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462
461
폭발은 섬 가장자리부터 시작되었다.
펑! 퍼엉!
폭발이 제일 먼저 집어삼킨 건 섬 가장자리에 착륙한 채 대기하고 있던 프로아 왕국의 비행선들, 그리고 수호자들의 비행선들이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 안에 탑승한 채 대기하고 있던 모든 이들이 폭발에 휩쓸려 폭사했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그렇게 섬 가장자리부터 시작된 폭발은 마치 파괴의 신의 권세를 등에 업은 것처럼 점점 더 중심부를 향해 번져 나갔다.
“아! 브륜힐트야!”
“잉그리드!”
폭발은 로엔그린과 라이언베르트 역시 휩쓸었고, 그렇게 중년의 두 영웅은 사랑하는 딸의 이름을 유언으로 남기고 최후를 맞았다.
퍼엉! 퍼엉! 펑! 펑! 퍼어엉!
그렇게 로엔그린과 라이언베르트를 집어삼킨 폭발은 어느새 성문과 성벽을 무너뜨리고, 이내 곧 지크 일행이 자리한 중심부까지 덮쳐오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폭발.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울쎄라는 곧 자신이 자폭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미친 듯 웃어대며 지크를 향해 광기를 드러내 보였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들리는가! 네놈의 파멸이 들려오는 소리가? 크하하하하!”
하지만 지크는 그런 울쎄라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뀨! 주인 놈아! 폭발이다! 폭발! 여기 다 터진다! 이제 어떡하냐! 뀨우! 햄찌 이제 죽는 거냐! 주인 놈 두 번 다신 못 보는 거냐! 그런 거냐! 뀨우우우!”
햄찌는 죽음이 다가오는 것보다 지크를 두 번 다시 못 보는 게 서글펐는지, 그 커다랗고 귀여운 눈망울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울고 있었다.
“주인 놈아… 왜 그렇게 담담하냐. 햄찌 다시 못 보는데 괜찮은 거냐… 주인 놈 햄찌 안 보고 싶을 거냐.”
“인마.”
지크는 몸을 숙여 그런 햄찌의 목덜미를 꼭 안아주었다.
“뭘 다시 못 본다고 우냐. 괜찮아, 괜찮아.”
“뀨우우… 햄찌 너무 슬프다. 햄찌 주인 놈 못 보는 거 너무 슬프다… 뀨우우~.”
“괜찮아.”
지크가 햄찌를 쓰다듬어 주며 달랬다.
“곧 다시 볼 거다. 약속할게.”
“뀨우? 저, 정말이냐?”
“그래.”
지크는 아예 햄찌를 번쩍 안아 들고는 등에 업어 주기까지 했다.
“짜식. 나 못 보게 되는 게 그렇게 슬퍼?”
“훌쩍… 그렇다… 뀨우… 아직 주인 놈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럼 평소에 잘하지 그랬냐?”
“뀨우… 주인 놈 서운한 거 있으면 햄찌가 미안하다….”
“짜식. 착하긴.”
지크는 햄찌의 반응이 너무 귀여워서 웃었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그때, 울쎄라가 버럭 소리쳐 지크를 불렀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가? 아니면 애써 태연한 척하는 건가! 허세 부리지 마라! 네놈은 파멸이다! 네놈이 안고 있는 그 애완동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뉘예뉘예~.”
지크가 울쎄라를 향해 빈정거렸다.
“마음대로 지껄이십쇼~ 행님~ 그리고 시간 있으시면 나가 뒈지십시오~.”
“큭… 끝까지 그딴 식이로군. 결국 당해 봐야 눈물을 흘린단 말인가?”
울쎄라는 그런 지크의 빈정거림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뒤틀린 미소를 지었다.
“아쉽군. 네놈이 절망하고 죄책감에 몸서리치는 걸 봐야 하는데. 저승에서나마 지켜보는 수밖에.”
그러든가 말든가.
지크는 햄찌를 업고 어르고 달래줄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폭발이 다가왔다.
우르릉!
성 전체가 진동하고.
펑! 퍼엉!
폭발의 굉음이 가까이서 울려 퍼짐과 동시에.
와르르르르르!
성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곧 폭발이 찾아와 모든 걸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펑! 퍼엉! 펑! 펑! 펑!
