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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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프로아 왕국군과 각 교단의 원정군은 앞마당에 엎어져 마치 망부석이라도 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프로아 왕국군과 각 교단의 원정군은 한가하게 체스를 즐기거나, 을 즐기거나, 혹은 족구를 즐기거나, 체육 대회를 여는 등 소풍이라도 온 것처럼 놀면서 시간을 때웠다.
얼마나 놀자판을 벌였냐 하면, 최고의 여성 가수들인 과 , 을 초대해 위문 공연까지 진행했을 정도였다.
중간에 분위기 전환 겸 그랭구아르가 감미로운 발라드를 부르려고 했지만, 온갖 쌍욕과 야유에 황급히 무대를 내려와야만 했다.
[시커먼 사내새끼 꼴 보기 싫다!] [우우!] [꺼져라!] [아! 좀 꺼져!]절대 다수가 건장한 사내들로 이루어진 장병들의 입장에서, 그랭구아르는 그저 꼴 보기 싫은 느끼남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져 가고 있었다.
“신이시여! 식량이 곧 떨어질 것이옵니다!”
“지금은 식량보다 당장 식수가 더 부족하옵니다!”
“적들이 저수지를 틀어막아 영지의 물이 거의 떨어졌사옵니다!”
“신이시여! 어찌하면 좋겠나이까?”
의 식량이 떨어지리라는 건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본래 수용 가능 인원보다 거의 10만 명이 더 들어오는 바람에, 현재 의 식량은 빠른 속도로 소모되고 있었다.
당장에 돈 한 푼 없이 빈손으로 온 사람들이 태반이라서, 주거 시설 역시도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인구가 갑자기 10만 명이나 불어나 화장실과 배수로가 터져 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 사람이 하루에 똥을 한 번씩 싼다고 해도 하루면 무려 10만 개의 똥이 생성되지 않겠는가?
때문에 의 병사들은 이 더운 여름날에 그 많은 인분을 퍼다 땅에 묻어야 했다.
문제는 날이 너무 더워서, 땅에 묻었지만 냄새가 영지 전체에 진동했다는 것.
안 그래도 무더위에 노약자들이 픽픽 쓰러져 나가고 있던 중이었는데, 고약한 악취까지 진동하기 시작했으니 가 순식간에 생지옥으로 돌변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 와중에 지크는 고통 받는 를 도발하기 시작했다.
지크는 앞에 커다란 파라솔을 설치하고, 역시 커다란 욕조에 얼음을 잔뜩 퍼 담았다.
그러고는 웃통을 훌훌 벗어 던져 그 멋진 상체를 드러낸 뒤에, 오일을 잔뜩 바른 후 선베드에 드러눕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전하! 더욱 시원한 바람을 선사해 드리겠사옵니다!”
“전하! 시원하시옵니까? 하하하!”
그런 지크의 좌우로 병사들이 돌아가면서 커다란 부채를 부쳐 부채질을 해주었고.
“호호호! 전하! 이것도 드셔 보시어요!”
“전하, 소녀가 오일을 발라 드리겠사옵니다.”
엄청난 미녀들이 지크의 곁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따라주고, 오일을 발라 주었다.
“등목~ 시원하게~ 부탁해요~!”
“네~ 전하~.”
지크는 앞에 엎드려 뻗힌 채 미녀들이 퍼부어주는 얼음물 등목까지 받으며 여유를 과시했다.
그런 지크의 모습은 언뜻 보면 굉장히 유치하고, 또 우스워 보이는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정작 에리얼 백작의 입장에서는 피가 거꾸로 솟았다.
“저 빌어먹을 새끼가….”
에리얼 백작은 지크의 도발에 약이 바짝 올라 당장에라도 총공격을 명령할 뻔했다.
지크의 도발이 충분한 효과를 발휘했던 것이다.
실제로, 전쟁에 있어 적을 도발하거나 조롱하는 등의 퍼포먼스는 때때로 굉장히 유용한 전술의 일부였다.
삼국지연의-비록 소설이지만-를 보면, 제갈량이 진을 치고 버티던 사마의에게 여자 옷과 관을 보내 도발을 시전하지 않았던가?
– 야!
그때, 지크의 목소리가 마법의 확성기를 타고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 덥냐? 더우면 잘난 신한테 빌어서 비 좀 시원하게 내리라고 해 봐!
