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55
054
“아!”
지크가 탄성을 내질렀다.
“그때 주웠던 게 이거였다고? 와….”
헤르베르트의 유작에 대한 단서인 는 지크가 꽤 오래도록 가지고 있었던 아이템이었다.
지크가 를 얻은 건 과거 나름 잘나가던 시절로, 몰락이 시작되기 직전의 일이었다.
당시 200레벨이었던 지크는 어느 영지의 의뢰를 받고 길드원들과 함께 산적 소굴 소탕 임무를 맡았는데, 는 그곳에서 얻은 아이템이었다.
[뭐야, 이 조잡한 지도는? 이거 가질 사람? 아무도 없어? 에라이.]문제는 가 워낙에 조잡하고, 또 낡은 지도인지라 가지겠다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
게다가 그 보물이란 게 정확히 무엇인지, 나머지 반쪽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딱히 가질 만한 메리트가 없기도 했다.
[내가 가지고 있지, 뭐.]그래서 지크는 그 를 아무런 생각 없이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1년하고도 6개월.
그사이에 지크의 길드는 망했고, 지크는 몰락했으며, 사부를 만나 새 삶을 얻고, 이곳 돈데기리에서 웨펀 마이스터 샤키로와의 인연을 쌓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는 지크의 인벤토리를 지키고 있었다.
딱히 버리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이걸 가지고 뭘 하기도 뭐한 아이템이었기에 그만 잊히고 만 것이다.
“이걸 행운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기막힌 우연이라고 해야 하나. 세상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
뒤늦게 의 존재를 인식한 지크가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기막힌 우연이었다.
어쩌다 얻은,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던 아이템이 샤키로와의 인연을 통해 제 역할을 찾게 될 줄이야….
만약 돈데기리로 오지 않았다면.
그래서 샤키로를 만나지 못했다면.
샤키로가 지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헤르베르트의 유작은 영원히 찾을 수 없는 물건으로, 그저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로만 남았을 수도 있었다.
“평생 운을 요 몇 개월 사이에 다 쓰는 느낌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막힌 우연이었기에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크는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연도 우연이었지만, 중요한 건 자신의 ‘마음가짐’이 만들어 낸 ‘성과’라는 것을.
사실 모든 건 지크 스스로가 만들어 낸 행운이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던 사부와의 만남만 떠올려 봐도, 그건 매우 명확한 사실이었다.
사부가 어디 지크만 보았겠는가?
우연히 사부를 스친 인재만 해도 최소 수백 명은 넘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 사부를 매료시킨 사람은 지크가 유일했다.
초거대 길드인 제네시스를 상대로 절대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웠던 투지와 승리를 향한 갈망.
그리고 거듭된 패배에 터져버린 울분까지.
지크는 처음부터 999레벨의 NPC 데우스를 매료시킬 만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샤키로와의 만남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약 지크가 조금만 건방졌다거나, 자신의 재능을 자만하고 있었다면 샤키로는 그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그저 몇 가지 잡기술만을 전해주고 떠났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지크는 그러지 않았고, 성심성의껏 샤키로의 가르침에 따랐다.
또, 언제나 겸손했다.
오직 강함을 향한 열정을 활활 불태우며 스스로의 성장만을 꾀했을 뿐….
결국, 언제나 우리네 곁을 스치는 기막힌 우연들을 행운으로 만드는 건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었다.
“뭐, 믿기 힘든 우연이긴 하지만….”
지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을 인벤토리에 담았다.
“헤르베르트의 유작은 제가 꼭 찾아내도록 하겠습니다. 샤키로 사부님.”
지도를 완성한 이상 다음에는 단서가 아닌 헤르베르트의 유작 그 자체를 찾을 수 있으리라.
***
돈데기리로 돌아온 지크는 인터벤션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고민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샤키로의 원수를 갚는 일이었다.
‘그 빌어먹을 자식만 없었어도 샤키로 님의 육체가 그렇게 빨리 붕괴되지는 않았을 테니까.’
