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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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지크는 로엔그린의 부상 소식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장인어른인 로엔그린이 큰 부상을 입었다거나, 혹시 죽기라도 한다면 브륜힐트의 얼굴을 어떻게 보겠는가?
“장인어른!!! 괜찮으십니까!!!”
지크가 크게 소리쳐 로엔그린의 안부를 물었다.
“사위! 나는 괜찮네!”
그러자 성문 너머로 로엔그린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냥 좀 부상을 당했을 뿐이네! 며칠 쉬면 나을 게야!”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지크는 놀랐던 가슴을 겨우 쓸어내렸다.
“동생! 아무래도 어르신께서는 전투에서 빠지셔야 할 것 같네!”
그때, 라이언베르트의 외침이 들려왔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님!”
“어르신께서 꽤 많이 다치셨네! 더는 전투를 계속하기 힘들 것 같네!”
지크의 물음에 라이언베르트가 답했고, 뒤이어 로엔그린 외침이 들려왔다.
“아니! 이 사람아!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더 싸울 수 있다네!”
“어르신! 피투성이신데 지금 전투가 웬 말입니까! 쉬셔야 합니다! 그러다 쓰러지십니다!”
“무슨 소리! 그런 말 말게! 사위가 걱정하질 않나!”
아무래도 로엔그린은 꽤 심각한 부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아. 성녀님을 우리 원정대에 넣을걸.’
지크는 성녀 자네트를 검은 사막으로 보낼 게 아니라 데리고 왔어야 한다고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장인어른! 몸도 성치 않으신데 일단 돌아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사위! 걱정 말게! 난 아직 싸울 수 있네!”
로엔그린이 고집을 부렸다.
그러나 지크는 로엔그린이 고집을 피우게 놔두지 않았다.
“장인어른! 어차피 이 문 못 부숩니다! 괜히 거기서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비행선에서 기다려 주시죠!”
“아니 이 사람이! 아직 싸울 수 있대도!”
“저희 먼저 가겠습니다!”
지크는 그렇게 소리치고는 베오울프를 돌아보며 말했다.
“가죠.”
“예?”
“저 문, 어차피 못 부수잖아요. 넘어갈 방법도 없고.”
지크의 지적은 옳았다.
성문은 너무나도 견고해서 지크와 베오울프조차도 부술 수 없었고, 성벽에는 어떠한 결계가 걸려 있어서 넘어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성문 밖 사람들과 합류하면 좋겠지만, 그게 불가능한 이상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저 제단을 파괴하기 위해 나아가는 것뿐이었다.
“직진합시다.”
지크는 성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로엔그린의 외침을 애써 무시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거 느낌이 안 좋아.’
엄습하는 불길한 예감을 애써 떨쳐내면서….
***
비슷한 시각.
에서 펼쳐진 전투는 거의 막바지에 다다라 있었다.
광활한 사막에서 펼쳐진 전투는 어지간한 국가들 간의 대규모 전면전에 버금갈 만큼 장대한 스케일을 자랑했고, 또한 격렬했다.
휘이이이이이!!!
특히나, 검은색 모래 폭풍이 끊임없이 휘몰아쳤기에 전투는 더더욱 힘겨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원정대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 오즈릭 교단의 방어선은 무너지고 말았고, 제단까지는 고작해야 100여 미터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원정대는 전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즈음, 갑작스레 나타난 거대 괴수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스콜피온 카이저]고대 사막 제국의 신수.
사막에서는 그 적수를 찾아볼 수 없는 무시무시한 생명체로서, 사실상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존재이다.
•존재 구분 : 몬스터
•레벨 : 500
•종족 : 자이언트 스콜피온
•클래스 : 카이저 오브 데저트
“악!”
천우진은 의 등장에 경악했다.
“아, 안 돼… 여기서 저게 나와 버리면….”
천우진은 절망했다.
안 그래도 이미 피해가 큰 상황이었다.
겨우겨우 방어선을 뚫어내고 의식이 진행되고 있는 제단을 100미터 앞에 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의 등장은 원정대의 힘을 쭉 빼놓고도 남을 만큼의 임팩트를 자랑했다.
무려 500레벨의 몬스터를 상대하려거든 최소한 마스터 등급의 강자가 한두 명 정도는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도 아니라면 엄청나게 많은 인원이 떼거리로 달려들어야 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지.’
결국, 천우진은 진격을 포기하고 부터 상대하자는 판단을 내려야만 했다.