– 밥은 먹고들 다니냐? 설마 식량 떨어진 거 아니지? 하긴! 식량이 떨어지면 잘난 신께서 돌을 빵으로 바꿔 주시니까 상관없나? 와! 그거 완전 창조 경제인데! 그게 진짜 땅 파서 먹고사는 거지!
– 물은 떨어졌을 텐데? 누구 말마따나 물이 없으면 포도주를 마시면 되나? 캬아! 시원하다! 민트초코에이드 개꿀맛!
바로 그 순간.
“저건 좀 안 부러운데….”
“우웩!”
“애매한데?”
“왕이라고 다 좋은 것만 먹고사는 건 아닌 모양이군….”
성벽 위에서 지크를 부러워하던 의 병사들은, 지크가 를 마시는 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으응? 이게 아닌가?”
지크가 자신의 도발이 잘 먹혀들어 가지 않는 것 같아 고개를 갸웃거리던 무렵.
“뀨우!”
햄찌가 훌쩍 날아 지크에게 드롭킥을 먹였다.
“으악!”
“뀨! 이 멍청한 주인 놈아! 그건 아무도 안 부러워한다! 뀨우우!”
“제, 젠장!”
“그만 도발하고 들어가서 하드스톤이나 하자! 뀨우!”
“그래.”
지크는 그렇게 도발 퍼포먼스를 마치고 게임을 즐기기 위해 햄찌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지크의 손목에는 하얀색 붕대가 칭칭 휘감겨 있었다.
***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그렇게 열흘이 지났을 무렵.
“…일주일을 버텼는데.”
에리얼 백작은 진짜로 돌멩이를 빵으로 바꾸어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고 돌아온 직후 이를 악물고 혼잣말했다.
가 포위된 지 무려 2주째였건만, 프로아 왕국군과 각 교단의 원정대는 공격해올 기미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에리얼 백작은 자신의 전능함을 과시하기 위해 돌을 빵과 고기로 바꾸고, 썩은 오물을 신선한 물과 포도주로 바꾸었으며, 날이 너무 더우면 먹구름을 불러오거나 아예 비를 내리는 등의 기적을 행하며 버텼다.
그러나….
“크윽!”
에리얼 백작은 이마에서 강력한 통증을 느끼며 주저앉았다.
지직, 지지직!
이마에 박아 넣은 으로부터 허연 에너지가 뭉클뭉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너무 능력을 남발하다 보니 과 융합된 이 에리얼 백작을 집어삼키려 했던 것이다.
“이 빌어먹을 새끼….”
에리얼 백작은 지크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지크는 에리얼 백작의 능력이 진짜로 전능하지 않다는 걸 거의 확신에 가깝게 의심하고 있었기에, 일부러 싸움을 걸어오지 않고 계속 도발만 하고 있었다.
또한 식량과 식수가 떨어질 것을 알기에 알아서 기어 나오길 기다리는 게 분명했다.
얄밉게도, 지크는 앉은 채로 에리얼 백작의 약점을 집요하게 후벼 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굉장히 옳았다.
지금 에리얼 백작은 기적을 너무 많이 행한 터라 폭주하는 소울의 에너지를 제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니까.
“며칠만… 며칠만 더 기다려 보는 것이다… 며칠만….”
에리얼 백작은 좀 더 버텨보기로 했다.
확신에 가까운 지크의 의심이 로 바뀌고, 조급함에 먼저 선제공격을 가해 오기를 기다려 보려는 것이다.
***
그 후로도 지크와 에리얼 백작의 자존심 싸움은 계속되었다.
‘네까짓 놈이 얼마나 버틸까? 슬슬 기어 나오시지?’
‘내가 기어나갈 것 같은가? 와라, 애송이 박살을 내주마.’
지크와 에리얼 백작은 서로 공격이 아닌 방어를 통해 전투에서 이득을 보려고 악착같이 버텼다.
하지만 유리한 쪽은 지크였다.
[지그하르트의 후예 녀석이 벌인 일은 단순히 이 세계의 섭리가 아니라, 전 우주의 섭리마저 거스르는 행위이니라.]지크는 사부가 해주었던 말을 통해 에리얼 백작이 진짜로 전능한 게 아니라는 걸 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심적으로 에리얼 백작보다 더 우위에 있었고, 눈곱만큼의 조급함도 느끼지 않은 채 여유를 부리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가 포위된 지 정확히 25일째 되던 날.