그 와중에도 지크는 햄찌를 업고 쓰다듬어 주며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다음 순간.
퍼어엉!!!
폭발이 홀 전체를 집어삼켰다.
***
같은 시각.
치천존 일행은 를 처치하는 데 성공하고, 원정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조금만 버티게. 금방 좋아질 걸세. 내 금세 치료해줌세.”
치천존은 쓰러져 있는 베텔규스에게 자신이 아는 한 최고위급 치료 마법을 전개해 주었다.
“형님….”
베텔규스가 그런 치천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소용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뭔 개소린가! 소용이 왜 없어!”
“이미… 마나홀이 파괴되었습니다… 내부 장기가 다… 커헉!”
베텔규스는 말을 채 끝마치지 못한 채 피를 왈칵 토해내었다.
그런 베텔규스의 모습은 끔찍했다.
베텔규스의 육체는 로부터 뿜어져 나온 암흑 에너지에 물들어 온통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고, 상처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또한,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며 젊어졌던 육체도 급속도로 노화가 진행되어 이전보다 더 늙어 보이기까지 했다.
“이보게! 아니! 베텔규스 이 자식아! 인마! 눈 떠! 눈 떠 이 자식아!”
치천존이 젊었을 적 베텔규스와 어울렸을 때의 말투까지 써가면서 소리쳐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형님….”
“베텔규스 이 자식아! 그랜드 마스터가 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뒈지려고 그래! 제자도 못 키웠다며! 그런 주제에 이 형님을 두고 먼저 갈 셈이냐! 네놈은 위아래도 없어? 어!!!”
“그랜드… 마스터… 하하하….”
베텔규스의 눈빛이 마치 꿈을 꾸는 듯 몽롱해졌다.
“형님… 좋은 꿈이었습니다.”
“이 자식아! 힘을 내! 힘을 내라고!”
“평생 경지에 오르지 못할 것 같았는데… 그래도 꼴에 운이 좋아서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가 어떤 건지 맛이라도 보았으니… 이제 소원이 없습니다.”
“이 자식아….”
기어코 치천존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그랜드 마스터에 올랐는데 왜 벌써 뒈지려는 게야… 왜….”
“괜찮습니다… 형님… 원 없이 칼춤을 추어 보았으니… 이제 쉴 때도….”
그때였다.
펑! 퍼엉! 펑!
저 멀리 하늘 위에 떠 있던 천공 요새로부터 폭발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
“……!”
“……!”
그 광경을 본 치천존, 베텔규스, 그리고 데시마토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섬 가장자리로부터 시작된 폭발은 연쇄적으로 이어져 중심부까지 이어졌고, 이내 곧 중심부까지 덮쳤다.
그러고도 폭발은 멈추지 않았다.
펑! 퍼엉!
폭발은 섬의 중심부에 자리한 성을 완전히 파괴하고, 뒤이어 아예 지맥을 뚫어버렸다.
그리고 그 폭발의 여파가 섬 중심부의 밑에 자리한 내핵까지 도달하던 순간.
번쩍!
엄청난 빛 무리가 폭발로 인해 갈라진 땅 사이사이로 뿜어져 나오는가 싶더니.
퍼엉!
마치 핵폭탄이라도 터지듯 천공 요새가 그대로 터지며 크고 작은 돌덩이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저, 전하아아아아!!!”
그 광경을 본 데시마토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일단 막아라! 돌덩이들이 쏟아지지 않느냐!”
“아! 예!”
데시마토는 놀랄 겨를도 없이 치천존의 말에 따라 베리어를 쳐 떨어지는 돌덩이들을 막아내야만 했다.
그러던 중.
슈우우!
데시마토는 떨어지는 돌덩이 사이로 붉은색 천 쪼가리를 발견하고 황급히 반중력 주문을 전개했다.
스르륵!
그러자 붉은색 천 쪼가리, 정확히는 를 두른 지크가 사뿐하게 지면으로 내려앉았다.
“전하, 전하!”
데시마토가 정신을 잃은 지크를 흔들어 깨웠다.
“전하! 괜찮으신 것이옵니까? 전하!”
“저는….”
지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다행히도… 살았네요. 나름 도박이었는데… 성공했어요.”
“저, 전하?”
“으!”
지크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툭!
그러자 지크가 들고 있던 이 땅에 떨어져 한 줌의 재로 스러졌다.
