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473
472
“어?”
지크는 마라넬로의 눈꺼풀이 내려앉는 걸 보고 당황했다.
“뭐, 뭐지?”
그러거나 말거나.
“푸~ 푸르르~ 푸~ 푸르~ 푸~ 푸르으~ 푸~ 푸르르~ 푸~ 푸르~.”
그랭구아르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요람의 노래]팬텀싱어의 치유 계열 스킬.
팬텀싱어가 심신을 안정시켜 주는 노래를 부릅니다.
이 노래는 정신 지배를 해제하는 데 특화되어 있으며, 각종 부정적인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 노래에 오랜 시간 노출되면 에 빠지게 됩니다.
•타입 : 광역 치유
•쿨타임: 없음
그랭구아르는 단순히 만 부른 게 아니었다.
[소리 집중]팬텀싱어가 자신이 부르는 노래를 특정 대상에게 더 크게 들릴 수 있도록 집중시킵니다.
•타입 : 액티브 스킬
•쿨타임 : 없음
•현재 적용 가능 대상 수 : 3
그랭구아르는 를 마라넬로에게만 더 크게 들리도록 집중시켰다.
때문에, 지크 일행이 듣는 것과 마라넬로가 듣는 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크 일행이 그냥 심신의 안정을 찾는 정도였다면, 마라넬로의 입장에서는 눈꺼풀이 저절로 감길 정도로 졸렸던 것이다.
“푸~ 푸르르~ 푸~ 푸르~ 푸~ 푸르으~ 푸~ 푸르르~ 푸~ 푸르~.”
그렇게 그랭구아르가 를 부른 지 약 2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므어… 므어어….]마라넬로는 졸린 눈을 부비며 꽉 쥐고 있던 레오니드를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몰려드는 졸음에 저항하려는 듯 애써 인상을 찌푸리며 투레질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푸르르… 푸릉… 푸르르… 므어어….]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마라넬로는 에 빠져 완전히 곯아떨어졌다.
[드르렁… 드르러어어엉!!!]아예 코까지 골면서….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스르륵!
곤히 잠든 마라넬로의 육체가 서서히 변이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곧 인간의 형상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즉, 괴수 마라넬로는 잠에 빠지면 다시 인간 람보르기니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랭구아르는 그제야 를 부르기를 멈췄다.
“휴.”
그랭구아르가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몰라 불러 보았는데, 다행입니다.”
“오?”
지크가 그런 그랭구아르를 다시 봤다는 듯 돌아보았다.
‘하긴. 히든 클래스 중 하나니까.’
생각해 보면, 나름 히든 클래스를 가진 그랭구아르가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가 아니겠는가?
“그랭구아르 사관님?”
“예, 전하.”
“수고하셨어요.”
지크가 그랭구아르를 칭찬해 주었다.
“진짜 골치 아플 뻔했는데, 덕분에 다들 살았네요.”
“과찬이십니다.”
그랭구아르가 지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신 그랭구아르, 전하를 도울 수 있어서 그저 기쁠 뿐입니다.”
“음! 역시 여러모로 쓸모가 많으시네요.”
“예?”
“하지만 감봉은 취소 안 해드립니다.”
“…….”
“후후후.”
지크는 피도 눈물도 없었다.
“후우! 정말 무시무시한 괴수로군.”
그때, 레오니드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오래간만에 전력을 다해 싸울 만한 적이었네.”
“무시무시하더군요.”
“그러게 말일세. 그런데 이제 어떡할 건가?”
“글쎄요.”
지크는 곤히 잠들어 있는 람보르기니를 내려다보며 고민에 빠졌다.
“이거 죽이면 죽긴 할까요?”
“잘 모르겠네. 죽으면 다행인데….”
“안 죽으면 다시 괴물로 변하겠죠?”
“그럴 걸세.”
“그건 곤란한데.”
지크가 잠든 람보르기니에게 함부로 손을 쓸 수 없었던 이유는, 그가 불로불사의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수백 년 동안 괴수 마라넬로가 아닌 인간 람보르기니로서 죽을 위기를 단 한 번도 겪지 않았을까?
그 수없이 많은 파괴와 학살을 저지르면서?
