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430
429
지크의 등 뒤.
– 읍! 읍읍!”
– 으읍! 읍! 으으읍! 읍!”
– 으으으으으으읍!”
입에 재갈이 물린 채 발버둥 치고 있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반란군에 가담한 고위급 인사들의 가족들이었다.
육군 대장(★★★★★)의 딸.
기사단장의 아내.
영주의 아들.
기타 등등….
심지어, 타라니스 공작의 심복인 오슬로 백작의 아내와 두 명의 딸까지 있었다.
즉, 지크는 강화된 보안을 뚫고 군사 시설에 테러를 가하기보다는 반란군에 가담한 고위급 인사들의 주변인들을 납치했던 것이다.
왜?
그게 더 쉬웠으니까.
우라칸을 타고 날아가 인질로 잡을 표적 위를 비행하고 있다가 반중력 마법만 사용해주면?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표적은 반중력 마법에 의해 우라칸에 강제로 탑승하곤 했다.
마치 외계인이 지구인을 납치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몇 번의 전투를 겪은 적도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주 사소한 해프닝에 불과했다.
전쟁 이후 강자들 대부분이 전쟁터로 나갔기에, 귀족들의 저택을 지키는 경비 병력의 수준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빌어먹을!’
타라니스 공작은 그제야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설마하니 군사 시설 테러가 아닌 주요 인사들의 납치에 주력했을 줄이야….
“레, 레이첼!”
그때, 오슬로 백작이 마법의 수정구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레이첼! 괜찮은 것이냐! 레이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적에게 붙잡혀 있는 걸 보았으니 눈이 돌아가는 게 당연했다.
“레이첼! 레이체에에에엘!”
– 읍! 읍읍! 읍!
지크는 그런 오슬로 백작을 바라보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 따님이 참 예쁘시군요.
“그, 그게 무슨!”
– 저에 대한 소문을 들으신 적 있습니까?”
“소문… 말씀이시오?”
오슬로 백작은 지크의 물음에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말했다.
“서슴없이 뒤통수를 잘 친다는 비열함을 말하는 거요?”
그 순간.
빠직!
지크의 이마에 힘줄이 팍! 하고 돋았다.
– 그거 말고!!!
“그, 그럼 뭘 말하는 것이오?”
– 그 있잖아!
“……?”
“설마?!”
오슬로 백작의 뇌리에 지크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 몇 가지가 스쳐 갔다.
지크에 대한 악소문은 많았다.
뒤통수를 잘 친다는 이야기부터, 왕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품위가 없다는 얘기도 있었고, 또 돈을 밝힌단 소문도 돌았다.
그중 가장 최악인 것은….
“이 색마!!!”
바로 넘치는 정력을 바탕으로 뭇 여성들을 후리고 다닌다는 소문이었다.
색마.
호색한.
절륜남 등등….
약소국의 왕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가 못 말리는 호색한이란 소문은 게이머들에서부터 NPC들에게까지 암암리에 도는 소문이었다.
“설마! 내 딸을!”
– 흐흐흐!
지크가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따님의 살결이 뽀얗고 부드러워 보이는군요?
“아, 안 돼! 안 돼!”
– 흐흐! 장인어른!
“장인어른이라니!”
– 제가 따님을… 츄릅!
지크가 더럽게 혀를 날름거리며 오슬로 백작의 딸 레이첼을 핥으려는 듯한 시늉을 해 보였다.
– 읍! 으으으읍! 읍읍! 읍읍! 읍읍!
그러자 레이첼은 입에 재갈이 물린 상태에서도 어떻게든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쳐댔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오슬로 백작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질 것만 같았다.
“아, 안 돼에에에에에에에에에!”
– 흐흐! 흐흐흐흐! 야들야들!
“제발! 제발 그러지 마시오! 내 이렇게 빌겠소! 제발 내 딸아이만은… 크흑!”
오슬로 백작은 마법의 수정구 너머로 보이는 지크를 향해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제발… 제발 그러지 마시오… 제바알….”
– 그건 장인어른께서 결정하실 사안이 아니죠. 흐흐흐.
“……!”
– 어이, 형씨.
지크가 타라니스 공작을 바라보며 물었다.
– 병력, 빼지?
“크흠!”
– 안 빼면 이 사람들이 다 어떻게 될지는 말 안 해도 잘 알겠지?
