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635
634
“하. 저거 아주.”
지크는 에리얼 백작이 찾아왔단 보고에 웬 날파리가 꼬이냐는 듯 귀찮단 표정을 지었다.
“올 거면 진짜로 오던가. 아주 뚝배기를 깨버릴랑게.”
지크는 에리얼 백작이 진짜가 아닌 일개 환영이라는 걸 알고 입을 삐죽였다.
최근 지크는 에스파드리유 지방에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아들아… 보고 싶구나!] [아빠! 보고 싶어요! 살려주세요!] [어머니… 살려 주십시오… 어머니!] [카퓌신 영지로 가세요. 신께서 우릴 다시 만나게 해주실 거예요.]죽은 사람들이 매일 밤 에스파드리유 지방 백성들의 꿈에 나타나 보고 싶다고, 살려 달라고, 카퓌신 영지로 가라고 했던 것이다.
또, 에리얼 백작이 에스파드리유 지방 곳곳에서 목격되었다는 보고도 있었다.
에리얼 백작이 소울의 능력을 이용해 백성들의 꿈을 조작하고, 환영을 보내는 등 민심을 휘어잡기 위한 개수작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간 지 무덤을 파요.”
지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시종에게 말했다.
“들라 하세요.”
“예, 전하.”
그러자 슈링크 추기경이 지크의 말에 반론을 제기했다.
“전하.”
“예, 슈링크 추기경님.”
“외람되오나, 저 사악한 사이비를 들이시는 건 그리 좋은 결정이 아닌 것 같사옵니다.”
“왜죠?”
“자고로 사이비들이란 그럴싸한 궤변을 늘어놓아 사람들을 현혹하기 마련이 아니옵니까? 괜히 들이셨다 현혹되는 이들이 있을까 두렵사옵니다.”
슈링크 추기경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지크의 생각은 달랐다.
“전 이곳에 모인 본국의 대소신료들과, 성전을 위해 와주신 각 교단의 지도자 여러분들이 한낱 사이비의 궤변에 현혹되지 않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으음.”
“그리고….”
지크가 살며시 웃으며 덧붙였다.
“지 무덤 파러 왔는데 굳이 말릴 필요는 없겠죠.”
“예?”
“일단 만나봅시다.”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슬쩍 손짓을 해 에리얼 백작의 환영이 어전으로 들어올 수 있게끔 했다.
***
그로부터 5분 후.
“신 에리얼, 전하를 뵙습니다.”
가증스럽게도, 에리얼 백작의 환영은 지크를 향해 공손히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 신하가 왕에게 올리는 예법을 취했다.
“어쩐 일이냐?”
지크가 물었다.
“전하. 신 에리얼은 그저 전하의 신하이옵니다. 어찌 이러시옵니까?”
“얼씨구.”
“신은 그저 폐관 수련 도중 깨달음을 얻어 전능의 힘을 손에 넣었을 뿐이옵니다. 반란이라니, 당치도 않사옵니다.”
에리얼 백작은 백성들을 현혹시켰던 것처럼, 피해자 코스프레를 시전했다.
‘누가 니 속을 모를 줄 알아? 큭큭! 큭큭큭!’
지크는 그런 에리얼 백작이 귀여웠다.
처음 위령제 사건 때만 해도 에리얼 백작이 소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당했지만, 지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각 교단에서 오신 성직자들이시여. 부디 전하께 제 무고함을 말씀드려 주시옵소서.”
에리얼 백작이 교단의 지도자들을 돌아보며 간곡한 어조로 청했다.
“저는 그저 소중한 이들을 가족들의 곁으로 보내주었을 뿐입니다. 어찌 저를 사이비로 규정하셨습니까?”
“닥쳐라! 이놈!”
슈링크 추기경이 에리얼 백작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어디서 간악한 혓바닥을 놀리느냐! 닥치지 못할까!”
“부디 통촉하여 주소서. 대륙의 신앙은 여러 신들을 인정하는 문화이옵니다. 어찌 다르다 하여 사이비로 규정하고 배척하고 탄압하려 하시옵니까? 다름일 뿐, 결코….”
바로 그때였다.
“야.”
지크가 슬쩍 끼어들어 에리얼 백작을 향해 말했다.
“너 아까 뭐라 그랬어?”
“예?”
“니 입으로 전. 능. 하다며?”
에리얼 백작은 순간 말문이 막혀 머뭇거렸다.
