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517
516
“뭐지….”
지크는 당연히 벌어질 줄로만 알았던 싸움이 벌어지지 않자 굉장히 찜찜했다.
“한바탕 싸워야 정상 아닌가?”
“햄찌도 모르겠다! 뀨우!”
“이거 속임수는 아니겠지?”
지크가 나름 합리적인 추리를 내놓았다.
“뀨우?”
“우리가 지나가면 뒤에서 덮치려고 그러는 거 아냐?”
“뀨우우우?!”
햄찌가 그런 지크의 추리를 듣고는 화들짝 놀랐다.
“그, 그럴 수도 있다! 주인 놈아!”
“얘네한테 뒤통수 맞으면 오늘만 두 번 맞게 되는 거라고.”
지크가 살짝 심술 난 표정으로 말했다.
엘리엇에게 통수 아닌 통수를 맞았던 게 어지간히도 기분이 나빴던 모양이었다.
햄찌는 그런 지크를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주인 놈… 남의 통수는 밥 먹듯이 치면서 자기는 통수 맞기 싫은 거냐….’
지크는 햄찌가 그런 생각을 하든 말든 다음과 같이 말하고는 화속성 중립 생명체들을 향해 덤벼들었다.
“하루에 통수를 두 번 맞을 순 없지. 그건 머저리라고.”
“뀨우? 그래서 결론이 뭐냐! 주인 놈아!”
“그냥 해치우고 지나가자.”
지크는 그렇게 말하며 곧바로 화속성 중립 생명체들을 향해 을 퍼부어 버렸다.
혹시나 모를 위험 요소를 완벽하게 제거하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건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고 죽이고 지나가기로 한 것이다.
우르릉, 콰앙!
이 전방을 부채꼴 형태로 휩쓸자 바닥에 고여 있던 용암이 사방팔방으로 튀어 오르며 일대가 초토화되었다.
그러던 중 불상사가 벌어졌다.
후드득!
스킬에 의해 튀어 올랐던 용암 한 방울이 햄찌의 등짝에 떨어졌던 것이다.
“뀨우?”
햄찌는 순간 자신의 등짝에서 느껴지는 느낌에 이게 뭔가 싶어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곧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뀨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뜨겁다!!! 뀨우우우우우우우우우!!! 뜨거워!!!”
지크는 그런 햄찌를 보고 웃음을 참느라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읍… 읍읍!!!”
“주인 놈아!!! 지금 웃는 거냐!!! 햄찌 아프다!!! 아퍼!!! 캬아아아아아아아악!!!”
“어… 내, 내가 좀 바빠서… 푸훕!”
“캬아아아악!”
“이, 이따 얘기하자!”
지크는 햄찌에게 그렇게 소리치고는 화가 나서 덤벼드는 화속성 중립 생명체들에 맞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전투는 쉽지 않았다.
화속성 중립 생명체들은 기본적으로 피통이 매우 크고 공격력 역시 뛰어났으며, 군중 제어 기술에 저항하는 힘 역시도 무지막지했다.
그러나 300레벨 이상의 강력한 존재는 없었기에, 지크는 시간이 좀 걸리긴 했어도 화속성 중립 생명체들을 별 무리 없이 처치하는 데 성공했다.
전투가 끝난 후.
“으음.”
지크는 뭔가 찝찝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기분이 이상한데….”
지크가 그렇게 중얼거린 이유는, 화속성 중립 생명체들이 뭔가 열심히 싸운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만큼 당연히 있어야 할 치열함이 느껴지지 않았다고나 할까?
오죽했으면 싸우기 싫은데 먼저 덤벼오니 대충대충 싸우다가 죽어 주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설마 이것도 통수의 일종인가?!’
지크는 의심병에 찌들어서 화속성 중립 생명체들의 미적지근한 죽음(?)이 어떠한 음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기분 나빠했다.
“캬아악! 주인 놈아! 햄찌 땜빵 또 생겼다! 캬아아악!”
그때, 햄찌가 지크를 향해 털을 곤두세우며 으르렁거렸다.
그 말대로, 부드러운 털이 나 있던 햄찌의 등은 용암이 튄 자국으로 인해 흉하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크가 그런 햄찌를 보고 웃었다.
“땜빵 보소? 큭큭큭!”
“캬아아악! 주인 놈아! 지금 웃는 거냐! 캬아아아악!”
