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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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가 눈을 뜬 건 그로부터 14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헉?”
지크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14시간이나 잤다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살짝 졸았던 것 같은데, 이렇게나 시간이 지나 있을 줄이야….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지크는 잠들기 직전에 뭔가 중요한 걸 시작하려던 걸 기억하고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아….”
그러고는 사태를 파악하고 탄식했다.
새근새근-.
몸을 일으켜 보니 브륜힐트가 곁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지크는 알고 보니 를 시작하려다 그만 잠들어 버렸고, 브륜힐트의 품에 안겨 무려 14시간 동안이나 잤다는 걸 깨닫고 무척이나 당황했다.
“어… 으음….”
그렇다고 지금이라도 거사(?)를 치르기엔 브륜힐트가 곤히 잠들어 있어서, 지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지크는 브륜힐트를 자게 내버려 둔 뒤 회의실로 향했다.
“총사령관님께서 입장하십니다!”
때가 이미 점심을 넘어 한참 늦은 시각인지라, 연합군 수뇌부들은 이미 회의장에 자리해 지크를 기다리고 있었다.
벅벅!
지크는 떡이 질 대로 진 머리를 벅벅 긁으며 회의실 정중앙에 앉아 수뇌부들을 향해 말을 걸었다.
“어제 다들 편히 쉬셨습니까?”
“물론입니다, 전하.”
키릭스 왕자가 대답했다.
“전하께서는 잘 주무셨는지요?”
“저야 푹 잤죠.”
“한데….”
“예?”
“회의가 늦어져도 좋으니 의관을 정제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키릭스 왕자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지금 지크의 몰골이 꽤나 볼만했기 때문이었다.
머리는 떡이 진 상태로 헝클어진 채 엉망이었고, 피부에는 땟국이 줄줄 흘렀으며, 몸에서는 온통 땀범벅으로 쉰내까지 나고 있었다.
도대체 브륜힐트가 무슨 정신으로 이런 상거지와 함께 쿨쿨 잠을 잘 수 있었을까?
아아, 그것은 사랑의 힘이랄까….
“의관을 정제하시고, 식사도 간단하게 하시고 오셔도….”
“아아, 괜찮아요.”
지크는 키릭스 왕자의 제안에 훠이훠이 손사래 쳤다.
“안 찝찝하거든요.”
“예?”
“이따 씻으면 되니까 제 걱정은 마시고, 회의부터 진행하죠.”
“…….”
“전 괜찮다니까요.”
지크는 그렇게 쿨하게 말했지만, 사실 키릭스 왕자와 연합군 수뇌부들의 생각은 달랐다.
‘크흠.’
‘더, 더럽군.’
‘안 찝찝한가?’
‘윽! 냄새!’
‘씻고 와도 되는데….’
사실 키릭스 왕자가 지크에게 의관을 정제하라고 권유한 이유는, 지크를 위해서가 아니라 회의에 참석한 이들을 위해서였던 것이다.
“아아, 저는 괜찮으니까 회의합시다. 자, 일단 현재 상황부터 짚어보죠.”
하지만 눈치 없는 지크는 그런 연합군 수뇌부들의 속은 까맣게 모른 채 회의를 시작했다.
***
회의가 끝난 후.
지크는 샤워를 한 후 브륜힐트와 함께 늦은 점심을 먹었다.
“어때요?”
브륜힐트가 지크에게 물었다.
“어렵죠.”
지크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병력 차이가 너무 커요. 이번에는 운이 너무 좋았던 거죠.”
“아.”
“솔직한 맘 같아선 적의 수도에 쳐들어가서 아포칼리우스의 파편만 제거하고 싶은데… 그랬다간 뒤가 없어요. 후우.”
지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실패하면 모험가들이 죽어서 이틀 동안 공백이 생길 테고, 그동안에 연합군이 박살이 나겠죠. 누가 뭐래도 연합군의 정예는 모험가들이니까요.”
“그건 도박이겠군요.”
“맞아요. 근데, 그렇다고 전쟁을 계속해 나가자니….”
“아군 병력은 계속해서 줄어들겠죠. 아군이 죽을 때마다 적 언데드 병력은 늘어날 테고요.”