지크가 타라니스 공작을 향해 이죽거렸다.
– 좋게 말할 때 병력 뺍시다. 예?
“…….”
– 빼랄 때 빼세요.
타라니스 공작은 지크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 대답이 없네?
“…….”
– 지금부터 한 시간에 한 명씩 목을 잘라서 그쪽에 보낼 테니까, 잘 생각하쇼.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일방적으로 통신을 끊었다.
지직! 지지직!
마법의 수정구가 회색 화면으로 물들던 순간.
파지직! 콰앙!
타라니스 공작의 주먹이 책상을 내리찍었다.
“지크프리트으으… 이 개새끼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렇게 지크는 또 한 명의 적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
통신이 끊긴 직후.
“어우야.”
지크는 조금 전 자신이 했던 연기를 떠올리며 진저리쳤다.
“내가 생각해도 방금 연기는 좀 더러웠네. 그치?”
“뀨우? 그거 연기였냐?”
햄찌가 지크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그거 평소 모습 아니었냐? 주인 놈아?”
“야 이 미친놈아! 내가 평소에 언제 그랬어!”
지크는 조금 전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레이첼을 희롱하던 모습이 진짜냐고 묻는 햄찌에게 버럭 소리쳤다.
문제는 그게 비단 햄찌만이 아니었다는 것.
“…….”
“…….”
“…….”
조금 전 벌어진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은 모두 경멸 어린 눈초리로 지크를 흘겨보고 있었다.
“흑… 흑흑흑….”
오슬로 백작의 딸 레이첼은 아예 겁을 잔뜩 집어먹어서는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아, 아니야! 진짜 아니라고! 나 그런 사람 아니야!”
지크는 버럭 소리치며 자신을 변호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변태.’
‘사람이 어쩜 저렇게 쓰레기냐.’
‘그러고 싶나.’
‘설마 진짜 강제로 그러려는 건….’
‘윽! 인간쓰레기!’
지켜보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지크가 쓰레기라고 생각하며 경멸했다.
그건 지크의 연기가 워낙에 리얼한 탓도 있었지만, 칭호의 역할이 더 컸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칭호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다 보니 뭘 해도 욕을 먹게 된 것이다.
“…그래.”
지크가 자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쓰레기다, 쓰레기.”
지크는 굳이 자신의 입으로 스스로를 변호하기를 포기했다.
‘나만 떳떳하면 되지.’
어차피 진짜로 해코지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기도 했고.
“일단 잘 가둬두세요.”
“예.”
지크의 명령에 기사들이 인질로 잡힌 이들을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 지크프리트 전하.
언더테이커 공작이 지크에게 물었다.
–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옵니까?
“글쎄요?”
– 타라니스 공작은 이런 것에 흔들릴 인간이 아니옵니다. 타라니스 공작은 이번 기회를 위해 수십 년을 기다려온 야심가이옵니다. 처자식이 인질로 잡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런 인물이 고작 부하들의 처자식이 인질로 붙잡혔다고 해서 병력을 빼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권력이란 자기가 낳은 자식마저도 제 손으로 죽이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것.
왕위를 노리는 타라니스가 이런 일을 두고 병력을 빼길 기대하는 건 무리인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크의 생각은 달랐다.
“그게 문제인 거죠.”
– 예?
“타라니스 본인은 괜찮아도 부하들은 아닐 텐데요?”
– 그, 그런!
“지금부터 가족들이 붙잡힌 이들에게 연락을 하는 겁니다. 후후후.”
지크가 웃으며 말했다.
“지금 전향해서 용서를 구하면 반란군에 가담했던 걸 깔끔하게 잊어준다고 하시죠.”
– 그런 좋은 방법이!
“다는 아니겠지만 반만 전향해도 당장 군대 운영에 상당한 지장이 올 겁니다.”
–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지금쯤 열심히 이 사건을 은폐하고 전쟁을 빨리 끝내려고 노력하고 있겠죠? 큭큭큭….”
지크는 저 멀리 있는 타라니스 공작의 속을 훤히 꿰뚫어 보며 키득거렸다.
***
지크의 생각은 정확했다.
“각하. 소신이 딸자식을 포기하겠사옵니다.”
오슬로 백작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레이첼을 버리겠다고 말했다.
“오슬로….”
