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606
605
“민머리 대머리 맨들맨들 빡빡이♬”
지크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동요(勞動謠)를 부르며 카오신의 머리털을 뽑아 버리려던 순간.
펑, 퍼엉!
지크의 양옆에 천사의 날개가 달린 와 두 개의 뿔에 박쥐 날개를 단 가 나타나더니 속삭이기 시작했다.
와 는 게임 시스템이 만들어낸 게 아니었다.
그들은 지크의 내적 갈등이 만들어낸 일종의 환영이었다.
[야. 다 뽑아버려. 본때를 보여줘야지.]가 지크에게 속삭였다.
[하던 대로 해. 왜 망설여?]그러자 가 곧장 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면 안 돼. 이미지 관리도 해야지.]‘이, 이미지… 관리?’
[팬들이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 게임 잘하지. 인성 바르지. 얼굴 잘생겼지. 그런 니가 이렇게 결승전에서 상대를 대머리로 만들어 버리면 팬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상대 선수를 욕보였다고 인성이 쓰레기라고 실망할 거야.]‘그, 그런가?’
[그럼그럼!]‘하긴… 이제 얼굴도 다 팔렸는데 이미지 관리가 중요하긴 하지.’
그러나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니가 언제부터 이미지 관리 같은 거 했다고 그래?]‘으응?’
[니가 여태 저지른 인성질이 한두 건이냐?]‘그, 그건!’
[너 인성 쓰레기인 거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이제 와서 뭔 놈의 이미지 관리? 걸레는 빨아도 걸레인 거 몰라?]‘힝….’
[해버려. 대머리를 만들어 버리란 말야.]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의 속삭임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 또다시 반론을 제기했다.
[아무리 그래도 대머리는 너무했잖아.]‘그런가?’
[명경기 보여줘 놓고 막판에 그런 사악한 짓을 꼭 해야 해? 그리고 여성 팬들도 생각해야지.]‘여성 팬들이라….’
[여자들은 인성이 시궁창인 남자를 좋아하지 않아!]‘으음!’
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가 또다시 속삭였다.
[개소리! 여자들은 나쁜 남자 좋아하는 거 몰라?]‘나쁜 남자라….’
[나쁜 남자가 대세라고. 착한 남자는 호구일 뿐이야.]‘난 호구 싫은데….’
그렇게 지크는 와 사이에 끼어 혼란스러워했다.
[그냥 깔끔하게 끝내! 유종의 미를 거둬!] [하고 싶은 대로 해! 대머리를 만들어 버리라고!] [이미지 관리해야지!] [너 어차피 걸레야! 빤다고 달라져?]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냐!] [저 자식은 당해도 싸!]와 는 끊임없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며 지크의 골머리를 썩였다.
“으으… 어떻게 하지… 어떻게….”
지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그러던 중.
“이미지 관리….”
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는가 싶던 순간.
“…는 개뿔!”
지크가 카오신의 머리채를 다시 움켜쥐었다.
“크흐흐! 난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결국, 지크는 어설픈 이미지 관리를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맘이 내키는 대로 살기를 선택했던 것이다.
게다가 카오신은 지크에게 저질렀던 잘못들이 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오즈릭 교단에 영혼까지 팔아넘긴 인간이었다.
이미지 관리고 나발이고, 카오신은 도저히 봐줄 만한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정을 내린 후.
“민머리 대머리 맨들맨들 빡빡이♬”
지크는 아까 부르던 그 정체불명의 노동요를 부르며 카오신의 머리털을 모조리 손으로 뽑아 대머리를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지크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 저, 저게 뭡니까!
– 아… 정말이지… 무시무시합니다.
– 악마도 울고 가겠네요.
사람들은 지크가 다음에 벌인 일을 보고 그야말로 경악해 아예 질려버리고 말았다.
지크는 머리털을 뽑아버리는 걸로 끝내지 않았다.
지크는 머리털이 모조리 뽑혀 맨들맨들 민둥산이 되어버린 카오신의 두피에 를 가져다대었다.
문제는 에 강력한 화속성 에너지가 실렸다는 것.
치이이이이이익!
지크는 카오신의 두피를 화속성 에너지를 이용해 아예 지져버렸다.