단언컨대, 있었을 게 분명했다.
인간 상태의 람보르기니를 암살하려는 시도 또한 수도 없이 많았을 게 아닌가?
그런데도 람보르기니가 아직 살아 있는 이유는, 괴수 마라넬로가 아닌 인간 상태에 있을 때조차 죽일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인 게 분명했다.
“일단 데려가서 이야기라도 좀 나눠 보죠. 곤히 잠든 거 같은데, 괜히 깨우지 말고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 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게 좋겠네.”
“그럼 그동안 딱히 출구도 없으니까….”
지크가 씩 웃으며 말했다.
“다 같이 앵벌이나 합시다.”
지크에게 있어 시간은 곧 돈이었다.
***
지크가 말한 앵벌이란 땅에 떨어진 각종 아이템을 줍거나 를 사냥하는 거였다.
때문에, 지크 일행은 잠든 람보르기니를 데리고 을 하염없이 돌며 앵벌이에 나섰다.
물론 일은 메타트론과 케이오스가 주로 했고, 지크는 그저 레오니드와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며 그의 스킬들을 하나씩 배워 갔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샤키로 형님이 돌아가셨다고?”
“예.”
“이런 빌어먹을 새끼들!”
레오니드는 샤키로의 부고 소식을 듣고 오즈릭 교단에게 분노했다.
“내 세상 밖으로 나가면 그 망할 자식들을 모조리 쳐부수겠네.”
“평소에 친하셨나 보네요.”
“샤키로 형님께서는… 인간적으로 매우 존경할 만한 훌륭한 인품을 지니신 분이었다네. 언제나 상냥하셨고, 늘 올바른 길을 걸으셨지.”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크는 샤키로에 대한 레오니드의 평가에 적극 동의했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분만큼 제게 큰 인상을 남긴 사람은 정말이지 몇 되지 않거든요.”
“정말이지 안타까운 죽음일세… 후우….”
레오니드는 샤키로의 죽음을 정말로 슬퍼했다.
“그럼 베텔규스 형님께서는 잘 지내시는가? 설마 베텔규스 형님도 샤키로 형님처럼….”
“아뇨.”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베텔규스 어르신께서는 잘 살아 계시죠.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셨고요.”
“뭐, 뭣이?!”
레오니드는 베텔규스의 근황을 듣고는 입을 떡 하고 벌렸다.
“베, 베텔규스 형님께서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셨단 말인가? 그게 사실이야?”
“예. 며칠 전에 육체의 재구성을 이루시고 회춘까지 하셨는데요?”
“맙소사! 그랜드 마스터라니! 베텔규스 형님께서 그 위대한 경지에 오르시다니!”
“뭐… 그만한 대가를 치르셨으니 그럴 자격은 충분하시다고 봅니다.”
“그만한 대가?”
“궁금해하지 마시죠. 알면 다치십니다.”
지크의 그 말은 진심이었다.
베텔규스가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겪었던 그 고통을 생각한다면….
오싹!
지크는 자신이 겪은 일은 아니지만, 베텔규스가 얼마나 혹독한 수련 과정을 거쳤을지를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이보게, 지크 군. 그 대가라는 게 뭔가? 나도 좀 가르쳐 주게.”
“알면 다치신다니까요?”
“나는 그랜드 마스터에 오르기 위해 이곳에 제 발로 들어온 미친놈일세. 그런 내가 견디지 못 할 일이….”
그때였다.
“으음….”
케이오스의 등에 업혀 있던 람보르기니가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
“……!”
“……!”
그 광경을 본 지크의 일행 전원이 화들짝 놀랐다.
마라넬로.
그 무시무시한 괴수가 날뛰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다들 쉿!”
지크는 일행들에게 주의를 주고는 조용히 람보르기니가 깨어나는 걸 지켜보았다.
***
“하아아암….”
람보르기니는 오래간만에 개운하게 잤다는 듯 기지개까지 펴며 잠에서 깨어났다.
“저… 람보르기니 씨?”
지크가 조심스레 람보르기니에게 말을 걸었다.
“……!”
람보르기니가 그런 지크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 어떻게?”
“이제 좀 괜찮으세요?”
