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599
598
의 한상기.
의 김한용.
의 박기돈.
그리고 의 김기태까지.
그들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게임에서 한국 리그를 석권하고, 나아가 세계 대회를 휩쓴 뒤 전설이 된 이들이었다.
비록 용태풍과는 달리 프로게이머로서는 완전히 은퇴를 했지만, 아직도 수없이 많은 게임 팬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 인사들이었다.
“서, 선배님들!”
태성은 레전드들의 등장에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재빨리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한태성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레전드들이 씩 웃으며 태성에게 인사를 해주었다.
“반가워요.”
“후배가 예의가 바르네.”
“아이고, 뭘 선배님까지. 그냥 아저씨들이에요, 아저씨들.”
“태성 씨라고 했던가요? 인물도 훤하니 좋네. 반가워요, 김기태라고 합니다.”
태성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아니! 이 양반들이 나를 왜 찾아와!’
태성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재빨리 경호실장에게 눈치를 주었다.
‘죄송한데, 빨리 마실 거라도 좀 사다 줘요. 부탁해요.’
‘예, 도련님.’
눈치 빠른 경호실장은 태성의 SOS를 귀신같이 알아듣고 음료를 사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선배님들, 일단 이쪽으로 앉으세요.”
태성은 재빨리 테이블을 치우고, 레전드들에게 소파를 내주었다.
“그런데 선배님들께서 여긴 어쩐 일로….”
“어쩐 일이긴.”
용태풍이 웃으며 말했다.
“그냥 우리 후배 얼굴 보러 온 거지. 불러도 안 오는데 직접 오는 수밖에 더 있나?”
“그, 그건….”
“농담이야, 농담.”
“하하….”
하지만 태성은 용태풍의 그 말이 결코 장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왜?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여태 대선배가 그렇게 한 번 만나자고 질척거린 걸 매정하게 거절한 게 어디 한두 번이었겠는가?
양심상 찔리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냥 오늘 일이 좀 있어서 온 김에 들른 거지. 마침 친구놈들이랑 온 김에 우리 후배 얼굴도 볼 겸 해서.”
“제, 제가 뭐라고… 이렇게 먼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늙은 아재들이 잘나가는 후배님 얼굴 보려면 먼저 와야지. 이 바닥에서 잘나가면 선배지 뭐.”
“그, 그럴 리가요!”
“농담이고. 우린 그저 앞으로 우리 뒤를 따를 후배님 얼굴을 한번 보고 싶었던 거야.”
“예?”
“우리가 비록 퇴물이 된 아저씨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소싯적엔 잘나갔잖아?”
“당연하죠!”
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 좋아하는 사람치고 선배님들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바로 그거야.”
용태풍이 웃으며 말했다.
“우린… 조카가 우리처럼 될 거라고 생각하거든.”
“예?”
“알면서 뭘 예야, 예긴. 후배도 우리처럼 세계를 씹어 먹을 거란 이야기지. 이 BNW란 게임에서 정점을 찍는 게이머 말야.”
“그건….”
태성은 용태풍의 말에 쉽사리 긍정하지 못했다.
속마음이야 게임 BNW의 정점을 찍겠단 각오가 있었지만, 그걸 감히 대선배들 앞에서 드러낸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록 저들이 배불뚝이 아저씨에 불과하지만, 한때는 지금의 태성 따위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커리어를 이룩한 사람들이었다.
즉, 굼벵이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인 것이다.
‘아니지.’
하지만 문득 다른 생각도 들었다.
‘포부 밝히는 게 뭐가 나빠? 사람은 누구나가 꿈이 있는데.’
태성은 그런 생각이 스치자 용태풍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 솔직히 그게 제 목표입니다.”
태성이 그렇게 말하던 순간.
“크핫핫핫핫!”
“오호!”
“암! 그래야지!”
“크으! 패기 보소?”
“좋구나!”
용태풍을 포함한 레전드 다섯 명은 그런 태성의 답변이 매우 마음에 들었는지, 너무나도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뭐, 뭐지?’
그 모습이 마치 손자의 재롱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어르신들 같아서, 태성은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태성이 모르고 있는 게 있었다.
게임 속에서만 존재할 것 같았던 태성의 특별한 재능!
