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5
004
“남자답게! 당당히 걸어야 한다!”
“예, 사부님.”
“어허! 목소리 봐라!”
“예! 사부님!”
태성은 군 복무 시절을 떠올리며,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성큼성큼!
그리고 데우스가 시키는 대로 걸었다.
“남자답게! 당당하게 걸어라!”
“예!”
“진정한 강자는 걸음걸이에서부터 티가 나는 법이니라! 알겠느냐?”
“예! 사부님!”
“어깨 딱 펴고! 복근은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눈빛은 매섭게! 표정엔 여유가 넘쳐야 한다!”
데우스는 마치 배우를 가르치는 연출가처럼, 태성의 걸음걸이를 일일이 지적하며 코치했다.
“옳거니! 잘하고 있느니라. 계속 그렇게 걸어보아라! 좋아, 아주 좋다!”
데우스는 그 후로 무려 두 시간 동안이나 태성에게 ‘강자의 걸음걸이’를 가르치고 나서야 만족하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그래, 그거면 되었다. 강해 보이진 않아도 최소한 쫄보 새끼처럼 보이지는 않는구나.”
“감사합니다, 사부님.”
태성이 사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도대체 왜 걸음걸이 가지고 이러시는 겁니까?’
속으론 사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제자야.”
사부가 그런 태성을 향해 말했다.
“예, 사부님.”
“내가 왜 네 걸음걸이를 지적했는지 아느냐?”
“모릅니다.”
태성은 모르는 걸 아는 척 허세를 부리는 타입의 인간은 아니었다.
“아까 네 걸음걸이에선 약자의 냄새가 물씬 풍기더구나.”
“그랬…습니까?”
“걸음걸이부터가 눈치를 보는 듯 소심하고 조심스러운데, 어찌 강자가 될 수 있겠느냐. 너는 본좌의 제자이니라. 본좌는 하나밖에 없는 제자 녀석이 그런 약해 빠져 보이는 걸음걸이로 걷는 꼴을 눈 뜨고 볼 수가 없다!”
그 순간.
‘인생이 쓰레기라서 걸음걸이도 쓰레기였던 건가?’
태성은 사부가 걸음걸이를 지적한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데, 무의식중에 불안정한 심리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 보인 모양이었다.
***
이런 말이 있었다.
자동차 영업 사원들은 전시장을 방문한 손님의 말투, 표정, 그리고 몇 가지 제스처만으로도 해당 손님이 차량을 구매할지 안 할지를 대강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인간 본연의 아우라라고나 할까?
혹은 포스?
인간의 속성이라는 게 몸가짐에서부터 자연스레 드러나게 된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제자야.”
사부가 태성을 향해 말했다.
“예, 사부님.”
“네놈이 지지리 운도 없고, 가진 능력 또한 쥐뿔도 없는, 땡전 한 푼 없는 거지새끼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라.”
사부가 가혹한 진실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말이다.”
“예, 사부님.”
“그걸 보란 듯 티 내고 다닌다면, 네놈에게 득 될 것이 뭐 얼마나 있겠느냐? 자고로 불쌍한 척, 약한 척해서 이득을 얻는 건 거리를 헤매는 거렁뱅이들뿐이니라. 세상은 철저한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 약한 모습을 보이면 바로 물어뜯겨 갈기갈기 찢기는 게 당연지사이니라. 설마 모성애라도 자극해서 아가씨들의 동정표를 얻을 심산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기죽어 살지 말거라. 어딜 가더라도, 누구를 만나더라도 당당해라. 넌 본좌의 유일한 제자다. 이 스승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낮은 자세를 보이지 말도록 하여라. 설사 그것이 황제라 할지라도! 알겠느냐?”
“예, 사부님.”
태성은 사부의 가르침을 쉬이 넘기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에 깊이 새겼다.
비단 사부뿐만이 아니었다.