만천화우라고 했던가?
평생의 깨달음을 담아낸 비기의 사용.
그 무리한 전투가 샤키로의 육체가 붕괴하는 걸 가속화시켰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죽일 이유는 충분하다.’
게다가 블라디미르는 혈마 베르세르크의 후예이기도 하기에, 사부님의 한을 풀어주어야 하는 지크로서는 그를 백번 죽인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즈릭 교단.
지난 소호카 유적지에서부터 이곳 돈데기리에 이르기까지, 지크와 안 좋게 엮인 게 벌써 두 번째였다.
이미 오즈릭 교단에서 지크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는 이상, 앞으로도 끊임없이 부딪히게 될 것이 분명했다.
샤키로가 그랬던 것처럼….
‘이거 점점 적들만 늘어가는 느낌인데.’
제네시스 길드에 이어 오즈릭 교단이라는 거대한 적이 생겨 버렸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다 지끈거렸지만, 지크는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지크는 저 멀리 있는 적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
‘강해지면 돼. 다 부숴버리면 그만이다.’
지크에게는 무적으로 향하는 길이 열려 있었으니까.
비록 지금은 힘이 부족하다지만, 언젠가는 그들에게 대항할 힘을 갖출 테니 벌써부터 겁먹을 필요는 없었다.
‘일단 템부터 맞추고 여길 뜨자.’
지크가 객실을 나섰다.
“지크프리트 고객님이십니까?”
지크가 호텔 프런트를 지나 정문으로 향할 때, 직원이 그를 불렀다.
“맞는데요.”
“지크프리트 고객님 앞으로 전보가 도착했습니다.”
“예? 저한테요?”
지크는 놀랐다.
전보란 과거 PC 기반 온라인 게임과 같이 이 없는 BNW에서 매우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다.
리얼리티를 강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놓고 ‘이세계’를 표방하는 게임에서 귓속말 시스템을 구현해 버리면 그 넓은 월드맵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서로 멀리 떨어진 플레이어들이 서로 귓속말로 소통해 버리면, 게임의 밸런스가 무너져 내릴 게 분명했다.
모험가들끼리 귓속말로 빠르게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대륙의 정세 자체가 급변하게 될 게 뻔한 것이다.
때문에, BNW의 개발사인 하이브 게임즈 엔터테인먼트에선 귓속말 시스템을 아예 빼버리고 대신에 시스템을 넣었다.
실시간 소통을 막은 대신에 인터벤션 호텔의 통신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라는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쪽지의 기능만을 허용한 것이다.
가끔 BNW에 대한 과몰입으로 정신 병원 신세를 지는 이들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였다.
“지금 전보를 확인하시겠습니까?”
“그러죠.”
“여기 있습니다.”
호텔 직원이 지크에게 편지봉투를 내밀었다.
‘누구지?’
지크는 전보를 보낸 사람을 궁금해 하며, 편지봉투를 열었다.
전보는 2일 전 고스란으로부터 도착한 것이었다.
To. 지크프리트
지크 님!!
잘 지내세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그냥 요즘 어디서 플레이하시는지 궁금해서 쪽지 날려봤어요.
같이 사냥해달란 건 아니니까 걱정 마시고요!
안부 인사 겸 근황 체크니까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
그럼, 답장 부탁드릴게요.
From. 고스란
별 내용은 없었다.
그저 안부를 묻는 정도….
“아, 고스란 님이 보낸 전보구나. 흠. 잘 지낸다니 다행이네.”
그게 다였다.
지크는 곧바로 답장을 작성하지 않았다.
“지금은 바쁘니까.”
지금은 사소한 인간관계보다는 템 맞추고 다음 행선지부터 정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으므로, 지크는 답장은 나중에 보내기로 하고 인터벤션 호텔을 나섰다.
***
지크가 아이템을 맞추기 위해 인터벤션 호텔을 나섰을 무렵.
