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552
551
전원이 합류한 뒤로 과 연합군의 전쟁은 잠시 소강상태를 맞이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연합군으로서도 더는 지형을 이용한 소규모 전투로 이득을 보기가 힘든 상황이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전진할 대로 전진한 연합군은 보급로도 매우 길어진 상황이라 후방도 돌봐야 하는 입장이었다.
게다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공격로가 탁 트인 평지라서, 대규모 전면전을 피할 수도 없었다.
즉, 최대한 병력 차이를 극복하고 싸울 수 있는 환경이 끝나버린 것이다.
덕분에 연합군은 병력 운용에 신중을 기해야 했으므로, 아예 진을 치고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도 마찬가지.
의 입장에서는 연합군이 먼저 쳐들어오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으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먼저 쳐들어가자니 유리한 곳에 진을 치고 엎어져버린 연합군을 상대로 병력 손실이 너무 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은 양측이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엉덩이를 붙인 상태로 교착 상태에 빠졌다.
한편, 은 연전연패를 거듭하던 중 호재를 만나게 되었다.
대륙 10대 길드 중 하나인 의 합류로 전력이 크게 보강된 것은 물론, 지크의 현상금을 노린 게이머들이 용병으로 몰리면서 전력이 한층 더 강해진 것이다.
“흐흐흐. 돈이란 정말이지 좋은 것이로군.”
데스포그는 돈의 힘에 전율했다.
예로부터 전쟁은 돈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 말이 딱 맞았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돈을 아낌없이 풀자 수없이 많은 게이머들이 아군이 되어 주고 있었으니까.
“돈은 귀신도 부린다더니, 모험가 놈들도 돈의 힘 앞에서는 별수 없는 모양이로군.”
데스포그는 지크의 암살에 관한 임무를 받아간 게이머가 2,000명이 넘는다는 보고를 받고 히죽 웃었다.
“네놈이 제아무리 잘나 봐야 결국엔 내 앞에 끌려오게 될 것이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리치가 그런 데스포그를 향해 고개를 조아리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놈이 제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암살에 노출되다 보면 결국엔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옵니다. 그리고….”
“언젠간 과인의 앞에 끌려오게 되겠지.”
“예, 전하.”
“결국엔 시간문제일 뿐….”
데스포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다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오늘밤부터.”
“예?”
“적 진영에 총공격을 실시하도록.”
“예에?!”
리치는 제 귀를 의심했다.
총공격이라니?
적들이 좁은 지형에서 진을 치고 있는데, 총공격을 실시한다?
그건 곧 손해를 의미했다.
아주 큰 손해 말이다.
“하오나 전하….”
“실시하라.”
데스포그는 반론을 제기하려던 리치의 말을 자르고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갔다.
“오늘 밤부터 쉴 새 없이 몰아치도록.”
“으음!”
“잊었는가? 우린 불사의 존재들이다.”
“……!”
“우린 지치지 않고, 먹고 마시지 않아도 되며, 잠들지 않는다. 또한, 적들보다 병력이 20배는 더 많다.”
“그 말씀은….”
“소모전이다.”
“소모전….”
“본국에 강한 모험가들이 많이 합류한 이상, 병력의 질적인 측면에서 더는 밀리지 않는다. 최소한의 병력 교환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겠지. 더는 그놈의 수작에 놀아날 수 없는 노릇이다. 소모전을 펼쳐 놈들의 병력을 갉아먹는다.”
“혀, 현명하시옵니다!”
리치가 데스포그의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실로 현명하신 판단이시옵니다! 그렇게 하시면, 적들은 결국 무너지고 말 것이옵니다!”
“알았으면 바로 실시하라.”
“예! 전하!”
그렇게 연합군을 대상으로 한 의 대대적인 소모전이 예고되었다.
***
한편, 연합군 진영에는 24시간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연합군은 내부에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있는 것과 같았다.
현상금이 50만 골드로 오른 이후 지크를 노린 게이머들의 입대 신청이 끊임없이 쇄도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미 고용되어 있던 게이머들 중에서도 지크를 노리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닌 상황.
