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587
586
지크는 이쯤 되면 그냥 죽어 주는 게 예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3대 용병왕.
붉은 추기경 블라디미르.
채형석과 게이머들.
워프 게이트 조작.
심지어 무리까지.
칼을 갈아도 아주 단단히 갈지 않고서야 사람 하나 잡는 데 이만한 전력을 투입할 줄이야?
지크는 만약 의 조별 리그 불참에 따른 페널티만 아니었다면, 그냥 한 번쯤 죽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죽었다간 의 조별 리그에 불참하게 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게임 이용을 무려 6개월 동안이나 정지당하게 될 터.
그건 정말이지 지크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강력한 원동력이었다.
으득!
지크는 이를 악물고 비행하며 덮쳐오는 들에게 를 날렸다.
그런데.
터엉!
스킬에 의해 날아갔던 는 의 몸통에 맞고 튕겨 나와 지크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는 비록 진짜 드래곤의 절반 크기에 불과했지만, 나름 용족이라 그런지 단순 평타로는 요격하는 게 불가능했던 것이다.
‘망할!’
지크가 분통을 터뜨릴 때였다.
스으으으으!!!
들이 아가리를 쫙 벌린 채 시퍼런 냉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쉬익!
지크는 재빨리 고도를 낮춰 들이 뿜어낸 냉기를 피했다.
스으으!
한 줄기 냉기가 지크의 코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악!”
지크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려서 자기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뚝!
뒤이어 지크의 앞머리 한 가닥이 마치 과자가 으스러지듯 부러져 버렸다.
‘미친?’
의 냉기가 머리칼을 아예 얼려버리다 못해 부숴버렸던 것이다.
만약 5센티미터만 가까웠다면?
오싹!
지크는 자신이 대머리가 될 뻔했단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게임 BNW에서 캐릭터의 머리카락은 결코 영원불멸한 게 아니었다.
승구처럼 에 거꾸로 삼켜져 머리털이 위액에 홀라당 녹아 버린다던지, 혹은 누군가에게 머리털이 송두리째 뽑힌다면?
캐릭터가 죽었다 부활해도 머리털은 자라나지 않는다.
즉, 캐릭터가 영구적으로 대머리가 되는 것이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지크는 비명을 지르며 더욱 빨리 날았다.
하지만 적들의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펑, 퍼엉!
위에 탄 오즈릭 교단의 라이더들은 각자 손에 쥔 머스캣으로 지크를 향해 총을 쏴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죽여!”
지상에서는 채형석의 외침과 함께 온갖 마법이 지크를 요격하기 위해 날아왔다.
‘빌어먹을!’
지크는 그 어떤 원거리 공격에도 요격을 당하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해 비행했다.
까딱 실수했다간 요격당할 테고, 추락하면 적들에게 둘러싸일 게 뻔했다.
즉, 단 한 번의 실수에 끝장날 수 있는 만큼 비행하는 지크의 집중력이란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쏴아아아아아아아!!!
지크는 약 1킬로미터 앞에 정말이지 거대한, 높이가 50미터에 폭은 500미터는 족히 될 것 같은 폭포를 하나 발견했다.
‘젠장.’
지크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폭포를 향해 날았다.
그리고 폭포가 가까워오자 방향을 아래로 잡고 그대로 급강하해 버렸다.
‘죽기야 하겠냐!’
그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풍덩!
지크는 초당 168,000㎥의 유량이 떨어지는 폭포수 아래로 다이빙해 버렸다.
[캬아아아아악!] [캬악! 캬아아아악!] [크어어어어!]덕분에 들은 지크를 뒤쫓다 말고 폭포 위에서 체공 비행을 하며 맴돌다 아예 폭포수 밑을 향해 냉기를 내뿜었다.
쩍, 쩌어어어억!!!
