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594
593
“이번에도 실패라니. 으득!”
블라디미르는 워프 게이트를 향해 달리며 분노를 애써 집어삼켰다.
다 잡은 쥐새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 교활한 표적은 자신의 적들을 모조리 따돌리고 농락하면서, 끝끝내 자신을 도와줄 아군을 이곳 까지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
이제는 오즈릭 교단이 쥐새끼와 그의 지원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있었다.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 주객전도 현상이 발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으득!
블라디미르는 화가 났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오즈릭 교단이 병력의 숫자에서는 앞섰다.
그러나 질적인 측면에서는 프로아 왕국군이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3인의 용병왕은 죽기라도 했는지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고, 채형석과 게이머들 역시 이미 전멸해버린 것 같았다.
블라디미르가 제아무리 강자라고 한들, 만약 전투가 벌어진다면 나 홀로 만 명에 가까운 적들과 싸워야만 하는 것이다.
‘두고 보자.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네놈을 반드시….’
바로 그때였다.
“프로아를 위하여!”
“프로아를 위하여!”
“프로아를 위하여!”
오즈릭 교단의 병력 앞으로 프로아 왕국군이 나타나 힘찬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프로아를 위하여!”
왼쪽과 오른쪽에서도.
“프로아를 위하여!”
심지어 뒤쪽에서도 프로아 왕국군이 나타나 블라디미르와 정체불명의 괴생명체들을 사방팔방으로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므어어어어어어어-!!!]블라디미르는 자신의 귓가를 파고드는 소 울음소리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쿵쾅쿵쾅쿵쾅!!!
블라디미르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엄청나게 거대하면서도 무시무시하게 생긴 검은색 미노타우로스가 마치 전차처럼 돌진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미노타우로스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괴생명체들을 마치 허수아비라도 되는 것처럼 짓이기고 쳐내며 블라디미르를 향해 달려왔다.
[므어어어어어!!!]마수 마라넬로는 블라디미르를 발견하자마자 괴성을 내지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콰앙!
괴수 마라넬로의 주먹이 블라디미르의 몸통을 강타하고.
“커헉!”
블라디미르는 수십여 미터를 날아가 눈밭을 나뒹굴었다.
“커, 커헉! 뭐 이런 괴물이….”
블라디미르는 마라넬로의 주먹에 실린 파괴력에 경악했다.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주먹 한 방에 온몸이 마비되어 버려서, 회복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던 것이다.
그게 바로 마수 마라넬로의 무서움이었다.
마스터 등급의 강자인 블라디미르조차 단 한 방에 사지를 마비시켜 버리는 펀치력을 가진 괴물.
“모조리!”
바로 그때였다.
“단 하나도 남기지 말고 쓸어버리세요!”
지크의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지고 시뻘건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지크가 를 광범위하게 펼쳐 괴생명체들의 방어력을 날려버린 것이다.
저벅저벅-
지크는 전장을 여유롭게 거닐며 천천히 블라디미르를 향해 나아갔다.
“크윽!”
때마침 블라디미르는 마라넬로에게 얻어맞은 피해를 복구하고,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오즈릭 교단의 붉은 추기경, 블라디미르.”
지크가 블라디미르를 향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오래간만이네. 한… 다섯 시간 만인가?”
“큭… 쥐새끼 주제에.”
“누가 쥐새끼일까?”
지크가 그렇게 말했을 때.
쿠웅!
마수 마라넬로가 지크의 뒤에 버티고 선 채로 블라디미르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나 혼자선 못 이겨. 하지만 람보르기니 씨가 있다면 얘기가 다르지.’
지크는 솔직히 블라디미르를 일대일로 이길 수 없단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지크는 아직 을 넘기는커녕, 299레벨조차 찍지 못한 상태.
그런 지크로서는 천운이 따라주지 않는 한 블라디미르를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마수 마라넬로와 함께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마수 마라넬로는 마스터급 강자들조차 상대하기 버거운 괴물 중의 괴물이었기에,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크를 도와 블라디미르를 쳐부술 동료는 마라넬로뿐만이 아니었다.
