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612
611
“뀨, 뀨우?!”
햄찌는 지크와 승구가 자신을 바라보자 화들짝 놀랐다.
“뭐, 뭐냐! 왜 햄찌 쳐다보냐! 뀨우우!”
“햄찌야.”
지크가 그런 햄찌에게 나지막하면서도 조용한 말투로 말했다.
“뀨우?”
“너 요즘 좀 하는 게 없는 것 같다.”
“캬아악! 햄찌가 뭐 하는 거 없냐! 햄찌 요즘 주인 놈 새끼 돌보느라 허리가 다 휠 지경이다! 뀨우우우!”
햄찌의 말은 사실이었다.
햄찌는 베르단디를 등에 업고 프로아 왕국을 거닐거나, 재워주거나, 혹은 동화책을 읽어주는 등 보모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때문에 이렇다 할 활약이 없었다 뿐이지, 하는 일이 없는 건 결코 아니었다.
당장 지크의 지난 행적만 보더라도 햄찌와 늘 함께해오지 않았던가?
“알지. 잘 알지.”
지크는 그런 햄찌를 다독이며 어깨동무를 하고는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부탁하는 거 아냐.”
“뀨우?”
“야.”
지크가 햄찌의 귓가에 속삭였다.
“선배님들 모시는 게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아까 선배님들 싸우는 거 봤지?”
“뀨우?”
“고수들이라고.”
“그, 그건 그렇다! 뀨우!”
“내가 그런 고수들의 노하우를 좀 배우고 싶단 말이지? 더 강해지기 위해서?”
“뀨우?”
“그럼 내가 선배님들한테 잘 보여야 노하우를 가르쳐 주시겠지?”
“뀨! 그렇다!”
“그럼 니가 나를 도와줘야지. 내가 선배님들이 가진 노하우를 배우면 더 강해질 수 있을 텐데, 저깟 수레 하나 못 끌어 줘? 날 위해서?”
“뀨우우우우?”
“이건 접대라고, 접대. 그러니까 좀 도와주라.”
“뀨우우. 알겠다.”
결국, 햄찌는 지크의 이빨에 넘어가고 말았다.
하기야 주인인 지크가 레전드들에게 잘 보이면 그들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을 테고, 그럼 햄찌의 입장에서도 좋은 일 아니겠는가?
“뀨! 햄찌가 수레 끈다! 뀨우우우!”
그렇게 햄찌는 몸을 좀 더 크게 키워서 지크가 레전드들을 위해 만들어낸 수레를 끌게 되었다.
“햄스터가 끄는 거라 그런지 승차감이 좋구먼!”
“후배님이 늙은이들 대접을 할 줄 안다니까?”
“캬! 편하다!”
“안 그래도 힘들었는데 잘됐구먼! 낄낄!”
레전드들은 그런 지크의 배려가 마음에 들었는지, 저마다 한마디씩을 떠들어대며 매우 흡족해했다.
‘어휴. 노친네들 모시기 힘들다, 힘들어.’
지크는 그런 레전드들을 챙기는 게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화가 나거나 짜증을 내지는 않았다.
레전드들은 매우 굼뜨고, 체력은 쓰레기였으며, 또 귀차니즘이 심하긴 했다.
그러나 막상 실전에 들어가면 슈퍼 플레이를 숨 쉬듯이 선보이며 적들을 섬멸하니, 지크의 입장에선 레전드들을 미워하고 싶어도 미워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들이 가진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해 주기로 약속까지 했으니, 지크로서는 결코 손해를 본다거나 부려 먹힌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선배님들 예우하는 차원에서 잘 모시자. 나중에 고렙들 되시면 도움을 받을 것 같기도 하고.’
지크는 언젠가 레전드들이 자신의 동료로서 큰 보탬이 되리라고 기대하며,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
지크 일행은 계속해서 여러 버전의 들과 싸우며 던전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으어어어어어어.”
지크는 기어코 지쳐 드러눕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몇 시간 동안 들을 나 홀로 상대하다시피 하느라 그만 탈진해버린 것이다.
“혀, 형님! 괜찮으십니까?”
“지친다, 지쳐.”
지크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좀 쉬십쇼.”
“그러려고. 나도 더 못하겠어.”
지크는 정말로 피곤했다.
거의 네 시간 동안 원맨쇼를 펼쳤더니 죽을 맛이었다.
왜냐하면, 딱히 위험한 상황이 나오지 않자 레전드들이 전투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참여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수레 안.
