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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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건방진 애송이 같으니. 알량한 무력을 믿고 배짱을 부리는군.”
군터 백작은 지크를 떠올리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군터 백작이 지크의 암살을 의뢰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런데 의뢰를 넣었던 용병왕 드레퓨스와 암살자들로부터 그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지크가 멀쩡히 에스파드리유 지방을 돌아다녔던 걸 보면, 임무 수행에 실패한 게 분명했다.
즉, 애송이인 지크의 무력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강했단 증거였다.
들리는 소문에도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가 꽤 강한 모험가라고 했다.
하지만 군터 백작은 그런 지크의 무력에 대해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무력이 좀 세면 어떻단 말인가?
그래 봤자 약소국의 왕일 뿐이고, 호구일 뿐인데.
“여봐라.”
“예, 영주님.”
“회합을 소집하겠다. 내일 저녁까지 에스파드리유 지방의 모든 귀족들이 연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라.”
“예!”
“그리고….”
군터 백작이 덧붙였다.
“귀여우신 국왕 전하를 위해 열병식을 거행할 터이니, 각 영주들은 정예 병사들과 함께 최고의 기사들을 대동하고 참석하라는 당부도 잊지 말고 전하도록.”
“예!”
“약소국의 애송이.”
군터 백작은 지크의 어리숙해 보이는 얼굴을 떠올리며 경멸에 찬 미소를 지었다.
“네놈이 제국의 열병식 앞에서도 멀쩡할 수 있겠느냐? 그 알량하기 짝이 없는 무력을 믿고? 흐흐! 흐흐흐!”
군터 백작은 지크를 겁줄 생각에 벌써부터 즐거워했다.
한편, 지크는 그런 군터 백작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군터 백작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만, 지크는 이미 의 성 내부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지크의 침실 안.
“이야.”
지크는 와의 시야 공유를 통해 군터 백작을 감시하던 중에, 그 시커먼 속에 들어 있던 생각을 고스란히 전해 듣고 있었다.
“그런 거였어? 헤헤.”
“뀨우?”
햄찌는 지크의 팔을 벤 채로 몸을 둥글게 말고 자고 있다가, 말소리가 들리자 졸린 눈을 게슴츠레 떴다.
“아, 그런 게 있어.”
“뀨우?”
“자, 인마.”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햄찌의 귀를 살짝 만지작거리다가, 목덜미를 쓰담쓰담 해주었다.
“뀨우… 햄찌 다시 잔다… 뀨우우우….”
새근새근-
햄찌는 그런 지크의 손길이 기분 좋았는지, 몽롱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곧 다시 잠들어 버렸다.
‘짜식. 하여간 귀엽다니까.’
지크는 햄찌를 보고 피식 웃으며 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철저히 감시해. 이상 있으면 바로 보고하고.’
지크는 그렇게 명령을 내리고는 캡슐 안에서 잠이 들었다.
***
다음 날.
지크는 꽤 잘 차려진 아침 식사를 대접받은 뒤 뒹굴뒹굴 시간을 때우다가, 군터 백작의 부름을 받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지크가 안내된 곳은 다름 아닌 의 연병장이었다.
과연 대제국 마우레키온의 영토였던 답게, 연병장은 엄청나게 넓었다.
가 아무리 제국 내에서 깡촌으로 통하는 곳이라 해도, 어지간한 왕국의 대영지와 비슷한 규모는 유지하고 있었다.
그 드넓은 연병장.
척, 척, 척, 척, 척, 척, 척, 척!
에스파드리유 지방 각 영지의 장병들이 이른바 의 군복을 입은 채 열병식을 거행했다.
“전하. 보시옵소서.”
군터 백작이 곁에 있던 지크를 향해 말했다.
“에스파드리유 지방의 군대이옵니다.”
“대단하네요.”
지크는 솔직히 감탄했다.
딱딱 들어맞는 제식, 장병들의 굳은 표정과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조용하지만 위엄 있는 분위기까지.
에스파드리유 연맹군의 열병식은 가히 강군(强軍)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다.
게다가 열병식 행렬 가장 앞에 자리한 기사들의 기세란 정말이지 위협적이었다.
“비록 제국의 말단이었으나, 이만하면 어지간한 왕국의 최정예 부대에 못지않은 전력이지요.”
“그러네요. 정말….”