“여보!”
브륜힐트가 천마 히페리온을 타고 나타나 빠르게 접근해오기 시작했다.
그런 브륜힐트의 뒤에는 엘프 왕국 엘론델의 들 역시 페가수스를 탄 채로 날아오고 있었다.
“미안해요! 잠시 엘론델에 들렀다가 이제야 소식을 들었어요!”
브륜힐트가 재빨리 날아와 지크의 곁에 자리를 잡았다.
“아니에요. 별일 아닌걸요.”
“별일이 아니긴요!”
브륜힐트는 그렇게 말하고는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블라디미르를 노려보았다.
“용서를 해줄 거란 생각 따위,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브륜힐트는 299레벨 중에서도 최상급의 강자.
사실 지크조차도 브륜힐트를 상대로 승리를 장담하기가 힘들었다.
그런 브륜힐트까지 합류했다?
‘이런 빌어먹을….’
블라디미르로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괴수 마라넬로만 해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지크에 브륜힐트까지 더해지니 싸움이 벌어진다면 패배가 거의 확실했기 때문이다.
“큭….”
블라디미르가 어이가 없다는 듯 자조 섞인 미소를 흘렸다.
“네깟 놈들이 나를 사냥하겠다는 건가? 지금?”
“그렇다면 어쩔 건데?”
지크가 한 발자국 앞으로 슥 나서며 블라디미르를 향해 이죽거렸다.
“네놈들은 날 잡을 수 없다.”
블라디미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이만 가보도록 하지.”
“누가 보내준대?”
“네놈이 보내주고 말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뭐라는 거야….”
지크가 어이가 없어 그렇게 중얼거릴 때였다.
스으으!
블라디미르의 육체가 희뿌옇게 옅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곧 붉은 안개로 변해 워프 게이트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안개화.
블라디미르는 육체를 붉은 안개로 만들어 물리적 장벽을 무시한 채 사물을 통과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
“……!”
지크는 블라디미르가 안개가 되어 날아가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안개화한 블라디미르는 그 어떤 장애물도 자신을 막을 수 없다는 듯, 괴생명체들과 프로아 왕국군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가 저 멀리 워프 게이트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아예 물리력이 통하지 않는, 마치 유령과 같은 상태로 말이다.
“이런 젠장!”
지크는 그런 블라디미르를 차마 그냥 보내줄 수 없어 재빨리 워프 게이트를 향해 뛰었다.
“죽어도 못 보내!”
지크는 그렇게 으르렁거리며 를 움켜쥐었다.
“내가 어떻게 널 보내!”
그러고는 안개화한 블라디미르를 향해 냅다 집어던졌다.
쒜에에엑!!!
그러자 가 스킬에 의해 안개화한 블라디미르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는 안개화한 블라디미르를 그저 휘익! 하고 관통했을 뿐 어떠한 피해도 입히지 못한 채 되돌아왔다.
물리력, 면역.
지금의 블라디미르는 붉은색 안개에 불과하기에 제아무리 강한 데미지를 머금고 있는 일지라도 아무런 소용도 없었던 것이다.
“망할!”
지크는 그 광경을 보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건 사기잖아!”
지크는 그렇게 소리치면서도 끝끝내 블라디미르를 포기하지 않고 쫓아갔다.
지이이이이이이이이잉-!!!
지크는 로 레이저포를 내뿜어 보았지만, 역시나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레이저포는 붉은 안개를 관통했을 뿐 역시나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안개화한 블라디미르는 워프 게이트에 거의 가까워져 있었다.
‘빌어먹을! 어떻게든 해야….’
바로 그때.
‘안개면 결국 입자란 소린데… 모든 입자를 얼려 버린다면 어떨까?’
지크의 뇌리에 좋은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생각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우웅!
지크를 중심으로 스킬이 전개되며 새하얀 필드가 뻗어나갔다.
‘너무 멀어! 이거 안 닿는 거 아냐?!’
