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48
047
디버프 마스터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들은 다음과 같았다.
– 둔기 마스터리
– 방패 마스터리
– 대검 마스터리
– 건틀릿 마스터리
– 창 마스터리
선택이 필요했다.
처음 둔기를 선택했던 이유도 값이 싼 데다가 사용법 자체가 단순했기 때문이었던 만큼, 이제는 한 가지 무기만을 팔 때가 된 것이다.
게다가 사용하는 무기에 따라 스킬의 데미지, 쿨타임, 공격 속도가 달라지기에 무기를 선택하는 지크의 자세는 무척이나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뭐가 좋을까.’
지크의 눈길이 진열대에 쫙 깔린 무기들을 훑었다.
‘방패는 아냐. 디버프 마스터는 물리 공격형 근접 폭딜러다. 방패도 큰 데미지를 줄 수 있겠지만, 스킬 쿨타임이 너무 길어. 오히려 DPS가 줄어들 수도 있어.’
Damage Per Second.
줄여서 DPS.
초당 적에게 입히는 누적 데미지를 일컫는 용어로, 이는 게임에서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왜?
아무리 한 방 데미지가 크다고 한들, 공격 속도가 낮고 스킬의 쿨타임이 길면 데미지의 총량으로 봤을 때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었으니까.
‘실험해보자.’
결국, 지크가 택한 방법은 모든 무기를 사용해보는 것이었다.
지금의 선택이 앞으로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었기에, 섣불리 무기를 고를 수가 없었다.
“저기요.”
지크가 상점 주인에게 말했다.
“여기 있는 것들, 하나씩 다 주세요.”
“음? 이걸 다?”
“예.”
“뭐, 그러지.”
“여기 있습니다.”
지크가 금화가 든 주머니를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
지크가 무기를 한꺼번에 구입하던 때.
같은 상점 안에서 이런저런 무기들을 훑어보고 있던 누군가의 시선이 지크에게로 향했다.
그 누군가는 꽤나 큰 덩치를 가지고 있었으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후드가 달린 망토를 푹 눌러쓰고 있었기에 지크는 딱히 그를 의식할 수 없었다.
씨익-
오직 그만이 지크를 의식하고, 또 슬며시 미소 지었을 뿐….
“수고하세요.”
지크가 상점을 나섰다.
“흥미롭군.”
정체불명의 사나이의 시선이 눌러 쓴 후드 밑에서 지크의 뒷모습을 쫓았다.
하지만 지크를 쫓은 건 비단 그의 시선만이 아니었다.
저벅저벅-
정체불명의 사나이의 발걸음이 지크의 발걸음을 쫓기 시작했다.
***
실험용 무기(?)들을 사온 지크는 곧바로 인터벤션 호텔에 체크인, 개인용 수련장을 찾았다.
[알림 : 개인 수련장에 입장하셨습니다! 쉐도우 박서를 소환하시겠습니까?]쉐도우 박서란 일정한 방어력과 무한의 체력을 갖춘 일종의 샌드백이었다.
스카우터랄까?
모험가들은 이 쉐도우 박서란 샌드백을 이용해 자신들의 화력과 데미지를 체크해보곤 했다.
“쉐도우 박서, 소환.”
쉐도우 박서를 소환한 지크는 곧바로 무기를 바꿔 가며 화력과 무기 변동에 따른 스킬의 변화를 체크해 보았다.
방패의 특징은 역시나 파괴력이었다.
방패로 스킬을 사용하면 그 어떤 무기를 사용했을 때보다 데미지가 컸지만, 스킬의 쿨타임이 너무나도 길다는 단점이 있었다.
‘DPS가 둔기보다 낮아. 둔기를 쓰다가 가끔 방패를 쓰면 몰라도, 주력으로는 아니야.’
무기를 스위칭(교체)해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무기 마스터리는 오직 한 개만을 찍을 수 있었기에 방패를 선택한다는 건 오히려 손해 같았다.
‘그럼 이번엔 대검을….’
지크가 방패를 놓고 대검을 손에 쥐었다.
지크의 실험은 몇 시간이고 계속되었다.
지크는 매번 무기를 바꿔 가면서 자신이 가진 스킬을 사용해보고, 쉐도우 박서에 박히는 데미지를 체크했으며, 또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누적 데미지를 계산해 보기도 했다.
자신의 스킬에 대해 진지한 자세로 연구하는 것이다.
그러기를 두 시간여.
“쓸데없는 짓이다.”
