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514
513
지크가 강행 돌파를 시도한 이유는 간단했다.
‘여기서 언제까지 이러고 있으라고.’
지크는 쿤룬산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 전혀 없었다.
1분 1초라도 빨리 을 에 풍덩 집어넣고 프로아 왕국으로 복귀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정상에 도달하는 시간이 자꾸만 지체되니 지크의 입장에서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강행 돌파였다.
이 지역은 들이 24시간 출몰하는 곳.
이런 곳에서 를 설치하고 버틸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영원히 싸우는 것 또한 불가능했으니 차라리 무시하고 빠르게 통과하자는 선택을 했던 것이다.
“저, 전하!”
엘리엇은 지크가 갑자기 앞으로 달려 나가자 당황해 소리쳤다.
“어디 가십니까! 전하! 전하아아아아아!”
“뭐 합니까!”
지크가 그런 엘리엇을 향해 소리쳤다.
“어서 뛰시죠!”
“예?!”
“빠르게 통과하자고요!”
“……!”
“거 돌아가시기도 늦은 거 같은데! 그냥 뛰시죠!”
엘리엇은 그런 지크의 말에 또다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이미 돌아가기엔 늦었고, 그렇다고 벙커 안에 숨자니 이곳은 들이 24시간 출몰하는 지역이었다.
즉, 강행 돌파밖에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죽기 싫으면 뛰세요!”
지크가 재차 엘리엇에게 소리쳤다.
“그, 그렇지! 뛰어야지!”
엘리엇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뛰, 뛰어라! 뛰어! 전하를 따라 뛰는 것이다! 뛰어라!!!”
그러자 역시 지크를 뒤따라 눈보라가 매섭게 휘몰아치는 지역을 미친 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
그렇게 시작된 강행 돌파.
지크와 햄찌와 는 들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낼 수 있는 한 최대의 속도로 달렸다.
그러나 강행 돌파는 쉽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역풍 때문이었다.
휘이이이이이이이!!!
정면에서 몰아치는 바람이 너무나도 거셌다.
“윽! 뭐, 뭔 바람이 이렇게… 세!!!”
오죽했으면 지크마저도 앞으로 달려 나가기가 힘들어 를 켜서 그 힘을 이용해 밀고 나가야 했을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들 역시 세찬 바람 속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사실이었다.
[어딜… 가느냐….] [같이… 가자….] [억울해… 억울하단 말이다… 억울하다고!]들은 지크 일행을 끈질기게 쫓아왔지만, 역시나 세찬 바람을 이겨내지는 못해 이동 속도가 엄청나게 느렸다.
애초에 들 자체가 이동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은 편이기도 했고.
때문에, 이 추격전은 그 누구도 빠르지 않아서 마치 거북이들이 경주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평지도 아닌 정상을 향해 가는 가파른 언덕이니만큼 그 속도는 더욱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가자… 같이….]한 등반대원의 뒤로 가 따라붙었다.
지크야 워낙에 힘이 좋으니 그나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지만, 등반대원의 경우 들을 뿌리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를 내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저, 전하! 으악! 사, 살려….”
“거 좀 빨리 오라니까.”
지크는 위기에 빠진 등반대원 쪽을 바라보며 눈살을 한 번 찌푸리고는 을 전개했다.
이 펼쳐지자 들은 그 강력한 슬로우 효과를 받아 거의 정지하다시피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
“좀 묶어 둬.”
지크는 그림자들에게 들을 묶어둘 것을 명령하기도 했다.
그런 지크의 조치는 매우 적절해서, 위기에 빠졌던 등반대원은 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전하!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됐고 얼른 뛰시죠!”
“예!”
그렇게 지크는 들을 뒤로한 채 무시무시한 역풍에 맞서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기를 약 두 시간여.
[알림 : 스태미나가 부족합니다!] [알림 : 마나가 부족합니다!] [알림 : 휴식을 취하십시오!]지크는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을 보고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시간 동안 쫓아오는 들을 향해 을 전개하고 눈보라와 역풍을 뚫고 나아가니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그건 지크뿐만이 아니었다.
“허억, 허억!”
“더, 더는… 더는 못 갑니다. 더는….”
“우웨에에에에에에엑!”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는 더했다.
지크가 단순히 지친 정도였다면 는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저 뒤에서 들이 쫓아오고 있었음에도 주저앉거나, 드러눕거나, 헐떡이거나, 토하는 등 더 이상 나아가는 게 불가능했다.
‘이쯤에서 쉬어야지.’
지크는 잠시 쉬기로 했다.
를 떠나 지크 스스로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벙커 설치합니다.”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를 설치하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늦으면 죽는 거야, 아주.”
그리고는 문을 열어놓고 가 오기를 기다렸다.
“저, 전하!”
“전하! 제발! 헉! 헉헉헉!”
“기다려… 헉헉! 주십시오! 전하! 헉헉!”
는 어떻게든 벙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
그 후로도 추격전은 반복되었다.
지크는 들을 피해 역풍과 눈보라를 뚫고 달리다 지친다 싶으면 를 설치하고 안에서 휴식을 취했다.
들은 그런 지크와 를 쫓다가 에 가로막히기를 반복했다.
그러기를 약 몇 시간 후.
“음.”
지크는 을 들여다보고 대충 용암 지대까지의 거리를 계산해 보았다.
스킬을 쓴 건 아니었고, 단순히 미니맵을 켜 필드의 지형지물을 확인함으로써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를 가늠해본 것이다.
은 소모품이라서 마구 남발했다가는 중요한 순간에 쓰지 못할 수도 있었기에 스킬을 되도록 쓰지 않는 게 좋았다.