그러기를 약 3초 후.
‘아뿔싸!’
에리얼 백작은 이란 단어가 여러 신들을 깎아내리는, 유일신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단어라는 걸 깨닫고 흠칫 굳어버렸다.
“니가 그렇게 전능하다며? 엥? 그거 완전 유일신 아니냐?”
“…….”
“다른 신들께서 심기가 상당히 불편하실 것 같은데? 신성 모독이잖아? 푸하하하하!”
지크의 입에서 박장대소가 터지고.
부들부들…!!!
에리얼 백작, 정확히는 그의 환영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
지크의 지적은 전형적인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였지만,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에리얼 백작을 잡아 족치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저런 쳐 죽일 놈을 보았나!”
“감히! 사이비 주제에 어딜 신성 모독을 하는가!”
“삶과 죽음은 자연의 섭리이거늘! 그 어떤 신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가! 네놈의 일으킨 부활은 기적이 아닌 사악한 눈속임에 불과할지니!”
각 교단의 지도자들이 에리얼 백작을 향해 강한 적개심과 분노를 토해내었다.
“…….”
에리얼 백작은 상황이 자신이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흘러가자 입을 꽉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
본래는 대륙의 다신교 문화를 주된 논리로 삼아 자신도 여러 신들 중 하나라는 명분을 획득하려 했다.
하지만 입이 방정이라고 했던가?
소울을 얻은 후 주구장창 입에 담아왔던 란 표현이 이렇듯 발목을 잡을 줄이야….
“그리고.”
지크가 덧붙였나.
“너, 내 신하 아냐? 맞아, 아니야. 딱 말해.”
“그것은….”
“니 국적이 프로아 왕국 아니냐고.”
“마, 맞사옵니다.”
“그럼 왕인 내가 니가 마음에 안 들어서 죽이겠다는데, 순순히 안 뒈지고 반항하는 건 뭐다?”
“…….”
“엥? 그거 완전 역적 아니냐?”
지크의 지적에 에리얼 백작은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
애초에 정상적인 군신 관계라면, 왕과 신하는 철저한 상명하복의 수직적 관계가 아니던가?
왕이 자신을 죽이려 든다고 군대를 일으켜 반기를 들었다면, 그건 역모라 할 수 있었다.
그 어떤 미사여구로 치장해도, 결국엔 반란인 것이다.
성공한다면 혁명이 되겠지만 말이다.
“자고로 충성스러운 신하라면 왕이 죽이면 죽이는 갑다, 하고 죽는 거 아니었어?”
“…….”
“그래야 충신이지? 이유야 어찌됐든?”
“큭….”
결국, 에리얼 백작의 입꼬리가 잔뜩 비틀리고 꼬인 미소를 만들어내었다.
완벽한 패배.
논리와 명분에서 완전히 쳐 발린 것이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네놈이 기어코 피를 봐야….”
바로 그 순간.
서걱!
오스칼이 번개처럼 검을 휘둘러 에리얼 백작의 목을 쳐냈다.
퍽!
그러자 에리얼 백작의 환영이 마치 허깨비처럼 한 줌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오스칼의 입장에선 감히 반란군의 수괴 따위가 왕인 지크를 능멸하는 꼬락서니를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잘하셨습니다, 오스칼 경.”
“망극하옵니다.”
“자, 그럼.”
지크가 각 교단의 지도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이번 전쟁을 수행할 전략, 전술을 수립하는 회의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같은 시각.
지하에 자리한 의 폐관 수련장.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으득!”
에리얼 백작은 지크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죽이고 싶다… 놈을 죽이고 싶어… 어떻게든… 내 손으로 직접 갈기갈기 찢어서 갈아 마시고 싶다… 크흐… 흐흐흐!”
에리얼 백작은 지크로 인해 반쯤 미쳐 있는 상태였다.
사실 소울을 흡수한 뒤에도 치밀어 오르는 광기를 억누르기가 쉽지 않았는데, 지크가 자꾸만 자극하는 통에 완전히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망할… 일이 이렇게 꼬여 버리다니….”
에리얼 백작은 답답했다.
아니, 답답한 정도가 아니라 숨이 턱! 하고 막힌 느낌이었다.
근거지인 는 포위당했고, 그 때문에 밑천이 되어줄 백성들의 유입은 적었으며, 대륙의 각 교단에서 보낸 군대가 곧 들이닥칠 예정이었다.