브륜힐트가 지크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는 말했다.
그리고 그게 핵심이었다.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불리한 쪽은 연합군이었고, 소모전이라도 벌어지면 더더욱 연합군이 불리했으며, 만약 대규모 전면전에서 단 한 번이라도 패배했다간….
파멸.
어떤 쪽이던 연합군이 여전히 불리한 상황이었다.
이번에 대승을 거둬 를 점령해 전략적으로 우월한 지역을 점령했다는 것 외에는 딱히 긍정적인 소식이 없었던 것이다.
“어렵네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에요. 한 번 지면 끝이라고 생각하니까….”
“두려운가요? 패배가?”
“아뇨.”
“네에?”
브륜힐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에 당황했다.
이렇듯 힘든 전쟁을 지휘하는 지휘관의 심적인 부담감이 엄청나다는 건 당연한 일.
두렵다고 해도 결코 이상한 게 아니었다.
“짜릿한데요?”
“……?”
“한 번 지면 끝이라고 생각하니까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분비되는 느낌이에요. 흐으!”
“여, 여보….”
“집중도 더 잘되고요.”
브륜힐트는 지휘관으로서의 부담감을 오히려 쾌락(?)으로 느끼는 지크를 바라보며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역시 다르셔.’
브륜힐트는 지크가 변태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남들과 다른, 뭔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다행이네요.”
“그럼요.”
지크 역시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그렇고….”
“네에?”
“있잖아요.”
지크가 스윽- 하고 브륜힐트를 향해 다가갔다.
어제 못다 한 일을 끝마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얼마 후.
우당탕탕탕탕탕탕-!!!
지크와 브륜힐트의 숙소로부터 하늘과 땅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와 의 내성 전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데스포그는 가 점령당했단 소식을 듣자마자 극대노해서, 그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심지어 의 핵심 중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들을 다수 잃었기에, 그 분노는 더더욱 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가… 내가 직접 나서겠다! 내가!”
데스포그는 당장에라도 어전을 뛰쳐나가 전쟁터로 달려 나갈 기세였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고정하시지요!”
“지엄하신 존재시여! 부디 고정하시옵소서!”
“아니 되옵니다!”
언데드 대소신료들은 그런 데스포그를 뜯어 말리느라 진땀을 빼야만 했다.
“전하!”
리치는 바짝 엎드려 고개를 조아리면서, 데스포그의 출정을 간곡하게 막았다.
“부디! 제발 고정하시지요!”
“뭐라? 고정? 내 고정하게 생겼는가? 이 내가 이계에서 이따위 굴욕을 당할 줄이야!”
“전하! 옥체를 보중하셔야 하옵니다! 적들은 파편 두 개를 이미 차치했을 정도로 강자들이옵니다! 비록 하찮은 존재들이지만, 때론 쥐가 고양이를 문다는 격언도 있지를 않사옵니까?”
“뭣이? 그렇다면 내가 저따위 하등한 이계의 종족들보다 못하다는 소리인가?”
“그, 그게 아니오라….”
리치는 데스포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만에 하나라는 말도 있지 않사옵니까? 여기서 전하께서 변을 당하시면, 무려 세 개의 소울이 적들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이옵니다.”
“크흠!”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고 하였사옵니다. 전하께서는 좀 더 진중하시고, 신중하시옵소서.”
“이런 빌어먹을….”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분노를 다스릴 줄 아셔야 하옵니다.”
“이 분노를 어찌한단 말인가? 어찌?”
“일단 고정하시고, 천천히 전쟁을 수행해 나가시지요.”
“크흠!”
“그리고 적들의 총사령관을 알아냈사옵니다.”
“누군가, 그 총사령관이란 놈이.”
“저번에 말씀드렸던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라는 모험가이옵니다.”
“그 뺀질뺀질한 놈이 총사령관까지 겸했단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 같으니….”
“전하.”
리치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에게 현상금을 내거시옵소서.”
“현상금?”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는 현재 연합군의 총사령관이자 아군 모험가들에게는 재앙과 같은 존재이옵니다.”
