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464
463
천우진은 게임에 재접속한 이후에도 단 한시름도 놓지 못했다.
빽섭이 난 것 자체는 좋았다.
그러나 빽섭이 났음에도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는 여전히 미쳐 날뛰고 있었고, 이제 곧 의식이 완성되어 차원문이 열릴 게 분명했다.
‘한태성 이 자식 전화 좀 받지!’
30분 전.
천우진은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를 남겼음에도 톡 하나 보내오지 않은 지크를 욕했다.
천우진은 천공 요새가 가짜였고, 검은 사막이 진짜라고 지크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지크는 그 여느 때처럼 연락을 받지 않았고, 결국 천우진은 하는 수 없이 서버에 재접속해야 했던 것이다.
빽섭이 난 것과는 별개로, 만약 지크가 현실에서 연락을 받았더라면 서버가 열리자마자 천공 요새 쪽 병력을 돌리기라도 했을 텐데….
하지만 지크를 욕할 시간도 없었다.
우우우우우우웅!!!
저 멀리 100미터 전방에 자리한 고대 유적지로부터 오색 찬연한 빛깔의 에너지가 뿜어져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아….”
천우진의 얼굴에 또다시 절망감이 깃들었다.
빽섭?
아무 소용없었다.
막판에 등장한 는 원정대의 발목을 제대로 잡았고, 그건 빽섭이 일어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원정대는 이번에도 오즈릭 교단의 의식을 막지 못한 것이다.
“망했…어.”
천우진은 절망했다.
미친 듯 날뛰는 따위는 이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천우진은 빽섭이 일어나기 직전을 기억하고 있었다.
천우진은 차원문이 열리고, 그곳으로부터 이세계의 악마적 존재가 빠져나와 이곳 뉘르부르크 대륙에 강림했을 때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원정대 전부를 쓸어버렸던 그 말도 안 되는 힘.
그 압도적인 악마의 힘을….
“이렇게… 망하나.”
천우진은 아예 손을 놔버렸다.
“드래곤들이 나서주길 바라는 수밖에….”
이제 사실상 게임 BNW의 운명은 게이머들의 손에서 벗어났다고 봐도 좋았다.
이제는 뉘르부르크 대륙 곳곳에 숨어 사는 드래곤들, 혹은 숨은 제3의 존재들이 나서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번쩍!
하늘 위에 별안간 섬광과 함께 비행선 한 척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
천우진은 난데없이 등장한 비행선을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비행선의 등장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번쩍!
다시 한번 섬광이 번쩍이자 또 한 척의 비행선이 나타났다.
번쩍!
그리고 다시 한번 섬광이 번뜩이자 비행선이 또다시 나타났다.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번쩍!
한 척, 두 척, 세 척, 네 척….
그렇게 수십 척.
섬광이 번쩍일 때마다 나타난 비행선들은 이내 곧 수십 척 규모의 함대를 이루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타난 비행선은 다른 비행선들과는 생김새부터가 달랐다.
그 비행선은 마치 상어를 닮은 동체에 은회색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외장 도색을 지닌, 뉘르부르크 대륙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다.
“어? 설마….”
천우진은 그 비행선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았다.
– 자자~ 배달 왔습니다~.
그때, 슈퍼 비행선 으로부터 지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야! 천우진! 나 왔다!
“한태성! 이 새끼!”
– 일단 정리부터 시작하자.
그런 지크의 방송이 끝나기가 무섭게.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퍼엉-!!!
수십 척의 비행선들이 를 향해 포격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
천공 요새에 투입되었던 원정대의 합류는 전투의 판도를 180도 뒤바꾸어 놓았다.
비행 함대의 막강한 화력은 를 걸레짝으로 만들어 놓기 충분했고, 정예 병력의 합류는 그렇게도 뚫리지 않던 오즈릭 교단의 방어선을 너무나도 손쉽게 밀어버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 전투에서 나 오즈릭 교단의 방어선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제단이었다.
이미 열리기 시작한 차원의 문을 어떻게 닫느냐가 관건이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원정대에는 그 차원의 문을 닫을 수 있는 능력자가 딱 한 명 존재했다.
“허…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 저것이었구나.”
배달(?)을 마친 치천존이 저 멀리 차원의 문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어르신, 부탁드립니다.”