세계 최대의 BNW 커뮤니티인 에는 거의 억 단위에 가까운 유저들이 모여들어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다.
그 이유인즉슨, 뉘르부르크 대륙 최강대국인 제국에서 개최하는 이벤트 때문이었다.
[전문]마우레키온 제국의 제16대 황제인 나, 슈트카르트 폰 포스테리오레는 이세계에서 온 모험가들을 크게 치하하는 바이다.
모험가들이여!
짐은 그대들의 활약상을 기억하고 있노라.
이세계에서 온 이방인들이 우리 세계를 위해 목숨을 걸고 악의 무리들과 싸울 줄 짐은 미처 알지 못했노라.
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란 말인가?
그대들은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들이다.
짐과 짐이 다스리는 제국, 그리고 제국의 모든 신민들은 그대 모험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에 짐은 그대들의 공로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제국 내 모든 게이트웨이의 사용을 전면 무료화하고, 인터벤션 호텔의 숙박비를 30퍼센트 할인토록 하겠다.
또한, 를 개최하는 바이다.
는 그대들의 정신력 검증, 생존 능력 향상, 무력의 증명, 지략 등등 무인으로서의 모든 덕목을 시험하고 또 증명함으로써 진정한 강자를 가려내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에서 우승하는 모험가에게는 대공(大公)의 작위와 함께 영토가 하사될 것이며, 또한 일국의 왕에 봉해질 것이다.
부디 그대들의 많은 참여를 바라노니.
– 마우레키온 제국 제16대 황제, 슈트카르트 폰 포스테리오레 (인)
핵심은 마지막 문단에 있었다.
대공의 작위.
토지 수여.
그리고 왕.
천하제일생존대회의 우승자에게는 세계 최초로 일국의 군주가 되는 영광이 주어진다는 게 핵심이었다.
왕이라니!
만약 누군가 왕이 된다면, 그 유저는 뉘르부르크 대륙을 떠도는 한낱 모험가가 아니라 대륙의 정세에 관여할 수 있는 거물이 되는 셈이었다.
게다가 유저 중 누구도 백작 이상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만큼, 세계 최초이자 게임 최초로 일국의 군주가 되어 왕의 칭호를 거머쥔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보상으로 ‘비옥한 영토’인 은 지리적으로 보나 전략적으로 보나 노른자위 중의 노른자위인 땅인지라 가만히 앉아서 내정만 열심히 해도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천하제일생존대회에 참가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천하제일생존대회]•개요 : 최후의 생존자가 가장 강한 자다!
•일시 : 세계력 3717년 5월 1일 오후 00시 00분부터.
•기간 : 세계력 3717년 5월 1일 오후 00시 00분부터 최후의 1인이 남게 되는 날까지
•장소 : 하얀 군도(群島) 중앙에 자리한 ‘타오르는 섬’.
•보상 : 프로아틴 지방의 모든 영토.
•참가비 : 1,000골드
•참가 인원 : 선착순 10,000명
•주의 사항 : 사망 시 모든 능력이 사라지고, 10년 동안 초월의 룬이 봉인 당하게 됩니다.
논란이 된 것은 마지막 항목인 ‘주의 사항’이었다.
사망 시 모든 능력이 사라진다?
이는 다분히 캐릭터의 초기화, 혹은 삭제를 의미했다.
그리고 모험가의 성장의 원천인 이 10년 동안이나 봉인 당한다는 것은, 사실상 레벨 업이 불가능해진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덕분에 커뮤니티는 이 ‘주의 사항’에 관한 유저들의 논쟁으로 인해 댓글이 무려 억 단위가 넘어가는 사태까지 발생하고야 말았다.
결국,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논란은 유저들이 보낸 문의로 인해 하이브 게임즈 엔터테인먼트의 전화와 이메일이 마비되는 지경까지 이르고야 말았다.
이에 하이브 게임즈 엔터테인먼트의 부회장인 오펜하이머는 공식 기자 회견을 갖고 해당 이벤트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만 했으니….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