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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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는 거야.’
지크는 크반트가 목숨이 위태로운 와중에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양반 이거, 헛것까지 보이나 보네.’
지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서둘러 크반트에게 최상급 생명력 포션을 먹여주었다.
우웅!
그러는 한편 자신의 마나를 불어넣어 크게 손상된 크반트의 원기를 보충해 주기도 했다.
지크는 크반트의 생명력을 보존하면서 붕대로 상처를 감싸 강하게 압박하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응급 처치를 실시했다.
그런 지크의 정성 덕분일까?
크반트는 빠르게 기운을 차리는 듯했다.
원래 부상이 엄청나게 깊지 않았던 게 천만다행이기도 했다.
“지크 국왕… 크윽….”
“이제 좀 괜찮으세요?”
“좀 살 것 같소.”
크반트가 그렇게 말하며 지크를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지크 국왕….”
“예?”
“그대는 나를 두 번이나 살리는구려….”
“그, 그야… 이 사달이 났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크반트 님과 비머리언 공방은 저의 동반자이기도 하고요. 이대로 죽게 내버려둘 순 없죠.”
“고맙소, 정말 고맙소.”
“고맙단 말은 나중에.”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크반트를 떠나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대장장이들에게 다가가 앞서 했던 것과 똑같이 응급조치를 실시했다.
지크가 그러는 사이 비머리언 공방의 다른 관계자들이 몰려와 사태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빨리 옮겨!”
“서둘러라! 서둘러!”
“이런 빌어먹을! 빨리 치료사를 불러! 어서 치료사를!”
“수석 대장장이님부터 치료하라!”
그야말로 아비규환.
쑥대밭이 된 비머리언 공방의 내부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이들의 움직임으로 인해 정신이 다 혼미할 정도로 바쁘게 돌아갔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지크가 치료사에게 치료를 받고 있는 크반트에게 물었다.
“어떤 간 큰 놈이 이따위 짓거리를 벌인 거죠?”
지크의 표현은 매우 정확했다.
간 큰 놈.
뉘르부르크 대륙 3대 공방 중 하나인 비머리언 공방의 본사를 이렇듯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면, 뒷감당이 될 리가 없었다.
지금의 사태를 저지른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려거든, 죽음으로는 어림도 없을 게 분명했다.
“샤키로….”
“예?”
지크는 또 한 번 제 귀를 의심했다.
‘아니, 이 양반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지크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크반트의 코앞에 손바닥을 휘휘 휘저었다.
“저기요, 크반트 님.”
“음?”
“괜찮으세요?”
“뭐, 뭐 하는 거요?”
“아직 정신을 못 차리시는 거 같아서?”
“……?”
“돌아가신 샤키로 사부님께서 무슨 수로 이런 짓을 벌입니까? 애초에 이러실 분도 아닌데.”
웨펀 마이스터 샤키로.
사실 지크는 샤키로를 잘 몰랐다.
그와 함께했던 시간이 워낙에 짧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크는 그 짧은 시간에도 샤키로가 얼마나 선한 인성을 가진 사람인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당장 샤키로의 제자들인 웨펀 마이스터들만 보더라도 그 됨됨이가 굉장히 바르지 않던가?
아니, 굳이 샤키로의 인성에 대해 논할 것도 없었다.
왜?
샤키로는 지크의 눈앞에서 임종을 맞이했으니까.
[지금의 마음가짐, 잊지 마라. 그게 너의 가장 큰 무기이니. 또, 훗날 네가 강해진다면 그 힘을 허투루 사용하지 마라. 스스로가 가진 강함에 책임감을 느낄 줄 아는 무인이 되어라. 마지막으로… 지크프리트, 나는 너를… 내 제자라고 생각한다.]웨펀 마이스터 샤키로는 그와 같은 유언을 남기고, 육체가 원자 단위로 흩어지며 세상을 떠났었다.
즉, 죽은 샤키로가 비머리언 공방에 쳐들어와 이러한 학살극을 벌였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소리인 것이다.
“아무래도 머리에 큰 손상을 입으신 것 같은데….”
지크가 안타깝다는 듯 크반트에게 말했다.
“치료사에게 증상을 잘 이야기하시고 치료를….”
“아니.”