지크가 고개를 끄덕이던 순간.
“합!”
에스파드리유 연맹군 장병들이 일제히 기합을 내지르며 창을 15도 각도로 내질렀다.
문제는 그런 장병들의 창날 끝이 향한 방향이 연병장 사열대에 자리한 지크를 향해 있었다는 것.
“허억?”
지크는 그런 에스파드리유 연맹군 장병들의 행동에 순간 놀라서 그만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사실은 군터 백작의 수작에 놀아나 주느라 놀란 척한 거였지만 말이다.
‘흐흐. 벌써부터 겁을 집어먹은 것이냐? 흐흐흐.’
군터 백작은 지크가 놀라는 모습을 보고 아주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애송이.’
군터 백작은 그렇게 생각하며 기사단장을 향해 은근슬쩍 눈치를 주었다.
우웅!
그러자 열병식 행렬 가장 앞줄에 자리한 최정예 기사들이 은근슬쩍 마나를 뿜어내 지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찔러!”
“합!”
“휘둘러!”
“다시 찔러!”
“하압!”
“또 찔러!”
“이얍!”
열병식 단장의 구령에 맞추어, 연맹군 장병들이 벼락같은 기합을 내지르며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역시나 장병들이 무기를 휘두르는 방향은 사열대 위에 서서 열병식을 지켜보던 지크를 향해 있었다.
“큭, 크윽!”
지크는 그런 엄청난 압박에 힘겹다는 듯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전하! 괜찮으시옵니까?”
“크윽… 괘, 괜찮습니다.”
지크는 군터 백작의 부축에 애써 괜찮다는 듯 힘겹게 말했다.
주르륵!
그런 지크의 입가에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전하! 피를 흘리고 계시옵니다!”
“크윽….”
“여봐라! 어서 전하를 모셔라! 전하의 옥체가 좋지 못하시다!”
군터 백작은 그렇게 소리쳐 지크를 모셨고.
‘으윽! 개아파!’
지크는 입 안을 깨물어 일부러 피를 냈던 게 아파서 울상을 지었다.
군터 백작의 눈에는 그게 기사들이 뿜어낸 마나에 의해 내상을 입은 것처럼 보였지만 말이다.
***
열병식이 끝난 후.
“흐흐! 나약한 놈 같으니! 고작 열병식조차 버텨내지 못하는 주제에 감히 우릴 지배하려 들다니! 크흐흐흐!”
군터 백작은 지크가 열병식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인 게 신이 나서 한껏 들떴다.
“하지만 이제 끝이 아닐 것이다. 흐흐흐. 기대해라, 애송이.”
군터 백작은 오늘 있을 회담에서 다른 영주들과 함께 지크를 조리돌림할 생각에 벌써부터 즐거워 미칠 지경이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의 내성에서는 성대한 연회와 함께 지크와 에스파드리유 지방 지배층들 간의 회담이 열렸다.
그런 간담회 자리에는 에스파드리유 지방의 최고위급 기사들이 주르륵 도열해 경호와 경비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사들 거의 대부분은 은연중에 마나를 뿜어내 지크를 압박했다.
‘아. 간지러워 죽겠네, 진짜.’
지크는 자신을 압박하는 기사들의 마나가 솔직히 간지러워서 몸이 배배 꼬이는 걸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전하. 괜찮으시옵니까?”
군터 백작이 지크의 표정이 어두운 걸 보고 물었다.
“괘, 괜찮…습니다.”
“어렵게 마련한 자리이옵니다. 조금만 힘을 내시지요.”
“예, 백작님.”
그렇게 끝난 후.
“국왕 전하의 연설이 있겠습니다.”
지크는 에스파드리유 지방의 지배층을 상대로 연설을 하게 되었다.
연실이 시작된 지 5분쯤 지났을까?
“…해서 저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는 프로아 왕국의 국왕으로서 여기 계신 여러분들께 협조를 바라는 바입니다.”
지크가 에스파드리유의 지배층을 향해 간곡히 부탁을 할 때였다.
“국적을 떠나 만백성의 윤택한 삶과 번영을 위해….”
“근본도 없는 천한 모험가 주제에.”
호른 자작이 지크의 연설을 끊고 한마디를 던지자 연회장이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갑분싸.
그러나 정적이 흐른 시작은 그리 길지 않았다.
