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6
005
캐릭터 초기화라니?
‘인포, 인포!’
태성은 다급히 항목을 불러내 현재 자신의 상태를 체크했다.
현재 태성의 상태는 다음과 같았다.
[내 정보]이름 : 태성
레벨 : 1
존재 구분 : 모험가 (플레이어)
클래스 : 제자
말 그대로 초기화.
정화의 호수에 의해 정화된 태성은 1레벨 초보자 상태가 되어 있었다.
91이었던 레벨이 불과 한 시간 만에 1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 레벨이….”
태성은 망연자실했다.
가진 건 레벨밖에 없던 태성이었는데, 91이었던 레벨마저 1이 되어 버렸으니 억장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오호라!”
그때, 잠자코 태성을 지켜보던 사부가 쾌재를 불렀다.
“정화가 성공적으로 끝났구나! 껄껄!”
“…사부님.”
태성이 사부를 향해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왜 제 레벨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
“예…?”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네 녀석은 쓰레기였느니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근력, 체력, 마나. 기타 등등.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이 말이니라. 그따위 불균형한 성장을 이루고도 어찌 이기는 자가 되길 바란단 말이냐, 이 양심도 없는 제자 놈아!”
망캐.
지금 사부는 태성이 망캐였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
“그런 것입니까?”
태성은 그제야 사부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었다.
만약 태성의 스탯 분배와 스킬트리가 불균형했단 게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태성을 초기화시킨 사부의 판단은 지극히 옳았다.
하지만 그 방법이 비효율적이었다.
BNW는 스탯과 스킬의 재분배가 정말로 어려운 게임이었지만,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스탯 포인트를 초기화시켜 주는 .
스킬트리를 초기화시켜 주는 .
스탯 포인트와 스킬 포인트, 그리고 직업까지 모두 초기화시켜 주는 까지.
세 가지 아이템 모두 레벨은 그대로 유지시켜 주면서, 투자한 포인트를 되돌려 받는 게 가능했다.
현금가 100억 원이 훌쩍 넘을 만큼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태성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물론 허접한 약물들을 통해 자신을 재성장시킬 수도 있겠지.”
사부가 태성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그런 너저분한 방법은 내 가르침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째서입니까?”
태성이 물었다.
“되새김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마치 짐승들이 제 똥을 처먹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예?”
“사람이 그대로인데 다시 성장해봤자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하수는 영원한 하수일 뿐. 제깟 놈들이 제아무리 짱구를 굴려서 자신을 뜯어고쳐 봐야 얼마나 강해지겠느냐? 큰 깨달음이라도 얻었다면 모를까, 결국엔 제자리일 수밖에 없다.”
그럴듯한 논리였다.
“하지만 사부님.”
그러나 태성에게도 나름의 논리라는 게 있었다.
“저 같은 경우엔 사부님께서 바른길을 가르쳐 주시면 되잖습니까. 굳이 레벨까지 초기화시킬 필요는….”
“이 멍청한 녀석!”
사부가 태성을 나무랐다.
“그런다고 네놈의 형편없는 자질이 나아진다더냐?”
“예?”
“네놈은 타고나기를 강해질 수가 없게 태어났다. 그런 네놈이 다시 성장을 이룬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으냐? 천만의 말씀이다!”
“……!”
“난 네놈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뜯어고쳐 잠재력을 극한으로 이끌어 낼 것이다. 남들이 1의 마나를 얻을 때, 1.2의 마나를 얻도록 해주겠다. 이 말이다.”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렇다. 이 과정을 이겨내고 나면, 네놈은 남들보다 평균 20퍼센트 이상의 성취를 이룰 것이니라.”
“헉!”
태성이 놀랐다.
사부의 말이 사실이라면, 캐릭터의 초기화가 결코 손해라고 볼 수 없었다.
남들의 마나가 1 올라간다고 가정했을 때, 태성은 1.2가 올라갈 터였다.
남들의 마나가 10 올라간다고 가정했을 때, 태성은 12가 올라갈 터였다.
그러다 보면 남들이 마나를 100 올렸을 때, 태성은 120의 마나를 소유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차이는 고레벨로 올라갈수록 더 벌어지게 될 테고, 남들이 스킬을 열 번 사용할 때 태성은 스킬을 열두 번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또, 투자 대비 마나의 상승 폭이 크니 남는 스탯 포인트를 다른 곳에 투자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사부님이 날 초기화시키신 이유가 있었구나!’
태성은 그제야 사부의 생각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잠재력의 극대화!
그게 사부의 교육 방식인 모양이었다.
