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535
534
사실 천우진은 태성과 승구만을 부른 게 아니었다.
[어? 저 여자들 뭐야?] [내가 불렀어.] [여, 여자애들을 불렀다고?! 왜???] [시커먼 남자 놈들 셋이서 칙칙하게 뭔 재미냐? 내가 아는 여자애들 부른 거니까 같이 재밌게 놀자.] [싫어, 나 안 갈래.] [아! 왜!] [싫어!] [이 자식이 진짜! 자꾸 찌질하게 굴래?!] [내가 뭐가 찌질해! 불편하다고!] [불편하긴 뭐가 불편해! 닥쳐! 야! 승구야! 잡아!] [놔! 이거 놔! 으윽! 놓으라니까!]그렇게 태성은 천우진과 승구에 의해 강제로 비행기에 탄 뒤로 거의 몇 마디를 하지 않고 있었다.
‘으으. 이럴 거면 집에서 잠이나 자다 게임이나 할걸.’
태성은 낯선 여자들과 함께 여행을, 그것도 해외여행을 간다는 게 너무나도 불편해서 죽을 맛이었다.
사실 지난 몇 년간 집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다 보니, 이성뿐 아니라 상대가 누가 됐든 살짝 대인기피증 비슷한 증상이 생겨버렸던 것이다.
“야. 그냥 편하게 있어, 편하게.”
“…….”
“쟤네가 너 뭐 잡아먹기라도 하냐? 다 착하고 좋은 애들이야.”
“아니, 그래도 모르는 사람들이랑 어떻게 같이 놀아.”
“너 그렇게 낯가리면 평생 히키코모리처럼 집에 틀어박혀서 늙는다?”
“헉?”
“그러다 여자 친구 한번 못 사귀고 평생 모솔로 늙어서 실버타운 가고 싶냐?”
“아, 안 돼!”
태성은 천우진의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나중에 다 늙어 실버타운에 들어간 뒤에도 외톨이인 한태성 할아버지를 떠올리니 그만 소름이 끼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가 뭐 그렇고 그런 거 하자는 게 아니잖아. 그냥 마음 편하게 같이 놀고 그러자.”
“그, 그럴까?”
“당연하지. 어려워할 거 없어. 여자애들이랑 단체로 소개팅 나온 것도 아니잖아. 그냥 같이 밥 먹고 물놀이 하고 그러면 돼.”
“으음!”
“짜식이 돈도 많고 능력도 좋은 놈이 왜 그렇게 자신감이 없냐? 그냥 즐겨.”
“알겠다.”
태성은 천우진의 조언을 듣고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그리고 그래야 했다.
‘그래. 계속 지금처럼 살 순 없잖아. 영원히 게임만 하면서 살 수도 없고.’
게이머 한태성의 삶은 가상 현실 세계에 너무 치우쳐서 있어서, 현실의 삶은 피폐하고 단조로웠다.
지금이야 돈도 많이 벌고, 게임도 재미있으니 상관없지만 나중에는?
이대로 살다간 태성은 게임 외엔 아무것도 못 하는 반쪽짜리 인간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노력해볼게.”
“그래, 그거야.”
천우진이 태성의 대답을 듣고는 만족스럽단 표정을 지었다.
***
그 이후 태성은 천우진, 승구, 그리고 함께 온 여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행지는 인도네시아 발리 섬 근처의 어느 무인도였는데, 천우진 개인 소유의 리조트였다.
태성은 함께 온 사람들과 함께 각종 해양 스포츠를 즐기고, 맛있는 고기도 구워 먹고, 함께 사진도 찍고, SNS 팔로우도 하는 등 모처럼 만에 평범한 사람(?)다운 시간을 보냈다.
그로부터 3일 후.
태성은 잠시 동안의 휴가를 뒤로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BNW 클라이언트를 실행시켰다.
‘재밌네. 가끔 시간 내서 놀러 가고 해야겠다. 차근차근 현실에서도 저변을 넓혀야지.’
태성은 지난 여행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물론 함께 간 여성들 중 누군가와 썸 같은 건 전혀 없었다.
다들 순수한 마음으로 휴가를 즐기러 간 것이었기에, 정말 즐겁게 놀다 오기만 했기 때문이다.
[알림 : 로딩, 완료!] [알림 : 뉘르부르크 대륙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접속이 완료되자 게이머 한태성의 눈앞에 낡고 허름한 여관의 객실이 펼쳐졌다.
