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423
422
낡아빠진 양피지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쿠웅!
지크는 그만 심장이 멎을 뻔했다.
비머리언 공방의 +10 강화권이라니!
정녕 저 낡은 양피지가 에 묻은 똥을 닦아줄 휴지란 말인가?
덜덜덜!
지크는 떨리는 손으로 쟁반 위에 놓인 낡은 양피지를 손으로 슬며시 집어보았다.
오래되어서일까?
푸석!
지크의 손길이 닿은 의 귀퉁이 일부가 먼지가 되어 바스러졌다.
“악!”
지크는 번개처럼 에서 손을 떼었다.
만약 완전히 바스러지기라도 한다면?
[알림 : 님께서 의뢰하신 의 강화가 실패하였습니다!]지크는 또다시 똥 묻은 를 강화기에 밀어 넣어 가며 고통을 받아야 할 게 분명했다.
억 단위의 골드를 잃어가면서 말이다.
[비머리언 공방 +10 강화권]+0~+9 상태의 장비를 100% 확률로 +10으로 강화시켜 줍니다.
+10 이상의 무기에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타입 : 소모품(쿠폰)
•등급 : 유니크
•사용처 : 비머리언 공방
•주의 사항 : 매우 오래돼 찢어지기 쉬우므로, 취급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 이거 저 주시는 겁니까?”
지크가 떨리는 목소리로 알렌 국왕에게 물었다.
“진짜로? 아직 일도 안 끝났는데?”
“예, 지크프리트 전하.”
알렌 국왕이 미소를 지었다.
“전하께서 무척 마음에 들어 하실 거라고 들었습니다. 부디 받아주시고, 좋은 데 사용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누가 알려 줬습니까?”
“시종에게 들었습니다. 모험가들은 유독 무기의 강화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전하께서도 모험가이시니, 이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하실 것 같았습니다.”
알렌 국왕은 말문이 트이던 순간부터 궁중 예법을 교육받아서인지, 말투가 여느 어른에 못지않았다.
“제 선물을 받아주시지요, 지크프리트 전하.”
“물론입니다.”
지크는 을 넙죽 받았다.
‘크으! 요 똘똘하고 귀여운 녀석! 그래! 인마! 형이 어? 장담은 못 하는데! 등골 빠지게 일해서 너 지켜줄게!’
지크는 대놓고 말은 못 했지만, 알렌 국왕의 선물 고르는 센스가 너무나도 고마워서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랄까?
게다가 퀘스트 클리어에 대한 보상이 아닌 일종의 선물이라는 게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알렌 전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잘 쓰겠습니다.”
지크는 을 넙죽 아공간 인벤토리 안에 넣었다.
“전하.”
그때였다.
“지금부터 반란군을 토벌하기 위한 전략 회의를 시작할 예정이옵니다.”
정말이지 멋스럽게 생긴 노신사가 나서서 알렌 국왕에게 고했다.
그 노신사의 이름은 언더테이커 반 스터너.
언더테이커 공작은 키예프 왕가의 방계 혈족으로서, 타이칸의 아버지였다.
“그렇습니까? 언더테이커 대공?”
“예, 전하.”
“그럼 저는….”
“전하께서도 참석하셔야 합니다.”
언더테이커 공작은 전략 회의에서 빠지려던 알렌 국왕을 붙들어 맸다.
“전하. 소신이 비록 전하의 대리인이기는 하오나, 전권은 결국 전하께 있사옵니다. 만약 전하께서 의사 결정을 하지 않으신다면, 감히 섭정을 요구한 역적 타라니스와 다를 게 무엇이겠사옵니까?”
섭정.
왕 대신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을 뜻했다.
타라니스 공작은 아론 국왕이 사망한 직후 자신을 섭정으로 임명해 달라는 요구를 한 바가 있었다.
속 보이는 행위였다.
왜?
야심가 중의 야심가인 타라니스 공작이 섭정에 등극한다면, 그 즉시 왕당파의 귀족들을 모조리 숙청해버릴 테니까.
그 뒤에 벌어질 일이야 뻔했다.
알렌 국왕의 꼭두각시화.
그리고 독살, 혹은 의문사.
그건 현실에서나 게임에서나 역사가 증명해주는 매우 뻔한 레퍼토리였다.
때문에, 왕가를 지지하는 왕당파 귀족들이 그런 타라니스 공작의 요청을 결사반대하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그 결과 타라니스 공작은 왕당파 귀족들에게 왕의 눈을 흐리는 역적들이란 프레임을 씌우고, 그걸 빌미로 반란을 일으켰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타라니스 공작은 반란을 일으킨 게 아니라, 간신들을 척결한다는 명분을 들고 일어난 것이었지만.
