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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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는 에 이어 로 가서 영주인 미노디에르 자작을 만나 설득에 나섰다.
[미노디에르 자작은 어려서부터 건축학과 지리학을 깊게 공부한 인재이옵니다. 허나 제국 중앙 정치에는 뛰어난 인재가 많은 데다가, 미노디에르 자작보다 배경이 좋은 경쟁자들이 많사옵니다. 때문에, 중히 등용되지 못하고 이곳 에스파드리유 지방에서 허송세월을 하고 있는 중이옵니다.]지크는 로베르토 자작이 미노디에르 자작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던 걸 떠올렸다.
미노디에르 자작은 도태된 별이었다.
저 거대한 대(大)제국 마우레키온에는 인재가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많아서, 천재적인 능력과 빵빵한 배경 없이는 꿈을 펼치기가 어려웠다.
‘흠. 꿈은 있지만 능력을 펼칠 기회가 없었단 거군. 그럼 내가 가져다 쓰지 뭐.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면 되겠지. 후후후.’
지크는 미노디에르 자작이 무슨 몬스터라도 되는 것마냥 공략법을 떠올리며 시동을 걸었다.
“미노디에르 자작님.”
“말씀하시지요.”
“도와주십시오.”
“예? 갑자기 뭘 도와달란 말씀이신지….”
“저희 프로아 왕국에는 건축가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건축가가 부족하다….”
미노디에르 자작이 그 단어를 곱씹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건축가가 필요하면 구인 공고를 내보시지요. 듣자하니 이곳 에스파드리유 지방에 막대한 재정을 투자해 지역 발전을 도모하신다고 하더군요. 그럼 건축가들을 고용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 대규모 국책 사업을 실시할 정도의 재정적 여유라면, 충분한 숫자의 건축가들을 고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미노디에르 자작은 그렇게 말하고는 살짝 냉랭한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를 쏘아붙였다.
“실제로 그런 재정적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말입니다.”
좀 과대 해석하자면, 세계 최빈국이자 최약체인 주제에 개소리 지껄이지 말란 뜻이었다.
‘그럴 수 있지.’
지크는 그런 미노디에르 자작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했다.
누가 믿겠는가?
이것은 마치 공원에서 노숙을 하던 부랑자가 사실은 내가 재벌 기업의 총수인데, 너에게 회사의 중책을 맡기고 싶단 얘기와 별반 다를 바 없을 테니까.
그래서 지크는 전혀 화가 나지 않았고, 부드럽게 미노디에르 자작을 설득해나갈 수 있었다.
“자작님.”
“말씀하시지요.”
“저는 평범한 일개 건축가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어떠한 건축가를 원하십니까?”
“장차 강대국으로 거듭날 국가의 국가 건설을 총책임질 국토부 장관을 원하는 겁니다.”
“……!”
“그런 인재는 돈으로 고용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그 순간.
두근!
미노디에르의 자작의 심장이 성큼 뛰었다.
‘좋아. 걸려들었어. 흐흐흐.’
지크는 그 예민하기 짝이 없는 청각을 통해 미노디에르 자작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는 걸 귀신같이 눈치 챘다.
그렇다면?
‘슬슬 후벼 파볼까?’
지크는 미노디에르 자작의 마음에 생긴 그 미세한 균열을 놓치지 않고, 기세를 몰아 공략을 이어나갔다.
“미노디에르 자작님께서 뛰어난 건축가라는 풍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
“또, 이곳 영지를 둘러보면서도 느꼈습니다. 아, 막무가내로 지은 건물들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요. 모든 건물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었고, 자재 또한 훌륭한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더군요. 영지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도시 계획 자체가 치밀하게 잘 설계된 곳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그걸… 알아보신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으음!”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아, 이 도시 계획을 기획한 사람이 내 왕국의 국토부 장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요.”
“그건….”
“도와주십시오.”
지크는 그렇게 말하며 아공간 인벤토리를 열어 거액의 수표를 꺼내 미노디에르 자작을 향해 내밀었다.
“우선 이 영지부터 시작하고 싶습니다. 착수금으로 이 돈을 드릴 테니, 이 영지부터 발전시켜 주시죠.”
“이게 도대체… 헉?!”
