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568
567
“크흠!”
파케브로스는 이번만큼은 지크의 요구를 손쉽게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크에게 사정했다.
“전하.”
“왜요.”
“그, 그것이….”
“……?”
“전하께 무례를 저지른 성기사들과, 이번 검증의 담당자에게 중징계를 내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본 교단 내부의 일이기에, 그대로 실행하면 그만이지요.”
“그런데요?”
“고발장을 접수한 자들의 신원 정보를 전하께 알려드리는 건 아무래도 좀….”
확실히, 그건 곤란한 요구였다.
고발장을 접수한 이들에 대해 알려준다는 것은, 에 대한 신뢰가 크게 흔들릴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니겠는가?
게이머들이 보복이 두려워 부정행위를 보고도 신고하지 않으려 하면 의 입장이 굉장히 곤란해지는 건 당연한 일.
때문에, 파케브로스는 지크를 잘 달래며 양해를 구하려 했다.
“전하. 본 교단이 고발장을 접수한 이들의 신상 정보를 전하께 넘겨드린다면, 이 사회의 정의가 흔들리지 않겠습니까.”
“뭐요?”
“비록 오해가 있긴 했지만,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부정행위를 고발한 자들은 모두가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거 틀린 말은 아니네요.”
지크는 파케브로스의 말에 동의했다.
확실히, 무언가 잘못된 걸 고발하는 사람들은 보호해주는 게 옳은 일 아니겠는가?
“근데요.”
“예?”
“이거 보이시죠?”
지크가 자신의 머리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결백합니다만.”
“그야 당연히 전하께서는 결백하신….”
“무고죄도 모르세요?”
“……!”
“무고한 사람을 증거도 없이 의심만으로 고발했으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무고죄란 것도 있죠? 아마?”
“무고죄도 있긴 합니다만….”
“자, 딱 말씀해 보시죠. 증거도 없이 심증만으로 무고한 사람을 부정행위자로 고발한 게 정의를 바로잡기 위한 행동입니까?”
“아, 아닙니다.”
“그럼 무고죄로 처벌을 해야 합니까, 안 해야 합니까.”
“그, 그야 당연히….”
“내놔요.”
지크가 파케브로스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전하….”
“제가 직접 하나 하나 찾아가서 박살을 내버릴 테니까.”
“부탁드리건대, 전하께서 그것만은 참아 주셨으면….”
“슈트카르트 황제 폐하께서 요즘은 잘 지내시나….”
“전하!!!”
파케브로스는 지크가 슈트카르트 황제를 언급하며 자리를 뜨려고 하자 화들짝 놀라서 황급히 따라붙었다.
“제, 제발 고정하시지요.”
“고정이라뇨? 저 화 안 났습니다.”
지크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냥 오래간만에 문안 인사를 올리려는 건데, 안 되나요?”
“제발….”
“슈트카르트 황제 폐하께서 저를 좀 어여삐 여기시니까, 제 근황도 궁금해서 물어봐 주시겠죠? 하핫!”
“드, 드리겠습니다.”
결국, 파케브로스는 지크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왜?
고발자들의 명단을 넘기고 겪을 고초보다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밉보이는 게 100배, 아니 1,000배는 더 무서웠으니까.
“주세요, 명단.”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그로부터 10분 후.
지크는 파케브로스로부터 자신을 어뷰징으로 고발한 게이머들의 명단을 받아보았다.
‘앞으로는 부정행위자에 대한 신고가 들어오면 명백한 증거 없인 움직이지 말아야겠군.’
결국, 이번 사건으로 인해 에서 부정행위자를 잡아내는 시스템은 크게 개편을 받게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뭐, 뭐가 이렇게 많아.”
지크는 명단에 적힌 게이머들의 숫자가 거의 3,000여 명에 달하는 걸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만큼 지크의 전적을 의심하는 게이머들의 숫자가 많았던 것이다.
고발을 하지 않은 게이머들까지 합치면, 그 숫자가 수십 배로 불어나리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어… 으음.”
지크는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고발장들을 보며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고민했다.
3,000여 명에 달하는 게이머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조진다?
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한세월일 것은 분명했다.