“딸자식이야 또다시 가지면 되는 것 아니겠사옵니까? 그러나 각하의 대업은 평생에 단 한 번뿐인 기회이옵니다. 소인의 혈육 때문에 각하의 대업에 민폐를 끼칠 수야 없는 것이겠지요.”
“오슬로. 그대는 정말이지 충신 중의 충신이로군.”
타라니스 공작은 오슬로 백작의 희생정신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를 위해 혈육까지 희생하다니! 정말 괜찮겠는가? 그대의 딸 사랑은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소인이 생각하기에 키예프 왕국의 진정한 왕은 오직 공작 각하뿐입니다.”
“크흠!”
“지금도 전쟁터에서는 우리의 병사들이 죽어가고 있사옵니다. 그들 역시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자식이겠지요.”
“그럴 것이다.”
“그들도 희생을 치르는데, 소인이라고 희생하지 않을 순 없겠지요.”
“허….”
“공작 각하. 이런 작은 일에 대업을 그르치지 마소서.”
“고맙다. 정말로 고마워.”
타라니스 공작은 오슬로 백작의 두 손을 꼭 잡아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내 그대의 충성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건 새빨간 거짓말에 불과했다.
‘훗날 널 제거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나의 마음이 아프구나.’
사실 타라니스 공작은 왕위에 오른 이후 오슬로 백작을 숙청할 생각이었다.
왜?
그게 곧 권력의 속성이었으니까.
강력한 왕권을 위해서는 개국공신마저 스스럼없이 처단해야 한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가 아니겠는가?
“공작 각하. 당분간은 이 사실을 은폐하셔야 하옵니다. 아군 고위급 인사들이 동요하는 일 없도록 철저히 은폐하시어 대업으로 향하는 길을 걸으소서.”
“고맙다. 오슬로. 내 그리할 것이다.”
결국, 타라니스 공작은 오슬로 백작의 희생 덕분에 이 사건을 은폐할 수 있게 되었다.
“내일 오전에 남부 전선에서 총공격을 감행하소서.”
“알겠다.”
타라니스 공작은 오슬로 백작의 조언을 받아들여 호른 영지 함락을 위한 총공격을 마음먹었다.
***
다음 날 오전.
타라니스 공작은 남부 전선에 배치된 대규모 병력을 이끄는 총사령관에게 통신을 걸어 총공격에 대한 명령을 내리려 했다.
그런데.
– 총사령관과 부사령관은 어디로 갔나?
“그, 그것이….”
부관은 타라니스 공작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 당장 총사령관과 부사령관을 바꿔라!
“공작 각하….”
부관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타라니스 공작에게 보고했다.
“현재 총사령관과 부사령관은 통신을 받을 수가 없사옵니다….”
– 어째서인가! 남부 전선의 총책임자들이 24시간 통신을 받을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 이유가 있사옵니다.”
– 이유?
“총사령관과 부사령관이 지난밤….”
– 설마 암살이라도 당한 건가?
“그건 아닙니다.”
타라니스 공작이 넘겨짚었지만,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다.
– 그럼 도대체 왜?
“총사령관과 부사령관은….”
부관이 타라니스 공작의 물음에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탈영했습니다.”
– 뭘 했다고? 탈?
타라니스 공작은 부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 총사령관과 부사령관이 뭘 어떻게 했다고?
“탈영… 했습니다.”
– 탈여엉???
“예….”
– 사성 장군과 삼성 장군이 탈영을 했다고? 일개 징집병도 아니고, 말단 이등병도 아닌데? 사령관씩이나 되는 자들이 탈영을 했다고?
“그, 그러하옵니다.”
– 이런 개 같은!!!
타라니스 공작은 단순한 분노를 넘어 극도로 노했다.
이른바 를 시전한 것이다.
– 이유가 무엇인가! 이유가!
“그것이….”
부관이 대답했다.
– 총사령관과 부사령관이 탈영 전에 남긴 편지에 의하면… 부하들 알기를 동네 개만도 못하게 아는 자를 위해서는 일하지 않는다고….
“뭣이?!”
– 공작 각하께서 총사령관과 부사령관의 가족들이 납치당한 걸 은폐하신 행동이 구역질이 나서 도저히 복무할 수가 없어 왕당파로 전향한다는….
부관의 그 보고가 끝남과 동시에.
툭!
타라니스 공작은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