카오신의 캐릭터에 탈모 유전자가 있는 게 아닌 한 머리카락은 어차피 다시 자라날 것이었으므로, 아예 모근을 불로 지져서 파괴해버렸다.
완벽한 대머리를 만들어 내기 위한 방법이랄까?
그냥 머리털이 빠지면 다시 자라난다.
하지만 의 위액에 모근까지 홀라당 녹아버린 승구처럼, 특정 조건이 갖추어지면 이야기가 다르다.
중요한 건 단순히 머리털을 뽑는 게 아니라 인 것이다.
“으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카오신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망치가 두피를 지지는 고통에 자지러지듯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지크는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신이 나서 카오신의 두피를 꼼꼼하게 지져버렸다.
“고객님 두피 건강이 별로 안 좋으시네요.”
“으악! 으아아악! 으악!”
“제가 깔끔하게 소독해 드릴게요.”
“으아아아악!”
“크흐흐흐흐흐흐흐흐!”
결국, 지크는 카오신의 두피 구석구석을 모조리 불로 지져버린 후에 분풀이를 끝마쳤고.
털썩!
카오신은 생명력이 0이 되어 쓰러졌다.
– 겨, 경기! 끝났습니다!
– 슈퍼루키 토너먼트! 결승전 3경기의 승자는 한태성 선수입니다!
– 한태성 선수가 슈퍼루키 토너먼트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렇게 지크는 5판 3선승제의 결승전에서 카오신을 3연속 이김으로써 우승자의 자리에 등극하게 되었다.
***
경기가 끝난 후.
“여보!”
“아빠빠!”
지크는 아내 브륜힐트와 딸 베르단디에게 뽀뽀를 받고 축하를 받았다.
그리고 그 장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어 수많은 게임 팬들의 부러움을 샀다.
초미녀 NPC 아내와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NPC 딸에게 승리를 축하받는 모습이란, BNW를 플레이하는 게이머라면 남녀를 불문하고 부러워할 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오직 두 사람.
“우리 태성이가… 게임에서….”
“오빠….”
게이머 한태성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그런 지크프리트 캐릭터와 그 가족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돈 잘 벌지.
게임 잘하지.
키 훤칠하지.
잘생겼지.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는 아들이자 오빠가 현실에서 연애를 하기는커녕, 게임 속에서 NPC와 결혼해 애까지 낳고 저러고 있다는 걸 보고 있노라니 속이 터졌던 것이다.
‘경기 끝나면 얘기 좀 해봐야겠어.’
‘오빠가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아.’
어머니와 여동생은 경기 후 태성과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눠 보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러는 사이.
“다녀올게요.”
“네, 여보.”
“다녀올게.”
“아빠빠!”
지크는 브륜힐트와 베르단디에게 그렇게 말한 후 시상식을 위해 로그아웃했다.
뒤이어 진행된 시상식.
시상식의 분위기는 다소 애매했다.
왜냐하면, 태성이 권오신을 대머리로 만들어버린 사건 때문에 여론이 들끓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방송 경기에서 이렇듯 상대방을 처참하게 짓밟는 장면은 어지간해서는 나오지 않았기에, 분위기가 다소 어수선한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시상식은 대회의 규모에 걸맞지 않게 다소 조용하게 진행되었고, 태성은 우승 트로피를 한 번 들어 올린 후 곧바로 무대에서 퇴장했다.
그리고 따로 마련된 자리에서 승자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멘탈이 완전히 나가 실성한 사람처럼 보이는 권오신과 같은 무대에서 인터뷰를 진행한다거나, 승자와 패자의 악수 같은 걸 진행시키기에는 주최 측 입장에서도 무리가 따랐기 때문이다.
“한태성 선수. 일단 우승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진행된 우승자 인터뷰.
“한태성 선수.”
“네?”
“그게….”
인터뷰의 진행을 맡았던 아나운서가 태성을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결승전 마지막 경기에서 보여 주셨던 마무리… 뭔가 이유가 있는 것이었습니까?”
“아, 그거요.”
태성이 아나운서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대답했다.
“권오신 선수랑은 악연이 좀 있었거든요.”
“예?”
“여기에 다 담겨 있으니까, 보시고 참고해 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태성이 아나운서에게 USB 메모리칩을 내밀며 말했다.