BNW에 존재하는 NPC들은 이른바 ‘도플갱어 알고리즘’에 따른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도플갱어 알고리즘은 유저들의 외모, 말투, 성격, 행동 패턴 등등을 분석하고 복제해 NPC를 생성해내는 시스템이었다.
즉, 이 가르침은 인공 지능이 어설프게 지어낸 궤변이 아니라 사부의 모티브가 된 여러 유저의 삶과 인생관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는 것이었다.
유저들이 NPC를 단순히 0과 1로 이루어진 데이터 덩어리로 여기지 않는 이유… 그 어떤 인공 지능도 완벽하게 구현해내지 못했던 ‘인간’이란 존재를 창조해낸 게임이 바로 BNW이기 때문이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란 말을 훌륭히 적용해낸 사례였다.
“일단은 첫 가르침을 내리긴 했으니.”
사부가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슬슬 가자꾸나.”
“예? 어딜 갑니까?”
“네 녀석에게 가르침을 내릴 장소로 간다.”
사부가 태성을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손을 올리거라.”
“예, 사부님.”
태성은 행선지가 궁금했지만, 잠자코 따라가 보기로 했다.
슥.
태성이 사부의 팔에 손을 올려놓았다.
우웅!
그러자 사부를 중심으로 원형의 마법진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미친.’
태성은 경악했다.
워프 마법은 랭커들조차 몇 시간 동안 열심히 마법진을 그려야만 하는 고위급 마법이었다.
왜냐하면, 워프 마법은 최소 100킬로미터 이상을 이동할 수 있는 초장거리 이동 마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법진이 저절로 그려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시전 시간이 단 1초도 걸리지 않을 줄이야….
사부가 괜히 999레벨의 히든 NPC인 게 아닌 모양이었다.
***
사부는 태성을 광활하게 펼쳐진 초원과 높디높은 하늘, 그리고 차가우면서도 건조함 바람이 부는 곳으로 데려갔다.
‘여긴 어디지?’
본래 태성이 활동하던 지역은 뉘르부르크 대륙 동남부의 라인란트 왕국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라인란트 왕국과는 눈곱만큼도 관계가 없는 지역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라인란트 왕국 그 어디에서도 저렇듯 구름 위로 우뚝 솟은 설산(雪山)은 찾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수만 킬로미터는 족히 이동한 게 분명했다.
“보이느냐?”
그때, 사부가 저 멀리 우뚝 솟은 산을 가리켰다.
“저곳이 쿤룬산이다.”
“쿤룬산이요?”
“그렇다.”
태성은 다시 한번 놀랐다.
‘맙소사. 쿤룬산까지 1초도 안 돼서 이동했다고?’
쿤룬산은 월드맵 서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거대한 산으로, 라인란트 왕국으로부터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곳이었다.
“저곳에 네 녀석을 가르칠 장소가 있느니라.”
“그렇습니까, 사부님?”
“그렇다.”
사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태성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서 가자꾸나.”
“예.”
태성이 사부의 팔에 손을 올려놓았다.
***
순식간에 쿤룬산 중턱에 도착한 태성은 끝없이 펼쳐진 기암괴석들 사이를 지나 어느 동굴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쿤룬산 : 호수 동굴]태성의 눈앞에 현재 위치에 대한 알림창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이쪽으로 오너라.”
“예, 사부님.”
동굴 안은 밝았다.
은은한 푸른빛이 동굴 안을 비추고 있었기에, 태성은 별 어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곳에 있는 이끼들은 푸른색 형광 물질이 함유된 종들이니라. 수만 년은 족히 살아온 것들이지.”
사부는 동굴 안이 밝은 이유가 이끼들 덕분이라고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사부를 따라 하염없이 걷던 태성의 눈앞에 거대한 호수가 펼쳐졌다.
“와.”
호수를 본 태성은 감탄했다.
“호수가 참 맑습니다, 사부님.”