“이야! 맛있다! 거 쫄깃한 게 육즙이 막 흐르네! 흘러!”
지크는 앞에 그릴 수백 개를 설치해놓고 장병들과 바비큐 파티를 벌였다.
그러고는 마법사들을 시켜 바람이 쪽으로 불게 해 노릇노릇한 고기 냄새를 풍기는 만행을 저질렀다.
“오늘 밤.”
결국, 에리얼 백작은 휘하 지휘관들을 모아놓고 선제공격을 명령했다.
“나의 군대가, 신의 군대가 적들을 쳐부수기 위해 출정할 것이다. 놈들이 선제공격을 해오지 않는 이상,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나의 법(法)을 전 대륙에 펼치기 위해선, 이제는 성 밖으로 나가야 할 때이니라.”
“오오! 신이시여!”
지휘관들은 에리얼 백작의 말에 마치 광신도들처럼 눈이 뒤집혀 그저 찬양 일색이었다.
성 밖을 나가 작정하고 방어선을 구축한 적진을 상대로 병력을 꼬라박아야 하는 입장에서, 불리함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의 무서움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
에리얼 백작이 선제공격을 결정한 지 정확히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전하! 적진에서 대규모 병력의 움직임이 있다는 급보이옵니다!”
전령이 지크와 각 교단의 지도자들이 을 즐기던 막사 안으로 뛰어들어 와 보고했다.
“드디어!”
지크는 전령의 보고에 벌떡 일어났다.
와장창!
그러자 을 즐기던 테이블이 엎어지며 위에 있던 금화들과 카드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캬아아아악! 주인 놈! 일부러 판 엎었다! 캬아아아악!”
“전하! 보고는 보고지 멀쩡한 판은 왜 엎는 것이옵니까?”
“이게 무슨 짓입니까!”
햄찌와 슈링크 추기경과 성녀 자네트는 지크가 판을 엎어버리자 무척이나 분노했다.
왜냐하면, 이 판은 지크가 빼도 박도 못 하고 큰돈을 잃을 게 분명했었기 때문이다.
“전군! 전투준비태세를 갖추라 전하세요! 아군 진영에 전투준비태세를 알리세요! 어서!”
지크는 햄찌, 슈링크 추기경, 성녀 자네트의 항의를 깔끔하게 씹어버리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캬아악! 주인 놈! 이거 노린 거다!”
“크흠! 이걸 이렇게 판을 엎으십니까?”
“양심이 있으신가요?”
햄찌, 슈링크 추기경, 성녀 자네트가 지크를 비난했지만, 이 뻔뻔한 인간은 마치 귀머거리라도 된 것처럼 반응하지 않았다.
‘휴우! 십년감수했네!’
지크는 속으로 크게 안도하며, 즉시 회의를 소집했다.
“그러니까 전투가 시작되면….”
지크가 한창 전술에 대해 설명할 때였다.
“전하, 지금 이 전술은….”
슈링크 추기경이 지도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지도 위에는 의 반란군을 상징하는 하얀색 말과 원정군을 상징하는 붉은색 말, 그리고 프로아 왕국군을 상징하는 검은색 말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문제는 프로아 왕국군을 상징하는 검은색 말이었다.
지도에 점선으로 표시된 프로아 왕국군의 이동 경로는 결코 전투에 참가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원정군의 성공적인 퇴각을 보조하는 움직임에 가까웠다.
“전하, 프로아 왕국군의 병력 배치와 예상 이동 경로가 마치….”
슈링크 추기경이 전체적인 병력 배치를 눈여겨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제 눈에는 전투의 패배를 염두에 둔 병력 배치처럼 보이옵니다.”
그러자 지크가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예?”
슈링크 추기경이 와락 인상을 구기며 되물었다.
“이번 전투에서 아군이 패배하기라도 할 것이란 말씀이십니까?”
“예.”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 우린 패배할 겁니다.”
“어찌 그런 말씀을….”
“그게 그러니까….”
지크가 자신의 발언에 대한 부연 설명을 곁들였다.
***
그날 밤.
쩍, 쩌어어어어억!
의 성문이 열리기 시작하고, 안쪽에서 을 상징하는 군복을 입은 병력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셋! 둘! 하나! Fire!!!”
“Fire!!!”
그와 동시에 연합군(프로아 왕국군 + 각 교단에서 보낸 원정군)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프로아 내전.
그 전쟁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