그러자 폭포수 밑 강이 순식간에 얼어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하나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의 양이 워낙에 많아서, 얼어붙은 빙판 위로 폭포수가 또다시 떨어져 순식간에 강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 쥐새끼 같은 놈.”
블라디미르는 폭포 끄트머리에 도착한 직후 얼어붙은 강을 내려다보며 이를 갈았다.
후둑! 후두둑!
폭포수에서 튀어 오른 물방울들이 얼어붙어서 우박처럼 떨어져 내렸지만, 블라디미르의 시선은 여전히 저 멀리 강을 향해 있었다.
“쫓아라. 멀리가지 못할 것이다.”
블라디미르는 그렇게 명령을 내린 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만큼은 결코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블라디미르는 지크가 무사히 도망치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
***
같은 시각.
“흠.”
미켈레는 국왕의 집무실 앞에서 지크를 기다리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째깍째깍!
손목에 찬 시계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어느새 오후 네 시였다.
분명 3시 30분에 결재를 받으러 온다고 지크와 약속을 했는데, 벌써 30분이나 지난 것이다.
“전하께서 언제 출타하셨습니까?”
“예, 국무대신 각하. 전하께오선 네 시간 전에 진지를 잡수신 후 모험가 천우진과 통신을 나누신 뒤에 비머리언 공방에 가셨사옵니다.”
시녀가 미켈레의 물음에 대답했다.
“용무는 뭐라고 하셨습니까?”
“제작을 의뢰해놓은 아티펙트 세트를 찾으러 간다고 하셨사옵니다. 특별한 용무가 없어 일찍 오실 것이라고도 이야기하셨사옵니다.”
“음.”
미켈레가 눈살을 찌푸렸다.
“네 시간이면 벌써 두 번은 왔다 갔다 하실 시간인데….”
비머리언 공방에서 제작을 의뢰해놓은 아티펙트를 찾아오는 데 네 시간이 걸릴까?
답은 No.
비록 직통은 아니지만, 워프 게이트가 연결되어 있는 이상 네 시간이면 다녀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지크는 다른 건 몰라도 미켈레가 직접 올리는 서류를 결재할 시간은 칼같이 지켜왔기에, 미켈레로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흠. 어디로 새신 거지.”
미켈레는 지크의 알 수 없는 지각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통신실로 향했다.
그리고 비머리언 공방에 통신을 걸어 지크가 거기 있냐고 물어보았다.
“세 시간 전에 이미 아티펙트를 찾아가셨단 말씀이십니까? 아, 예. 알겠습니다.”
미켈레는 비머리언 공방으로부터 지크가 벌써 왔다 갔다는 이야기도 전해 듣고 또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전하께서는 어딜 간다면 간다고 말은 하고 가시는 분인데.”
미켈레는 잠깐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잠시 용무가 생기셨던 것이겠지.”
미켈레는 그렇게 생각하고 발걸음을 자신의 집무실로 돌렸다.
***
“크윽!”
지크는 폭포로부터 수 킬로미터 떨어진 강기슭을 빠져나오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런 지크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알림 : 경고, 경고!] [알림 : 골절이 심각합니다!] [알림 : 타박상이 심각합니다!] [알림 : 체온이 낮습니다!] [알림 : 캐릭터의 스태미나가 급속도로 하락합니다!]폭포 밑으로 다이빙을 했던 지크는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전속력으로 급강하해 폭포로 떨어질 때의 충격도 엄청났지만, 그보다 더욱 아팠던 건 다름 아닌 강 속의 암초들이었다.
폭포수 때문에 강의 유속은 엄청나게 빨랐다.
또, 물살 또한 엄청나게 거셌다.
덕분에 지크는 떠내려 오는 도중에 강 속의 바위들과 수십 번도 더 부딪혔고, 그때마다 엄청난 충격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곳 는 매서운 강추위가 휘몰아치는 곳.
이런 곳에서 강에 빠져 수 킬로미터를 떠내려 왔으니 지크의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아니?