그러한 이유로 언더테이커 공작은 결코 알렌 국왕을 병풍으로 세워두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전하. 전하께선 일국의 국왕이시옵니다. 이런 중요한 회의는 반드시 참석을 하시어 결정권을 행사하셔야 하는 것이옵니다.”
“알겠습니다, 언더테이커 대공.”
알렌 국왕은 언더테이커 공작의 권유를 받아들여 자리에 앉았고, 그 이후 전략 회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크는….
꾸벅꾸벅!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귀신같이 졸기 시작했다.
***
회의가 끝난 후.
“야.”
“음냐음냐….”
“야! 일어나! 야!”
“으응?!”
지크는 타이칸이 옆구리를 쿡쿡 찌르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무슨 일 있어?!”
그런 지크가 주변을 돌아보았을 때.
“…….”
“…….”
“…….”
키예프 왕국의 왕당파 대소신료들이 지크를 따가운, 혹은 한심하다는 듯한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크는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졸기 시작해서 희미해졌다 선명해지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하하… 하하하….”
지크는 사람들의 시선에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궁색하게 웃었다.
“제가 회의만 시작하면 조는 병이 있어서….”
“…….”
“그래도 회의 내용은 다 들었….”
“가자.”
타이칸이 지크를 잡아끌었다.
“어떻게 하기로 했냐?”
지크가 회의장을 나서며 타이칸에게 물었다.
“뭐 언제는 다 들었다며?”
“그, 그게… 헤헤헤헤….”
“일단은 전방에서는 반란군이랑 대치하면서 후방의 역적들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아하!”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석 중의 정석.
남부 귀족들 몇몇이 반란군에 가담한 이상, 왕당파로서는 후방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그들을 먼저 정리하는 게 옳았다.
“우리가 불리해. 우린 전선이 두 개인데 저쪽은 한 개잖아. 최대한 적은 병력으로 남부의 역적들을 처리하거나 막아내야 해.”
“그건 그렇겠네.”
“아버님께서는 니가 남부로 가줬으면 하더라고.”
“왜?”
“효율이 높잖아.”
타이칸의 지적은 옳았다.
지크는 일대일도 강력하지만, 일대 다수의 전투에서 매우 효율적인 인원이었다.
특히나, 딱히 특별한 능력 없이 레벨만 높은 기사들은 지크를 막아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지크가 가진 과 스킬이 워낙에 사기라서, 양민 학살에 너무나도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러지, 뭐.”
그렇게 지크는 회의 내용에 따라 바야바 영지를 중심으로 반란군에 가담한 남부의 귀족들을 막아내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야.”
“응?”
“근데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너 뇌신 바즈라의 후예 맞지?”
“어떻게 알아?”
“인마, 다 아는 방법이 있어.”
지크가 히죽 웃고는 타이칸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근데 왜 뇌신 바즈라의 후예가 둘이야?”
“아, 그게….”
“으음?”
“내가 사부님에게 듣기로….”
타이칸이 씁쓸하다는 듯 진실을 말했다.
“원래 젊었을 적 사부님의 제자는 타라니스 그 자식이었대.”
“근데?”
“근데 어느 날 사부님을 배신하고 비열하게 공격했다고 하더라고.”
“뭐?”
“사부님께서는 타라니스의 재능이 워낙 뛰어나서 제자로 받아들이셨는데, 알고 보니 인성이 마음에 안 드셨나 봐. 그래서 비전의 기술들은 전수하지 않으셨지. 타라니스는 그 비전의 기술들이 탐이 났나 봐. 그래서 사부님께 그 비전의 기술들이 적힌 책을 빼앗으려고 했던 거지.”
“거 은혜도 모르는 쓰레기네.”
지크가 으르렁거렸다.
“하늘 같은 사부님을 죽이려고 해? 그것도 도둑질 때문에?”
“원래 그런 사람이야.”
타이칸이 씁쓸하게 웃었다.
“아무튼, 사부님은 가까스로 살아남으셨지만 큰 부상을 입으셨어. 그리고 타라니스의 추적을 피해 숨어 사셔야 했지.”
“아하.”
“그러다 날 우연히 만나셨고, 제자로 삼으셨던 거야.”
“그랬구나.”
지크는 그제야 뇌신 바즈라의 후예가 어째서 두 명인지를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을 줄이야….
“사부님은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언젠가 기회가 오면 타라니스의 야심을 저지하고, 뇌신의 후예로서의 자격을 반드시 박탈하라고도 하셨지.”