“저한테 누명을 씌우고, 쌍욕을 퍼붓더라고요. 오늘 경기 중에도 알게 모르게 저한테 계속 쌍욕을 하셔서 굉장히 기분이 불쾌했던 게 사실이고요.”
“그, 그랬습니까?”
“그건 제가 녹화한 파일인데, 주최 측 오프 더 레코드 파일에도 녹음돼 있을걸요?”
“그, 그렇군요!”
“솔직히 제가 참았으면 된 건데, 너무 화가 나서….”
태성은 그렇게 말하며 권오신의 캐릭터를 대머리로 만든 걸 후회한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제가 참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권오신 선수에게 사과하고 싶어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일단 자료 화면이 준비되는 대로 함께 보시겠습니다.”
그로부터 1분 후.
– 이 X발놈이….
– 죽여 줄게, 이 X새끼야.
– 아주 회를 떠줄게, 이 X새끼야.
– 넌 이제… 뒤졌어, 이 새끼야. 큭큭.
권오신이 태성에게 내뱉었던 쌍욕이 삐- 처리된 채 방영되기 시작했다.
***
그건 주최 측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다.
태성이 막판에 권오신을 대놓고 짓밟은 것 때문에 여론이 들끓어서, 이렇게라도 해야 했던 것이다.
지금의 주최 측으로서는 우승자인 태성을 띄워주고, 패배했던 권오신을 그래도 싸단 여론을 만드는 게 이번 논란을 가라앉히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했고.
“아, 저런 일이 있었군요.”
아나운서가 권오신의 욕설 장면을 보고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그러셨던 겁니까?”
“제 잘못입니다.”
태성이 진심으로 반성하는 척 살짝 고개를 숙이고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권오신 선수의 승부욕이 너무 세서 그런 거였는데, 제가 한순간의 화를 못 참아서….”
“하하….”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 없도록 마음을 잘 다스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일로 실망하신 팬 여러분께도 죄송하단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네요.”
“아, 예. 한태성 선수의 입장, 잘 알겠습니다. 너무 마음 쓰지 마시죠. 기쁜 날 아닙니까? 우승하셨습니다! 우승!”
“감사합니다. 그리고….”
“예?”
“이번에 우승 상금 50억 원 중에서 절반인 25억 원을 이번 태풍 피해 수재민 여러분께 기부하겠습니다.”
“예?!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아나운서는 태성의 폭탄 발언에 놀랐다.
무려 25억 원을 기부하겠다니?
정말이지 엄청난 액수가 아니던가?
그러나 태성에게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안 그래도 세금 내느라 빠듯한데 이렇게라도 써야지.’
태성은 최근 늘어나는 수익 덕분에 세금 문제로 매우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돈을 좀 쓸 필요가 있었는데, 때마침 적당한 구실이 생겼다고 볼 수 있었다.
세무사가 기부금에 따른 세제 혜택이 있다는 걸 말해준 기억이 났던 것이다.
‘이 기회에 좋은 일도 하고 이미지 반전도 꾀하는 거지. 수재민분들 힘드신 것 같던데. 좋은 일 하는 거다. 이걸 꿩 먹고 알 먹기라는 건가? 후후. 돈이 좋긴 좋아?’
어차피 태성에게 25억쯤은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벌어들일 수 있는 금액이기도 했고.
덕분에 태성에 대한 여론은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권오신이 시도 때도 없이 태성에게 쌍욕을 퍼붓고 도발했던 게 알려지면서, 당해도 싸단 여론이 절대적으로 우세해졌던 것이다.
게다가 25억 원의 거금을 기부하겠단 약속까지 방송을 통해 했으니, 태성에 대한 여론이 180도 달라지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태성은 다시 의 우승자로써 모든 게임 팬들에게 축하를 받게 되었고, 권오신의 이미지는 나락까지 추락해 버렸다.
사실 예전부터 권오신의 이미지가 워낙에 안 좋았던 탓에, 여론이 빨리 바뀐 것도 있었다.
“그럼, 한태성 선수. 우승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멋진 활약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태성은 신들린 연기력으로 3경기의 그 무시무시한 인성질을 적당히 잘 수습하고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기다리는 대기실로 향했다.
그러던 중.
“어?”
태성은 대기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걸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태성 오빠.”
용태풍의 딸 용설화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