“국왕 전하. 주제 파악을 하십쇼. 마우레키온 제국인이었던 우리가 약소국인 프로아 왕국의 지배를 받을 것 같습니까? 게다가 국왕이 천한 모험가 출신인데?”
뒤이어 인터로킹 남작이 호른 자작의 말을 거들며 지크를 모욕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껄껄! 저 쫄아 있는 꼬라지 좀 보소?”
“애송아! 그렇다고 바지에 지리지는 마라!”
“예끼!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는 게냐! 가서 어머니 젖이나 더 먹고 오거라! 껄껄껄!”
군터 백작과 의견을 같이하는 귀족들이 일제히 지크를 모욕하고, 조롱하는 등 하극상을 시전했다.
한편, 지크와 뜻을 함께하기로 한 귀족들의 경우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전전긍긍했다.
지크를 도와주어야 할 것 같기는 했다.
그런데 군터 백작이 거느리고 있는 세력이 워낙 센 데다, 기사들의 기세가 워낙에 흉흉해서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전하.”
그때, 군터 백작이 앞으로 슥 나서서 지크를 향해 말했다.
“이제 좀 현실이 와닿으십니까?”
“…….”
“이게 현실입니다. 마우레키온 제국인이었던 우리 에스파드리유 연맹은, 약소국인 프로아 왕국의 지배와 통치를 받을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더욱이….”
군터 백작이 지크를 향해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천한 모험가 출신 애송이의 신하가 될 생각은 더더욱 없습니다.”
“군터 백작님….”
“조용히 돌아가시지요. 황제 폐하께 충성하는 마음으로, 세금 정도는 프로아 왕국의 사정에 맞추어 납부하도록 하지요. 그러니 세금 받아 드실 생각이나 하시고, 통치는 꿈도 꾸지 마소서.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 했지요? 부디 주제 파악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군요.”
지크가 그런 군터 백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에스파드리유 지방의 대답입니까?”
“허!”
군터 백작이 기가 찬다는 듯 대꾸했다.
“혹시 귀가 먹기라도 하셨습니까? 설마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확인 차 물어보는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이게 에스파드리유 지방의 대답입니다. 에스파드리유 지방은 공식적으로 프로아 왕국의 통치를 거부하며, 국왕인 전하께 충성을 맹세하는 것 역시도 거부하는 바입니다. 만약 충성을 강요한다면… 그땐….”
군터 백작이 반란을 암시하는 말을 꺼내기 직전이었다.
“크, 큰일이 났사옵니다!”
“급보! 급보이옵니다!”
“큰일 났사옵니다!”
각 영지의 전령 여럿이 동시에 헐레벌떡 연회장으로 뛰어 들어와 자지러지듯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기에 이리도 호들갑을 떠는 것이냐!”
군터 백작이 버럭 짜증을 내며 전령들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전령들이 각자 자신들이 가지고 온 소식을 전했다.
그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었고, 또 당혹스럽기 짝이 없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와, 왕국군이 기습적으로 쳐들어왔다고 하옵니다!”
“프로아 왕국군이 쳐들어왔사옵니다! 영지가 점령당하기 직전이옵니다!”
“프로아 왕국군이 순식간에 영지를 점령했다고 하옵니다!”
군터 백작은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뭐라? 프로아 왕국군이 뭐 어쩌고 어째?”
그런 군터 백작의 물음에 인터로킹 남작이 영주로 있는 에서 온 전령이 대답했다.
“프, 프로아 왕국군이 기습적으로 영지군을 궤멸시키고 순식간에 영지를 점령했사옵니다! 또한, 전설 속에 등장하는 엘프 왕국 엘론델의 군대도 함께 나타났다고도 하옵니다!”
“뭣이? 그렇다면….”
군터 백작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씨익-
그런 군터 백작의 눈에 들어온 지크의 입가엔 여태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비열하고 사악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통치와 충성을 거부한다라… 그럼 그거에 대한 내 답변을 들어야겠지?”
지크가 냉랭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던 순간.
쨍그랑, 쨍그랑, 쨍그랑, 쨍그랑!
프로아 왕국군의 정예 병사들이 연회장의 창문을 깨고 난입하기 시작했다.
“프로아를 위하여!”
“프로아를 위하여!”
“프로아를 위하여!”
뒤이어 프로아 왕국군의 외침이 연회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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