“전 병력! 스콜피온 카이저부터 상대합니다!”
그렇게 원정대와 의 전투가 벌어지고, 시간은 점점 흘러만 갔다.
얼마나 싸웠을까?
천우진은 그간 쌓아놓은 스택-천우진은 게이머가 퀘스트를 클리어할 때마다 힘을 충전함-을 모조리 소모하면서까지 를 상대하며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했다.
그러던 중.
우우우우우우웅!!!
저 멀리 100미터 전방에 자리한 고대 유적지로부터 오색 찬연한 빛깔의 에너지가 뿜어져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아.”
그 광경을 본 천우진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
지크와 베오울프를 중심으로 한 원정대는 성문 앞을 지나 계속해서 전진했다.
여정은 쉽지 않았다.
각양각색의 들이 원정대를 가로막았는데, 그 과정에서 지크와 베오울프를 뺀 나머지 대원들의 부상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또한, 성 곳곳에 설치된 함정들과 폭약들에 의한 피해도 상당했다.
으득!
지크는 이를 갈았다.
“아오! 이 지독한 새끼들! 이젠 하다 하다 이따위 함정까지 설치해 놓네!”
“그러게요.”
베오울프는 지크의 의견에 적극 동의했다.
그야말로 지뢰밭.
성 안은 1분 1초도 방심할 수 없는 함정의 도가니탕이라서, 한 발자국을 떼어놓는 것조차 두려울 정도였다.
“그래도 조금만 힘내죠. 거의 다 온 것 같네요.”
베오울프가 손에 든 자그마한 지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건 뭔데요?”
지크는 문득 베오울프가 든 지도가 뭔지 궁금해져서 질문을 던졌다.
“아, 이게 뭐냐면… 인자기의 지도라고 하는데요.”
“예? 인자기의 지도요?!”
지크는 아이템의 이름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혹시 아세요?”
“저도 있는데?”
지크가 을 꺼내 베오울프에게 보여주었다.
“지도도 있었구나.”
지크는 호기심에 베오울프가 가진 지도를 으로 비추어 보았다.
[인자기의 길잡이]인자기가 살아생전 사용하던 여러 아티펙트 중 하나.
믿고 신뢰할 수 있는 물건이므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어지간해서는 길을 잃을 일이 없다.
•타입 : 잡동사니(지도)
•등급 : 유니크
•내구도 : 9 / 10
•효과
– 던전 입장 시 보스 몬스터가 자리한 장소를 매우 높은 확률로 감지해 지도에 표시해 줍니다.
•세트 :
– 인자기의 나침반
– 인자기의 길잡이
– 인자기의 나무지팡이
알고 보니 시리즈는 유니크 등급의 세트 아이템이었던 모양이었다.
“아. 세트였구나.”
지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베오울프에게 물었다.
“얼마나 남았어요?”
“여기 이 복도로 쭉 가면 보스 방인데요?”
“그래요?”
지크는 베오울프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어두컴컴한 복도 끄트머리에 거대한 철문 하나가 어렴풋이 보이는 듯했다.
“5분도 안 걸릴 것 같긴 한데… 뭐가 있을지 모르니 한 명씩 통과해보죠. 좁은 길이라 여기서 뭐라도 터지면 진짜 큰일 날 테니까요.”
“그럴까요?”
“일단 저부터 갑니다.”
지크는 을 꺼내 길잡이로 삼고 천천히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뀨! 주인 놈아! 조심해라! 걱정된다!”
“걱정되면 너도 오던가.”
“주, 주인 놈 파이팅해라! 뀨우!”
“아오!”
지크는 마음에도 없는 응원을 해주는 햄찌를 향해 눈을 한 번 흘기고는 계속해서 걸었다.
그로부터 5분 뒤.
“지금부터 조금씩 오시죠!”
지크는 보스 방으로 향하는 입구에 도착하고는 아군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원정대에 속한 사람들이 두세 명씩 짝을 지어 조심스레 복도를 통과했고, 얼마 후 원정대 전원은 제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철문 앞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무사히 왔네요.”
지크가 베오울프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네요.”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열어 봐야겠죠?”
“제가 열게요.”
베오울프는 그렇게 말하고는 철문을 맨손으로 잡고 힘껏 힘을 주었다.
드륵!
그러자 거대한 철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드륵! 드륵! 드르륵!