의도하지 않아도 중년 이상의 남성들을 사로잡게 되는, 이른바 이 발동되었다는 것을!
“좋아, 좋아.”
용태풍이 흡족한 미소를 피워 올리며 태성에게 말했다.
“그리고 내가 말했지? 프로게이머하게 될 거라고?”
“그게… 어쩌다 보니….”
“사람 팔자란 게 그래. 누군 처음부터 프로게이머 하려고 했나? 다 운명이 자연스럽게 이끌어주는 거야.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길을 걷게 돼.”
“네.”
태성은 굳이 용태풍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아무튼, 오늘 경기 파이팅이야.”
“감사합니다.”
“적진에 정찰 왔다가 덕담만 하고 가겠네, 이거.”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오늘 내 딸이랑 경기하잖아?”
가상 현실 게임이 보편화된 시대에서는 게임 리그에 남녀의 구분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예에?!”
태성의 눈이 크게 떠졌다.
딸이라니?
그렇다면, 오늘 4강 경기의 상대 선수인 용설화가 용태풍의 딸이란 말이 아닌가?
“설마 몰랐어?”
“어… 그게….”
“허허허.”
용태풍이 허탈하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상대가 누구인지 관심도 없다 이거지?”
“아, 아닙니다! 플레이 스타일 분석 영상만 보고 딱히 개인사적인 부분은 신경 안 써서….”
“그럴 수 있지. 좋은 자세야.”
“죄, 죄송합니다.”
“알긴 아네? 삼촌 딸이 누구인지는 알아야지! 이거 섭섭해?”
“예….”
“됐어. 뭘 그런 걸 가지고.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지. 아무튼, 오늘 경기 건승해!”
“예! 선배님!”
“그냥 삼촌이라고 불러. 게임 속에서도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무슨.”
“예! 삼촌!”
“이따 봐. 삼촌은 딸내미 대기실에 가봐야 해서. 우리 딸내미가 질투하겠어. 딸 대기실보다 후배 대기실을 먼저 찾았다고.”
“하하… 하하하….”
용태풍은 그렇게 말하고는 레전드들과 함께 태성의 대기실을 나섰다.
“아, 그리고 조카.”
“예?”
“이 친구들 BNW 시작했어.”
“헉?”
“다음번엔 게임에서 만날 것 같으니까, 그때 보자고.”
“알겠습니다!”
태성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용태풍과 레전드들을 배웅해 주었다.
***
태성의 대기실을 나선 후.
“어때? 딱 봐도 감이 오지?”
용태풍이 레전드들, 그러니까 자신의 친구들에게 물었다.
“젊은 친구가 포스가 있던데?”
“킁킁! 냄새가 나. 냄새가.”
“크게 될 놈이야.”
“우리랑 비슷한 부류지 뭐. 기대가 되네.”
레전드들은 하나같이 태성을 높이 평가했다.
사람을 한 번 보고 그걸 어떻게 알겠느냐마는, 레전드들의 눈은 달랐다.
동물적인 본능이랄까?
아니면 동족은 동족을 알아봐서일까?
과거 한 게임의 정점을 찍어본 고수들답게, 레전드들은 태성을 보고 그 잠재력을 알아보았다.
물론 그 전에 태성의 플레이 영상을 보기도 했고.
그래서 레전드들은 태성이 지금 시대를 풍미하는 게임인 BNW의 정점을 찍을, 장차 자신들처럼 레전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태성으로서는 정말이지 영광이 아닐 수 없는 후한 평가였다.
“그러니까 소개시켜 준 거 아냐. 니들 수발들기에 저만한 놈이 어디 있겠냐?”
용태풍이 레전드들을 향해 말했다.
“그건 그래.”
“보니까 예의도 바른 것 같던데, 우리 같은 노친네들 공경도 잘하겠지.”
“역시 빨대를 꽂으려면 영양가 높은 놈한테 꽂아야지.”
“딱 보니 승차감도 좋게 생겼던데. 후후후.”
레전드들은 용태풍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며 흡족하게 웃어댔다.
그리고 같은 시각.
오싹!
태성은 알 수 없는 오한에 몸을 떨었다.
“뭐, 뭐지? 귀신이라도 지나갔나?”
태성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귀신이 아닌 노친네들이 들러붙었단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
“한태성 선수. 경기 곧 시작합니다.”
