니고, 무기 역시 비어만 영지에서 사용하던 것 그대로였건만 잡몹들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크리티컬이 터지면 한 방.
안 터지면 두 방.
굳이 버프를 켤 필요도 없을 정도로, 지크의 평타와 강타 스킬은 엄청나게 강했다.
‘시간 없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26초!] [25초!] [24초!]네 개의 오브가 아직 멀쩡하게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잡몹들이나 상대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크핫핫핫핫!”
그때, 로물루스가 폭소를 터뜨렸다.
“네놈은 좀 강하구나! 그래! 어디 한번 실컷 발버둥 쳐 보아라! 네놈은 임박한 부활을 막을 수 없다!”
네 개의 오브가 건재한 걸 두고 한 발언이었다.
“응, 아니야.”
하지만 지크의 생각은 달랐다.
“무엇이 아니라는….”
바로 그 순간.
휘리릭!
지크가 쇠몽둥이를 내던졌다.
쒜에에에에에엑!!
지크의 손을 떠난 쇠몽둥이가 곡선을 그리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스킬!
디버프 마스터의 45레벨 원거리 타격 스킬인 의 발동이었다.
펑!
원형으로 설치되어 있던 오브들 중 가장 오른쪽에 자리해 있던 것이 파괴되며 굉음을 내뿜었다.
“……!”
그 광경을 본 로물루스가 순간 멈칫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퍼엉!
플라잉 스퍼 스킬에 의해 움직이는 쇠몽둥이가 남은 세 개의 오브 중 다른 하나를 더 파괴한 것이다.
하지만 몽둥이는 비행을 멈출 줄을 몰랐다.
퍼엉!
또 다른 오브가 파괴되었다.
남은 건 하나.
“마, 막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로물루스가 절규했다.
***
불행히도, 지크는 네 개의 오브 모두를 파괴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 세계에 혼돈을!!”
오즈릭 교단의 전도사를 중 하나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며 오브를 대신해 지크의 쇠몽둥이를 몸으로 막아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털썩!
임무를 완수한 오즈릭 교단 전도사가 쓰러졌다.
휘리릭!
덕분에 지크는 쇠몽둥이를 회수할 수밖에 없었다.
세 개의 오브를 파괴한 데다가, 오즈릭 교단의 전도사가 몸으로 막아서는 바람에 쇠몽둥이에 실린 운동 에너지가 모조리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아.”
지크가 탄식했다.
“이게 안 맞네.”
게이머들이 흔히들 중얼대는 바로 그 대사였다.
그렇게 남은 오브는 하나.
[9초!] [8초!] [7초!]남은 시간은 불과 10초 이하.
[서두르십시오! 5초 안에 남은 오브를 파괴하지 못하면 보스 몬스터가 부활합니다!]알림창이 오브를 빨리 파괴해야 한다고, 시간이 없다며 지크를 재촉했다.
타핫!
지크가 땅을 박차고 질주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방향이 마지막 남은 오브가 아니었다는 것.
“이 미친놈이!!”
로물루스가 코앞까지 닥쳐온 지크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
지크의 목표는 오브가 아니라 네임드 몬스터인 로물루스였던 것이다.
‘어차피 늦었어. 보스가 부활하기 전에 네임드부터 처치하고, 보스와 일대일 한다.’
지크의 판단은 합리적이었다.
총 열 개의 오브 중 수호자들이 다섯 개, 고스란이 한 개, 그리고 지크가 세 개를 파괴했으니 보스가 부활해 보았자 그리 강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오브는 깔끔히 포기하고, 쾌적한 보스전을 위해 로물루스부터 제거하는 편이 나은 것이다.
자고로 보스전이란 잡몹 없이 일대일 대결이 제맛 아니겠는가?
“네놈이 정녕 뒈지고 싶은….”
허를 찔린 로물루스가 지크를 윽박질렀다.
남은 오브를 지키려다 자신만 위험해진 꼴이었으니 그만 당황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후회는 언제나 관짝이 코앞에 있을 때나 하게 되는 법.
빠악!
지크의 쇠몽둥이가 로물루스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커헉…!”
로물루스가 휘청거렸지만, 무자비한 쇠몽둥이에는 브레이크가 없는 듯했다.
빡, 빠악, 빡!
쇠몽둥이가 세 번 연속 로물루스의 머리를 강타했다.
“크으으윽! 이… 이이 지독한 노오오옴!! 왜 머리만….”
“제일 아프잖아.”
“……!”
“타격감도 좋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타 스킬을 머금은 지크의 쇠몽둥이가 다시금 로물루스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퍼억!
로물루스의 머리통이 마치 수박 터지듯 터져나갔다.
스르륵….
그러자 로물루스가 부리던 오즈릭 교단의 망령들이 그 힘을 잃고 흩어졌다.