“하필 등이네.”
“뀨우?”
“머리나 이마에 튀었으면 대머리 햄스터가….”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결국, 햄찌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지크에게 덤벼들어 마구 할퀴기를 시전했고.
“야! 좀 놀린 거 가지고… 악! 따가워! 이 자식이 진짜!”
“죽어라! 주인 놈아! 캬아아아악!”
지크와 햄찌는 한동안 서로 뒤엉켜 서로를 할퀴고 꼬집는 등 한바탕 야단법석을 떤 뒤에야 서로 떨어졌다.
“이 씨….”
“캬아아악!”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면서 말이다.
“아야야, 따가워라.”
지크는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 햄찌가 할퀸 곳에다 바르며 발걸음을 옮겼다.
“짜식이 치사하게 할퀴고 난리야.”
“그러는 주인 놈은 꼬집지 않았냐!”
“넌 내 머리카락도 잡아당겼잖아!”
“주인 놈은 햄찌 귀랑 수염도 잡아당겼다! 캬악!”
티격태격.
지크는 햄찌와 딱히 별 의미 없이 싸우며 발걸음을 옮겼다.
***
그 후로도 지크는 수없이 많은 화속성 중립 생명체들과 마주쳤고, 또 전투를 치렀다.
결과는 역시나 같았다.
지크는 자신을 소 닭 보듯 하는 화속성 중립 몬스터들에게 먼저 싸움을 걸었고, 역시나 미적지근한 승리를 거뒀다.
그때마다 지크의 가슴속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불안의 불씨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도, 도대체 얘들 왜 이래? 그냥 죽고 싶었던 건가? 원래 엄청 사납고 먼저 공격해 와야 정상 아냐?”
“그, 그렇다! 뀨우! 햄찌도 이상하게 생각한다!”
“왜 이렇게 의욕이 없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땅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아, 모르겠다. 일단 가자.”
지크와 햄찌는 그렇게 찜찜한 전투를 이어가던 도중 펄펄 끓는 물이 고여 있는 온천 지대를 통과하게 되었다.
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
온천 지대에 고여 있는 물들은 달궈질 대로 달궈져서, 끊임없이 기포를 뿜어내며 주변을 온통 수증기로 뒤덮고 있었다.
덕분에 온천 지대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가 힘들었으며, 뜨거운 수증기로 인해 습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더더욱 힘들었던 건 다름 아닌 열기였다.
화끈화끈!
지크는 온천 지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의 열기에 피부가 타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계란도 순식간에 익겠는데? 아니지. 가만히 오래 있으면 살도 익어 버리겠어.”
고레벨 게이머인 데다가 일정 수준 이상의 화속성 저항력을 갖춘 지크조차도 피부가 익을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평범한 사람은 이미 전신에 화상을 입고 쓰러져 산 채로 익혀졌을 게 뻔했다.
지옥 그 자체.
쿤룬산의 온천 지대는 유황과 뜨거운 수증기로 가득한 지옥이었다.
‘여기서 온천을 즐기신다고?!’
지크는 평소 사부가 이곳에서 온천을 즐기곤 한다는 걸 떠올랐다.
부글부글!!!
발만 살짝 담가도 잘 익은 족발이 만들어질 것 같은 저 끓는 물에서 온천욕이라니….
과연 사부는 신적인 존재인가 싶었다.
“뜨거우니까 빨리 가자.”
“알겠다! 뀨우! 얼마 안 남았다!”
지크는 햄찌와 함께 빠르게 온천 지대를 통과했다.
그러자 약 1,500미터 정도의 언덕이 하나 나왔고, 그 언덕의 끄트머리에서는 시뻘건 화염이 끊임없이 뿜어지고 있었다.
“저기가… 태고의 분화구네.”
“그런 모양이다! 뀨우! 엄청난 열기가 느껴진다!”
“빠르게 올라가 보자.”
“뀨우!”
지크는 땀을 뻘뻘 흘리며 쿤룬산의 꼭대기라는 를 향해 나아갔다.
를 이루는 언덕에는 딱히 위험 요소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그러나 결코 쉽지는 않았다.
살을 익혀버릴 듯한 열기뿐 아니라 로부터 뿜어지는 화산재가 자꾸만 흩날리는 통에 눈을 뜨기조차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다름 아닌 이었다.