호수는 바닥이 훤히 비쳐 보일 정도로 맑아서, 물이 고여 있는지조차 의심이 될 정도였다.
“정화의 호수이니라.”
사부가 말했다.
[쿤룬산 : 정화의 호수]태성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네 녀석을 정화시켜 줄 호수이지.”
“예?”
“나는 네 녀석을 오래 가르칠 생각이 없다. 99일 단기 속성으로 짧고 굵게 가르칠 것이니라. 저 정화의 호수는 본좌가 네 녀석을 단기 속성으로 가르칠 밑거름이 되어줄 예정이지.”
“그게 어떤 의미입니까?”
“말 그대로 정화다.”
사부가 태성의 질문에 답했다.
“네 녀석은 무척 더럽다.”
“제가 더럽습니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게 없다, 이 말이다.”
“…….”
“그러니 백지상태로 되돌릴 수밖에.”
“예?”
“일단 좀 씻고 나오너라.”
사부가 태성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풍덩!
태성은 사부의 발길질을 이기지 못하고 정화의 호수에 입수해야만 했다.
띠링!
정화의 호수에 빠진 태성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 정화의 호수가 당신을 정화시킵니다!] [경고 : 곧 극심한 통증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고통에 대비하세요!]태성은 정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시스템이 어째서 고통을 경고하는지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쏴아아!!
정화의 호수가 마치 탄산수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으….”
태성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그 신음은 이내 곧 처절한 절규가 되어 동굴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흐흐.”
사부가 태성을 향해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내 말하지 않았더냐?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라고, 1분 1초가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크흐흐흐흐!”
“그, 그래도 이건 해도 너무한…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태성은 하던 말을 미처 끝마칠 수가 없었다.
고통이 너무 심해서, 비명을 지르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껄껄! 녀석! 아주 시워어~언한 모양이로구나?”
“악, 아악, 아아아아아악!!”
“끌끌끌. 진작에 데려올 걸 그랬구나. 이리도 좋아하는 것을.”
궤변.
태성은 좋아하기는커녕, 당장에라도 로그아웃을 해버리고 싶은 충동을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내고 있었다.
전신의 세포 하나하나가 모조리 타들어 가는 느낌….
‘시스템이 이 정도의 고통을 허용한다고…? 말도… 안 돼… 산 채로 사지가 찢겨도 이런 고통은 느껴 보지 못했는데… 크윽…!’
아무리 사실적인 통각 시스템을 채택한 게임이라지만, 이 정도의 고통이 허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현실에서도 경험하지 못할 고통을 게임에서 느끼게 될 줄이야….
‘로그아웃은 안 돼.’
하지만 태성은 로그아웃하지 않았다.
‘참아야 한다.’
태성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 고통을 참았다.
‘이게 쓰레기 같은 인생을 벗어날 유일한 길이다. 참고 따라가 보자. 스승님을 믿자.’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화까지 남은 시간 : 59분 32초]이 고통을 무려 한 시간 동안이나 참아내야 한다는 점이었지만 말이다.
***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정화까지 남은 시간 : 3초] [정화까지 남은 시간 : 2초] [정화까지 남은 시간 : 1초]태성은 지옥 같은 한 시간을 참아내는 데 성공했다.
‘내가 버텼다. 이 끔찍한 고통을 한 시간이나 버텼어.’
온몸을 불로 태우는 듯한 고통.
그 고통을 무려 한 시간 동안이나 버텨냈다고 생각하자, 짜릿한 성취감이 밀려들었다.
수행자들이 각종 고행을 통해 스스로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정화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무렵.
스으으….
탄산수처럼 끓어오르던 호수 물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런 고통을 참아 내다니. 하하.’
하지만 성취감도 잠시.
열매는 달기는커녕, 지독히도 쓰디썼다.
[알림 : 정화, 완료!] [알림 : 플레이어의 캐릭터가 초기화됩니다!]태성은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에 그만 정신줄을 놓아버릴 뻔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