“뀨! 주인 놈아! 왔냐!”
지크가 강림하자 햄찌가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다.
“잘 쉬다 온 거냐! 뀨우!”
“응. 모처럼 잘 쉬었어.”
“뀨우! 그럼 가자! 주인 놈 장비 완성됐다고 한다!”
“그래? 빨리 가보자.”
지크는 곧장 햄찌와 함께 로그인 지점으로 설정해 두었던 여관을 나서 비머리언 공방으로 가 크반트를 만났다.
“오! 왔소!”
“장비가 완성됐다면서요?”
“그렇소이다!”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오.”
크반트는 그렇게 말하고는 지크의 장비들을 주르륵 늘어놓았다.
“오오!”
지크는 로 도색된 자신의 장비들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로 도색한 장비들은 너무나도 멋있었다.
기존에 색의 부조화를 이루던 장비들이 무광택의 검은색 염료로 도색되자 꽤나 위협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장비의 장갑은 을 박아 넣어 일종의 클로(Claw)처럼 튜닝이 되어 있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에도 을 박아 넣어, 발차기를 할 때 적을 찌를 수도 있게 되어 있었다.
“어떻소? 마음에 드시오?”
“물론이죠.”
“얼른 입어보시오.”
“그럴까요?”
지크는 서둘러 로 도색한 자신의 장비들을 착용해 보았다.
‘오? 개멋있네?’
지크는 거울을 통해 장비를 다 착용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매우 만족해했다.
전체적으로 검은색 갑옷을 입고 있으니 뭔가 위협적이고 카리스마 있게 보였던 것이다.
“이것도 차보시오.”
크반트가 지크에게 역시 검은색으로 도색된 를 채워주었다.
“어? 이게 뭐예요?”
지크가 의 가운데에 박힌 초록색 보석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그나이트 에메랄드요.”
“……?”
“이그나이트 결정의 끝판왕이오. 에너지를 방출하거나 그대의 그 방사능 에너지를 뿜는 기술을 사용할 때 이용해 보시오.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위력이 나올 테니.”
“오오!”
“그대의 무기 역시 도색해 보았소이다.”
크반트가 를 지크에게 쥐어주었다.
는 더 이상 똥파리라고 부를 수 없었다.
기존의 무지갯빛 색깔에서 검은색으로 도색되어 더 이상 장난감 같은 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시오?”
“최고네요.”
지크의 입가에 미소가 활짝 피어올랐다.
“멋집니다.”
“물론 겉만 바뀐 건 아니오. 다크 임페리얼 잉크는 방어구의 능력치를 약 10퍼센트 정도 업그레이드시켜 주고, 내구도 역시 크게 올려준다오. 또한, 자체적으로 내구도를 회복하는 능력까지 있소이다.”
“오오오!”
“그러니 그대는 더 멋있어지고, 더 강해진 것이라오.”
“정말 감사합니다.”
“껄껄! 별말씀을!”
“항상 신세 많이 지네요.”
“신세랄 게 있겠소? 그대와 본 공방은 영혼의 파트너가 아니오?”
“그건 그렇죠!”
“그러니 부담 갖지 마시오. 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걸 아직 주지 않았구려.”
“가장 중요한 거?”
“내 그대를 위해 새롭게 만들어낸 아티펙트가 있소. 자, 보시오.”
크반트가 아공간 인벤토리를 열어 이번에 새로 만들었다는 아티펙트를 지크에게 보여주었다.
***
“와우….”
지크는 크반트가 새로 만들었다는 아티펙트를 보고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새로 만들었다는 아티펙트는 와 와 로부터 얻은 재료들을 이용해 만든 거였다.
[블랙 크로우 윙 수트]공격, 방어, 기동성, 그리고 멋까지 4마리 토끼를 다 잡은 망토.
망토지만 그 공격력만큼은 엄청나다.
•타입 : 방어구 (망토)
•내구도 : 1,000/1,000
•등급 : 레전더리
•효과 :
– 모든 능력치 +7%
– 카리스마 +500
“보시오.”
크반트가 지크에게 의 안쪽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대가 사용하던 표창들을 이 안쪽에 장착시켜 놓았소. 이제 굳이 던질 필요 없이 망토를 휘두르면 자동으로 만천화우 스킬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오.”
“오오!”