[제한 시간, 종료!] [보스 몬스터 부활 저지에 실패하셨습니다! 파괴한 오브(4/5)] [준비하십시오! 곧 보스 몬스터가 깨어납니다!]그리고 알림창이 떠올랐다.
우르르…!!
연구소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
“지크 님…!”
고스란은 눈 감고 등을 돌리고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왜 모를까?
귀가 막히지 않은 이상 지크가 휘두르는 쇠몽둥이 소리, 오브가 파괴되는 소리, 잡몹들의 머리통이 부서지는 소리를 모를 수가 없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게다가 끊임없이 올라가는 경험치 바(Bar)의 존재는 지크가 적들을 닥치는 대로 섬멸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려주고 있었다.
‘디버프밖에 할 줄 모른다면서! 이 거짓말쟁이!’
고스란은 자신이 속았음을, 지크가 힘을 숨기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물었다.
“지크 님! 여태까지 힘을 숨기고 계셨던….”
“나중에요.”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보스부터 처치하고 이야기하죠, 우리.”
“흐응.”
고스란은 잠시나마 심통 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곧 고개를 끄덕이며 지크의 말에 수긍했다.
우르르르르르르르!!
연구소가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 진동하고 있었다.
우우웅!!
저 멀리 거대한 철문 틈에서 새하얀 빛 역시도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것저것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대신 꼭 말씀해 주셔야 해요? 왜 힘을 숨기셨는지?”
“그럴게요.”
지크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이제 반쯤은 망가진 쇠몽둥이를 움켜쥐었다.
쿵!
무언가 거대한 철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쿵, 쿠웅, 쿵, 쿵, 쿵, 쿠우웅!!
계속되는 충격.
쩍, 쩌억!
철문이 일그러지고, 새하얀 빛을 뿜어내는 무엇인가가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저건!”
“헉!”
지크와 고스란이 동시에 놀랐다.
왜냐하면….
[번개뱀 파이톤]오즈릭 교단의 사악한 실험에 의해 부활한 괴수.
과거 이세계로부터 추락, 번영을 누리던 도시 소호카 유적지를 단 하룻밤에 멸망시킨 바로 그 존재이다.
•레벨 : 70
•종족 : 확인 불가
•등급 : 보스(Boss)
•클래스 : 라이트닝 버스터
•특수 능력 : 전하결계 / 차지드(Charged) 브레스
몸길이가 무려 20미터나 되는 보스 몬스터의 정체가 다름 아닌 번개뱀 파이톤이었기 때문이다.
***
“우리… 그거 된 건가요?”
고스란이 물었다.
“뭐가 돼요?”
“그거요. 뭐 됐다 할 때 쓰는 말 있잖아요.”
“아뇨.”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70렙인데요, 뭘.”
다행히도, 열 개나 되는 오브 중 아홉 개를 파괴해서인지 부활한 파이톤의 레벨은 무척이나 낮았다.
설정상, 과거 대도시 하나를 지워버렸던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발톱의 때만큼도 못 되는 것이다.
“우리 레벨이 더 낮은데요?”
고스란이 반론을 제기했다.
“더 좋죠.”
지크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좋을 수가 있나요? 보스의 레벨이 25나 높은데요?”
“저는 좋아요.”
바로 그때.
스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지크와 고스란을 발견한 파이톤이 뱀 특유의 움직임을 선보이며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오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지직!
그런 파이톤의 비늘 표면에서는 과연 번개뱀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끊임없이 스파크가 튀어 오르고 있었다.
“제가 상대할게요.”
지크 역시 마주 오는 파이톤을 향해 달려 나갔다.
스으으!
그런 지크의 몸을 푸른 기류와 붉은 기류가 서로 뒤섞인 채 흐르고 있었다.
디버프 마스터가 자신보다 강한 적을 상대로 폭딜을 뿜어낼 수 있게 해주는 스킬 버프의 이펙트였다.
– 쉬이익!
파이톤이 그 거대한 아가리를 벌려 지크를 한입에 집어삼키려 했다.
‘피하고, 친다!’
몸을 절묘하게 틀어 공격을 피한 지크가 쇠몽둥이로 파이톤의 머리통을 내리치려던 순간.
지직, 지직, 지지직!!
파이톤의 몸 표면을 덮은 비늘에서 전류가 뿜어져 나와 지크를 덮쳤다.
파이톤의 방어용 패시브 스킬인 였다.
그런데.
‘어?’
순간 지크의 눈이 가늘어졌다.
전하결계의 데미지가 생각보다 버틸 만했던 것도 있었지만, 뭔가 특이점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으음!”
전하결계에 놀라 순간적으로 파이톤으로부터 물러났던 지크의 얼굴에 뭔가 기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거 날먹 가능하겠는데.”
지켜보고 있던 고스란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혼잣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