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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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사회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지크는 미켈레가 해주었던 그 영원불멸의 격언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조지 3세가 반쯤 X된 상황이지? 그럼 걔 주변국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도와주려고 할까?’
지크의 생각은 NO였다.
지금 조지 3세는 키예프 왕국을 집어삼키기 직전이었다.
만약 조지 3세가 키예프 왕국을 꿀꺽한다면?
살투트 왕국의 국력은 지금보다 더 강력해질 터.
제아무리 동맹국이라 할지라도, 그걸 달가워할 사람은 단언컨대 없었다.
조지 3세의 성격상 국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더 오만방자하고 거만하게 날뛸 게 분명했기에, 동맹국들로서도 살루트 왕국의 국력이 더욱 강해지는 건 사양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평소 조지 3세가 국제 사회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떠올려 보았다.
동맹국들은 대부분이 서로의 이익을 위한 상호 파트너 관계이지 의리로 다져진 혈맹(血盟)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지크는 그러한 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역시나 강대국의 왕이며, 평소 조지 3세와 가장 죽을 잘 맞추던 사람인 의 스텔론 국왕에게 통신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스텔론 국왕 전하.”
– 으음?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국왕 아닌가?
스텔론 국왕은 조지 3세의 절친답게 지크를 그리 달갑게 보지 않는 눈치였다.
– 자네가 무슨 이유로 내게 통신을 건 거지? 내게 할 말이 딱히 없을 텐데?
“있습니다.”
– 있다?
“예, 전하.”
– 그 할 말이라는 게 뭔가? 지금은 내가 좀 바쁘니 빨리 용건만 간단히 하게.
“그러겠습니다.”
지크는 속으로 스텔론 국왕을 라고 욕하며, 겉으로는 최대한 친절하고 서글서글한 척 용건을 말했다.
“전하께 매우 좋은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합니다.”
– 음? 자네 따위가 내게 좋은 제안을 할 게 있다고?
“…….”
– 풉!
지크는 스텔론 국왕의 머리통을 깨부수고 싶었지만, 또 한 번 인내심을 발휘해 참고는 조곤조곤 다시 말을 이었다.
“평소 조지 3세 전하와 친하게 지내신다고 들었습니다.”
– 흠. 그렇긴 하지. 근데 그걸 왜 자네 따위가 신경 쓰는 거지?
“제가 살루트 왕국 전국 방방곳곳에 부패의 저주 바이러스를 풀었습니다.”
– 그래? 살루트 왕국 방방곡곡에 부패의 저주 바이러스를… 으응?
순간 스텔론 국왕은 제 귀를 의심했다.
– 뭣이?! 살루트 왕국에 부패의 저주 바이러스를 풀어?
“예, 스텔론 국왕 전하.”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지 3세 전하와 트러블이 좀 있었사옵니다. 그래서 홧김에 그만….”
– 허허… 아주 미쳤구먼? 조지 그 친구 성격이면 자네는 곧….
“압니다. 그래서 이렇게 연락을 드리지 않습니까?”
– 으음?
“스텔론 국왕 전하. 이건 기회입니다.”
– 기회?
“평소 조지 3세 전하가 스텔론 전하를 은근슬쩍 깔아뭉개고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적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 그, 그건! 으음!
“그런 조지 3세 전하가 이번 위기를 잘 극복하고 키예프 왕국을 꿀꺽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앞으로 스텔론 전하를 아예 찍어 누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 ……!
“거의 대등한 지금도 그렇게 무례하고, 또 친구를 무시하기 일쑤인 조지 3세가 키예프 왕국을 통째로 집어삼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그건… 크흠!!! 그건 좀….
“스텔론 국왕 전하께서는 왕이시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의리와 우정을 중요시하시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물론 그따위 헛소문이 돈 적은 있지도 않았고, 지크가 즉석에서 지어낸 거짓말일 뿐이었다.
“하지만 조지 3세는 그런 스텔론 국왕 전하의 우정을 종종 무시하고, 또 친구의 말을 업신여기기 일쑤라고도 들었지요.”
– 그렇긴… 하지….
“전하. 좋은 벗이란 말하지 않아도 속마음을 알아주기 마련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조지 3세는 어떻습니까? 전하의 마음을 알아준 적이 있었습니까?”
– 크흠….