“게다가 부착형 추진 장치 세트도 붙여서 비행도 가능하고, 칼날매의 깃털을 이용해 단칼 스킬로 적을 벨 수도 있지. 천잠사의 원단에 블랙 임페리얼 잉크로 염색을 했으니 더 유연하고 강도 역시 뛰어나졌다오. 방어력 또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증가했소.”
“미친….”
“그리고 여기 이 후드는 칼날매의 부리와 눈을 이용해 만든 것인데, 비행할 때 그대의 시야를 넓혀줄 것이오. 비행하지 않을 때 착용하면 은신해 있는 적을 발견할 수도 있소.”
“와우….”
는 그야말로 공방일체의 종합 선물 세트였다.
게다가 마치 까마귀를 형상화한 듯 시커멓고 날카로운 외형은 속된 말로 간지가 철철 흘러넘쳤다.
“입어 봐도… 될까요?”
“물론이오. 자, 내가 걸쳐주겠소.”
지크는 크반트의 도움을 받아 를 착용하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이게 나라고? 와우!”
지크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놀랐다.
거울에 비친 지크의 모습은 그야말로 카리스마가 넘쳐흘러서, 고귀한 귀족 같으면서도 엄청나게 강해 보였다.
검은색으로 도색한 방어구에 까지 더해졌기에 나온 결과였다.
“뀨! 주인 놈아! 진짜 멋있다! 뀨우우우!”
“오! 정말 멋있구려! 마치 블랙 크로우 가문 최고의 기사가 돌아온 것 같소이다!”
햄찌와 크반트가 그런 지크의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칭찬을 해주었다.
긁적긁적-.
지크는 괜히 머쓱해서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멋쩍어했다.
“그런가? 하하… 내가 봐도 좀 멋지긴 한데… 헤헤헤….”
“뀨! 주인 놈아! 진짜 옷이 날개다! 규우!”
“후후… 패완얼이란 말도 모르냐? 패션의 완성은 얼굴….”
“그거 아니다! 뀨우! 그냥 옷이 날개인 거다! 뀨우우우!”
“쳇.”
지크는 햄찌가 끝까지 외모에 대한 칭찬은 해주지 않자 입을 삐죽 내밀었다.
“으음! 정말 멋이 있긴 하구려! 어떻소? 마음에 드시오?”
“언제나 그랬지만, 최고입니다.”
“그대가 마음에 들어 하니 다행이구려!”
“마음에 들다마다요. 늘 고마워요, 크반트 님.”
“껄껄! 별말씀을!”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요즘 좀 바쁘거든요.”
“암! 가 봐야지! 어서 가 보시오!”
“고맙습니다. 또 봬요.”
지크는 크반트에게 연거푸 고마움을 표시하고는 비머리언 공방을 나섰다.
“뀨우! 주인 놈아! 이제 뭐 할 거냐!”
“일단 프로아 왕국으로 복귀해야겠지?”
“그러자! 뀨우!”
다른 소울의 위치가 확인될 때까지는 딱히 할 일이 없었으므로, 지크는 햄찌와 함께 프로아 왕국으로 향했다.
***
지크는 프로아 왕국으로 복귀하자마자 미켈레에게 호출을 당했다.
“전하.”
“으, 으응?”
지크는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는 미켈레의 눈빛에 오금이 지려서 무척이나 당황했다.
‘얘가 왜 이러지? 나 또 뭐 사고 친 거 있나?’
지크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뭐지. 내가 뭐 했지. 나 최근에 사고 친 거 없는데.’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최근에 물의를 빚은 일이 없었다.
가장 최근에 물의를 빚은 일이라고는 랭커 데카르트와 시비가 붙어 와의 관계가 껄끄러워진 게 전부였다.
‘뭐지….’
그때, 미켈레가 지크에게 물었다.
“전하.”
“어?”
“혹시 최근에….”
“……?”
“무슨 큰 사고 치셨습니까?”
“으응? 큰 사고?”
“솔직히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런 미켈레의 말투는 매우 엄격하고, 근엄하고, 또 진지해서 지크는 마치 호랑이 선생님 앞에서 추궁을 당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솔직히 말씀해 주신다면, 최대한 좋게 넘어가 보겠습니다.”
“뭐, 뭘 솔직하게 말해? 나 잘못한 거 없어!”
“아닐 텐데요.”
“진짜라니까! 나 최근에 조용히 할 일만 했다고!”
지크가 억울해서 소리쳤다.
“그럼 이건 도대체 뭡니까?”
그러자 미켈레가 한 뭉치의 서류를 지크의 앞에 불쑥 내밀더니 물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