크반트가 지크의 말을 잘랐다.
“샤키로가 맞소.”
“이런. 상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네요.”
“나는 멀쩡하오.”
크반트가 인상을 팍 쓰고는 지크에게 말했다.
“본 공방에 쳐들어와 학살을 저지르고, 이곳 죽음의 고향 깊숙한 곳에 봉인되어 있던 마도 파피야스를 강탈해간 건 누가 뭐래도 웨펀 마이스터 샤키로였단 말이오. 비록 망토와 후드를 깊게 눌러 쓰고 있었지만, 그가 웨펀 마이스터 샤키로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오.”
“아니.”
지크가 크반트에게 반론을 제기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샤키로 사부님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 그것도 제 눈앞에서 최후를 맞이하셨죠.”
“시신은 확인했소?”
크반트가 지크에게 물었다.
“시신이요? 확인했죠.”
“그대의 손으로 직접 묻었소?”
“그러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습니다. 육체가 먼지가 되어 흩어지셨는데, 묻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냥… 사라지셨습니다. 제게 유언을 남기신 직후에.”
“그렇담 살아 있겠구려.”
“네?”
“샤키로쯤 되는 이가 당시 그대의 눈을 속이는 게 어디 어려운 일이었겠소이까?”
“그건….”
지크는 딱 잘라 말하지 못했다.
당시의 지크는 라는 클래스를 얻은 직후인지라 쪼렙 중의 쪼렙이었다.
그런 지크를 샤키로쯤 되는 강자가 속인다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인 건 사실이지 않은가?
“물어보시오.”
“뭘… 물어보란 말씀입니까?”
“본 공방의 대장장이들이 증언해줄 것이오. 이 참극을 저지른 자가 웨펀 마이스터 샤키로라는 것을.”
“잠시만요.”
지크는 크반트의 말대로 치료 받고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 정말로 이번 사태를 저지른 장본인이 샤키로냐고 물어보기로 했다.
***
“그는… 땅에 떨어진 무기를 손에 잡히는 대로 사용하는데도 엄청난 무력을 선보였사옵니다. 그렇게 모든 무기를 잘 다루는 자는 대륙에 오직 하나… 웨펀 마이스터 샤키로밖에 없을 것이옵니다.”
“무기를 교체하는 속도가… 눈에 보이지가 않을 정도였습니다. 웨펀 마이스터 샤키로가 아니면 누가 그런 신기에 가까운 무기교체술을 선보일 수 있겠습니까?”
“언젠가 샤키로와 검호 란돌 공작의 대련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샤키로가 보여주었던 기술들과 본 공방을 습격했던 자가 사용했던 기술이…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생존자들의 증언은 매우 일관성 있게 범인이 웨펀 마이스터 샤키로라는 걸 가리키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지크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샤키로 사부님께서 살아계셨다고? 그리고 이런 짓을 벌이셨다고?’
그때였다.
“이보시오.”
크반트가 지크를 불렀다.
“웨펀 마이스터 샤키로의 생존은 나 역시 믿기지 않소. 내가 그대를 그 누구보다 믿는다는 것은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오.”
“그렇…죠.”
“그리고 그 무엇보다 내가 웨펀 마이스터 샤키로를 의심하는 이유는, 범인이 마도 파피야스를 강탈해갔기 때문이오.”
“마도 파피야스…?”
“샤키로가 한창 활동하며 전성기를 구가할 당시 사용하던 악마의 칼이오.”
“악마의 칼….”
“샤키로는 모든 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무인답게 어떠한 무기든 골고루 사용했지만, 마도 파피야스를 사용할 때면 그 무력이 가히 엄청났소.”
“으음.”
“게다가 마도 파피야스는 샤키로가 활동을 멈추려던 시점에 본 공방에 보관을 맡긴 것이오. 그 말인즉슨….”
“마도 파피야스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 샤키로 사부님밖에 없단 이야기겠죠.”
“바로 맞췄소.”
“하지만 샤키로 사부님께서 살아 계신다고 해도… 왜 이런 짓을….”
지크는 혼란스러웠다.
그래, 샤키로가 사실은 살아 있다고 치자.
그런데 비머리언 공방에 쳐들어와서 이런 미친 짓을 벌일까?
