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528
527
“뭐야!”
지크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또 뭔데? 난 왜 비행선만 타면 일이 터지냐고!”
지크는 비행선만 탔다 하면 추락한다거나 사건에 휘말린다거나 하는 징크스가 있었기에, 이번에도 뭔가 갑작스러운 일이 터졌다고 생각했다.
“함장님! 어떻게 된 겁니까! 보고해 주세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시스템상 동체의 손상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럼 대체….”
바로 그때였다.
“히, 히이이이이이익?!”
지크는 문득 눈을 돌렸다가 의 출입구 역할을 하는 문 바로 옆 창문에서 웬 고글을 낀 사람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놀란 정도가 아니었다.
쿵!
깜짝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었을 정도였다.
“저, 저거 뭐야! 와이퍼라도 켜! 와이퍼라도!”
당연한 말이겠지만, 비행선의 창문에 와이퍼 따위가 달려 있을 리 없었다.
쿵쿵쿵!
그때, 고글에 파일럿이 착용하는 군밤 장수 모자까지 착용한 남자가 창문을 두드리며 무어라 소리쳤다.
물론 그 고글을 낀 남자의 목소리가 전달될 리는 없었으므로, 지크는 입 모양을 통해 그 뜻을 알아맞혀야만 했다.
“지크… 프… 리트 전하… 자, 잠? 잠시? 문 좀… 열어… 아? 문 열어달라고?”
지크는 용케도 창문밖 남자의 입 모양을 통해 그 뜻을 알아듣고는 문을 열어주었다.
“헉, 허억!”
그러자 고글을 낀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와 가쁜 숨을 토해냈다.
“지,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가 맞으십니까? 헉헉….”
“그, 그런데요? 도대체 누구시죠?”
“저는 마우레키온 제국 제9항공타격대 소속 파일럿 코르크라고 하옵니다.”
“그런데요? 도대체 어떻게 비행선에 딱 붙으신 거죠?”
“사실 히포그리프를 타고 전하께서 도착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너무 빨라서 하강 비행을 시작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코르크가 창 밖 너머로 비행 중인 한 마리의 히포그리프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를 기다리신 이유는 뭐죠? 꼭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나요? 하하하….”
“저는 황제 폐하의 칙서를 지크프리트 전하께 전달하기 위해 온 것이옵니다.”
“그래요? 그럼 그냥 착륙할 때까지 기다리시면 될걸 굳이 비행선에 매달리실 필요까지는….”
“아닙니다.”
코르크가 고개를 저었다.
“존엄하신 황제 폐하의 칙서는 받는 즉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숨을 걸고 전달해야 하는 것이옵니다.”
“그, 그 정도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럼 그 칙서, 어서 전달해 주시죠.”
“아, 예.”
코르크가 품속에서 마우레키온 제국의 인장이 찍힌 편지를 꺼내고는 지크를 향해 말했다.
“예를 갖춰 주시지요.”
“그러죠.”
지크는 칙서를 든 코르크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슈트카르트 황제의 칙서를 받들었다.
“친애하는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에게.”
그러자 코르크의 입에서 슈트카르트 황제의 칙서 내용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친애하는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에게.
조금 전 란돌 공작에게 그대의 활약을 전해 들었노라.
그대는 언제나 짐을 놀라게 하는군.
이번에는 짐이 아끼는 애장품인 악귀의 초상화를 괴도 팬텀으로부터 무사히 지켜냈다지?
비록 괴도 팬텀을 놓친 게 아쉽긴 하겠으나, 너무 심려치 말라. 그만하면 대단한 공을 세운 것이니.
이에 짐은 그대의 공로와 노고를 높이 치하하는 바이다.
또한, 지난번 세계평화회의에서 그대가 짐을 구해준 것을 잊지 않고 있노라.
그런고로, 짐은 그대에게 합당한 포상을 하사하고자 한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그대에게 프로아 왕국 주변의 영토와 함께 크로나사 평야, 그리고 대륙의 젖줄 피아로 강 상류 일대를 하사하는 바이다.
무엇으로 그대의 공로를 치하할까 고민하던 차에, 군주에게 가장 큰 선물은 다름 아닌 영토란 생각이 스쳤기에 내리는 것이니 부디 기쁘게 받아 주었으면 하는 바이다.
이제 그대의 영토도 상당히 넓어졌으니, 짐은 그대가 일국의 군주로서 국가와 신민을 위해 힘쓰는 성군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노라.
조만간 그대를 만나기를 바라며 이만 칙서를 마치도록 하겠노라.
그럼, 그대의 여정에 언제나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며.
– 마우레키온 제국 제16대 황제 슈트카르트 폰 포스테리오레 (인)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제 폐하.”
지크는 코르크가 칙서를 다 읽자 고개를 숙여 황제에게 예를 표했다.
그러고는 코르크를 향해 물었다.
“끝입니까?”
“예, 끝났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코르크는 황제의 칙서를 전달하자마자 의 문을 열고 다시 뛰어내렸고, 근처를 비행하던 히포그리프가 그를 태우더니 저 멀리멀리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지크는….
“입! 이입! 이놈의 주둥이가 문제야! 주둥이가! 크윽!”
코르크가 떠나자마자 괴로워했다.
***
“뀨우?”
햄찌는 지크가 괴로워하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뀨! 주인 놈아! 왜 그러냐! 포상 받아서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건 함장 역시 같은 반응이었다.
“전하. 감축드리옵니다. 본국의 두 배에 달하는 영토를 하사받으셨사옵니다. 헌데, 어찌 괴로워하시옵니까?”
프로아 왕국의 주변 영토야 주로 숲 지형이라 개간을 해야 하기에 그리 큰 메리트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는 달랐다.