“굳이 부탁까지 필요하겠느냐? 이계의 사악한 존재가 강림하려는데, 내가 나서야지.”
치천존은 그렇게 말한 뒤 슈퍼 비행선 을 나섰다.
“예, 어르신. 다녀오십시오.”
지크는 그런 치천존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후 자리에 앉았다.
“뀨! 주인 놈아! 우리는 안 가냐!”
“응, 안 가.”
지크는 에서 내려 전투에 참가할 생각이 없었다.
“뀨우? 왜 안 가냐! 지금 전투가 한창이다!”
“마땅히 할 게 없어.”
“뀨우?”
“내가 너무 약하니까.”
지크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랜드 마스터인 치천존과 베텔규스.
그리고 마스터인 데시마토와 베오울프.
그들에 비해 지크는 너무나도 약한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저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지크가 차원의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야.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이젠 지켜보는 게 내가 할 일이야.”
그런 지크의 말은 역시나 사실이었다.
시간을 되돌렸다.
그리고 원정대를 고스란히 살려 검은 사막에 투입했다.
이만하면 지크는 자신의 할 일을 다 하고도 몇 배는 더 많은 기여를 한 셈이었다.
굳이 여기서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왜?
할 만큼 했으니까.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고.
“전하.”
그때, 군복을 입은 남자 승무원이 지크에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팝콘을 바쳤다.
“드시면서 감상하시지요.”
“센스가 좋으시네요.”
지크는 갓 튀긴 팝콘을 받아든 채 느긋하게 전투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지크는 전투를 지켜보며 그 장면들을 단 하나도 빠짐없이 머릿속에 담았다.
‘저게 진짜 고레벨들의 싸움… 난 아직 한참 멀었어.’
지크는 강자들의 싸움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얼마나 해야 저들과 같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써는 그저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렙업에만 집중….’
바로 그때였다.
번쩍!
치천존의 마법이 서서히 벌어지는 차원의 문에 작렬하고, 뒤이어 그 주변의 시공간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마치 핵폭탄이 터지듯, 차원의 문을 중심으로 대폭발이 일어나 온 세상을 새하얗게 물들였다.
화이트 아웃 현상.
섬광으로 인해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어서, 공간 자체를 분간할 수 없는 현상이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슈우우우우우우우!
이미 파괴된 차원의 문을 중심으로 다섯 개의 유성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멀리멀리 날아가기 시작했다.
***
전투는 차원문이 파괴된 직후 완전히 끝이 나게 되었다.
오즈릭 교단의 잔당들은 모조리 도륙이 남으로써 전멸을 면치 못했고, 원정대는 그렇게 정리에 나섰다.
“어르신! 고생하셨습니다!”
지크는 을 착륙시킨 직후 치천존을 찾았다.
그런데.
“어, 어르신?”
치천존의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갑자기… 많이 늙어 보이십니다.”
“껄껄!”
치천존이 웃으며 대답했다.
“늙은이가 늙어 보이는 게 그리도 이상하단 말이냐?”
“하지만….”
“신경 쓸 것 없다.”
치천존이 딱 잘라 말했지만, 지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치천존은 엄청나게 늙어 보였다.
조금 전까지의 치천존이 늙긴 했지만 굉장히 건강해 보이는 노인이었다면, 지금은 당장에 요양 병원이라도 들어가야 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끄응… 허리가 아프구나.”
실제로도 많이 힘들었는지, 치천존은 자신의 스태프를 지팡이 삼아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어르신! 제가 모시겠습니다!”
지크는 황급히 치천존을 부축하는 한편 눈짓으로 부하들에게 뭐라도 좀 가져와 보란 신호를 내렸다.
그러자 지크의 부하들 중 하나가 황급히 꿀물을 만들어 와 지크에게 바쳤다.
“어르신. 쭉 들이켜시지요.”
“허허! 마침 목이 탔는데 잘됐구나.”
치천존은 지크가 준 꿀물을 받아 마시며 숨을 돌렸다.
“한태성.”
그때, 천우진이 지크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진짜 고생했다.”
“알긴 아냐?”
“알다마다.”
“니가 시간 되돌린 거라며? 베오울프가 그러던데?”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쩝.”
지크가 입맛을 다셨다.