지크는 스킬이 블라디미르를 잡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크의 걱정과는 다르게, 는 블라디미르를 아슬아슬하게 집어삼키는 데 성공했다.
‘닿았다!’
지크가 좋아하던 순간.
번쩍!
하얀 섬광이 빗발쳐 필드 위 모든 것을 얼려버리고.
쿵!
붉은색 얼음 덩어리가 눈밭을 나뒹굴었다.
스킬이 붉은색 안개를 이루던 입자 하나하나를 모조리 얼려버렸던 것이다!
‘기회다!’
지크는 이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즉시 모든 디버프 필드들을 깔아놓았다.
그러고는 저 멀리 블라디미르를 향해 스킬을 발동시킨 를 내던졌다.
쒜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을 머금은 가 붉은색 얼음 덩어리를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가 강타했다.
쨍그랑!!!
그러자 붉은색 얼음 덩어리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
“죽인… 건가?”
지크는 붉은색 얼음 덩어리들이 산산조각으로 깨져 눈밭 위에 흩뿌려진 걸 보고 어쩌면 블라디미르를 처치하는 데 성공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스륵, 스르륵!
그러나 붉은색 얼음 조각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녹더니 빠르게 합쳐져 블라디미르가 되었다.
정말이지 엄청난 재생력이 아닐 수 없었다.
“컥… 커헉! 쿨럭, 쿨럭쿨럭!”
하지만 재생력과는 별개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 블라디미르는 그야말로 만신창이 그 자체였다.
[블라디미르]•생명력 : □□□□□□□□□□
•마나 : □□□□□□□□□□
•스태미나 : □□□□□□□□□□
아니,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에 의해 얼려진 채로 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덕분에 완전히 빈사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빠르게 마무리만 하면 돼.’
지크는 그런 블라디미르의 모습을 보고 곧장 스킬로 를 움직여 최후의 일격을 날리려 했다.
지크와 블라디미르의 거리가 꽤 되었기에 스킬을 이용해 원거리에서 마무리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번-쩌어어어어어억!!!
블라디미르의 뒤에서 섬광이 번뜩이더니 뒤이어 수천, 수만 개의 오러 블레이드 무기들이 나타나 마치 총알처럼 빗발치기 시작했다.
‘이, 이건!’
지크는 이 갑작스러운 현상이 라는 걸 깨달았지만,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은 없었다.
쏴아아아아아아아!!!
오러 블레이드 무기들은 마치 지크에게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 거센 비처럼 쏟아져 내리며 무기의 장벽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지크는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왜?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내디뎠다간 오러 블레이드 무기들이 만들어낸 폭우로 걸어 들어가는 꼴이었으니까.
즉, 고슴도치가 되지 않으려거든 발걸음을 멈추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가자.”
가 워프 게이트를 타고 나타나 쓰러져 있던 블라디미르를 어깨에 들추어 업었다.
그런 뒤 의 벽 너머로 지크를 한 번 스윽- 보더니 이내 곧 워프 게이트를 타고 사라져 버렸다.
퍼엉!
뒤이어 워프 게이트가 폭발을 일으켰다.
지크가 쫓아가지 못하게끔 연결된 반대편 워프 게이트에서 폭파시킨 모양이었다.
“쳇.”
결국, 지크는 블라디미르를 놓치고 입을 삐죽였다.
“이걸 살아가네.”
하지만 지크는 그 이상 투덜대지 않았다.
‘하긴. 일대일로 붙어서 이겨야 의미가 있지. 이렇게 잡아서 사부님의 한을 어떻게 풀어.’
퀘스트의 목적은 과거 사부가 이기지 못했던 강자들의 후예들을 로서 제압하는 것.
일대일로 붙어서 이겨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이렇듯 여럿이서 잡거나 방금처럼 운이 좋아서 죽이는 건 딱히 의미가 있다고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여보!”
그때, 브륜힐트가 달려와 지크의 옆에 섰다.
“놓쳤어요.”
“아….”
“돌아가죠, 우리.”
지크는 미련을 훌훌 털어버리고 발걸음을 돌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