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627
626
[사부의 한]•진행률 : 28.5% (2/7)
– 뇌신 바즈라의 후예
– 검성 무르시엘라고의 후예
– 대현자 지그하르트의 후예 up!!!
– 혈마 베르세르크의 후예
– 법왕 마우그리스의 후예
– 신궁 윈드포스의 후예
– 패왕 브라움의 후예
지크의 눈앞에 퀘스트의 진행 상황이 적힌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에스파드리유 지방의 터줏대감이라던 의 가주이자 의 영주인 에리얼 백작은 다름 아닌 의 후예였던 것이다.
[에리얼 데 그레이]대현자 지그하르트의 후예.
유능한 마법사로서, 유년 시절 마탑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
•존재 구분 : NPC
•레벨 : 299
•클래스 : 확인 불가
•소속 : 프로아 왕국 카퓌신 영지
•계급 : 백작
•직위 : 영주
•특이 사항 : 폐관 수련 이후 뭔가 깨달음을 얻은 듯하다.
“신 에리얼 데 그레이, 국왕 전하를 뵈옵니다.”
에리얼 백작이 지크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아, 에리얼 백작.”
지크가 한쪽 무릎을 꿇은 에리얼 백작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아니옵니다. 폐관 수련을 하느라 미처 전하를 찾아뵙지 못해 그저 죄스러울 따름이옵니다. 폐관 수련보다 전하께 예를 올리고,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 먼저이겠지요.”
“으음.”
“늦게나마 사죄드리는 바이옵니다.”
에리얼 백작은 아예 바닥에 엎드려 지크를 향해 넙죽 절까지 했다.
“아닙니다. 이렇듯 폐관 수련이 끝나자마자 찾아와 주셨으니 제가 더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서 일어나시지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에리얼 백작이 몸을 일으키고.
‘뭐야? 이 인간?’
지크는 그런 에리얼 백작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도대체가… 뭐지? 이 느낌은?’
지크는 에리얼 백작이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콕 집어 말할 순 없었다.
그러나 에리얼 백작의 외모와 풍기는 분위기가 마치 성자(聖者)와도 같아서, 굉장히 어렵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에리얼 백작의 등 뒤로 언뜻 후광이 비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알 수 없는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듯도 했다.
차라리 인간이 아닌 신(神)이라 해도 속는 셈치고 믿어볼 정도로, 에리얼 백작은 신비롭고 기이해 보였다.
‘대현자 지그하르트의 후예라더니.’
지크는 에리얼 백작이 과연 의 후예답게 굉장히 비범한 인물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전하.”
그때, 에리얼 백작이 입을 열었다.
“예, 말씀하시지요.”
“신 에리얼 데 그레이는 프로아 왕국의 국왕이신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께 충성을 맹세하는 바입니다.”
“예?”
지크는 뜬금없는 충성 맹세에 살짝 껄끄러움을 느꼈다.
의 후예인 에리얼 백작이 이렇듯 제 발로 찾아와 먼저 충성을 맹세하니 뭔가 당혹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프로아 왕국이 이미 에스파드리유 지방 전체를 장악한 이상, 에리얼 백작이 먼저 와 충성을 맹세하는 게 당연하긴 했지만 말이다.
“신은 비록 마우레키온 제국의 신하였사오나, 존엄하신 황제 폐하의 황명에 따라 프로아 왕국의 신하가 되었사옵니다. 그러니 전하께 충성을 바치는 건 당연한 이치이겠지요.”
“그렇…군요.”
지크는 에리얼 백작이 숙이고 들어와 먼저 충성을 맹세하는 바람에 딱히 할 말이 없어졌다.
‘이거 대놓고 죽일 수가 없잖아? 따로 날 잡고 한바탕 붙어보자고 해야겠는데?’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했던가?
물론 지크는 웃는 얼굴에 침, 아니 가래침을 뱉고도 남을 인성의 소유자이긴 했다.
그러나 에스파드리유 지방의 터줏대감인 에리얼 백작은 영지민들의 신망도 두터웠고, 나름 어진 군주로 인기가 드높은 인물이었다.