“네.”
태성은 진행요원의 안내에 따라 대기실을 나서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15분 후.
태성은 모험가 지크프리트가 되어 뉘르부르크 대륙에 강림, 햄찌와 함께 으로 향했다.
‘엄청 많네.’
지크는 결투장을 가득 채운 V스포츠 전문 기자들을 보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경기장 안에는 그 여느 때보다 더 많은 기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4강전.
이번 경기의 승자가 이미 결승전에 진출한 카오신과 함께 의 최종 우승자를 확정하기에, 언론의 관심 역시 어마어마하게 뜨거웠던 것이다.
그리고 기자들이 이렇듯 많이 모인 이유에는, 이번 경기야말로 제대로 된 대결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컸다.
온라인 예선부터 4강까지 전승을 기록하고, 1경기당 1분 30초를 넘기지 않은 지크.
비록 전승은 아니지만, 단 1패만을 기록하고 올라온 지크의 상대.
두 사람의 지난 경기들이 워낙에 싱겁고 빨리 끝나서, 이번 가 라고 비아냥거리는 여론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진짜 수준 높은 강자들이 붙게 되었으니, 볼만한 경기가 펼쳐질 것이었기 때문이다.
“양 선수, 앞으로. 경례!”
지크는 심판의 지시에 따라 햄찌와 함께 결투장으로 나아가 상대방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빠한테 말씀은 많이 들었어요.”
지크의 상대.
용태풍의 딸이자 이름 그대로 란 ID를 사용하는 게이머가 지크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용설화는 아버지인 용태풍을 닮아 훤칠한 키에 성숙미 넘치는, 마치 조선 시대 사대부집 아녀자와 같은 단아한 분위기의 미녀였다.
“기대되는 후배라고 하시더군요.”
“아, 그게… 하하. 그냥 귀엽게 봐 주시는 거 아닐까요?”
“그럴 리가요.”
용설화가 고개를 저었다.
“아빠는 냉정하신 분이세요.”
“그, 그래요?”
“아빠가 기대되는 후배라고 했으면, 엄청난 실력자란 소리죠.”
“하하. 하하하….”
“한 수 부탁드려요.”
“저 역시….”
“시작할게요.”
그와 동시에 용설화가 버튼을 눌렀다.
지크 역시 버튼을 눌렀다.
[3, 2, 1….] [Fight!]그렇게 시작된 지크와 용설화의 제1차전 경기.
“방어부터!”
용설화는 결투가 시작되기가 무섭게 골렘 세 마리를 소환해 지크의 빠른 기습을 원천봉쇄했다.
쿵, 쿠웅!
용설화는 크리스털 골렘, 아이스 골렘, 파이어 골렘을 불러내 골렘의 장막을 펼친 뒤 곧장 석궁을 들고 지크를 원거리에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피융, 피융, 피융!
그러자 강력한 위력을 품은 강철 화살이 지크를 향해 날아들었다.
‘판을 잘 짜왔어.’
지크는 그런 용설화의 초반 경기 운영에 감탄하며 곧장 와 을 깔았다.
그러고는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며 로 결투장 바닥을 냅다 내리찍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뒤이어 스킬이 용설화와 골렘들을 향해 부채꼴 형태로 뻗어나갔다.
‘봐주는 거 없이 속전속결이야.’
지크는 용설화가 용태풍의 딸이든 아니든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늘 경기를 빨리 끝내고 결승전에서 카오신을 쳐부수고 싶은 마음뿐이었던 것이다.
‘저기다.’
지크는 용설화와 골렘들이 스킬을 피하기 위해 뛰는 걸 보고 자신도 같이 뛰었다.
용설화가 어느 방향으로 피할지를 미리 계산해내고, 예측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쒜에엑!
지크는 그러면서 를 내던져 용설화를 견제하는 한편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근접 격투를 시도하려 했다.
그런데.
팟!
지크는 용설화가 순간적으로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진 걸 보고 화들짝 놀랐다.
‘설마 텔레포트?!’
그 생각이 뇌리를 스치기가 무섭게.
쒜에에엑!
지크는 자신의 귓가를 파고드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몸을 굴렀다.
다음 순간.
콰아아앙!
용설화가 휘두른 철퇴가 지크가 있던 자리를 무자비하게 내리찍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