“그래서? 현상금을 내걸어서 그 뺀질뺀질한 놈을 제거하잔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리치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모험가의 적은 모험가란 말도 있지 않사옵니까? 모험가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같은 모험가도 가차 없이 사냥하는 존재들이옵니다.”
“으음!”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에게 현상금을 내거시고, 모험가들을 더 영입하시어 대응력을 기르소서. 어차피 전쟁이 장기전으로 갈수록 승리는 전하의 것이 될 테니 말이옵니다.”
“좋다.”
데스포그는 그런 리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라는 놈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어라. 모험가 놈들이 환장할 만한 금액으로 말이다.”
“알겠사옵니다, 전하.”
리치가 고개를 조아리며 데스포그의 명령을 받들었다.
***
그로부터 일주일 후.
전쟁은 연합군의 연전연승으로 전개되었다.
지크는 게이머들에게 반복 퀘스트를 줘서 적들의 후방을 뒤흔드는 한편, 대규모 전면전은 철저히 피하며 야금야금 이득을 챙겼다.
덕분에 연합군은 을 상대로 단 한 번의 전투에서도 패배하지 않은 채 진군해 나갔고, 병력 손실 또한 거의 없었다.
그래서일까?
띠링!
지크는 새로운 칭호를 획득하게 되었다.
[전설의 총사령관]역사서에 전설로 기록될 만큼 유능한 지휘관에게만 주어지는 칭호.
•타입 : 칭호
•등급 : 전설
•효과 :
– 지휘하는 전 병력의 공격력 +3%
– 지휘하는 전 병력의 방어력 +3%
지크는 이란 영광스러운 칭호를 거머쥐었고, 또 그렇게 불렸다.
“오늘 전투도 이기겠지?”
“쉽다, 쉬워.”
“병력이 많으면 뭐 해? 우리가 안 싸워주면 그만이지.”
“총사령관님께서 우릴 이끌어 주시는 한 패배할 일은 없다고 봐야겠지.”
연합군 병사들은 전쟁터에 나갈 때마다 승리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만큼 지크가 구사하는 전략과 전술이 뛰어나서, 도저히 질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형님! 큰일 났습니다!”
“으응?”
지크는 전투에 나서기 직전 승구의 다급한 보고를 받았다.
“무슨 일인데?”
“형님 현상수배범 되셨습니다.”
“내가?”
지크가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물었다.
“나 잘못한 거 딱히 없는데? 죄목이 뭔데? 살인? 성추행? 절도?”
“그, 그게 아니라….”
“……?”
“불사 왕국에서 형님께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아?”
“형님 한 번 죽이는 데 10만 골드랍니다. 생포해서 데려오면 50만 골드로 다섯 배 뛴답니다. 그러니까 형님….”
그 순간.
“혀, 형님! 뭐 하십니까!”
승구는 지크가 스스로를 밧줄로 묶는 걸 보고 당황했다.
“생포하면 50만 골드라며.”
지크가 뭘 묻냐는 듯 대꾸했다.
그런 지크의 눈에는 어느새 달러 마크가 떠올라 있었다.
“예?”
“내가 내 스스로 생포하고 자살하면 60만 골드인 거 아냐?”
“…….”
“이거 개꿀인데?”
“혀, 형님….”
“설마 수배된 본인은 현상금을 못 탄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쳇.”
지크가 입을 삐죽였다.
“아쉽네.”
“…….”
“꽁돈 먹을 수 있었는데.”
“하하하….”
“알겠어. 당분간 몸조심하라는 거잖아.”
“예, 형님.”
“알았으니까 먼저 가 있어. 나 화장실 좀 갔다가 바로 갈게.”
지크는 승구에게 그렇게 말한 후 화장실로 향했다.
게이머는 NPC들처럼 대소변을 자주 볼 필요는 없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해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간 쓸데없이 디테일한 게임이란 말야. 뭔 게이머가 오줌까지 눠야 돼.’
지크가 남성용 소변기 앞에 자리를 잡고 지퍼를 내리던 때였다.
쨍그랑!
총알 한 발이 화장실 창문을 깨고 날아와 지크의 뒤통수에 박혔다.
암살.
에서 내건 현상금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