그런 에리얼 백작을 다짜고짜 패 죽인다면, 그땐 성난 민심을 달래기가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지크는 단순히 인성 논란이 있는 꼴통에서 진짜 악인이 되는 격이라, NPC들로부터 엄청난 지탄을 받게 될 것은 당연지사였다.
‘쳇. 차라리 악당이면 시원하게 패 죽이기라도 하는데.’
지크는 에리얼 백작이 대놓고 악당이 아닌 것에 투덜거리며, 나중을 기약했다.
‘날 잡아서 한판 붙어야지. 어쩌면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네. 지그하르트의 후예를 신하로 삼으면 사부님이 좋아하실 테니까.’
지크는 일단 그렇게 마음을 먹고, 에리얼 백작을 일단 돌려보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에리얼 백작님. 앞으로 좋은 군신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에리얼 백작이 지크를 향해 고개를 깊이 조아렸다.
“한데 전하.”
“말씀하시죠.”
“소신이 전하께 드릴 청이 있사옵니다.”
“청이라는 게 뭐죠?”
“전하께서 부득이하게 몇몇 영지를 공격하시어 무력으로 점령하셨다 들었사옵니다.”
“그랬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죽이셔야 했던 사람들이 있을 것이옵니다.”
“때론 피가 흐르는 걸 막을 순 없는 법이겠죠.”
“예, 전하. 옳으신 말씀이시옵니다.”
“그런데 그걸 언급하시는 이유가…?”
“소신이 감히 전하께 제안하건대, 그들을 위한 합동위령제를 추진하시는 게 어떻겠사옵니까?”
위령제(慰靈祭).
죽은 이들을 달래기 위한 제사.
현재 에스파드리유 지방의 민심을 달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 지크의 입장에선 굉장히 좋은 방법이었다.
***
위령제는 죽은 이들을 위한 행사라고 보긴 힘들었다.
사실 위령제는 소중한 사람을 잃은, 즉 남겨진 유가족들의 심적 고통을 달래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왜?
위령제를 지낸다고 해서 죽은 사람의 넋이 위로를 받는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위로를 받는다고 해도 그 실체를 확인하는 게 불가능했으니까.
물론 게임 BNW의 세계관에는 영혼, 망령, 유령이 분명히 존재하긴 했지만 말이다.
“위령제라….”
지크가 그 단어를 곱씹었다.
“훌륭한 제안입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에리얼 백작이 지크에게 다시 한번 고개를 조아린 후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죽은 이들을 위해 위령제를 열어주시고, 또 유가족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신다면 에스파드리유 지방의 민심을 얻게 되실 것입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소신에게 맡겨만 주신다면, 합동위령제를 진행….”
그때였다.
‘그건 아니지.’
지크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어 눈을 가늘게 떴다.
위령제?
민심을 달래는 데 더없이 좋은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잠깐.”
지크가 에리얼 백작의 말을 끊었다.
“그건 아닌 것 같네요.”
“예?”
“위령제는 좋지만, 합동위령제는 안 됩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유가족들의 입장에서 저는 철천지원수일 뿐입니다.”
“전하….”
“합동위령제를 지내게 되면, 이곳 에스파드리유 지방에서 제 손에 죽은 장병들의 유가족들이 모두 모이겠지요.”
“으음.”
“그들이 모두 모인다면 저에 대한 적개심이 더욱 커질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한바탕 난리가 날지도 모르지요.”
“그건….”
“위령제, 진행합니다.”
지크가 딱 잘라 말했다.
“대신 합동위령제 없이, 각 영지별로 따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전사한 장병들 모두 프로아 왕국을 위해 싸우다 죽어간 것으로 간주해 1계급 특진을 시켜 주겠습니다. 그에 따라 위령제 역시도 국가장의 품격에 맞게 진행합니다.”
지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유가족들 모두 국가유공자로 지정하고, 그 어떤 부족함도 느끼지 못하게끔 충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국가를 위해 싸우다 죽어간 이들의 가족들답게, 유가족으로서 최고의 예우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게끔 처리하도록 하죠.”
지크는 자신이 해줄 수 있는 모든 걸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건 지크가 성군이라서도 아니고, 갑자기 파탄난 인성이 착해진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유가족들이 이제는 프로아 왕국의 백성들이 된 만큼, 지크는 그들을 포용하기 위해 충분한 예우와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전하의 은혜가 하해와 같사옵니다. 성은이 망극, 또 망극하옵니다.”