미노디에르 자작은 지크가 내민 수표에 적힌 금액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이 무슨!”
지크가 내민 수표에 적힌 금액은, 이곳 전체를 사고도 남을 정도였다.
“일종의 계약금일 뿐입니다. 본국의 국토부 장관이 되어 저를 도와주신다면… 그 수표에 적힌 금액의 100배, 아니 1,000배를 쓰실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저, 전하!”
“그리고….”
지크가 놀라 자빠지기 일보 직전인 미노디에르 자작을 향해 쐐기를 박았다.
“이루실 수 없었던 꿈, 이뤄야 하지 않겠습니까!”
“꾸, 꿈… 말씀이십니까?”
미노디에르 자작이 떨리는 목소리로 이란 단어를 되뇌었다.
“냉정히 말씀드리자면, 자작님이 마우레키온 제국의 국토부 장관이 되시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신흥 강국인 프로아 왕국의 국토부 장관이 되시는 건 가능하지요.”
“…….”
“제국의 시골 귀족으로서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한 채 흔적도 없이 사라지시겠습니까, 아니면 신흥 강국의 국토부 장관으로서 역사서에 기록되시겠습니까?”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크는 그 말을 끝으로 조용히 미노디에르 자작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미노디에르 자작은 그 짧은 순간 온갖 심경의 변화를 겪으며 번뇌하고, 또 번뇌했다.
그러기를 약 10분 후.
“전하를….”
미노디에르 자작이 입을 열었다.
“모시겠습니다.”
뒤이어 지크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
지크는 미노디에르 자작으로부터 충성을 맹세 받은 후 곧장 다른 영주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다.
“뀨! 주인 놈아!”
“응?”
“주인 놈 왜 그렇게 간사해졌냐! 뀨우우!”
“뭐 인마?”
지크가 발끈했다.
“내가 뭐가 간사해!”
“뀨우! 주인 놈 영주들 꼬실 때 간사하다! 뀨우우우!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한다! 뀨우우우!”
“이 자식이 진짜!”
지크는 놀림을 받고 화가 잔뜩 나서, 햄찌의 두 귀를 잡아당겼다.
“캬아아아악!”
“이제 틈만 나면 놀리고 아주!”
“캬아악! 주인 놈아! 햄찌 가만 안 있는다! 캬아아악!”
햄찌 역시 지크의 허벅지를 세게 깨물고.
우당탕탕!
지크와 햄찌는 오솔길이 마치 제집 안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 뒤엉켜 물고, 뜯고, 할퀴는 등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
그러던 중.
“…뭐 하십니까.”
지크는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햄찌의 두피를 깨물던 걸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용병왕 드레퓨스.
지난 전투 이후 이제는 프로아 왕국의 직속 외화벌이꾼(?)이 된 남자가 한심하다는 기색이 역력한 눈빛으로 지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지크가 황급히 땅바닥에서 일어나 몸이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고는 말했다.
“드레퓨스 아저씨?”
“전하를 뵙습니다.”
드레퓨스가 그런 지크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근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의뢰가 있어 처리하러 왔습니다.”
“아? 여기 용무가 있으신 모양이네요?”
“예, 뭐. 전하께 진 빚을 갚으려면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후우.”
드레퓨스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는 지크가 목숨을 살려준 대가로 향후 10년 동안 노예처럼 일해야 했다.
의뢰 한 번 잘못 받았다가 인생을 제대로 말아먹은 케이스라고나 할까?
“헤헤. 암, 그렇고말고요. 앞으로도 열일 부탁드려요. 헤헤헤.”
“예, 전하.”
“그럼 의뢰 처리하러 가보시죠. 전 갈 데가 있어서.”
“그리하겠습니다.”
드레퓨스는 지크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후 곧바로 번개처럼 검을 뽑았다.
스릉!
그리고는 그 검을 지크의 목 언저리에 가져다 댔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그러자 지크가 하는 표정으로 드레퓨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의뢰를 처리하는 중입니다.”
“예?”
“전하를 죽여 달란 의뢰를 받았습니다.”
“그, 그래서 지금 날 죽이겠다고요?”