스륵, 스르륵!
레전드들의 육체가 희미해졌다 선명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꾸벅, 꾸벅!
즉, 레전드들은 밤이 늦어서 그런지 수레에 탄 채로 졸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고, 선배님들….”
지크는 그런 레전드들이 황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러워서 실소를 지었다.
게임을 하다 캡슐 안에서 잠들 줄이야….
“형님, 어떡합니까.”
“어떡하긴. 좀 쉬었다 가야지. 우리는 밤샐 수 있잖아.”
“그건 그렇습니다.”
“노친네들 페이스에 맞추면 한세월이야. 접속해 있어서 경험치는 먹을 테니까, 우리끼리라도 깨자.”
“알겠습니다.”
그렇게 지크는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금 던전의 공략에 나섰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어?”
지크는 저 멀리 거대한 신전을 발견했다.
“건물이 보이는데? 신전 같아.”
“제가 봐도 신전 같습니다.”
“보스방인가?”
“그럴 확률이 높긴 한데, 일단 가봐야지 알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가보자.”
“예, 형님.”
그렇게 도착한 신전.
[검의 무덤 : 영웅의 안식처]지크의 눈앞에 현재 위치를 알리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영웅의 안식처?”
지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신전 내부를 둘러보았다.
거대한 신전의 정중앙에는 거의 자유의 여신상 정도의 크기에 버금가는 석상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는데, 딱 봐도 에서 모시는 신(神)인 아레스 같았다.
그리고 그런 아레스를 중심으로 신전의 층마다 다양한 형상을 한 석상들이 좌우로 주르륵 늘어서 있었다.
“뭐지? 설마 저 석상들이랑 싸우라는 건가? 아님 아레스의 석상이 보스?”
지크가 그렇게 중얼거릴 무렵.
푸슥, 푸스슥!
갑자기 특정 석상들이 스스로 움직이며 흙먼지를 피워내기 시작했다.
움직인 석상들의 숫자는 총 넷.
2층 왼쪽에서 두 번째.
5층 왼쪽에서 첫 번째.
7층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그리고 9층 왼쪽에서 열한 번째였다.
쿵! 쿠웅! 쿵! 쿵!
뒤이어 스스로 움직인 네 개의 석상들이 각자 자리하고 있던 층에서 훌쩍 뛰어내려 지크 일행 앞에 섰다.
“얘, 얘네 뭐야?”
지크는 으로 그 석상들을 비추어보았다.
석상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거대한 천마(天馬)를 타고 한 자루 방천화극으로 무장한 석상의 이름은 .
한 자루 거대한 활로 무장한 석상의 이름은 이라고 했으며.
란 석상은 한 손에는 책, 나머지 한 손에는 부채를 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손엔 푸른 불꽃을, 다른 한 손에는 붉은 불꽃을 든 석상은 라고 했다.
띠링!
뒤이어 석상들의 머리 위에 황금색 느낌표(!)가 떠올랐다.
“어? 퀘스트잖아?”
지크는 석상들의 머리 위에 퀘스트 표식이 떠오른 걸 보고 콘솔을 움직여 클릭을 해보았다.
그런데.
[알림 : 퀘스트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알림 : 퀘스트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알림 : 퀘스트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연거푸 클릭을 해보았지만, 지크는 퀘스트의 내용조차 볼 수가 없었다.
“퀘스트가 안 받아지는데? 승구야, 너는 돼?”
“저도 안 됩니다. 퀘스트에 접근할 수 없다고 나옵니다.”
“어? 나도 그런데.”
“그럼….”
“설마?”
지크와 승구의 고개가 수레 쪽으로 홱! 하고 돌아갔다.
드르렁, 드러러어엉!
수레 위에는 레전드들이 서로 뒤엉킨 채 아예 곯아떨어져 있었다.
***
“선배님들! 일어나시지 말입니다! 선배님들!”
지크는 어쩔 수 없이 레전드들을 흔들어 깨웠다.
“으응? 벌써 아침인가?”
“눈이 안 떠지는구먼.”
“뭐만 하면 졸리누.”
“끄응.”
레전드들은 지크가 흔들어 깨우자 그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떴다.
“선배님들. 퀘스트 떴습니다. 저기 석상들 머리 위에 뜬 황금색 느낌표 보이시죠? 가서 클릭하고 퀘 받으….”
지크는 석상들을 가리키며 말하다가 순간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왜냐하면….
“음냐음냐.”
“으음.”
“쩝쩝….”
