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623
622
‘이 NPC가 필요해.’
지크는 아직은 프로아 왕국을 거대한 대제국으로 만들겠단 거창한 계획 같은 건 없었다.
현재 뉘르부르크 대륙은 나름 평화로웠으며, 세계 대전 같은 전란이 휘몰아치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오직 스스로의 강함과 소소한 일상을 추구하는 지크의 성격상 대륙 통일 같은 중2병스러운 꿈을 꾼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지크는 프로아 왕국을 번듯한, 나름 알아주는 강대국으로 만들 생각은 있었다.
[프로아 왕국이라…. 처음 들어보는데?] [그 코딱지만 한 땅덩어리가 무슨 놈의 왕국이오? 시골 깡촌이지.] [그런 왕국도 있소?] [다른 대륙의 왕국이오?]지크는 프로아 왕국이 속칭 취급을 당하는 것에 약이 바짝 올라 있어서, 어딜 가나 알아주는 나라로는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려거든 코넬리우스 자작이 반드시 필요했다.
[곡물 가격이 또 올랐습니다, 전하. 식량 확보 측면에서 보면 본국은 언제나 적자를 면치 못하는군요. 식량의 자급자족이 안 되는 게 너무나도 치명적입니다. 휴우. 이런 손해 보는 장사를 해야 한다니. 정말이지 내키지 않는군요.]미켈레는 식량 확보 문제를 놓고 늘 골머리를 앓기 일쑤였다.
왜?
프로아 왕국은 국토의 80퍼센트 이상이 산악 지형인 데다가, 평야가 적어 농업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지크가 왕이 되기 전 프로아 영지의 식량 생산 보고서를 보면, 농사가 조금이라도 잘 되지 않거나 흉년이라도 지면 대기근이 찾아와 영지민들이 심심하면 굶어 죽었을 정도였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나는데, 식량 생산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프로아 왕국은 그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부족한 식량을 수입해 왔는데, 이게 쉽지가 않았다.
아쉽게도, 프로아 왕국의 동맹국들 가운데 곡물 생산량이 많은 국가가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프로아 왕국은 동맹국이 아닌 농업이 발달한 나라들과의 무역을 통해 식량을 수입해야만 했다.
문제는 식량을 수출국들이 매번 가격을 가지고 장난치기 일쑤였다는 것.
예컨대, 대륙의 곡물 시세가 5퍼센트 오르면 프로아 왕국은 15퍼센트 오른 가격에 곡물을 수입해야 했다.
수출국들이 프로아 왕국의 식량 생산력이 형편없다는 걸 알고 비열하게 가격을 후려쳤기 때문이다.
‘크로나사 평야가 곡창 지대이긴 하지만, 그래도 식량 문제는 부족해. 우리도 동맹국들에게 식량을 수출해서 무역 흑자를 보려면, 생산량을 높일 필요가 있어. 그러기 위해선… 이 NPC를 반드시 등용해야 해.’
지크는 프로아 왕국의 고질적인 문제인 식량 생산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코넬리우스 자작을 자신의 신하로 만들고 싶었다.
“코넬리우스 자작.”
“말해라.”
“황제 폐하에 대한 그대의 충성심은 존중하는 바이다.”
“그럼 죽여라.”
그 순간.
‘아오! 그냥 죽여 버려?!’
지크는 너무나도 단호한 코넬리우스 자작의 태도에 그만 인내심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애써 마음을 다스린 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죽이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럼 죽이면 되는 거 아닌가?”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황제 폐하께 대한 그대의 충성심을 깊이 존중하는 바이다. 그래서 깔끔하게 죽여주고 싶은 생각 역시 없지 않아 있다.”
“그런데 왜 나를 아직 죽이지 않는가?”
“영지민들 때문이다.”
“……!”
“내가 굳이 사형을 선고하지 않고 국외 추방이란 판결을 내린 이유는, 그대가 선정을 베풀던 어진 영주이기 때문이다.”
“영지민들이라….”
“그래서 국외 추방으로 사형을 대신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어떻게 바뀌었나?”