“사부님.”
태성이 사부를 향해 넙죽 절했다.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절 받으십시오.”
“껄껄! 제자야! 고작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리 고마워하는 것이냐! 아직 고마워하기엔 이르다! 내 너를 홀로 외로이 패배를 갈구하는 자로 만들어줄 것이니, 네 녀석은 그때 가서 감사하도록 해라. 껄껄껄!”
사부는 그리 말하면서도 태성의 절을 받는 게 못내 흐뭇한 듯 연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홀로 외로이… 패배를 갈구하는 자라 하심은….”
“최강자는 외로운 법! 제발 패배라도 하길 바랄 정도로 외로운 자가 되어라. 그리고 독보(獨步)하도록 해라! 최강자는 무릇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 다 해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사부가 소리쳤다.
그 외침이 태성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솔플러가 되란 이야긴가?’
누가 게이머 아니랄까 봐 솔플하란 소리로 알아들은 것이다.
그런 사부의 말이 진짜 솔플러가 되란 이야기라는 걸 이때의 태성은 알지 못했다.
***
태성은 사부의 가르침을 충실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정화의 호수는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했다.
“여기 눕도록 해라.”
“예, 사부님.”
“지금부터 네게 8만 4,000개의 침을 놓을 것이다.”
“예?”
태성은 제 귀를 의심했다.
‘날 고슴도치로라도 만드시려는 건가?’
정화의 샘물을 통한 캐릭터 초기화야 이해했지만, 어째서 8만 4,000개나 되는 침들을 놓겠다는 건지는 도통 모를 노릇이었다.
아니, 애초에 인간의 몸에 그 많은 숫자의 침이 꽂힐 수 있는지조차 의문이었다.
“…되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났을 때, 태성은 인간의 몸에 8만 4,000개의 침이 꽂힐 수 있다는 걸 몸소 확인할 수 있었다.
“으악, 으아아아아아악!!”
고통은 정화의 호수에 들어갔을 때보다 심했다.
가늘고 긴 침이 장기를 제외한 신경 깊숙이 파고드는 느낌이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고통이었다.
다음 과제는 더 심했다.
“자, 이번엔 여기다.”
사부가 웬 초록색 웅덩이를 가리켰다.
부글부글!
웅덩이 안에는 칙칙한 초록 빛깔 액체들이 기분 나쁘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딱 봐도 평범한 물이 아닌 게 분명했다.
“이게 뭡니까?”
“오염 못이니라.”
“오염 못이요?”
“그렇다. 이 사부가 널 위해 시체의 내장에서 꺼낸 오물, 썩은 개구리, 바퀴벌레, 108가지 독초 등등을 우려내 만든 곳이지.”
“도대체 뭐 하는 곳입니까?”
“뭐 하는 곳이긴. 깨끗해진 네놈을 다시 더럽혀줄 곳이지.”
“그게 무슨 개짓거리….”
“죽고 싶으냐?”
“죄송합니다.”
태성은 혹시나 꿀밤이라도 맞을까 사부에게 곧장 사죄했다.
“근데 왜 정화를 시켜놓고 다시 더럽힙니까? 기껏 정순한 육체를 얻었는데.”
“담금질이다.”
“담금질….”
“네 녀석의 육체를 통풍이 잘되게끔 만드는 과정이지. 이 과정을 100번 정도 거치고 나면, 네 녀석의 육체는 마나의 흡수와 발산이 아주 자유로워질 것이니라.”
“지금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사부의 설명을 들은 태성은 망설임 없이 오염 못으로 들어갔다.
“으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역시나 오염 못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 과정을 100번이나 반복한다고?’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태성은 이 과정이 무려 100번이나 반복될 것이란 사부의 말을 믿지 않았다.
***
담금질은 정말로 100번이 반복되었다.
태성은 100번의 담금질을 반복하는 동안 고통에 익숙해졌다.
처음 30번은 당장에라도 로그아웃을 해버리고 싶을 정도로 참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50번을 넘어가자 슬슬 적응되는 듯하더니, 70번째가 되었을 무렵에는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그리고 90번째가 넘어가자, 태성은 마치 온천을 즐기는 것처럼 탕 안에서 콧노래를 부를 수가 있게 되었다.
“음. 시원해.”
고통을 느끼다 못해 즐기는 경지에까지 이른 태성이었다.
[알림 : 정화, 완료!] [알림 : 플레이어의 캐릭터가 초기화됩니다!]그렇게 태성이 무려 100번의 캐릭터 초기화를 모두 견뎌내었을 때, 사부는 그런 태성을 칭찬했다.