[알림 : 산소가 부족합니다!] [알림 : 산소가 부족합니다!] [알림 : 산소가 부족합니다!]지크와 햄찌는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는 와중에 산소 부족으로 인해 두통과 어지러움증을 견뎌야만 했다.
“헉… 허억… 허억, 허억!”
“헥! 헥헥!”
그러기를 약 30분여….
화륵! 화르르륵!
지크와 햄찌는 화염이 뿜어지는 앞에 섰다.
“크윽!”
지크는 로부터 뿜어지는 열기를 견디기 힘들었다.
엄청난 열기.
지크는 지금 선 자리에서 단 한 발자국만 더 앞으로 나아가도 몸이 시커멓게 타버릴 것만 같은 느낌에 몸서리치며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을 꺼냈다.
그리고는 을 망설임 없이 속으로 내던졌다.
반드시 없애야 할 물건이었기에 눈곱만큼의 주저함도 없이 내던진 것이다.
‘이런 열기를 지가 무슨 수로 견뎌?’
지크는 이 영혼마저도 불태워버릴 것만 같은 의 열기를 절대로 이겨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안심했다.
“퀘스트가….”
지크는 퀘스트의 클리어를 알리는 알림창을 기다렸다.
그러던 중.
화르르르르르르!!!
에서 갑자기 초록색 불길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으, 으응?”
지크는 시뻘건 불길이 초록색으로 바뀌자 당황했다.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스으으!!!
뒤이어 로부터 초록색 안개가 뿜어져 나와 일대를 모조리 뒤덮기 시작했다.
***
“……!”
“……!”
지크와 햄찌는 그 초록색 안개를 바라보며 일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알림 : 경고, 경고!] [알림 : 에 걸렸습니다!] [알림 : 당신의 캐릭터가 으로 인하여 마비되었습니다!] [알림 : 생명력이 빠르게 하락합니다!] [알림 : 캐릭터가 정신을 잃기까지 앞으로 10초!] [알림 : 9초! 8초! 7초!]지크는 눈앞이 점점 회색으로 물들어가는 걸 보고 경악했다.
“크, 크윽! 햄찌… 햄찌야….”
“뀨우우… 주인 놈아… 햄찌…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너라도 살아야….”
“뀨우우우….”
지크는 햄찌라도 구하기 위해 가진 마나를 최대치로 끌어올려 보았지만, 그건 소용없는 일이었다.
에 이 녹아들기라도 했는지, 초록색 연기에 든 독성이 엄청나 제아무리 지크로서도 저항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해, 햄찌… 너라도… 살려야 하는데… 너라도….”
“주인 놈아….”
바로 그때였다.
“꼴갑을 떨고 있구나, 제자야.”
지크는 정신을 잃어가던 와중에 굉장히 친숙하면서도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들었다.
“사, 사부님?”
“본좌가 살다 살다 스스로 중독되는 놈을 보게 될 줄이야. 그게 또 본좌의 제자라니 정말이지 어이가 없는 노릇이다.”
지크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보니 사부가 무슨 일이 있느냐는 듯 초록색 안개 속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쯧쯧. 도대체가 언제 만독불침의 경지에 오를 테냐?”
만독불침이란 이 세상의 그 어떤 물질에도 중독이 되지 않는 상태로, 위대한 그랜드 마스터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체질.
아직 마스터의 경지에도 오르지 못한 지크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체질이었다.
“사부님… 저는 괜찮으니… 제발 햄찌라도….”
“일어나도록 해라.”
사부가 그런 지크를 향해 한 손을 뻗었다.
스으으!
그러자 사부의 손바닥으로부터 상서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와 지크와 햄찌를 감쌌다.
띠링!
그와 동시에 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에너지가 당신의 육체를 정화시킵니다!] [알림 : 이 해제되었습니다!] [알림 : 버프가 걸렸습니다!] [알림 : 600초 동안 그 어떤 종류의 물질에도 이 걸리지 않습니다!]놀랍게도 사부는 손짓 한 번만으로도 지크와 햄찌에게 그랜드 마스터의 체질이라는 버프를 걸어주는 기적을 선보였다.
물론 그 이상의 기적을 선보인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사부가 지크에게 물었다.
“네 녀석들이 본좌의 목욕탕에는 어째서 온 것이냐?”
“예?”
지크는 사부의 물음에 당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