게다가 그렇게 많은 게이머들을 상대로 시비를 걸었다간 3,000여 명의 적을 만드는 셈.
‘적을 많이 만들어서 좋을 게 없는데… 안 그래도 많은데.’
지크가 고민이 빠져 있던 때였다.
“뀨우?!”
햄찌가 고발장들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
“뭔데?”
지크가 햄찌를 돌아보며 물었다.
“뀨! 주인 놈아!”
“응?”
“이 자식 뭐냐!”
“누구?”
“하나, 둘, 셋….”
햄찌는 특정인이 보낸 고발장들을 하나하나 따로 빼 세어 보았다.
그런데 그 특정인이 보낸 고발장의 개수가 상상을 초월했다.
“뀨! 주인 놈아! 이 자식이 보낸 고발장이 200개가 넘는다! 뀨우?”
“뭐? 200개가 넘는다고?”
“뀨우! 그렇다! 이 자식 완전히 주인 놈 먹이려는 거 아니냐?!”
햄찌가 지크에게 200여 장이 넘는 고발장 뭉치를 넘겨주었다.
“누군데?”
지크는 햄찌가 넘겨준 고발장 뭉치들을 살펴보았다.
– [신고/승부조작]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신고합니다.
– [신고/승부조작] 이게 전적이 말이 됩니까? 검거 안 해요?
– [신고/승부조작] 끝까지 방관하시겠다?
– [신고/승부조작] 왜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란 모험가 안 잡아감?
특정인이 보낸 200여 장의 고발장은 그 내용이 똑같은 게 거의 없을 정도였다.
즉, 를 한 게 아니라 진심으로 지크가 어뷰져라고 생각하고 엿을 먹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이다.
“이거 어떤 놈이야? 보자….”
지크의 눈길이 고발장 맨 마지막에 적힌 ID를 훑었다.
“카오… 신… 카오신?”
“뀨우? 주인 놈아! 아는 놈이냐! 뀨우우!”
“알지. 잘 알지.”
지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게임은 쩔게 잘하는데, 싸가지라고는 발톱에 낀 때만큼도 없는 놈.”
“뀨우?! 주인 놈보다 더 싸가지 없는 놈인 거냐!”
“뭐 인마?”
“뀨! 장난이다! 근데 진짜 아는 놈인 거냐!”
“실제로는 몰라도 어떤 놈인지는 알아.”
지크는 카오신에 대해 떠올렸다.
카오신.
BNW를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고레벨에 도달하고, 결투장을 찾았다가 PVP의 세계에 입문한 아마추어 고수.
그 실력은 어지간한 랭커들도 탈탈 털어버릴 정도의 톱클래스.
한국의 거의 모든 프로 게임 구단들이 원하는 영입 1순위 아마추어 게이머.
하지만 자신에게 패배한 게이머에게 온갖 비꼼, 인격모독, 조롱 등을 서슴없이 일삼을 정도로 인성은 쓰레기.
그게 바로 지크가 기억하는 카오신이란 아마추어 게이머에 대한 정보였다.
영리하게도, 프로게이머 데뷔를 위해 원초적인 욕설이나 패드립은 자제하는 것 또한 카오신의 특징이었다.
실력은 있지만, 굉장히 교활한 게이머인 것이다.
“얘가 날 이렇게 찌른 거였어?”
“뀨우?”
“이런 게 배신이라는 건가?”
지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피식 웃고는 발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마침 잘됐네.”
“뀨우?”
“본보기 삼아서 얘 하나만 조지면 되겠어.”
안 그래도 3,000여 명이나 되는 신고자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족치는 게 부담스럽던 참인데, 잘됐다 싶었다.
“후후후.”
“뀨우! 그거 좋은 생각이다! 뀨우우우!”
“근데 얘 지금 어디 있지? 분명 대회 준비하느라 연습하고 있을 텐데.”
카오신이 이곳 어딘가에 있다는 건 확실했다.
문제는 가 수천만 개의 아공간 결투장으로 이루어진 장소라는 것.
지크로서는 현재 카오신이 어디 있는지 알 방법이 없었고, 안다고 해도 찾아갈 수도 없었다.