총사령관이 언제 어느 순간에 암살을 당할지 몰랐기에, 연합군 내부의 분위기가 흉흉하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덕분에 연합군 내부의 경비가 더욱 삼엄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총사령관인 지크의 막사에는 연합군의 최정예 기사들 200명이 24시간 교대로 호위를 서고 있었고, 사전에 허락받지 않은 사람은 반경 200미터 내에 접근할 수 없었다.
만약 사전에 허락받지 않는 사람이 지크의 주변 200미터 안으로 접근한다면?
즉결 처분.
즉,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사형부터 집행하고 보았다.
“이런 젠장….”
키릭스 왕자는 자신의 막사에서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어떻게 전하를 지킨단 말인가… 사방팔방이 암살자인 것을….”
지크는 연합군의 핵심 중의 핵심.
개전 초기부터 지금까지 전승을 기록한 무패의 지휘관이었다.
연합군으로서는 그런 지크를 무조건 지켜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지크를 노리는 이들은 아군에도 있었고, 적군에도 수두룩했다.
이제는 게이머들뿐만이 아니라 아군 기사들까지 지크를 노리고 암살을 시도했던 적도 있었기에, 키릭스 왕자의 고심이 깊은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든 전하를 지켜내야….”
바로 그때였다.
“전하! 전하아아아아아-!!!”
기사 하나가 막사 안으로 거의 자지러질 듯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 보고했다.
“전하!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 났사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초, 총사령관님께서 납치를 당하셨습니다!”
“뭐, 뭣이?!”
키릭스 왕자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서렸다.
“납치라고? 납치라 했는가!”
“그, 그러하옵니다!”
“맙소사….”
키릭스 왕자가 털썩! 하고 주저앉았다.
“납치라니… 그건 더 큰일이 아닌가….”
확실히, 납치가 더 큰일이었다.
죽으면 49시간 뒤에 부활하지만, 납치를 당했다면 지크의 공백이 더욱 길어질 것이었기 때문이다.
“납치라니….”
“지금 기사단들이 전하를 구출하기 위해 납치범들을 뒤쫓고 있사옵니다!”
“도대체 누가! 누가 전하를 납치했단 말인가!”
“그, 그것이….”
“말해 보라! 당장!”
“전하와 평소 친하게 지내던 모험가들이… 회의가 진행되던 도중 전하를 배신하고 비열하게 기습을 가했다고….”
“이런 쳐 죽일 놈들을 보았나!!!”
키릭스 왕자의 입에서 버럭 사자후가 터졌다.
부들부들…!!!
그런 키릭스 왕자의 몸은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렸으며, 눈은 당장에 누구 하나 죽여 버릴 것처럼 살기가 철철 넘쳐흘렀고, 두 주먹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도록 세게 쥐었다.
“인두겁을 쓴 놈들 같으니….”
“저,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지금 고정하게 생겼는가! 이런 토악질 나는 일이 벌어졌는데!”
“전하….”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현재 기사단이 납치범들을 뒤쫓아 가고 있다고 하옵니다!”
“당장 안내하라! 나 역시 전하를 구하러 갈 것이다!”
“하오나 이미 기사단이….”
“전하께서 납치를 당하셨는데 내 어찌 가만히 있으란 말인가! 잔말 말고 빨리 안내하라!”
“예! 전하!”
키릭스 왕자는 기사의 안내에 따라 지크를 구하기 위해 막사를 뛰어나갔다.
***
결국, 연합군은 지크를 구출해내지 못했다.
지크를 납치한 게이머들이 워낙에 강력한 이들이었고, 또 사전에 치밀하게 도주로를 짜놓았는지 결국엔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덕분에 연합군 진영은 초상집 분위기에 휩싸였고, 사기는 바닥을 치다 못해 맨틀과 외핵을 뚫고 내핵까지 곤두박질을 쳤다.
그만큼 연합군 내에서 지크의 위치와 존재감은 엄청난 거였다.
지크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연합군 장병들의 심리 상태가 천국과 지옥을 오갈 정도였으니, 초상집 분위기가 되어도 결코 이상할 게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악재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 적들이 몰려온다!”
“놈들이 쳐들어옵니다!”
“전투, 준비!”