누군가 지크를 향해 말했다.
‘뭐지!’
지크는 너무나도 놀라 본능적으로 소리가 난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이곳은 아공간에 마련된 개인용 수련의 방, 그를 제외하면 누구도 들어올 수 없어야 하는 게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들어온 거야? 여기를 들락날락거릴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해?’
도무지 듣도 보도 못한, 가능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누구십니까.”
때문에, 지크는 수련의 방에 침입한 상대의 능력을 인정하고 예의를 갖추어 정중히 물었다.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 정도로 해두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훌륭한 근골을 가지고 있더군.”
정체불명의 사내가 지크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우연히 스쿰빗 거리의 어느 상점에서 너를 봤다.”
“지금까지 절 미행하신 겁니까?”
“물론.”
“어째서 절 미행하신 겁니까.”
“말하지 않았나. 넌 훌륭한 근골을 가지고 있어. 5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그런 육체를.”
그 순간.
‘어째 상황이 그때랑 비슷한데…?’
지크는 도제 베텔규스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솔직히, 널 내 제자로 삼고 싶다.”
정체불명의 사내가 뜬금없이 러브콜을 날렸다.
결국, 지크가 가진 훌륭한 육체가 베텔규스에 이어 또 다른 NPC를 유혹해버린 것이다.
“네가 가진 그 훌륭한 근골과 그에 걸맞은 반응 속도. 거기에 적당한 전투적 센스만 더해진다면… 수년 내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수 있겠지.”
“부디 그러기를 빕니다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하하.”
지크가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겸손하군.”
“아닙니다.”
“가진 바 재능이 그리도 뛰어난데, 겸손하기까지 하다니. 좋은 자세다.”
“별말씀을….”
슬슬 지크의 얼굴이 달아오르려던 찰나.
“이름이 무엇인가.”
정체불명의 사내가 물었다.
“지크프리트라고 합니다.”
“내 이름은 샤키로.”
정체불명의 사내가 눌러쓴 후드를 벗으며 제 이름을 밝혔다.
“설마?”
지크는 놀랐다.
샤키로.
그 역시 아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
샤키로.
칭호는 웨펀 마이스터.
도제 베텔규스와 마찬가지로 오성천의 일원이자 마스터의 경지를 이룩한 초절정의 무인(武人).
그는 무려 열여덟 가지의 무기를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어떠한 의미에서 보면 진정한 마스터였다.
괜히 웨펀 마이스터라는 칭호가 붙었겠는가?
[샤키로]•존재 구분 : 네임드 NPC
•종족 : 인간
•레벨 : 354
•칭호 : 웨펀 마이스터. ★오성천★
을 통해 눈앞의 사내가 정말로 샤키로라는 걸 알아본 지크는 꽤나 놀랐지만, 그렇다고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다.
‘베텔규스 할배든 샤키로든 나랑 무슨 상관이람.’
무적 그 자체를 사부로 모신 덕분에 이미 눈높이가 너무나도 높아져 버렸기 때문이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는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미 모시는 스승이 있겠지. 너와 같은 자질을 가진 인재에게 스승이 없을 리는 없으니까.”
다행스럽게도, 샤키로는 베텔규스처럼 막 나가는 성격을 가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괜찮다.”
“뭐가 괜찮습니까?”
“난 이미 제자가 많아.”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가르치는 무기술에 따라 제자도 달라졌다. 애석하게도, 나와 같이 모든 무기에 대해 통달한 제자는 없었다.”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사람은 누구나가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라, 샤키로와 같이 어떤 무기를 쥐더라도 같은 강함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테니까.
“그건 저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지크가 말했다.
“제가 아무리 잘났어도 샤키로 님처럼 다양한 종류의 무기를….”
“바로 그거다.”
“예?”
“너 역시 나와 같은 재능을 가지지는 못했지. 내 재능은 강함과는 별 관계가 없어. 그저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근데 왜 저를….”
“네가 가진 기술들. 사용하는 무기에 따라 기술의 변화가 다양하더군.”
“보셨습니까?”
“쭉.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으음!”
“네가 가진 기술들은 한 가지 무기만으로 구사하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것이다. 넌 상황에 따라 다른 무기를 사용해야 해.”
“하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상황에 따라 다른 무기를 사용하기엔 숙련도도 그렇고, 무기 값도 만만치 않습니다. 게다가 휴대성도….”
“내가 해결해줄 것이다.”
“……!”