“딱 5킬로미터 남았네.”
“전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엘리엇이 지크의 중얼거림을 듣고는 물었다.
“대충 보니까… 5킬로미터쯤 가면 용암 지대가 나온다는데요?”
“오오!”
“이 악물고 뚫으면 한 번이면 도착하겠는데요?”
“드디어!”
엘리엇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었다.
“드디어… 쿤룬산 정상을 향해… 수십 년 동안 이 산을 정복하기 위해 매달려 왔는데… 크흑!”
“거 좋으시겠습니다.”
“당연히 좋습니다. 크흑!”
엘리엇이 눈물을 훔치며 감격해했다.
지크는 그런 엘리엇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렇게 좋냐?’
지크는 엘리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확히는 싫었다.
‘수십 년 동안 이 산을 정복하기 위해 매달려? 그럼 그동안 죽은 대원들이 몇 명일까? 너 하나의 욕망을 위해 얼마나 많은 대원이 목숨을 잃고, 또 얼마나 많은 자원을 잃어야 하는 거지?’
지크는 엘리엇이 지난 7차 원정에 참가했던 대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었다.
엘리엇은 오직 쿤룬산 등반만을 이야기했고, 또 거기 미쳐 있었다.
당장 이번 8차 원정에 동행한 대원들에게도 명령만을 내릴 뿐 딱히 동료애 같은 걸 보여준 적도 없었다.
오직 자신의 욕망뿐….
지크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희생시키는 인간들을 매우 혐오했다.
마치 과거 제네시스 길드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의 채형석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만 보면 이런 놈들이 대원들이고 나발이고 다 버리고 나 혼자 살겠다고….’
그 순간.
‘응?’
지크가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순간 멈칫하던 때였다.
콰앙!
엄청난 소리와 충격이 를 강타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푹!
무언가 날카로운 촉수가 를 뚫고 들어오는가 싶더니.
쩍! 쩌어억!
합금으로 이루어진 의 벽을 찢기 시작했다.
“……!”
“……!”
“……!”
그 광경을 본 모든 이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도대체 뭐야?”
지크는 서둘러 벙커의 문을 열고 를 움켜쥔 채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밖으로 나섰다.
그런 지크를 반긴 건 들뿐만이 아니었다.
[까득! 까드득!]들과 함께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는 커다란 짐승들이 지크를 반겼다.
그것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거미?”
크기가 황소 세 마리는 합쳐놓은 것 같은 덩치를 자랑하는 거미들이었다.
***
[프로즌 타란툴라]쿤룬산 정상 바로 밑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곳에 사는 거대한 타란툴라.
8개의 다리가 매우 날카롭고 강력해서, 어지간한 강철도 손쉽게 찢어발긴다.
또한 강력한 냉기가 담긴 거미줄을 발사하므로, 상대하는 데 주의가 필요하다.
•존재 구분 : 중립 생명체
•레벨 : 290
•특이 사항 1 : 이동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므로 도망치는 건 의미가 없을 것이다.
•특이 사항 2 : 거미줄에 맞으면 속박뿐 아니라 에 걸리므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알고 보니 의 벽을 찢어발긴 촉수는 의 다리였던 모양이었다.
“…5킬로미터밖에 안 남았는데.”
지크는 무리의 등장에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의 숫자는 거의 100여 마리로, 주변을 꽉 채울 정도로 많았다.
이런 놈들을 피해 5킬로미터를 달려서 도망친다?
‘못 도망쳐.’
지크는 도망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게다가 들 역시 여전히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상태였다.
“햄찌야.”
지크가 등 뒤를 향해 말했다.
“뀨우?”
“아무래도 한바탕해야 할 거 같은데?”
“그러냐! 뀨우!”
“한바탕 제대로 해야 할 거 같다.”
“그럼 싸운다! 뀨우!”
“그럼 인사부터?”
“뀨우?”
“반갑습니다!”
그와 동시에 지크가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떨어지며 로 대지를 내리찍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러자 스킬이 부채꼴 형태로 뻗어나가 전방에 있던 모든 적들을 휩쓸었다.
‘쉽지 않은 싸움이야.’
지크는 들의 레벨이 무려 290이니만큼 초반부터 기선을 확실하게 제압하고 들어가기 위해 곧바로 와 을 전개하는 한편 스킬까지 켜 전투에 나섰다.
스으으으!!!
그리고 그런 지크로부터 초록색 안개가 뿜어져 나와 들을 향해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들은 기계나 언데드, 혹은 돌 타입의 몬스터가 아니었기에 스킬이 충분히 먹힐 것이라는 게 지크의 판단이었다.
그런 지크의 판단은 정확했다.
[프로즌 타란툴라]•생명력 : ■■■■■■■■□□
의 영향권 안에 들어 있던 들의 생명력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의 도트 데미지까지 더해지자 스킬의 데미지는 290레벨의 몬스터를 상대로도 충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좋아. 빠르게 정리하고….’
지크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쿵! 쿠웅!
무언가 거대한 게 땅을 내리찍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어?”
지크는 자신을 덮친 커다란 그림자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키는 약 10여 미터.
두툼하기 짝이 없는 두 발은 거의 의 크기와 맞먹었으며, 온몸에는 반짝이는 은색 털이 돋아난 괴물이 지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얼굴은 마치 고릴라의 것과 비슷했는데, 피부가 검은색이 아닌 연한 분홍색이라는 점이 달랐다.
“얘는 뭔데 이렇게 커?”
바로 그때였다.
– 우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고릴라의 얼굴을 한 거대한 거인이 지크를 향해 입을 쩍 벌린 채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