“전 병력 전투 준비! 전투 준비! 전투다! 전투!”
연합군은 지크가 납치당해 패닉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으로부터 대규모 침공까지 받아 정신없이 전투를 치러야만 했다.
그렇게 이 연합군을 상대로 소모전을 시작했을 무렵.
“뭐라?”
데스포그는 뜻밖의 보고를 받고는 눈을 번쩍 떴다.
“그놈을 포획하는 데 성공했단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리치가 데스포그의 앞에 바짝 엎드려 대답했다.
“모험가들이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를 생포해 현재 압송해오고 있다는 소식이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언데드 대소신료들 역시도 리치와 같이 데스포그를 축하해 주었다.
“흐!”
데스포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돈이 좋긴 좋은 모양이로군. 그 빌어먹을 놈을 과인 앞에 데려다놓는 것을 보면.”
“전하, 내거신 현상금이 피붙이마저 팔아버릴 정도로 천문학적인 금액이옵니다.”
“그런가?”
“예, 전하. 귀신도 부릴 돈인데, 살아 있는 모험가라고 못 부릴 리 없지 않겠사옵니까?”
“그렇겠군.”
“조금만 기다리소서. 곧 모험가들이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를 끌고 전하께 바칠 것이옵니다.”
“그래, 얼마나 걸린다고 하던가?”
“예, 전하. 대략 두세 시간 안에는 전하의 앞에 대령을 하겠다고 전해 왔사옵니다.”
“두세 시간이라. 긴 기다림이 되겠군.”
데스포그는 몸이 달아오른 것처럼 조급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데스포그가 판단하기에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가 나머지 파편 중 두 개를 가지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즉, 굳이 이번 전쟁 때문이 아니라도 데스포그로서는 지크를 반드시 사로잡아서 심문해 두 개의 행방을 알아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서두르라고 전하라. 1분 1초가 아쉬우니.”
“예! 전하!”
그로부터 세 시간이 지났을 때.
“으음!”
데스포그는 마침내 모험가들의 손에 질질 끌려오는 과 마주할 수 있었다.
“놔! 이거 놓으라고! 놔! 이 새끼들아!”
지크는 사지가 꽁꽁 묶인 채 마치 짐승처럼 끌려와 데스포그의 앞에 강제로 무릎을 꿇었다.
“너 이 새끼들! 두고 봐! 가만 안 둬! 가만 안 둘 거라고!”
지크는 그 와중에도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미친 듯 몸부림을 쳐댔다.
“아, 좀!”
그러자 빡빡머리 모험가 하나가 나서서 지크의 뺨을 냅다 후려갈겼다.
짜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지크의 목이 홱! 하고 돌아갔다.
주르륵….
뺨을 맞은 지크의 입에서 시뻘건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형님, 아가리 좀 닥치고 계십쇼. 시끄럽습니다.”
“승구 너 이 새끼….”
지크가 자신의 싸대기를 갈긴 모험가, 승구를 바라보며 으르렁거렸다.
“니가 날….”
“뭐요?”
승구가 지크를 향해 피식 웃으며 이죽거렸다.
“거 배신 좀 하면 안 되는 건가?”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
“개소리하네.”
“뭐?!”
“틈날 때마다 실컷 부려먹은 주제에 잘해주긴 뭘 잘해줬다고?”
“잘해주긴 뭘 잘해줘…?”
“그리고 현상금이 어디 한두 푼인가? 인생을 역전할 기회인데, 형님 같으면 포기하겠습니까? 예?”
“이 새ㄲ….”
바로 그 순간.
빠악!
승구가 무릎으로 지크의 안면을 밑에서 위로 찍어버렸다.
“커헉!”
그러자 지크의 고개가 이번에는 뒤로 확! 젖혀지며 코피가 천장을 향해 푸화악! 하고 뿜어졌다.
“제가 형님 새끼입니까? 예?”
“커헉….”
“닥치고 가만 계십쇼.”
승구는 지크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데스포그의 앞으로 가 무릎을 꿇었다.
“모험가 승구라고 하옵니다.”
그러고는 매우 정중하게 뉘르부르크 대륙의 예법대로 데스포그를 향해 넙죽 절을 올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