“코넬리우스 자작. 나의 신하가 되어라.”
“……!”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그대가 수십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통치해온 영지민들을 위해서 나의 신하가 되어라. 또한, 황제 폐하께 마지막으로 충성을 다한다고 생각하라. 그럼 마우레키온 제국의 신하로서도, 영주로서도 성공한 삶이 아닌가?”
“그건….”
코넬리우스 자작은 지크의 말에 말문이 막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도 그럴 것이, 지크의 말에는 충분한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야 죽으면 그만이지만, 남겨진 영지민들의 상실감은 어떻게 하나? 이렇듯 무책임하게 죽을 생각인가? 영지민들을 버리고?”
“으음.”
“3일의 시간을 주겠다. 잘 고민해보고 결정하라. 3일 후에는 어느 쪽이든 그대가 내린 결정을 존중할 테니.”
지크는 그렇게 말한 후 프로아 왕국의 해병대원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코넬리우스 자작이 마음 편히 고민해보고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배려하도록 하세요.”
“예! 전하!”
그렇게 코넬리우스 자작은 프로아 왕국의 해병대원들과 함께 퇴장했다.
‘황제 폐하께 편지라도 보내서 도와달라고 하든지 해야지.’
지크는 염치를 무릅쓰고,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코넬리우스 자작을 설득하게끔 도와달라고 할 생각까지 하며 나머지 죄수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하던 재판을 마저 진행했다.
“사형, 국외 추방, 사형, 사형, 사형,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 사형.”
지크는 죽일 놈은 죽이고, 죽이기 애매한 놈은 마우레키온 제국으로 돌려보내고, 탐이 나는 인재에게는 생각할 시간을 주는 등 나름 공정한 재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군터 백작.”
마지막으로 군터 백작의 차례가 되었다.
***
“사, 살려 주십시오! 전하! 소인이 이렇게 빌겠사옵니다! 제발! 제발 살려 주시옵소서!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전하! 충성을 다하겠사옵니다! 제발, 제바아아알!”
군터 백작은 프로아 왕국에 대한 에스파드리유 지방의 반발을 주도했던 주제에 목숨은 아까웠던 모양이었다.
“군터 백작.”
“예! 전하! 살려만 주십시오! 살려만!”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렇다.”
“성은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충성을 다하겠사옵니다! 지크프리트 전하, 만세! 만세! 만세! 지크프리트 전하! 만세! 만세! 만세!”
군터 백작은 살기 위해 지크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만세 삼창을 외치며 비굴한 모습을 보였다.
띠링!
그때, 지크의 머리 위에 칭호가 떠올랐다.
NPC인 군터 백작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군터 백작.”
“예! 전하!”
“화형.”
“예?”
군터 백작은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화형이라니?
그건 죽인다는 말이 아닌가?
“저, 전하? 방금 살려 주신다고….”
“걱정하지 마라, 군터 백작.”
“……?”
“본국의 화형은 태워죽이는 게 아니다.”
“그럼 무슨 의미인지….”
“영원히 불에 굽는 형벌이지. 노릇노릇하게 말야.”
“예에?”
“당해보면 알 거야. 흐흐흐!”
지크는 그제야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본색을 드러내었다.
모든 죄수들의 판결을 끝마치고 나서야 굳건히 유지하던 근엄한 카리스마를 내던지고,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여기.”
“예! 전하!”
“군터 백작을 아오지 탄광에 자리한 지하 감옥으로 보내 화형에 처하도록 하세요.”
“예! 전하!”
지크의 판결이 떨어지자 프로아 왕국 해병대원들이 군터 백작을 끌고 가기 시작했다.
“전하!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살려 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전하! 전하아아!”
“살려는 드린다니까?”
“그게 뭔 개소리냐고오! 야 이 양아치 같은 새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칭찬 감사요. 히히.”
지크는 군터 백작이 쌍욕을 퍼부었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뺀질뺀질 히죽 웃었다.
왜?