그렇게 서서히 열린 철문은 불과 1분도 채 되지 않아 활짝 열리게 되었고, 마침내 거대한 홀이 원정대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런 홀의 정중앙에는 지크가 옥상에서 파괴했던 것과 똑같이 생긴 가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었다.
“저게 맞는 것 같은데 지키는 병력이 없….”
지크가 눈살을 찌푸릴 때였다.
“오래간만이군.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저 멀리 너머로 누군가 지크에게 말을 걸어왔다.
***
‘누구지?’
지크는 자신의 이름을 부른 사람의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소리쳐 물었다.
“나 알아? 쥐새끼처럼 숨어서 말 걸지 말고, 좀 기어 나오시지?”
“그럴까?”
지크의 말에 누군가 뒤에서 슥 하고 걸어 나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래도 날 몰라보겠나?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누구더라….”
“…….”
“분명 어디서 보긴 했는데….”
지크는 상대방을 알아보지 못해 한동안 머리를 굴리느라 진땀을 빼야만 했다.
“끝까지 나를 열받게 하는군….”
“열 받게?”
“지난번 천공의 탑에서도 쥐새끼처럼 잘 도망치더니, 오늘은 이렇게 나를 열받게 하나?”
“아!”
지크는 그제야 상대방을 알아보았다.
“울쎄라?”
“그래, 나다.”
울쎄라가 냉소를 지었다.
“아주 죽여 버리고 싶군. 네놈은 정말이지 얄미워.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래? 헤헤… 헤헤헤헤….”
지크는 그런 울쎄라의 말이 칭찬인지 욕인지 잘 분간하지 못해 그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그래. 지금 많이 웃어두어라. 지금 이 순간 이후에는 두 번 다시는 웃을 일이 없을 테니.”
울쎄라는 그런 지크의 모습에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만약 다른 때 같았으면 혈압이 올라 부들부들 치를 떨었을 텐데….
‘뭐지?’
지크는 울쎄라가 자신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자 당황했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울쎄라가 그런 지크를 향해 말했다.
“네놈이 본 교단의 행사를 방해하는 것도 이젠 끝이다.”
“왜지.”
지크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울쎄라에게 물었다.
“여기가 진짜가 아닌가?”
“물론.”
울쎄라는 그 사실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여긴 가짜다. 너희는 속았고. 어차피 어느 한쪽은 반드시 속아야 했을 테지만.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만….”
울쎄라는 하려던 말을 채 끝마치지 못하고 그만 입을 다물어야 했다.
왜냐하면….
“자! 빨리빨리 복귀합시다!”
어느새 지크가 아군을 데리고 홀을 빠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울쎄라가 그런 지크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
“네놈은 이런 상황에서도 그따위 장난질을 칠 생각이 드는가! 이게 재미있냐는 말이다!”
“왜 화를 내고 그러지?”
지크가 울쎄라를 돌아보며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가짜라며? 그럼 서로 용무 끝난 거 아닌가? 우린 헛수고했고, 넌 시간 벌었고. 서로 적당히 원하는 거 챙겼으면 이만 헤어질 때도 된 거 아냐? 뭐….”
지크가 말끝을 흐렸다.
“설마 진부하게 폭탄이라도 터뜨려서 자폭하겠단 그런 건가?”
“아주 잘 아는군.”
울쎄라가 빈정거렸다.
“네놈은 오늘 모든 걸 잃을 것이다. 모험가인 네놈이야 살아나겠지만, 너의 동료들은 영원히 볼 수 없겠지. 너는 평생을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그건 니 생각이고.”
지크는 그렇게 쏘아붙인 뒤 망설임 없이 돌아서 발걸음을 옮겼다.
“터뜨리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셔.”
“뭐?”
“간다.”
지크는 정말로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지, 지크 님.”
베오울프가 그런 지크를 황급히 불러 세웠다.
“진짜 가시게요? 막아야….”
“아뇨.”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갈 길 갑시다.”
“…….”
“쟤는 내버려 두고.”
그런 지크의 태도에 당황한 건 비단 베오울프뿐만이 아니었다.
“뀨! 주인 놈아! 미쳤냐!”
“형님!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햄찌와 승구가 지크를 말렸지만, 지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묵묵히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큭… 네놈이 배짱을 부려 봐야 결국엔 뼈아픈 후회와 죄책감만 남을 것이다.”
울쎄라는 지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고, 뒤이어 망설임 없이 에 달린 레버를 잡아당겼다.
우웅!
그러자 가 진동하고.
퍼엉! 펑! 펑! 펑!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