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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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는 절벽 위까지 폴짝폴짝 뛰어오른 다음 기절한 등반대원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상태를 살피고, 포션을 먹여준 뒤에 저 밑에서 낑낑대며 절벽을 오르고 있는 나머지 등반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크게 다치지는 않은 거 같으니까 여기 두고 갑니다!”
그때였다.
[알림 :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 경험치가 올랐습니다!]갑자기 경험치 상승을 알리는 알림창들이 지크의 눈앞에 주르륵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엥? 뭐야 이 경험치는? 아! 설마?”
지크는 이 정체 모를 경험치들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은 들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워낙에 높으니 떨어지는 데에도 시간이 좀 걸렸던 모양이었다.
마치 스카이다이빙이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저, 전하!”
그때, 엘리엇 대장이 지크를 향해 소리쳤다.
“정말 감사하옵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는 말로만 갚는 게 아니래요!”
“예?!”
“전 바빠서 먼저 갑니다!”
“전하! 전하아!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전하!”
엘리엇이 목청껏 소리쳐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갑니다!”
지크는 이미 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매우 빠른 속도로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가….”
엘리엇은 멀어지고 있는 지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한낱 약소국의 왕인 줄 알았는데… 절벽을 통째로 무너뜨리다니….’
엘리엇은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라는 인물이 소문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최초로 모험가 출신이면서 일국의 왕위에 오른 자.
지난 에 벌어진 사상 초유의 테러 사건 당시 슈트카르트 황제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군주들을 구출해낸 자.
하지만 그런 위대한 업적들과는 달리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에 대한 소문들은 대부분 좋지 못한 것들이었다.
주색잡기의 달인.
천하의 호색한.
지치지 않는 정력-이건 좀 부러웠다-을 가진 사나이.
겉으로는 사람 좋은 척 웃으며 뒤에서는 뒤통수를 인정사정없이 후려갈기는 비열한 인간.
때때로 악마조차 울고 갈 정도로 사악한 짓을 서슴없이 벌인다는, 가히 인두겁을 쓴 악마.
그리고 수전노도 울고 갈 정도로 돈을 밝힌다는 이야기까지.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에 대한 악소문들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기억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능력 하나만큼은 진짜다.’
엘리엇은 지크의 인성이야 어찌 되었든, 강함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절벽 하나를 통째로 무너뜨릴 무력이라니?
이건 단순히 실력을 넘어 능력 자체가 경이로운 수준이었던 것이다.
‘저자야말로 이 원정을 성공시킬 유일한 열쇠다. 동아줄인 것이다. 잡아야 한다. 저 동아줄을!’
엘리엇은 죽기 살기로 지크에게 빌붙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크의 능력을 본 이상 묻어가기만 해도 쿤룬산 정상에 등반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하!!!”
엘리엇이 저 멀리 이제는 사라질 지경인 지크를 향해 소리쳤다.
“전하!!! 전하아아아아아아!!! 같이 가시지요!!! 전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엘리엇은 그렇게 소리치며 죽기 살기로 지크를 뒤쫓아 절벽을 빠르게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등반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분을 놓칠 순 없다!’
‘이 빌어먹을 등반의 유일한 희망이야!’
‘어떻게든 쫓아가야 한다!’
엘리엇과 마찬가지로 의 대원들 역시 지크를 이곳 쿤룬산에서 자신들을 지켜줄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젖 먹던 힘을 다해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전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전하! 제발 저희와 함께 가주십시오!”
지크를 목이 터져라 애타게 부르며….
***
지크는 자신을 쫓아오는 는 깔끔히 무시한 채 쿤룬산을 오르고 올랐다.
등산은 이동 → 전투 → 이동 → 전투의 연속이었다.
등산을 하다가 쿤룬산에 서식하는 흉악스럽기 짝이 없는 토착종들과 싸우고, 또 등산을 하다가 싸우는 식이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지크는 자신이 가진 능력들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해 위기를 넘기거나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그런 지크의 승리는 뒤따라오는 로 하여금 꽃길을 걷게 해주었다.
지크가 앞에서 쿤룬산 토착종들을 퇴치해준 덕분에 는 안전하게 등산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는 정말이지 젖 먹던 힘을 다해 죽기 살기로 지크의 뒤를 쫓고, 쫓고, 또 쫓았다.
형편없는 전력 덕분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의 입장에서는 이렇듯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크를 쫓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살길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크는 앞길을 열어주는 선발대가, 그리고 는 그런 지크의 등에 빨대를 꽂은 그림이 나왔다.
‘이거 묘하게 빨대 꼽히는 기분이란 말야. 괜히 기분 나쁘게.’
지크는 그런 가 자신을 이용해 꿀을 빠는 것 같아 심술이 났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렇다고 못 쫓아오도록 훼방을 놓거나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신경 쓰지 말고 내 갈 길 가자.’
지크는 에게는 신경을 끈 채 계속해서 쿤룬산 정상을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으. 오늘은 여기서 스톱.”
지크는 해가 지자 를 설치하고 쉬기로 했다.
“뀨! 주인 놈아! 오늘도 수고했다!”
“너도 수고했어.”
지크는 햄찌와 함께 안에서 저녁을 먹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은 푹 자야지. 쿤룬산만 내려가면 로그아웃해서 자야겠어. 캡슐 안에서 자는 건 진짜 너무 피곤해.’
지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세 시간쯤 흘렀을 때.
똑똑, 똑똑똑!
지크는 문밖에서 누군가 노크하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뭔데.”
그러자 햄찌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지크에게 말했다.
“뀨우… 주인 놈아… 밖에 등반대다….”
“또?”
“햄찌 다시 잔다… 드르렁… 쿠우우울… 드르렁… 쿠우우우울….”
