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50
049
알고 보니 샤키로가 지크에게 입혔던 갑옷은 아주 재미있는 물건이었다.
[디버프 아머]착용자를 구속하는 마법의 갑옷.
•타입 : 갑옷(전신)
•등급 : 전설
•특수 능력
– 너프 : 착용자와 적의 스펙을 스캔한 후, 착용자를 적보다 20퍼센트 약하게 너프시킵니다.
도대체 어떤 변태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디버프 아머는 착용자를 강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너프시키는 옵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너프의 과정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푹, 푸욱!
아머의 뼈대에서부터 튀어나온 얇고 날카로운 가시들이 지크의 근육, 신경 등을 인정사정없이 찔러대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철컥, 철컥!
디버프 아머의 정교한 기계 장치들이 지크의 몸을 조이기 시작했다.
“크윽!”
덕분에 지크는 너프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푸하하하하하하!”
“약골맨이라더니 지리는 것 보게?!”
“왜 나왔냐! 꺼져라!”
노름꾼들이 지크를 조롱했다.
– 아, 데뷔전에서부터 닉값을 하는 약골맨입니다!
사회자 역시 지크의 링네임을 들먹이며 그를 비꼬았다.
“나약한 인간 놈 같으니.”
상대인 맥키는 지크를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살기를 뿜어내기도 했다.
– 그럼, 약골맨 대 맥키의 결투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결투가 시작되었다.
“죽어라!”
맥키가 등 뒤에 달린 날개를 펄럭이며 지크를 향해 날아들었다.
‘온다!’
지크가 다급히 몸을 움직이려 했다.
서걱!
섬뜩한 소리.
푸화아악!
지크의 팔뚝에서 시뻘건 피가 확 튀어 올랐다.
***
‘이런!’
상처 입은 지크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피할 수 있었는데!’
원래 같았으면 피하는 거로도 모자라 반격에 반격까지 성공시켰을 테지만, 지금은 그게 불가능했다.
[알림 : 주의하십시오! 현재 당신의 능력치는 적보다 20퍼센트 낮습니다!]디버프 아머의 특수 능력인 때문에 지크는 맥키를 압도할 수가 없었다.
“운이 좋군, 인간.”
맥키가 자신의 팔, 그러니까 낫에 묻은 지크의 피를 핥으며 말했다.
“하지만 다음번에도 네놈이 멀쩡할 수 있을까?”
“지금 좀 짜증나니까 말 걸지 말아줄래.”
“입은 살았군.”
맥키가 웃었다.
“천천히 끝내주마. 일단은 양팔부터 날리고… 그다음엔 다리를….”
맥키는 지크를 가지고 놀다가 죽일 생각인 모양이었다.
***
같은 시각.
‘지금 당장은 답답할 테지. 억울하기도 할 테고.’
객석에 앉은 웨펀 마이스터 샤키로는 저 멀리 고전을 면치 못하는 지크를 바라보며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가 가진 우월한 육체적 능력과 기술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일 테니까. 하지만 말이다, 지크프리트. 무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에는 이만한 게 없다. 기술과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기본기로만 싸우는 것. 그것이 무기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올바른 방법인 것이다.’
그것이 샤키로가 지크를 결투장이 아닌 투기장으로 데려온 이유였다.
투기장은 내기 싸움판이니만큼 그 수준이 높을 수가 없었고, 다양한 무기를 구사하는 별의별 검투사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었다.
순수한 기본기만으로 다양한 타입의 적과 싸우기에는 이만한 장소가 없었던 것이다.
‘넌 언제나 강자의 입장에서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지. 너는 언제나 약자의 입장에서 싸워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샤키로의 생각은 크게 빗나가 있었다.
지크는 강자의 입장에서 싸워본 적이 없었다.
지크는 언제나 약자의 입장에서 싸웠다.
예전에도.
그리고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지금도.
지크는 언제나 저 높은 곳만을 바라보고 달려왔기에, 자신보다 약한 자들과는 싸워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지크의 발자취가 드러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타고난 강자라는 특권 의식을 버리고 가장 낮은 자세에서….’
샤키로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서걱!
무언가 잘려 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
“……!”
“……!”
투기장 전체가 얼어붙었다.
“……!”