***
그 대폭발의 현장에서 지크를 생존하게 해주었던 건 이었다.
[구원의 깃털]위기의 순간 목숨을 구해주는 깃털.
절체절명에 처했을 때 1회에 한해 목숨을 구해준다.
•타입 : 소모품
•등급 : 유니크
•효과
– 현재 생명력이 5% 이하로 떨어졌을 때 깃털이 사라지며 생명력을 100%로 채워줍니다.
“까딱 실수했으면… 죽었을 텐데… 후우. 이런 도박은 정말이지 두 번 다신 사절이에요.”
불과 몇 초 전.
지크는 폭발이 일어나던 순간 로 방어막을 쳐 스스로를 방어했다.
덕분에 지크는 1차 폭발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제2차 폭발이 문제였다.
만약 이 없었더라면, 천공 요새의 내핵이 폭발하면서 제2차 폭발이 일어났을 때 지크는 죽었을 게 분명했다.
데시마토 덕분에 추락사의 위험 역시도 피해냈다.
우여곡절 끝에 그 엄청난 대폭발 속에서 나 홀로 살아남는 데 성공한 것이다.
“데시마토 공작님.”
“예, 전하.”
“고마워요.”
지크가 데시마토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만약 제가 죽었으면 아무것도 되돌리지 못 할 뻔했어요. 떨어지는 동안에도 발동이 안 되더라고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얘가 좀 느려요. 위에 있을 때부터 쓰려고 했는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지크가 데시마토를 향해 작은 모래시계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스으으!
그 작은 모래시계 속에 든 모래들이 황금색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그것은!”
그때, 치천존이 지크가 손에 쥔 모래시계를 바라보며 경악했다.
“지크야! 지금 네가 가진 게 그것이 맞느냐!”
“예, 어르신.”
지크가 치천존의 물음에 대답했다.
“오오! 신이시여! 오오오!”
치천존은 지크의 대답에 너무나도 감격에 안 찾던 신까지 찾았다.
“지크야! 네 녀석이 기어코 일을 내는구나! 이 녀석아!”
“하하….”
지크는 맥없이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스으으-!!!
그러자 때마침 모래시계가 더욱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기적의 모래시계]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고대의 마법이 깃든 모래시계.
사용 시 1시간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타입 : 액세서리(소모품)
•등급 : 에픽
•주의 사항 : 이 아이템은 사용 직후 파괴됩니다.
.
지크가 영겁도를 탈출하며 망령들에게 선물 받은 에픽 아이템.
지크는 지금 그 아이템을 사용해 과거로 되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아니, 지크는 진작부터 를 사용해 과거로 돌아가려고 했다.
울쎄라를 만난 직후.
‘망했어. 이건 진짜 망했다. 빠져나갈 구석이 없어. 완벽하게 당한 거야.’
지크는 함정에 빠졌다는 걸 깨닫자마자 를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는 사용 즉시 발동하지 않았다.
가 정확히 언제 발동할지 몰랐기에, 지크는 일단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 순위로 두었다.
만약 자신이 죽으면 가 작동을 멈춰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크는 의 방어막과 을 이용해 자신의 생존에만 집중했고,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
[알림 : 가 곧 시간을 되돌립니다!] [알림 : 시간이 되돌려지기 전까지 앞으로 10초!] [알림 : 9, 8, 7….]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오르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갑니다.”
지크가 치천존을 향해 말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일단 가 보겠습니다.”
지크는 시간이 되돌려지면 NPC들이 상황을 기억할 수 있을지 없을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게이머들이야 시간이 되돌려진 걸 알아채고 이른바 이 났다고 생각하겠지만, 게임 속 존재인 NPC들의 입장에서는 눈치채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래, 얼른 가도록 해라.”
치천존이 지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안 그래도 저 녀석이 불쌍해서 못 견딜 참이었단다.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지 하루 만에 뒈지다니, 이 무슨 기구한 팔자란 말이냐. 허허허….”
치천존이 쓰러져 있는 베텔규스를 가리키며 헛웃음을 지었다.
“예.”
지크가 대답하기가 무섭게.
[알림 : 3, 2, 1….] [알림 : 가 시간을 되돌립니다!] [알림 : 서버와의 접속이 종료되었습니다!]게임 BNW의 서버가 정지함과 동시에 접속이 해제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