“드르렁, 드러러엉….”
레전드들은 지크의 말을 듣다 말고 다시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이 양반들이 진짜.”
지크는 그런 레전드들의 모습에 속에서 열불이 치밀어 올랐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러려니 했다.
늙어서 졸리다는데 어쩔 것인가?
결국 지크도 늙을 텐데.
“선배님들! 선배님들! 기상! 기상입니다! 선배님들!”
결국, 지크는 목청을 높이고 나서야 레전드들을 모두 깨우는 데 성공했다.
“자자. 선배님들. 저기 석상들 클릭하시면 됩니다. 아이고. 선배님. 발 조심하시고요.”
지크는 아예 레전드들을 부축해 주거나 업다시피 하며 석상들 앞에 데려다 놓았다.
“으응? 클릭하라고? 안 되는데? 퀘스트에 접근할 수 없대.”
한상기가 석상을 클릭해 보고는 지크를 돌아보았다.
“넷 중 하나니까 다 클릭해 보세요.”
“그래?”
한상기는 지크의 말대로 나머지 석상들을 클릭해 보았다.
나머지 세 명의 레전드 역시도 네 개의 석상 중 자신에게 맞는 걸 찾아 클릭에 나섰다.
그 결과.
우웅!
퀘스트의 주인을 찾은 석상들이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석상은 김한용.
석상은 김기태.
석상은 한상기.
그리고 석상은 박기돈과 짝을 이루었다.
‘역시.’
지크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걸 확인하고 미소를 지었다.
이곳 에는 족히 수백 개의 석상이 있었다.
그 석상 중 오직 네 개의 석상만이 깨어났고, 지크와 승구에게는 퀘스트를 주지 않는 걸 보면 처음부터 레전드들에게 반응했던 게 분명했던 것이다.
‘뭐지. 뭔 퀘스트를 주려나.’
지크가 그런 생각을 하던 때였다.
번쩍!
갑자기 한 줄기 섬광이 솟구치는가 싶더니 한상기와 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어?”
“엥?”
지크와 승구는 한상기와 이 사라지자 당황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번쩍, 번쩍, 번쩍!
나머지 세 명의 레전드들 역시도 각자 퀘스트를 받은 석상들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어, 어디 가신 겁니까?”
“나도 모르지.”
“쫓아가서 도와드려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예?”
“느낌이 큰일 날 것 같지가 않아. 여긴 사악한 에너지도 안 느껴지잖아. 게다가 무신교의 유적인데 나쁜 일이 있을까?”
“그건….”
“노친네들 오실 때까지 우리도 좀 쉬자.”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대충 자리를 깔고 아예 드러누워 버렸다.
“야! 햄찌야! 수레 끄느라 고생했어! 너도 와서 좀 쉬어!”
“뀨우! 알겠다!”
그렇게 지크는 신전에 돗자리를 깔고 햄찌와 함께 벌러덩 드러누워 휴식을 취했다.
“형님, 저도 쪽잠이나 좀 자야겠습니다.”
승구 역시 지크와 햄찌 옆에 자리를 잡고 잠시 눈을 붙였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으음.”
지크는 뒤척이다 눈을 떴다.
“캡슐 안에서 자는 거 너무 피곤하단 말야.”
지크는 졸린 눈을 비비며 시간을 확인했다.
‘뭐야? 벌서 시간이 이렇게 됐다고?’
새벽 네 시.
레전드들이 석상들과 함께 사라진 지 거의 세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냥 로그아웃해서 자고 올까.’
지크가 그런 생각을 하던 무렵이었다.
번쩍!
한 줄기 섬광과 함께 석상과 사라졌던 김한용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런데.
“서, 선배님!”
지크는 다시 나타난 김한용의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화륵, 화르륵!
김한용은 온몸에 불이 붙어 있는 한 마리 천마(天馬)에 타고 있었다.
그리고 고삐를 쥐지 않은 오른손에는 딱 봐도 엄청나게 강력해 보이는, 방천화극(方天畵戟)을 움켜쥐고 있었다.
“헐?”
지크는 김한용의 너무나도 달라진 모습에 좀처럼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김한용의 클래스는 기존 에서 라는 레전더리 클래스로 변경되어 있었다.
“설마… 그 퀘스트가 전직 퀘스트였다고? 레전더리 클래스를 얻을 수 있는?”
지크가 놀라던 순간.
번쩍, 번쩍, 번쩍!
뒤이어 나머지 세 명의 레전드들 역시도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