“나중에 내 일에 쓰려고 묵혀둔 건데. 쳇.”
“그래도 좋은 일에 썼으니까 된 거 아니냐?”
“그렇긴 하지.”
“보상 줄게. 받아라.”
천우진이 퀘스트창을 띄워 올렸다.
띠링!
그러자 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알림 : 퀘스트 메이커 이 당신에게 보상을 부여합니다!] [알림 : 레벨 업!] [알림 : 256레벨 달성!] [알림 : 257레벨 달성!] [알림 : 258레벨 달성!] [알림 : 259레벨 달성!] [알림 : 260레벨 달성!] [알림 : 261레벨 달성!] [알림 : 262레벨 달성!] [알림 : 263레벨 달성!] [알림 : 264레벨 달성!] [알림 : 265레벨 달성!]퀘스트가 클리어되자 무려 10레벨이 주르륵 올랐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알림 :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지크는 알 수 없는 알림창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추가 보상? 이게 뭔데?”
“기여도가 1등이던데?”
천우진이 자신에게만 보이는 알림창을 바라보며 지크에게 말했다.
“그래서?”
“그래서는 뭔 그래서야. 추가로 보상받는 거지.”
“어떤?”
“이런 거.”
천우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또다시 지크에게 보상을 내려주었다.
띠링!
그러자 또다시 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 퀘스트에 대한 기여도 1위를 기록하셨습니다!] [알림 : 기여도에 따라 퀘스트 메이커 이 당신에게 추가 보상을 부여합니다!] [알림 : 레벨 업!] [알림 : 266레벨 달성!] [알림 : 267레벨 달성!] [알림 : 268레벨 달성!] [알림 : 269레벨 달성!] [알림 : 270레벨 달성!]지크는 앞서 열 번의 레벨 업에 이어 다섯 번의 레벨 업을 추가로 이루게 되었다.
“우어어어어어어어!!!”
지크는 한꺼번에 15레벨이 오르자 거의 눈이 뒤집힌 상태로 포효했다.
1레벨을 올리기도 힘든데 무려 15레벨을 한꺼번에 올렸으니 기뻐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좋냐?”
“어.”
지크가 고개를 세차게 위아래로 끄덕였다.
“개좋아.”
“솔직한 놈.”
천우진은 대놓고 좋아하는 지크를 보며 피식 웃었다.
“어쨌거나 수고했고, 고맙다. 니 덕분에 진짜 한시름 놨어.”
“별수 있냐. 내 밥그릇도 걸린 문젠데.”
지크가 어쩔 수 없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이제 뭐 할 거냐?”
“뭐 하긴.”
지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복귀해야지.”
“그래?”
“간다. 가시죠, 어르신.”
지크는 보상을 챙기자마자 치천존을 부축하며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프로아 왕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꺄륵! 꺄르륵!”
“끵! 끠잉!”
그렇게 또다시 오즈릭 교단의 음모를 저지하고 프로아 왕국으로 복귀한 지크는 딸 베르단디가 페어리 드래곤과 노는 걸 지켜보며 행복을 맛보았다.
‘게임이 초기화되면 이 귀여운 모습도 못 보게 된다는 거잖아? 그럴 순 없지. 이 행복을 잃을 순 없어.’
지크는 세계 멸망과 같은 내부적 요인으로 BNW가 서비스를 종료하는 걸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돈이야 이미 벌 만큼 벌어서 그리 큰 미련-평소 하는 짓을 보면 그렇지도 않지만-이 없다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며 얻는 순수한 재미는 이야기가 달랐다.
진짜 이세계를 경험하는 느낌이랄까?
게임 BNW가 선사하는 재미란 단순히 게임을 넘어 또 다른 인생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괜히 수억 명의 게이머들이 BNW에 열광하는 게 아닌 것이다.
‘그나저나 채형석 그 자식은 어디서 뭘 하고….’
지크가 채형석의 수상쩍은 움직임에 대해서 잠깐 딴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전하!”
시종장이 다급히 달려와 지크에게 보고했다.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전하께 보고를 드리려 하옵니다!”
“네? 불미스러운 일이요? 뭐죠? 그 불미스러운 일이라는 게?”
“그랭구아르 백작이 납치되었다고 하옵니다!”
대단히 불미스러운 일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