는 대륙 서북부 최대의 곡창 지대로써, 매년 엄청난 양의 곡식이 나오는 알짜배기 땅이었다.
또 은 뉘르부르크 대륙을 가로로 관통하는 거대한 젖줄로, 농업과 물류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길이었다.
만약 지크가 와 의 상류를 장악하려거든 국가의 운명을 걸고 전쟁을 벌여야 할 만큼 얻기가 엄청나게 어려운 포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크가 짜증이 치밀어 오를 대로 오른다는 듯 오만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이게 포상입니까? 엿 먹으라는 거지?”
“예?”
“아오! 이놈의 주둥이가 문제라니까! 주둥이가! 말이 씨가 된다더니! 아오!”
지크는 조금 전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후회했다.
[아오! 내가 더러워서 영토 확장을 하던지 해야지!]괜히 홧김에 내뱉었던 마음에도 없는 말.
그 말이 불과 5분도 채 되지 않아 씨가, 아니 씨앗을 틔워 돌아올 줄이야?
업무량이 늘어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지크에게 있어 영토 확장은 축하 받을 일이 결코 아닌, 오히려 위로를 받을 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으… 으으으!”
지크는 앞으로 늘어날 서류의 양을 떠올리며 지레 겁먹고 괴로워했다.
인구가 늘어나고, 영토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괴로워지는 게 군주의 인생!
‘설마 진짜로 나 엿 먹으라고 준 건 아니겠지?’
오죽 했으면 지크는 황제의 진심을 의심하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차라리 돈으로 주지… 그냥 돈으로… 현금이 짱인데….”
“저,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으으으으으!”
지크는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었다.
***
지크는 그렇게 한 차례 고통의 폭풍을 겪은 후 아프로디테 상단이 자리한 에 착륙했다.
그러고는 곧장 아프로디테 상단으로 가 상단의 주인인 아이리스와의 만남을 요청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프로아 왕국의 국왕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라고 합니다. 상단의 주인이신 아이리스 님을 만나 뵙고 싶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약 30분 정도 기다렸을까?
“현재 아이리스 님께서는 저택에 머물고 계십니다.”
“그래요? 만나 뵐 수는 있나요?”
“예, 물론입니다. 아이리스 님께서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와의 만남을 수락하셨습니다. 마차로 모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로부터 20분 후.
지크는 외곽에 자리한 자그마한 저택 앞에 도착했다.
아이리스의 저택은 나름 거상(巨商)의 것치고 꽤나 소박한 규모였다.
똑똑!
지크가 조심스레 문을 두들기고.
“잠시만 기다려 주셔요.”
안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윽고 문이 열렸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를 뵙습니다. 저는 아프로디테 상단의 주인 아이리스라고 합니다.”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아이리스가 지크에게 살짝 예를 올렸다.
“아,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입니다.”
지크는 그렇게 말하며 아이리스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아이리스는 지크가 여태 만나본 수없이 많은 미녀들과는 색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살짝 보라색이 섞인 머리칼.
시리도록 푸른 진한 남색의 눈동자.
그리고 살짝 우윳빛을 내는 피부까지.
주변에 미녀라면 차고 넘치는 지크의 눈에도 아이리스는 상당한 매력의 소유자였다.
물론 지크는 그런 것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으므로, 인사를 하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으로 그녀를 비추어 보았다.
[아이리스]아프로디테 상단의 주인.
예술품 유통에 관해서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으며, 장사 수완이 좋아 세계 각국의 귀족들과 왕가와 거래하고 있다.
비록 명성이 높진 않지만, 화가로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존재 구분 : NPC
•레벨 : 15
•클래스 : 유능한 상인
•특이 사항 : 대외적으로 사교계에서는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은둔형 생활을 즐긴다고 한다.
으로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긴.’
지크는 으로부터 아이리스의 정체에 대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딱히 실망하지 않았다.
이 완벽하지 않다는 건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게이머들이라면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었다.
특정 능력을 갖춘 게이머나 NPC들은 으로부터 자신의 정보를 지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게이머들끼리는 레벨이 낮은 게이머가 높은 레벨의 게이머에 대한 정보를 100퍼센트 통찰할 수 없기도 했다.
‘얼마든지 속일 수 있지.’
지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이리스에게 말했다.
“혹시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어요, 전하.”
아이리스는 흔쾌히 지크가 저택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끔 배려해 주었다.
“차라도 한잔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주시면 감사하죠.”
“이쪽으로 모실게요.”
아이리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지크와 햄찌를 1층 거실로 안내했다.
아이리스의 저택 안은 역시나 소박했다.
수수한 도자기에 꽂힌 야생화, 낡은 벽지, 역시나 조금 낡았지만 나름의 멋이 있는 가구들.
결코 거상의 저택이라고 부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차를 내오겠어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예.”
지크는 아이리스가 차를 준비하는 동안 어떻게 하면 그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분명히 오리발을 내밀겠지?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일단 던져 봐야 하나? 어렵네.’
지크로서는 상대가 에메랄드 태블릿의 주인인 아케론일지, 아닐지도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뭔가를 캐내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어떡하지….’
지크가 고민하는 동안 아이리스가 소박한 다기에 간단하게 다과를 준비해왔다.
“취향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저는 아무거나 다 잘 먹고 잘 마십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딱히 영양가가 없었다.
그냥 으레 하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전부였다고나 할까?
“실례지만….”
먼저 본론을 꺼낸 사람은 아이리스였다.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있으실 것 같은데….”
“있죠.”
“여쭈어봐도 될까요?”
“그 전에.”
지크가 아이리스에게 물었다.
“혹시 아이리스 님께서 그린 그림들을 잠시 구경할 수 있을까요?”
“제… 그림을요?”
그러자 아이리스가 살짝 당황해하는 기색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