이미 지크의 젖은 머리칼과 눈썹 등이 꽁꽁 얼어버려서, 손으로 잡고 힘을 주면 부러지고도 남을 정도였다.
‘일단 로그아웃하고 승구랑 천우진에게 도움부터 요청해야겠어.’
지크는 서둘러 강기슭을 떠나 를 켜 숲으로 향했다.
굳이 뛰지 않고 없는 마나에 를 이용해 날아서 이동한 이유는,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캬아아악!] [쿠오오오오오오오!] [캬악!]저 멀리 들이 하늘을 완전히 지배한 채 눈을 무섭게 부릅뜨며 지크를 찾고 있었다.
만약 뭉그적거리거나 발자국을 남겼다가는 미처 로그아웃하기도 전에 잡혀서 죽을 게 뻔한 일이었다.
“크윽!”
지크는 있는 힘껏 날아서, 눈에 보이는 가장 커다란 나무 아래로 몸을 숨겼다.
그런 뒤 를 삽의 형태로 바꾸어 나무의 밑을 파고들어가 몸을 웅크릴 만한 작은 은신처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큭. 옛날 생각나네.”
지크는 과거 제네시스 길드의 척살령을 피해 도망 다니던 시절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때의 경험 덕분에, 지크는 도망치는 걸 잘했다.
또, 도망치면서 적들을 기습하는 등 게릴라전을 펼치는 것에도 이골이 나 있었다.
거대한 집단 앞에서 나 홀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 보니 각종 생존 기술과 은신 방법, 그리고 기습 공격에 대해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던 것이다.
“그래, 한번 해보자고. 니들이 날 잡을 수 있나, 없나.”
지크는 적들을 향해 으르렁거리며, 만들어 낸 은신처로 기어들어 갔다.
그런 뒤 눈을 뭉쳐 입구를 막고 자그마한 숨구멍을 내놓았다.
그렇게 만들어낸 지크의 은신처는 매우 감쪽같아서, 어지간한 눈썰미가 아니고서는 발견해 내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다.
“후우.”
지크는 몸을 숨기자마자 아공간 인벤토리를 열어 포션을 벌컥벌컥 마신 뒤 곧바로 로그아웃 버튼을 눌렀다.
“두고 보자, 이 새끼들아.”
지크는 로그아웃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이를 부득부득 갈며 오즈릭 교단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
태성은 로그아웃하자마자 곧장 전화기를 들고 승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승구에게 현실에서 연락을 해 로 지원군을 부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삐 소리가 난 이후에는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그런데 승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게임하나? 아깐 안 하던 거 같은데.”
태성은 다시 승구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삐 소리가 난 이후에는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승구는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 좀 받아라.”
태성은 승구에게 여러 번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나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너로 정했다.”
태성은 승구가 전화를 받지 않자, 꿩 대신 닭이라고 천우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삐 소리가 난 이후에는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그런데 천우진도 전화를 받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 좀 받아라, 좀.”
태성은 승구와 천우진이 받을 때까지 거의 두 시간 동안이나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지만, 그건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아.”
태성은 답답함에 눈살을 찌푸렸다.
내일이 의 조별 예선이 시작되는 날이었기에, 지금으로부터 24시간 안에 캐릭터를 가까운 신전으로 이동시켜 놓아야 했다.
문제는 에 고립되어 있는 상황인지라 외부의 도움 없이 혼자서 신전까지 가는 게 불가능하단 거였다.
“기다려 보자. 으으.”
태성은 승구와 천우진이 부재중전화를 확인하고 연락을 해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왜?
섣불리 로그인했다가 적들에게 발각당하기라도 한다면, 캐릭터가 죽어버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혼자서 강행 돌파하는 건 외부의 도움을 받기 힘들 때 시도해도 늦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은 로그아웃을 한 채로 승구와 천우진의 연락을 기다리는 게 여러모로 나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