‘설마 또 다른 제자?’
지크는 샤키로의 숨겨진 또 다른 제자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샤키로의 첫 번째 제자였다가 파문을 당했던 제라드처럼 말이다.
“설마 숨겨진 제자가 있었던 걸까요?”
“제자?”
“그게….”
지크가 크반트에게 과거 웨펀 아카데미에서 샤키로의 첫 번째 제자 제라드를 만나 그를 처치했던 사건을 이야기해 주었다.
“으음. 그럴 수도 있겠소.”
크반트는 지크의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제자라기엔 실력이 너무 뛰어나지 않소이까? 본 공방의 경비원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정도면 최소한 마스터의 경지에는 올라야 할 터인데?”
“제자가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을 수도 있죠.”
“그건 그렇소만….”
“샤키로 사부님께서 이런 일을 벌이실 리 없습니다.”
지크가 딱 잘라 말했다.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다만 모든 정황들이 샤키로를 가리키고 있기에 한 생각이라오.”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죠. 그럼 일단… 범인을 추적해야겠네요?”
“당연하오.”
크반트가 살기등등한 눈빛을 뿜어내며 말했다.
“상대가 그 누구든. 웨펀 마이스터 샤키로일지라도, 이 사태에 대한 대가는 확실하게 치르게 해줄 것이오.”
“제가 돕겠습니다.”
지크가 거침없이 말했다.
이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지크는 뭔가 확실한 보상이 없이는 절대로 먼저 움직이지 않는 타입이었으니까.
“괜찮겠소? 그대는 매우 바쁜 몸이 아니오?”
“괜찮습니다. 이번 사건은 어떤 식으로든 샤키로 사부님과 관계가 있을 테니까요. 저 또한 샤키로 사부님의 제자. 아무리 바빠도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게 먼저겠죠.”
“고맙소. 그대가 도와준다니 더없이 든든하오.”
“별말씀을요.”
사실 지크의 속은 조금 달랐다.
‘만약 이 사태의 범인이 진짜 샤키로 사부님이라면… 내가 먼저 찾아서 이야기를 나눠봐야 해. 그래야 샤키로 사부님을 지킬 수 있어.’
비머리언 공방이 범인을 찾아 보복을 하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에 불과한 것.
범인은 사실상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만약 샤키로가 진짜 범인이라면?
지크는 샤키로가 비머리언 공방에게 죽는 걸 두고 볼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그럼, 저는 범인을 먼저 추적하러 가보죠.”
“알겠소. 본 공방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을 테니, 놈의 흔적을 찾는다면 알려주시오.”
“당연하죠.”
지크는 그렇게 말한 후 서둘러 쑥대밭이 된 비머리언 공방을 나섰다.
***
같은 시각.
수십여 대의 마차와 수레가 프로아 왕국의 국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이 수십여 대의 마차와 수레들은 의 것이었는데, 프로아 왕국의 왕실을 장식할 예술품들을 가득 싣고 있었다.
그런 상단 행렬 중 가장 끄트머리에 자리한 마차 안.
덜컹덜컹!
망토와 후드를 깊게 눌러쓴 사람이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잠자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에 소속된 상인 샤일록은 그런 정체불명의 사람을 보며 잔뜩 겁에 질린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정체불명의 사람은 함께 마차에 타고 있던 하인 하나를 눈 깜짝할 사이에 죽여 버렸다.
그런 뒤에 그 시체를 마차 바깥으로 가차 없이 내던져 버리고, 그 자리를 차지한 뒤였다.
그러니 평범한 상인인 샤일록으로서는 겁에 질릴 수밖에.
“다, 당신은… 누구요.”
샤일록이 정체불명의 사람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이오. 뒷감당이 두렵지 않소?”
“조용히.”
깊게 눌러쓴 후드 아래에서 굵직한 남자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한마디만 더 하면, 죽이겠다.”
“…….”
“국경을 통과할 때 내가 너의 호위 무사라고 이야기해라.”
그것으로 끝.
정체불명의 사내는 그렇게 자신의 할 말만을 하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로부터 몇 초 후.
“아.”
정체불명의 사내가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덧붙였다.
“혹시… 웨펀 아카데미의 위치를 아나?”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