샤키로 역시도 얼어붙긴 마찬가지였다.
‘마, 말도 안 돼!!’
샤키로는 제 눈을 신뢰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크아아아아아아악!!”
저 멀리 한쪽 팔이 잘려 나간 맥키가 투기장 바닥을 데굴데굴 나뒹굴고 있었기 때문이다.
***
지크는 고전했다.
샤악, 샥!
맥키의 날카로운 앞발이 연거푸 지크의 몸 곳곳을 갈라놓았다.
“쥐새끼 같은 놈. 쉬익!”
맥키가 으르렁거렸다.
팔 하나쯤은 쉽게 자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던 약골맨이 어찌어찌 치명타만은 피하고 있었기에 약이 오른 것이다.
‘생각하자.’
한편, 지크는 맥키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어째서 샤키로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수련을 시키는지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 지크의 마음가짐은 샤키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답답하다?
물론 답답했다.
하지만 미칠 것 같지는 않았다.
왜?
언제는 유리한 적 있었던가?
디버프 마스터의 핵심 자버프부터가 였다.
클래스의 존재 이유 자체가 자신보다 더 강한 적을 때려잡기 위한 것, 이제 와 너프를 좀 먹었다고 해서 짜증이 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샤키로는 웨펀 마이스터. 무기의 달인이야. 어쭙잖은 사람이 아니다. 분명히 이유가 있어.’
그때, 지크의 눈에 들어온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맥키의 팔이었다.
스릉-!
사마귀 인간인 맥키의 두 팔에는 서슬이 시퍼렇게 선 낫이 달려 있었다.
‘저거 도(刀) 아냐?’
촉이 왔다.
‘이 자식의 무기를 도라고 가정해보자. 그럼, 난 지금 나보다 더 강한 도객과 싸우고 있는 거겠네?’
정답이었다.
지크는 샤키로가 그를 투기장에 밀어 넣은 이유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적은 나보다 강한 도객이고, 나는 대검을 쓰는 검객이다. 그리고 지금은 내 피지컬과 스킬이 봉인당한 상태고. 기본기로만 싸워야 해. 그렇단 말은… 샤키로는 지금 내가 무기와 무기 간의 특성과 상성을 직접 몸으로 느껴 보길 원하고 있는 거야.’
이해가 되자, 그다음부터는 쉬웠다.
‘대검은 찌르기보다는 베는 데 특화된 무기다. 그것도 크게 한 방을 노리는. 도는 날이 한쪽밖에 없지만, 대검은 양날이고. 이 특성을 활용해 보자.’
그러자 지크의 움직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뭐지, 이 자식? 갑자기 강해진 것 같은데?’
맥키가 당황할 정도로, 지크의 검술은 갑작스레 변화했다.
그 결과.
텅, 텅, 텅!
맥키의 공격이 지크의 대검에 번번이 가로막히기 시작했다.
노름꾼들은 그 광경을 보고 웃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얼씨구?”
“버둥대는 거 보소?”
“애쓴다, 애써! 에라이 XX아!”
제3자들이 보기에 지크의 몸놀림은 무척이나 우스꽝스러웠다.
왜냐하면, 너프 때문에 지크의 몸이 생각을 100퍼센트 따라가 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등바등 꾸역꾸역 맥키의 공격을 버티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쉬익! 이 자식! 검술이 발전하고 있다!’
정작 맥키는 약골맨의 급격한 실력 상승에 당황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던 중.
텅!
지크의 대검이 맥키의 낫을 튕겨내던 바로 그 순간.
후우욱!
지크가 순간적으로 몸을 빙글 돌려 몸의 중심축을 바꾸었다.
‘아, 안 돼!’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맥키의 겹눈-곤충인간이었으니까-들이 크게 떠졌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부웅!
지크의 대검이 크게 회전했고.
툭.
맥키의 오른쪽 팔이 투기장 바닥에 떨어졌다.
지크가 깨달음을 얻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
‘어, 어떻게 저렇게 빨리!’
샤키로는 경악했다.
‘맙소사! 저렇게 빨리 깨달을 줄이야! 지크… 네 녀석의 이해력은 도대체가…!’