“제자가 되라는 게 아니다. 그저 지나가던 선배가 후배 예뻐 보여서 조언을 좀 해주는 정도로 해두자.”
그렇게 말하는 샤키로의 푸른색 눈동자는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
샤키로는 베텔규스처럼 까다롭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크에게 말했던 대로 모든 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재능은 오직 그만이 가지고 있는 매우 특별한 것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샤키로는 자신의 모든 걸 한 사람에게 몰아넣는 대신 적당한 인재들에게 나누어 가르치는 편을 선택했다.
현실을 인정하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본 것이다.
그래서 샤키로에게는 제자가 여러 명일 수밖에 없었다.
지크를 쫓아온 이유 역시도 같은 경우였다.
다른 제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크에게 어울릴 만한 무기술 하나쯤 가르쳐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크는 달랐다.
샤키로가 본 지크는 그의 정수를 잇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100퍼센트 만족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저 녀석은 나와는 다르다. 분명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지만, 나와 같은 재능을 가지진 못했어.’
아쉽게도, 지크 역시 그가 가르쳤던 제자들처럼 모든 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재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크가 구사하는 기술들은 달랐다.
지크가 사용하는 기술들, 그러니까 디버프 마스터의 스킬을 본 샤키로는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저 녀석이 사용하는 기술들… 무기에 따라 그 변화가 천차만별이다. 맙소사! 도대체 누가 만든 기술이란 말인가! 어떻게 한 가지 기술을 다양한 무기로 펼칠 수 있게 설계할 수 있는 거지? 그것도 완벽하게?’
웨펀 마이스터라는 칭호를 가진 자답게, 샤키로는 지크의 스킬을 보며 그의 사부인 데우스의 그림자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가 있었다.
‘이럴 수가! 저 기술들을 만들어 낸 자는 분명히 나와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아니, 나보다 무기를 더 잘 다루는 사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 저 기술들을 만들어 내는 건 불가능해!’
샤키로의 추측은 옳았다.
왜?
지크의 사부인 데우스는 만능의 경지에 올라선 초인이었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지크의 사부는 샤키로보다 그 어떤 무기도 더 능숙하게 잘 다룰 수 있으리라….
‘내가 가진 정수! 이 녀석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비록 이 녀석이 나와 같은 웨펀 마이스터가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기술에 따라 무기를 바꿔 가면서 사용하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해!’
그게 샤키로가 평생토록 쌓아 올린 깨달음을 지크에게 전해주기로 결심한 이유였다.
***
“지크프리트라고 했던가.”
샤키로가 지크를 향해 말했다.
“예.”
“나는 감히 너의 스승이 될 수 없다.”
“음?”
“왜냐하면, 너의 스승님은 나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높은 경지를 이룩하신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지크가 놀라 물었다.
“나는 네가 구사하는 기술들에서 너의 스승님의 그림자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가 있었다. 그분께선… 내 생각에… 어쩌면 신(神)의 경지에 올라선 분일지도… 위대한 그랜드 마스터들조차 감히 범접할 수 없는….”
“……!”
“네가 가진 기술들은 그랜드 마스터들조차 만들어 낼 수 없는 것들이다. 한 가지 기술을 다양한 무기로 바꾸어 펼친다는 건, 말은 쉬워도 사실 궁극의 경지에 올라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종류의 무기를 극한의 경지까지 수련했던 샤키로였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너는 그런 존재의 제자다. 내 어찌 감히 너를 제자로 삼을 수가 있겠나?”
“제 사부님을 알아봐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크가 샤키로를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선배에 대한 예우였다.
‘역시 사부님이셔.’
그런 지크의 가슴속은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마스터인 샤키로조차 ‘신의 경지에 오른 분’이라 평가하는 존재의 제자라는 것이 못내 자랑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널 제자로 삼을 수가 없다. 내 하찮은 조언이 네 스승님의 큰 가르침을 훼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별말씀을….”
“하지만 약간의 도움은 주고 싶다.”
“어떤 도움을 주시겠단 말씀이신지….”
“너에게 무기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겠다. 네게 가장 잘 어울리는 무기를 찾아낼 수 있도록 돕겠다.”
“……!”
“그리고….”
샤키로가 지크를 향해 엄청나게 멋있게 생긴 허리띠를 내밀었다.
“받아라, 나의 유품이다.”
그때.
‘이런 미친! 이걸 주겠다고?’
샤키로가 내민 벨트의 옵션을 본 지크는 너무나도 놀라 제자리에서 그만 주저앉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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