“의뢰 처리하러 가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
“어차피 전하께서는 불사의 존재이시니, 그냥 눈 땀 감고 한 번 죽었다 살아나시면 큰돈을 버실 수 있겠지요.”
“드, 듣고 보니 괜찮은 생각이긴 하네요. 근데 지금은 죽으면 손해가 더 커서요.”
지크가 손가락으로 드레퓨스의 검을 치우며 말했다.
“군터 백작이 보냈나요?”
“의뢰인에 대한 정보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드레퓨스의 표정과 눈빛은 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긴. 그걸 알려줄 순 없는 거겠죠.”
“예, 전하.”
“예상 못 했던 일은 아닌데, 드레퓨스 아저씨가 온 건 의외네요.”
“전하 덕분에 요즘 일복이 터졌습니다.”
그런 드레퓨스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3대 용병왕 중 NPC인 카시아스를 는 지크가 죽여 버렸고, 게이머인 구데리안의 경우 지크에게 당하고 주무기를 모조리 드랍하는 바람에 망해버렸다.
즉, 현재 드레퓨스만이 유일하게 건재한 용병왕인지라 의뢰가 세 배로 늘어났던 것이다.
“아하하하하….”
지크가 드레퓨스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멋쩍은 듯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듣고 보니 그러네요. 하하. 하하하.”
“설마 용병왕 둘을 죽여 버리시고 저 하나만 남기신 게 의뢰를 독점하시려고….”
“그, 그럴 리가요!”
지크가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드레퓨스의 말을 부정했다.
“절대! 절대로! 아닙니다! 진짜! 아니에요! 정말로!”
그 순간.
‘주인 놈… 이거 노린 거 같다.’
‘진짜였나?!’
햄찌와 드레퓨스는 지크가 세 명의 용병왕 중 둘을 죽이고 하나만 남긴 이유가 돈을 왕창 벌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크는….
‘휴! 들킬 뻔했어!’
자신의 음흉한 속내를 들킬 뻔했단 생각에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실 지크가 드레퓨스를 살려준 이유는 의뢰를 면죄부 삼아 무죄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용병으로서의 철학을 존중해서가 가장 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용병왕의 의뢰를 독점해서 큰돈을 벌겠단 생각도 조금은 있었다.
그리고 햄찌와 드레퓨스는 그런 지크를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맞네, 맞아.’
‘내가 덫에 걸렸군.’
햄찌와 드레퓨스의 의심은 증거가 없는 심증일 뿐이지, 확신에 가까웠다.
***
“옥체 보중하십시오. 제게만 의뢰를 넣은 건 아닐 겁니다.”
“그렇겠죠?”
“예, 전하.”
“알겠어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별말씀을….”
“그럼 또 뵙죠.”
지크는 그렇게 드레퓨스와 헤어진 후 계속해서 발걸음을 재촉해 다음 행성지인 로 향했다.
그러던 중.
“잠깐 쉬었다 가자.”
“뀨! 그러자!”
지크와 햄찌가 커다란 아름드리나무 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때였다.
“목이 탄다, 타.”
지크는 캐릭터가 갈증을 느낀다는 경고 메시지가 떠오른 걸 보고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는 상큼한 민트향에 달콤한 초콜릿 맛에 더해지고, 마지막으로 알싸한 탄산이 어우러진 음료였다.
지크는 이걸 종종 마시며 갈증을 해소하곤 했다.
“캬아! 꾸울~ 맛!”
지크가 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오만상을 다 찌푸렸다.
“뀨우! 주인 놈아! 입맛 실화냐! 그런 역겨운 걸 어떻게 마시는 거냐! 뀨우!”
“뭐 인마? 이거 존맛탱이거든?”
“뀨우! 역겹다! 주인 놈 누렁이냐! 그딴 거 먹을 거면 아무도 없는 데서 혼자 먹어라!”
“이게 진짜….”
지크가 발끈해서 햄찌에게 덤벼들려던 때였다.
“으아아아아악!”
지크가 갑자기 비명을 내지르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뀨우? 주인 놈아! 왜 그러냐!”
“내, 내 엉덩이가!”
지크가 자신의 엉덩이, 정확히는 엉덩이 밑쪽 허벅지 뒤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주륵, 주르륵!
그런 지크의 왼쪽 허벅지 뒤쪽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