그때였다.
똑똑! 똑똑똑!
지크는 또다시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완전히 잠이 깨어 문가로 향했다.
“전하! 밖이 너무 춥습니다!”
“지크프리트 전하! 제발 저희를 들여보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전하! 부디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대원들은 문밖에서 지크를 부르짖으며 추위를 피해 쉴 수 있게 해달라며 애걸복걸했다.
빠직!
그러자 지크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이것들이 진짜.’
물론 숙박비를 받고 재워줄 수야 있겠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푼돈보다 더욱 중요한 건 피로를 푸는 일 아니겠는가?
지크의 입장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데 문을 두드려서 깨우니 숙박비고 나발이고 짜증이 날 수밖에.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했던가?
지크는 자신이 납득할 수 있을 만큼의 보상도 주지 않으면서 묻어가려고 하는 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크가 가는 방향을 뒤따라오면서 안전을 확보하는 것까지야 그러려니 했지만, 단잠을 방해하면서까지 재워달라고 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들 좀 편하게 자자고 자는 사람을 깨워?’
지크는 매우 짜증이 나서, 문밖 를 향해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오늘은 장사 안 하니까 여러분들 텐트 안에서 주무시죠.”
“저, 전하! 숙박비는 넉넉히 드리겠습니다! 부디 은혜를….”
“필요 없으니까 꺼지세요.”
“전하….”
“묻어가는 건 괜찮은데, 빨대 꼽히는 건 질색이라서. 문 한 번만 더 두드리면 제 손에 먼저 험한 꼴을 보게 될 테니까 그리들 아시고.”
지크는 그렇게 경고를 한 뒤에 다시 햄찌의 옆으로 가 눈을 감았다.
“이런… 전하께서 심기가 불편하신 모양이다.”
엘리엇이 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시겠지. 오늘 밤은 우리들의 장비로 텐트를 치고 쉬도록 한다.”
결국, 는 지크의 옆에 텐트를 치고 추위에 바들바들 떨면서 잠을 청했다.
‘한 번만 더 귀찮게 해봐라. 뚝배기 깨버려야지. 어딜 능력도 없는 놈들이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지크는 의 무모함을 욕하며,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
몇 시간 후.
쾅쾅쾅쾅쾅!!!
지크는 누군가 문을 거의 부술 듯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전하!!! 전하!!!”
“전하하아아아아아아!!!”
문밖에서 의 대원들이 목이 터져라 지크를 부르짖고 있었다.
빠직!
덕분에 지크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이것들이 진짜….”
지크는 벌떡 일어나서 를 움켜쥐고 문가로 향했다.
“아주 그냥 다리몽둥이를… 아니지. 뚝배기를 깨버려야지.”
지크는 또다시 단잠을 깨운 를 응징하기 위해 문을 활짝 열려고 했다.
그런데.
끽! 끼이이이이이익!!!
지크는 문을 긁는 소리에 소름이 돋아서 얼어붙고 말았다.
마치 손톱으로 철문을 긁어내리는 것 같은 매우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뭐지?’
바로 그때였다.
쾅쾅쾅쾅쾅쾅쾅쾅!!!
문이 또다시 부서질 듯 흔들렸다.
“도대체 뭔 짓들을 하는 거야?”
지크는 아무런 생각 없이 문을 확 열어재꼈다.
“저, 전하!!!”
“전하!!! 살려 주십시오!!!”
“으아아아아악!!!”
대원들은 지크가 문을 열어주자마자 댐에 고였던 물이 터져 나오듯 벙커 안으로 뛰어들어 왔다.
“지금 뭐하자는 거죠?”
지크가 엘리엇을 향해 물었다.
“자는 사람….”
“전하! 저, 기를 보시지요!”
엘리엇이 벙커 바깥을 가리켰다.
“뭘 보란 건데요?”
“저, 저기! 저기 어둠 속을 보셔야 합니다! 전하!”
지크는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런 난리법석을 피우나 싶어 문밖을 바라보았다.
휘이이이이이이이!
세찬 칼바람이 부는 바깥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뭐야, 아무것도….”
바로 그때.
번쩍!
지크는 어둠 속에서 시뻘겋게 빛나는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눈?’
지크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붉은색 점들이 어떠한 존재의 눈이라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바깥을 주시했다.
스르륵!
이윽고 어둠을 뚫고 시커먼 형체를 가진 형상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쩝.”
지크는 붉은색 눈을 가진 시커먼 형상들을 바라보며 가 어째서 그토록 절박하게 문을 두드렸는지를 깨달았다.
몬스터의 습격.
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벙커의 문을 두드렸던 것이다.
“저기요.”
지크가 엘리엇을 돌아보며 말했다.
“예? 전하?”
“나가주시죠.”
“예에?! 하, 하지만….”
“내가 댁들 용병입니까?”
“그, 그건….”
“대신 싸워줄 생각 없으니까, 나가요. 사람 피곤해 죽겠는데 자꾸 깨우고 난리야.”
“…….”
“자자, 다들 나가십쇼.”
지크가 의 등을 떠밀 때였다.
“저, 전하!”
엘리엇이 자신이 가진 아공간 인벤토리를 열어 안에 있던 모든 것을 꺼내 털어놓았다.
와르르르르르르르!!!
그러자 안에 있던 잡동사니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와 벙커 바닥을 나뒹굴었다.
“전부 드리겠습니다. 제발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그러자 다른 등반대원들 역시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지크에게 털어놓았다.
“전하. 비록 저희가 염치없이 전하께….”
엘리엇은 지크에게 하려던 말을 다 마치지 못했다.
“의뢰, 접수 완료.”
지크가 어느새 문밖을 나서 시커먼 형체들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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