프로아 왕국의 뒷산에 자리한 에서 치러지는 화형은 차라리 죽는 게 100배, 아니 10,000,000,000,000,000배쯤 나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형벌일 테니까.
프로아 왕국에서 말하는 화형이란 일반적인 화형이 아니었다.
몸에 마법의 불꽃이 붙은 상태로 끊임없이 불에 타는 고통을 느끼는데, 혈관을 통해 최상급 포션이 끊임없이 공급되니 죽지도 못하고 영원히 구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게 적당히 깝쳤어야지.”
지크는 끌려가는 군터 백작을 바라보며 피식 냉소를 지었다.
***
지크는 에스파드리유 지방 지배층에 대한 숙청을 끝낸 뒤에도 쉬지 못했다.
“아비뇽 영지의 전투가 거의 끝났사옵니다!”
“샤토 영지의 점령을 완료하였다고 하옵니다! 승전을 감축드리옵니다!”
“파라핀 영지를 함락시켰다고 하옵니다! 승전을 감축드리옵니다!”
지크는 의 어전을 지휘통제실 삼아 에스파드리유 지방의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았다.
“전하! 아비뇽 영지군의 저항이 극심하옵니다!”
“그랭구아르 사관과 람보르기니 백작을 투입하세요.”
“예! 전하!”
또한, 지크는 전투를 원격으로 지휘하는 등 왕으로서의 임무를 다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한 번은 새벽 두 시경 워프 게이트를 타고 다른 영지로 가 전투에 합류, 해결사 역할까지 수행하기도 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동이 터올 무렵.
“승전을 감축드리옵니다! 전하!”
“감축드리옵니다!”
“국왕 전하! 만세!”
“만세!”
“프로아 왕국! 만세!”
“만세!”
프로아 왕국군은 불과 하룻밤 만에 에스파드리유 지방 전체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고, 지크는 그에 따라 승리에 대한 축하를 받았다.
“뀨! 주인 놈아! 고생했다! 축하한다! 뀨우!”
햄찌 역시 지크를 축하해 주었다.
“너도 수고했어. 하아아암~!”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기지개를 쫙 펴고는 옥좌에 몸을 묻었다.
“일단은….”
거기까지.
스륵, 스르륵!
지크의 몸이 갑자기 투명해졌다 선명해지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결국, 지크는 밤새도록 열일하느라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잠들어버린 것이다.
“뀨우. 주인 놈. 이럴 땐 열심히 한다.”
햄찌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주머니-도대체 주머니가 얼마나 큰지는 몰라도-에서 담요를 꺼내 지크에게 덮어주었다.
“주인 놈 잘 자라! 햄찌도 잔다!”
햄찌는 지크에게 담요를 덮어준 뒤 자신도 그 발치에 자리를 잡고 몸을 둥글게 말더니 이내 곧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지크와 햄찌의 하루는 동이 트고 나서야 저물었다.
***
지크와 피로에 찌들어 잠에 빠져들었을 무렵.
의 지하에는 축구장 2분의 1 크기의 거대한 지하 공간이 있었다.
일종의 밀실인 이 지하 공간의 벽에는 각양각색의 마법진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으며, 벽 곳곳에는 오랜 세월 주문이 할퀴고 간 자국들이 가득했다.
수련장.
이곳은 역대 가주들의 폐관 수련을 위해 만들어진 장소였다.
번쩍!
의 영주 에리얼 백작은 그 수련장에서 눈을 떴다.
창백하리만치 새하얀 피부.
훤칠한 키.
진청색의 머리칼.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으로 보일 정도로 어려 보이는 얼굴까지.
해와 달과 별이 황금색으로 수놓인 치렁치렁한 짙은 남색의 로브를 걸친 에리얼 백작은, 정말이지 신비로워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에리얼 백작이 몽롱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런 에리얼 백작의 앞에는 썩어 문드러진 시체가 한 구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전능하다.”
에리얼 백작이 스스로 신(神)을 자처하는 발언을 하던 순간.
스르르!
썩어 문드러져 있던 시체에 새살이 돋아나는가 싶더니, 죽어 있던 피부 전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