지크가 이렇듯 빨리 그의 의도와 무기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샤키로였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녀석은 자신이 약해진 것에 대해 크게 답답해하지 않았다. 또, 적이 자신보다 강하다고 해서 위축된다거나 당황하지도 않았어. 도대체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지? 너와 같이 타고난 천재들은 언제나 강자의 입장에서 싸웠을 텐데? 어떻게 그 나이에 만 번의 전투를 거친 백전노장과 같은 평정심을 가지고 있는 거냐!’
샤키로는 지크의 빠른 이해력과 깨달음보다 그 마음가짐에 더더욱 감탄하고 있었다.
지크가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 그 눈물겨운 사연을 알지 못했기에 생긴 오해였다.
***
– 스, 승자는!
사회자가 소리쳤다.
– 놀랍게도 약골맨입니다, 여러분!
결국, 약골맨은 승리를 거둠으로써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를 수가 있게 되었다.
“와! 미쳤다!”
“운 봐라? 거의 뭐….”
“약골맨 너 이 새끼야! 너 복권 사라! 오늘 복권 사는 거다! 알겠지?”
“저 새끼 때문에 돈 다 잃었네!”
“이런 빌어먹을! 이거 승부 조작 아니야? 어? 어떻게 약골맨이 맥키를 이겨?”
“아싸! 이게 몇 배냐!”
객석은 술렁였다.
관객의 태반이 맥키에게 돈을 걸었는데, 약골맨이 승리를 거두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벅저벅-
지크는 그 어떤 리액션도 없이 대기실로 향했다.
그에게 있어 투기장이란 무기의 이해도를 높이는 수련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왔나.”
먼저 대기실에 와 있던 샤키로가 지크를 반겼다.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지크가 샤키로를 향해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표시했다.
“깨달았습니다. 샤키로 님께서 왜 저를 투기장으로 데려오셨는지.”
“난 놀랐다.”
“왜 놀라셨습니까?”
“처음 널 봤을 때, 나는 단지 근골이 훌륭한 인재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네가 수련하는 걸 봤을 땐, 훌륭한 근골에 걸맞은 사부를 모시고 있다고 생각했지.”
“으음.”
“하지만 방금 네 경기를 보고 나서 나는 깨달을 수가 있었다.”
“뭘 깨달으셨는지….”
“넌 천재다.”
“예?”
순간 지크의 얼굴에 ‘그게 뭔 개소리십니까?’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제가요?”
지크가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그렇다.”
샤키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 말도 안 돼.”
“뭐가 말이 안 되나.”
“어딜 봐서 제가 천재입니까? 쓰레기지.”
그제 지크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네놈은 쓰레기다. 별 볼 일 없는 놈이지. 내 말이 틀렸느냐?]사부로부터 쓰레기, 무능한 놈, 멍청한 놈, 재능 없는 놈, 어디 쓰려고 해도 못쓸 놈 등등 세상에 존재하는 인격 모독이란 인격 모독은 다 당했기 때문이다.
“이런.”
샤키로가 눈살을 찌푸렸다.
“겸손도 지나치면 보기에 안 좋다.”
“겸손이라뇨.”
“내 평생 너처럼 이해력이 빠른 인재는 보지 못했다. 내 제자들도 어디 가서 천재가 아니란 소릴 듣지 못하는 이가 없어.”
“예, 뭐… 샤키로 님의 제자들이야 당연히 천재겠….”
“네가 더 우월하다.”
“예?!”
“네가 가진 이해력은 내가 가르친 그 어떤 이들보다 압도적이야. 마음가짐 또한 더할 나위가 없이 훌륭하다. 넌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면서 누구보다 낮은 자세에서 무(武)를 탐구할 줄을 아는군.”
“아, 왜 이러십니까….”
지크는 정말로 쥐구멍에라도 숨고만 싶었다.
살다 살다 천재라는 소릴 듣는 날이 올 줄이야….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 싶었다.
“기쁘군.”
샤키로가 미소를 지었다.
“너와 같은 후배와 내 마지막을….”
그때였다.
“쿨럭!!”
샤키로가 갑작스레 피를 토해내었다.
푸화악!
그러자 시커먼 핏물이 대기실 바닥을 적셨다.
“샤키로 님!”
지크가 재빨리 샤키로를 부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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