“전하. 그런 친구 같지도 않은 친구는 한시라도 빨리 손절하시고, 왕국의 번영을 위해 국익을 취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 국익이라… 그렇지… 과인은 일국의 왕으로서 국익을 취해야 할 의무가 있지.
“현재 살루트 왕국은 구울 떼가 창궐하고 있고, 백신과 치료제는 없는 상황입니다. 이럴 때 전하께서 큰 결단을 내리신다면….”
– 큰 결단이라….
“한시라도 빨리 움직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조지 3세는 적이 많습니다. 다들 그를 도와주는 것보다는….”
– ……!
“저는 스텔론 국왕 전하께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럼, 전 이만….”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통신을 끊었다.
“일단 하나 낚았고.”
지크는 그렇게 중얼거린 뒤 다른 왕에게 또다시 통신을 걸었다.
그 작업은 여러 번 반복되었다.
통신이 끝나면 다른 왕에게 걸고, 걸고, 또 걸고….
***
다음 날 아침.
“전하! 반란군이 흩어지고 있사옵니다! 반란군을 지휘했던 장교들은 대부분 항복해 오거나, 자결하거나, 혹은 탈영했다고 하옵니다!”
키예프 왕국의 어전에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좋은 소식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하! 역적 오슬로 백작을 생포해 왔사옵니다!”
죽은 타라니스를 도와 반란군의 지략가 노릇을 했던 오슬로 백작.
그는 타라니스가 죽자 조지 3세를 충동질해 살루트 왕국의 침공까지 유도했던 희대의 역적이었다.
그랬던 그가 조지 3세가 키예프 왕국 침공에서 발을 빼면서 기사회생하는 데 실패했고, 제3국으로의 망명을 시도하다가 붙잡힌 것이다.
“이 역적 놈! 무릎을 꿇어라!”
기사들이 오슬로 백작을 강제로 알렌 국왕 앞에 꿇어 앉혔다.
“…….”
오슬로 백작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체념한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미동도 없이 무릎을 꿇고 있었을 뿐….
“네 이놈! 오슬로!”
그때, 언더테이커 공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역적 타라니스와 결탁하여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킨 것으로도 모자라 감히 외세를 끌어들여 국가 전복을 꾀했느냐!!! 네놈이 그러고도 사람이란 말이야!!!”
“…….”
“이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은 놈!!! 당장 전하께 그 죄를 고하고 죽음을 고하지 못할까!!!”
“내 죄를… 고하라?”
오슬로 백작이 고개를 슥- 하고 들더니 냉소를 지었다.
“어차피 죽일 거면서 왜 내게 사죄를 받으려 하는 거지?”
“이놈이!!!”
“그냥 죽여라.”
오슬로 백작은 이미 모든 걸 체념한 채 죽음을 기다렸다.
“나는 어린 왕 따위에게 사죄하지도 않을 것이며, 또 죽음을 구걸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받아들일 뿐. 그러니 내게 원하는 대답을 얻을 생각은….”
그때였다.
“저기요!”
지크가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삼촌.”
“고마워, 조카.”
지크는 알렌 국왕의 허락을 받고는 입을 열었다.
“쟤 그냥 죽이지 말죠.”
“예? 전하! 저자는 역적이자 매국노로써 100번 1,000번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자이옵니다! 어찌 저런 자를 죽이지 말라고 하시옵니까!”
“죽이면 아깝잖아요.”
“예?”
“늙어 죽을 때까지 고통스럽게 살아가게 해도 되는데, 편하게 죽여줄 이유라도?”
“……!”
“우리나라에 아오지 탄광이라고… 범죄자들만 수용해 놓는 곳이 있거든요? 거기 들어가면 한 일주일이면 차라리 죽여 달라고 빌더라고요?”
“허! 그런 곳이 있사옵니까?”
“심심해서 하나 만들어 봤죠. 매일 매일 죽을 것같이 고통스러운데, 그렇다고 죽지는 못합니다. 왜냐고요? 최고의 의료진들이 매일 매일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치료해주거든요. 후후후.”
“헉! 그, 그렇게 사악할 수가!”
“필요하면 신성 콘스탄틴 제국의 성녀님께 부탁드려서 억지로 살려놓기도 하죠.”
“……!”
“가끔 특별 서비스로 30일씩 산 채로 불에 굽기도 하는데, 혈관에 호스를 연결해서 최상급 포션을 계속 공급하거든요? 그럼 죽지도 못하고 30일 내내 구워지게 되는 거죠.”