“오호라! 네 녀석의 인내력이 실로 보통이 아니구나!”
“감사합니다, 사부님.”
“그래, 이제 되었느니라.”
사부가 정화의 호수에서 나오는 태성을 향해 수건을 내밀었다.
“이제 네 녀석의 육체는 마나의 흡수와 발산이 매우 자연스러워지게 되었다.”
“그렇습니까?”
“아직은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빠른 시일 내에 본좌의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될 것이다.”
태성은 그런 사부의 말에 은근슬쩍 ‘내 정보’ 항목을 오픈, 현재 자신의 상태를 체크해 보았다.
‘어?’
그리고 놀랐다.
‘이거 완전 축캐잖아?’
자신의 현재 상태가 수억 명에 달하는 플레이어들 가운데 1레벨 스탯이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현재 태성의 스탯 현황은 다음과 같았다.
•생명력 : 200/200
•마나 : 300/300
•스태미나 : 150/150
가장 기본적인 생명력, 마나, 스태미나의 수치가 1레벨 캐릭터치곤 비정상으로 높았다.
보통의 1레벨 캐릭터들의 생명력, 마나, 스태미나의 수치가 각각 100, 100, 100 정도 수준에서 ±10 정도가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격력 : 25
•주문력 : 20
•근력 : 25
•민첩성 : 25
•지능 : 20
•방어력 : 30
•항마력 : 30
•부동성 : 30
나머지 항목들 역시 1레벨 캐릭터치곤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캐릭터 생성 시 굴리게 되는 주사위 게임-총 세 번을 굴려 자신의 스탯을 결정짓게 된다-에서 결코 나올 수 없는 수치였다.
즉, 태성은 1레벨 주제에 무려 10레벨에 해당하는 스탯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이래서 날 담금질시키셨던 거야!’
태성은 사부가 왜 자신을 100번이나 정화의 호수와 오염 못에 빠뜨렸는지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담금질이라더니, 진짜로 육체 개조를 시켜놓을 줄이야.
“자, 이제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었구나.”
“예?”
“본격적인 가르침을 시작할 터이니, 너는 각오를 단단히 하도록 하여라.”
“…아.”
태성은 로그아웃 버튼을 누를 뻔했다.
***
그 후.
태성은 사부로부터 가르침을 빙자한 폭행, 인격 모독, 가혹 행위를 당하며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담금질의 고통은 애들 장난에 불과할 정도로 끔찍한 고행이 이어졌다.
‘참자, 참아내야만 한다.’
태성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벼랑 끝.
궁지에 몰린 태성이 믿을 건 오직 사부의 가르침뿐이었다.
이마저 버텨내지 못한다면 죽음뿐이란 각오로 사부의 가르침을 따랐다.
그렇게 98일이 지났을 때.
“네 녀석의 성취가 깊어졌으니, 이제 하산해도 무리가 없겠구나.”
사부로부터 하산 명령이 떨어졌다.
‘드디어!’
태성은 감격했다.
‘그 지옥 같은 나날들을 버텨내다니!’
그런 태성의 뇌리에 지난 3개월 동안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태성은 3개월간 게임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지옥을 맛보아야만 했다.
빚을 갚진 못해도 은행 이자는 막아야 했기에 밤잠을 줄여 가며 공사판을 전전하는 등 24시간이 모자란 삶을 살았다.
오직 사부 하나만을 바라보고 버틴 시간.
사부의 가르침을 충실히 받아들이면 강자가 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없었다면, 태성은 힘든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십중팔구 도망쳐 버렸을 것이다.
희망이 있었기에 98일이란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어차피 도망칠 수도 없었고.
사부로부터 도망쳐 다시 레벨을 올리고, 또 아이템을 맞춰 봐야 태성은 저 높은 곳에 있는 자들을 이길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사부님.”
태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부님은 저를 99일 동안 가르치실 것이라 하셨는데, 벌써 98일이 지났습니다.”
“그렇지.”
“고작 하루밖에 남지 않았는데 사부님을 계승하는 게 가능합니까?”
“가능하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본좌는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스승이지, 물고기를 잡아다 주는 스승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는 아무 말 말고, 내일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본좌를 찾아오도록 하여라. 내일이야말로 본좌의 비전절기를 전수하여 줄 터이니.”
“예, 사부님!”
태성은 차오르는 감격에 겨워하며 내일을 기약했다.
사부의 비전 절기.
아무리 물어보고, 또 물어봐도 대답은 늘 비밀이라던 999레벨 히든 NPC의 스킬을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