“그대가… 어째서 살아 있는 것이오?”
람보르기니는 지금 상황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람보르기니는 마라넬로에서 본래 모습으로 돌아올 때마다 처참히 짓이겨진 시체들과 폐허가 된 풍경만을 봐왔다.
그리고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이번에는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확인하며 죄책감에 몸부림을 치기 일쑤였다.
그것도 수백 년 동안이나.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당연히 마라넬로에게 처참히 학살당할 줄 알았던 이들이 거의 멀쩡한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 놀랄 수밖에.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왜 그대들이 살아 있는 것이오?”
“잠드셨습니다.”
“자, 잠들었다고? 그 괴물이?”
“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소? 그 괴물은 모든 걸 학살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잠들지 않는데….”
“자장가를 좀 불러줬더니 바로 잠들던데요?”
“자장가 말이오?”
“예.”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나중 문제고요.”
지크가 화제를 돌렸다.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물어보시오.”
“여길 나갈 방법이 뭡니까?”
“그건….”
람보르기니가 말끝을 흐렸다.
“내 의지에 따라 여길 폐쇄하고 출구를 열 수가 있긴 하오.”
“나갈 방법이 있긴 있다는 거네요?”
“하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오.”
“예?!”
“나는 마라넬로란 이름의 괴물을 세상에 두 번 다시 풀어놓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오.”
“어이가 없네?”
지크가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 람보르기니에게 쏘아붙였다.
“그럴 거면 출구를 왜 만든 건데요?”
“그건… 일종의 미련이겠지. 이럴 줄 알았다면 애초부터 안 만들었을 테지만 말이오.”
“미련이요?”
“처음 이곳을 건설했을 때, 내게는 혹시라도 이곳에서 정신 수양을 쌓다 보면 마라넬로를 제어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이 있었소.”
람보르기니가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건 정말이지 헛된 희망이었소. 여기 갇혀 있는 수백 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마라넬로를 제어하지 못했지.”
“으음….”
“나는 나갈 수 없소. 아니, 나가지 않을 것이오. 이성을 되찾아 눈을 뜰 때마다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어떤지? 아시오? 온통 피와 살이오! 참혹하게 짓이겨진….”
그때였다.
“크윽!!!”
람보르기니가 돌연 가슴팍을 붙들고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크윽… 어, 어서 도망…치시오… 그 괴물이… 다시… 크으으윽!!!”
아무래도 감정이 격해지다 보니 또다시 변이가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그랭구아르 사관님! 어서!”
“예! 전하!”
그랭구아르는 지크의 다급한 외침에 곧바로 호흡을 가다듬고 를 부르기 시작했다.
“푸~ 푸르르~ 푸~ 푸르~ 푸~ 푸르으~ 푸~ 푸르르~ 푸~ 푸르~.”
그랭구아르가 를 부르고.
“크윽… 큭… 으으윽… 으음… 음음… 흐으음….”
람보르기니는 마라넬로로 변이하려던 걸 멈추고 다시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이오?”
“말씀드렸잖습니까.”
지크가 놀란 람보르기니에게 말했다.
“자장가를 불러드리면 괜찮다니까요? 거 보시죠. 방금도 변신하시려다 멈췄잖아요.”
“맙소사… 이런 게 가능했을 줄이야….”
“흠.”
지크가 놀라는 람보르기니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람보르기니 씨?”
“말씀하시오.”
“그냥 저랑 같이 가시죠.”
“음?”
“저와 함께 가신다면 마라넬로를 제어하실 수 있게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지크의 입에서 람보르기니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지크가 에서 람보르기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이곳인가.”
채형석은 의 입구가 자리한 동굴 앞에 서 있었다.
“여기에 네가 찾는 물건이 있나?”
[그렇다, 계약자여.]채형석의 물음에 에 깃들어 있던 마족 바로크의 형체가 나타나 대답했다.
[저 안에 마검 어벤져가 있다. 나는 느낄 수 있다. 마검 어벤져가 내뿜는 힘을….]“그래?”
[어서 가서 마검을 확보하라, 계약자여.]“그러지.”
채형석은 마족 바로크의 요청에 따라 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