지크의 그 말이 끝나던 순간.
‘아, 악마다!’
‘저런 기발한 고문 방법이? 사람이 어떻게 저런 사악한 고문 기술을?’
‘허… 하필 상상력을 동원해도 저렇게 끔찍한 고문 기술을 개발해낼 줄이야!’
키예프 왕국의 대소신료들은 지크가 말한 고문 기술에 그만 기가 질려버렸다.
맙소사!
사람을 산 채로 굽다니?
그것도 죽지도 못하게?
“쟤가 지금은 꼴에 좀 배짱을 튕기나 본데, 불맛을 한 번 보면 180도 달라질 겁니다. 약속하죠. 아, 그리고….”
지크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가족들이 산 채로 불에 구워지는 걸 보면 또 달라질 겁니다.”
“……!”
“눈앞에서 자기가 버린 처자식들이 산 채로 불에 구워져도 지금처럼 배짱을 부릴 수 있을지….”
그때였다.
“그, 그것만은!!!”
갑자기 오슬로 백작이 절규하듯 소리쳤다.
“아직! 아직 내 처자식들이 안 죽었단 말이오? 아직 살아 있단 말이오?”
“꼴에 지 처자식 얘기가 나오니까 발끈하는 거 보소?”
지크가 그런 오슬로 백작을 향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언제는 헌신짝처럼 버릴 것처럼 굴더니, 살아 있다니까 좀 생각이 달라진 모양이지?”
“이, 이보시오! 이보시오 지크프리트 국왕! 만약 내 처자식이 살아 있다면… 제발 그들만은 그냥 두시오! 나만… 나만 불에 구워지면 되지 않소!”
“니가 일으킨 반란으로 죽은 병사들은?”
“……!”
“니가 살루트 왕국을 끌어들여서 식민지가 될 뻔한 키예프 왕국 백성들은?”
“그, 그건….”
“애꿎은 사람들 인생 나락으로 처박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너랑 니 처자식이 고통받는 건 싫고?”
그렇게 말하는 지크는 정말이지 냉혹해 보여서, 지켜보는 이들마저도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거기다 내가 다 차려놓은 밥상에 고춧가루까지 뿌리려고 했지?”
“미, 미안하오! 내 이리 사죄하리다! 제발! 제발 처자식들만은….”
“끌고 가세요.”
지크가 파견을 나와 있던 프로아 왕국의 해병대원들에게 명령했다.
“예! 전하!”
그러자 프로아 왕국의 해병대원들이 오슬로 백작을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으아아아아악!!! 안 돼에에에에에!!! 이보시오!!! 내가 잘못했소!! 내 이리 사죄하리다!! 제발!!! 제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알!!!”
오슬로 백작의 처절한 비명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지만, 지크는 명령을 거두지 않았다.
“뿌린 대로 거둬 봐.”
지크는 때때로 무섭도록 냉혹한 남자였기 때문이다.
***
며칠 후.
“전하! 동쪽 국경이 뚫렸사옵니다!”
“전하! 키예프 왕국에 원정을 나갔던 군대 내에 부패의 저주 바이러스가 창궐했다고 하옵니다!”
“전하! 남쪽으로부터 에페드린 왕국의 군대가 국경의 요새들을 차례차례 함락하고 북상해오고 있사옵니다!”
“전하! 수도에도 부패의 저주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들이 하나둘 출몰하고 있사옵니다!”
조지 3세는 고혈압으로 병상에 드러누운 채 온갖 안 좋은 소식들을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저, 전하! 동맹국들을 포함한 7개국이 본국의 전 국토를 유린하고 있사옵니다!!!”
조지 3세는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강대국이었던 살루트 왕국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고 있단 소식마저도 들어야 했다.
최악의 상황.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가 쫄딱 망해가는 와중에도 조지 3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강대국?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상태에서 강대국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50만 대군도.
막강한 경제력도.
수준 높은 기사들도.
전국 방방곡곡에 살포된 부패의 저주 바이러스 앞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무용지물이었다.
“이렇게 망하는가… 이렇게….”
조지 3세가 허망하게 탄식할 무렵이었다.
“프로아 왕국을 위하여!!!”
“프로아 왕국을 위하여!!!”
“프로아 왕국을 위하여!!!”
왕궁 곳곳에서 이해할 수 없는 외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