심지어, 소중하기 짝이 없는 딸까지 지크의 손에 넘어간 뒤였다.
계속된 손해.
처음 위령제를 통해 에스파드리유 지방 백성들의 민심을 어느 정도 얻은 것 외에는 점점 더 불리해져만 가는 중이었다.
“그 망할 새끼를 얕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에리얼 백작은 지크가 호구인 줄 알고 섣불리 기만했던 걸 크게 후회했다.
조금 더 천천히, 신중하게 움직였더라면 이렇듯 궁지에 몰리진 않았을 텐데….
하지만 후회해본들 이미 늦은 뒤였다.
물은 엎질러질 대로 엎질러졌고, 이제는 서로 피를 흘릴 일만 남다.
***
다음 날.
프로아 왕국군과 각 교단의 원정군은 앞으로 나아갔다.
“신이시여! 적들이 오고 있사옵니다!”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사옵니다!”
“신께 승전을 선물하여 드리겠사옵니다!”
의 군대는 에리얼 백작을 향해 필승의 의지를 드러내 보였다.
“그렇다, 나의 백성들아. 우리는 승전할 것이다. 승리를 믿어 의심하지 말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하고 있는데 무엇이 두려우냐?”
에리얼 백작은 그런 백성들의 사기를 돋우어 주었다.
그렇게 당장에라도 공성전이 벌어질 듯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던 앞은 해가 저물도록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에리얼 백작은 적들이 공격해오지 않자 무슨 일인가 싶어 첨탑 위에 올라가 저 멀리 프로아 왕국군 진영을 살펴보았다.
“이 무슨…!”
에리얼 백작은 의 앞마당이라 할 수 있는 곳에 수없이 많은 천막이 설치되고 있는 걸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도대체 공성전에 저 천막들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심지어, 천막들 사이사이에서는 하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게다가 불어오는 바람에 고소한 냄새가 섞여 있는 걸 보니 전군이 슬슬 저녁 먹을 준비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이런 개 같은!”
에리얼 백작은 프로아 왕국군이 뭘 하려는지 깨닫고 또다시 분통을 터뜨렸다.
조이기 후 엎어지기.
프로아 왕국군은 공성전을 포기한 게 분명했다.
그저 를 포위한 채 에리얼 백작과 그의 군대가 먼저 나오기를 기다린다는 듯이….
같은 시각.
“자자, 패 섞습니다.”
지크는 지휘관들의 막사에서 각 교단의 지도자들과 함께 삼삼오오 짝을 지어 게임을 즐겼다.
[이번 전쟁에 임하는 우리 군의 전략과 전술은… 그냥 X나 버티는 겁니다.]지크는 공성전은커녕, 그저 진을 친 채로 시간이나 때우자는 전략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공성보다 수성이 유리하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우리는 방어하게 될 것이고, 불리하게 공격하는 쪽은 반란군이 될 겁니다. 저를 한번 믿어 보시고, 당분간은 느긋하게 기다려 보시죠.]각 교단의 수뇌부들은 그런 지크의 속을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이렇듯 천막을 친 채로 한가하게 을 즐기며 시간을 때우게 된 것이다.
“뀨! 주인 놈아!”
햄찌가 열심히 패를 섞는 지크를 향해 말했다.
“응?”
“근데 진짜로 저 자식들이 나오냐? 내버려 둬도 괜찮겠냐! 뀨우!”
“괜찮아, 괜찮아.”
지크가 휘휘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알아서 기어 나올 테니까, 잠자코 기다리면 돼.”
“뀨우?”
“내가 미쳤다고 병력을 꼬라박겠냐? 누구 좋으라고?”
전쟁에 있어 방어가 공격보다 유리하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공성전은 언제나 공성하는 쪽이 불리하고, 수성하는 쪽이 유리하단 건 만고불변의 진리였다.
“두고 봐. 우리가 방어하는 쪽이 될 테니까.”
“뀨우?”
“자자, 패 돌린다.”
지크는 굳이 더 설명하지 않고 섞은 패를 차례차례 돌리기 시작했다.
‘햄찌한텐 밑에서 한 장. 슈링크 추기경도 밑에서 한 장. 자네트 성녀님도 밑에서 한 장. 나 한 장. 햄찌한텐 다시 밑에서 한 장. 이제 슈링크 추기경에게. 마지막….’
바로 그 순간.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악!”
햄찌가 번개처럼 손을 뻗어 지크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