“근데 힘들지? 솔직히.”
“응.”
지크의 말에 타이칸이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
“타라니스는 강해. 나보다 더 오래 수련했고.”
“그리고 널 누구보다 잘 알겠지.”
“맞아.”
“그래서 내 도움이 필요하단 거지? 지금은 일대일 승부를 낼 때가 아니니까?”
“정답.”
타이칸은 지크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도와주러 와서 고마워.”
“고맙긴.”
지크가 피식 웃었다.
“돈 받고 일하는 거다.”
“그래도.”
“됐고. 나 그럼 비머리언 공방에 들렀다가 바로 바야바 영지로 갈 테니까, 전방에서 수고해라.”
지크는 곧장 워프 게이트로 발걸음을 돌렸다.
참새가 어떻게 방앗간을 지나치겠는가?
일단 을 획득한 이상 에 묻은 똥을 닦는 게 급선무였다.
***
지크는 를 착용하고 크반트를 만났다.
“또 이러기요? 거 참 서운하오.”
크반트는 지크가 연락도 없이 쥐새끼처럼 숨어 들어온 것에 대해 역시나 서운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런 크반트를 대하는 지크의 태도는 무척이나 까칠했다.
“뭐요.”
“음?”
“내가 대놓고 오든 숨어서 오든 뭔 상관입니까? 킁!”
“지, 지크프리트? 갑자기 왜 그러시오?”
“거 강화기 좀 똑바로 만드시죠? 아니면 아티펙트를 똑바로 만들던가?”
“그게 무슨 말인지….”
“내가 말입니다! 예? 얼마를 날려 먹었는지 아십니까?”
지크는 크반트를 보자마자 순간 화가 나 그간 있었던 를 속사포처럼 토해내었다.
“이게 말이 돼요? 예? 내가 얼마를 퍼부었는데? 고작 10강을 못 간다고?”
“아니, 그건….”
“장사도! 어? 적당히 해 먹어야지! 이거 일부러 막, 강화기 확률 조작해놓은 거 아냐? 돈 벌어먹으려고?”
“저, 절대 그렇지 않소! 억울하오! 본 공방은 강화기에 일체의 확률도 조작하지 않았소! 애초에 불가능하단 말이오!”
“근데 이게 말이 되냐고요? 예?”
“그, 그건….”
크반트는 억울했지만, 지크의 항의에 딱히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왜?
크반트가 생각해도, 지크의 운이 지독히도 없었으니까.
상식적으로 그 정도의 금액을 투자했는데 10강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건 크반트로서도 믿기 힘든 일이었다.
“그냥 운이 지독하게 없었다고….”
“변명하지 마시죠.”
“…….”
“강화기에 장난을 친 건지, 아니면 아티펙트에 똥을 묻혀 놓은 건지.”
“너, 너무하오….”
“돈 많이 버셔서 좋겠네요?”
“그야 강화기는 아티펙트 판매보다 더 많은 매출을 보장하는 매우 좋은… 크흠! 아, 아니오!”
“됐고요.”
지크가 퉁명스레 말하며 를 크반트에게 내밀었다.
“이거나 강화해 주시죠.”
“가, 강화 말이오? 설마 그 많은 돈을 잃었으니 공짜로 아티펙트를 강화해달란 말은 아니겠지? 미안하지만, 아무리 그대라도 그건 불가능하오. 아티펙트의 강화는….”
“저 거지 아니거든요!”
지크가 빽! 소리치며 을 크반트에게 내밀었다.
“이거 줄 테니까, 강화시켜 주십쇼.”
“헉! 이것은! 본 공방의 쿠폰! 이 오래된 물건을 도대체 어디서 구했단 말이오! 허허!”
“그거야 알 바 아니죠?”
“…….”
“얼마나 걸립니까?”
“재료가 있는지 먼저 보겠소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그로부터 10분 뒤.
“지금 바로 작업에 착수하면 세 시간이면 될 것 같소.”
“그럼 지금 바로 시작해 주시죠.”
“아, 알겠소.”
크반트는 지크의 사나운 태도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를 받아들고 헐레벌떡 강화를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
그때, 지크가 크반트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요!”
“음? 뭐 문제 있소?”
“잠시만요. 생각 좀 해보고.”
“무얼?”
“얘들을 어떻게 쓸지?”
“히, 히이이이이이이이익?!”
크반트는 지크가 역시 오래된 양피지 조각 두 개를 흔들어 보이자 거의 자지러지듯 경악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가, 강화권과 장비 보호권이 또 있단 말이오?!”
지크가 흔든 낡은 양피지 조각들이 다름 아닌 과 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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