지크가 아공간을 넘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되나?”
지크는 속는 셈 치고 을 통해 을 통찰해 보았다.
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그러자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페이지들이 떠올라 지크의 눈앞을 어지럽혔다.
그 페이지들은 마치 수천, 수만 개의 인터넷 창을 겹쳐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각 페이지마다 저마다 다른 결투장의 모습과 그 안에 누가 있는지 표시가 되어 있었다.
은 전체를 통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 엄청나게 많은 페이지들 중 어느 페이지에 카오신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는 것.
“이걸 어느 세월에….”
지크가 그렇게 중얼거렸을 무렵.
띠링!
지크의 눈앞에 돋보기 모양의 아이콘이 떠올랐다.
“올? 검색까지?”
지크는 이번에도 속는 셈치고 돋보기 모양의 아이콘을 클릭한 후 이라고 쳐보았다.
[알림 : 탐색 중….] [알림 : 탐색, 완료!] [알림 : 의 위치를 찾았습니다!]검색이 끝나자 수없이 많은 페이지들 중 하나가 지크의 눈앞에 떠올랐다.
현재 카오신은 다른 천상계 게이머들과 함께 비공개 방을 만들어 놓고 PVP를 즐기고 있었다.
“위치는 찾았고. 어떻게 가? 차원을 넘을 순….”
그때였다.
우웅!
으로부터 한 줄기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시공간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와우.”
지크는 이 가진 성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뀨! 주인 놈아! 어떡할 거냐!”
“어떡하긴.”
지크가 대답했다.
“줘 패러 가야지.”
지크는 그렇게 말한 후 망설임 없이 카오신이 있다는 비공개 방을 향해 아공간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
“아.”
카오신은 쓰러진 상대를 바라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
카오신은 그렇게 말하며 쓰러진 상대를 향해 칼을 찔러 넣었다.
푸욱!
“크아아악!”
쓰러져 있던 상대, 호시기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존나.”
푸우욱!
“으아아아악!”
“못하네.”
푹!
“으아아아악!”
카오신은 한마디를 할 때마다 쓰러진 호시기를 칼로 푹 푹 찌르며 농락했다.
그게 바로 카오신이 지닌 악취미 중 하나였다.
다 이긴 상대를 끝내지 않고 가지고 노는 것.
카오신은 상대를 능욕하는 플레이에 매우 능해서, 천상계 플레이어들 중에서 실제로 만나면 죽여 버리겠다고 벼르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을 정도였다.
“아, 또 시작했네.”
“적당히 합시다.”
“왜 분위기 좋았는데 왜 또 그래?”
같은 방에서 놀던 천상계 게이머들은 그런 카오신을 향해 저마다 한마디씩을 던져 호시기를 능욕하는 걸 말렸다.
호시기에게 딱히 악감정이 없는 이상, 카오신이 하는 행동 자체가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최근 카오신은 를 대비해 이미지 세탁을 시도하려는지 잠잠하다 싶었는데, 제 성격 어디 안 간다고 오늘 또 그놈의 악취미가 터져버린 모양이었다.
“아, 선비들 납셨네.”
카오신은 자신을 말리는 게이머들을 향해 그렇게 말하고는, 피식 웃으며 호시기의 중요 부위(!)에 칼을 푹 꽂아 넣었다.
“커헉!”
“퇴물님.”
“크윽….”
“약빨 떨어지셨으면 곱게 은퇴나 하실….”
바로 그때였다.
빠악!
어디선가 날아온 시커먼 망치가 카오신의 뒤통수에 작렬했다.
“커헉!”
카오신은 피를 토해내며 쓰러지면서도, 재빨리 몸을 굴려 자세를 다잡고 주변을 홱! 하고 돌아보았다.
그야말로 놀라운 반응 속도.
인성과는 별개로 그 실력만은 진짜라는 증거였다.
“어떤 새끼야.”
“나다, 이 새끼야.”
“……!”
“너 나랑 얘기 좀 하자.”
지크가 쩍 벌어진 시공간의 틈 사이를 빠져나오며 카오신을 향해 말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