에리얼 백작은 그런 지크의 결정에 그 어떤 반박도 없이, 그저 고개를 깊이 조아렸다.
최선.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아, 배고파.”
태성은 로그아웃을 하자마자 강한 허기를 느꼈다.
시계를 바라보니 오전 1시 30분이었다.
“레스토랑도 닫았겠네.”
태성은 밥을 먹고 싶었지만, 입주민 레스토랑이 문을 닫은 시간인지라 딱히 끼니를 해결할 만한 방법이 없었다.
“별수 있나. 고기 고픈 자가 숯불을 달궈야지.”
결국, 태성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최근 새로 구입한 차량인 3세대 모델을 타고 집 근처의 24시 숯불구이 가게인 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위잉!
태성은 전화기가 울리자 차량의 블루투스 기능을 켜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놀랍게도, 태성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용설화였다.
뒤늦게 태성이 보낸 톡과 전화를 확인했던 모양이었다.
– 오빠!
“아, 설화 씨.”
– 전화 받으시네요?
“방금 게임 끝나고 밥 먹으러 가는 중이에요. 입주민 레스토랑이 문을 닫아서요.”
– 정말요? 그렇구나! 저도 같이 먹어도 될까요?
“네?”
– 언제 같이 밥 한 끼 먹기로 했잖아요.
“그, 그건 그렇죠?”
– 지금 먹어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태성이 말끝을 흐렸다.
“화 안 나셨어요?”
– 조금?
“…….”
– 일부러 그러신 거 아니잖아요. 살짝 서운하긴 했는데, 다 풀렸어요. 오빠 워낙 바쁘신 거 아니까….
“하하….”
– 제가 이해해야죠.
“미안해요.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 됐어요, 됐어요. 그래서 지금 저랑 야식 드실 건가요?
“당연하죠.”
– 어디세요? 지금 바로 갈게요.
“강남면옥으로 오세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 네!
그로부터 30분 뒤.
부릉!
의 주차장에 빨간색 스포츠카인 모델이 들어서고, 이윽고 모자를 푹 눌러쓴 용설화가 나타났다.
치이익!
이윽고 태성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숯불 위에 소고기 안심을 올려놓고 용설화와 마주 앉아 밥을 먹게 되었다.
“잘 지내셨어요, 오빠?”
“그럼요. 좀 바빴지만.”
“그래 보여요.”
“하하….”
“근데 언제까지 저한테 존댓말하실 거예요?”
“그건….”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제가 동생이잖아요.”
“그, 그럴까?”
“그나저나 왜 안심이에요? 오빠 안심 좋아하세요?”
용설화가 태성에게 물었다.
“안심이 기름이 적어서 좋아.”
“느끼한 거 싫어하시는구나?”
“그건 아냐.”
“그럼요?”
“등심은 지방이 너무 많잖아. 근성장에 방해돼. 체지방 관리에도 별로고.”
그 순간.
‘못살아!’
용설화는 순간 자신의 뒷목이 뻣뻣하게 저려오는 걸 느꼈다.
방구석에 처박혀 게임만 하는, 이른바 은 좋았다.
왜?
그녀는 자신보다 게임을 잘하는 남자를 좋아했으니까.
그러나 태성의 입에서 이란 단어가 튀어나오는 순간 머리가 지끈거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어쩐지 몸이 좋아 보이시더라니… 이 오빠 헬스에 미치신 거 아냐?’
게임과 웨이트 트레이닝에 푹 빠진 남자라니?
‘그래도 좋은걸.’
용설화는 순간 움찔했지만, 태성이 복스럽게 안심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어쩌겠는가?
꿈에 그리던 이상형.
동화 속 왕자님이 눈앞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흐응. 내가 먹여주고 싶어.’
용설화가 꿀-이 정도면 그냥 꿀이 아니라 로열젤리나 석청이 떨어진다고 해도 좋았다-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태성이 밥 먹는 모습을 바라볼 때였다.
식당 밖.
찰칵, 찰칵찰칵!
누군가 태성과 용설화가 밥 먹는 모습을 고성능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