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645
644
“와우.”
지크는 한상기가 보여준 권총 사격술을 보고 감탄했다.
“권총을 그렇게도 사용할 수 있네요?”
“잡는 방법부터가 여러 가지가 있지. 기본적으로 권총은 몸에 바짝 붙여서 사용하는 게 여러모로 유리해. 이렇게 45도 각도로 틀어서 몸과 권총의 중심축을 유지해 주고.”
“오오오!”
“이 게임은 총이 별로 센 무기가 아니라서 이런 기술들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더라고.”
한상기의 지적은 옳았다.
기본적으로, 뉘르부르크 대륙은 마나를 기반으로 검과 마법이 지배하는 세계였다.
총의 마나 손실률 때문이라도 총을 주 무기로 쓰는 사람들이 적었고, 총기에 관련된 기술이나 전투 기법 등도 발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이런 기술들이 현실에서도 사용하는 거거든.”
“아?”
“옛날에 PC게임 시절엔 이런 움직임 자체가 구현이 안 됐었는데, 가상 현실이 보편화되면서 많이 개선됐지. 이젠 FPS게임 잘하려고 미국까지 날아가서 현실에서 사격술을 교습 받는 세상이니까.”
“크으!”
“일단 시범은 보여줬으니까, 한번 실습해볼까?”
“예!”
지크는 곧장 를 리볼버 형태로 바꾼 뒤 부르스와 마주했다.
실탄은 쓰지 않았다.
왜?
비쌌으니까.
지크는 실탄 대신 연습용 탄약 세 발을 실린더에 넣고, 부르스와 대련했다.
탁!
지크는 덤벼드는 부르스의 몸통을 어깨로 강하게 친 뒤 밀쳐내고, 뒤이어 방아쇠를 두 번 당겼다.
탕탕!
몸에 두 발.
탕!
그리고 머리에 한 발.
아주 깔끔하기 짝이 없는, 완벽한 응용 동작이었다.
“헉?”
한상기는 그런 지크의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 그걸 한 번에?”
“이거 완전 좋은데요?”
지크는 한상기가 경악하는 줄도 모른 채 조금 전 해본 권총 사격술이 재밌어서 싱글벙글 즐거워했다.
“부르스, 다시 해보자.”
[My name is Bruce, Bruce wood.]지크는 내친김에 부르스와 근접전을 펼치며, 권총 사격술을 더 응용해 보았다.
심지어, 단순 격투술이 아닌 그래플링 기술까지 응용하는 기염을 토했다.
무왕 레오니드로부터 격투술과 그래플링 기술을 배운 지크에게는, 이 권총 사격술이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던 것이다.
‘마, 맙소사! 저렇게 빨리 배우다니!’
한상기는 그런 지크의 엄청난 학습 속도에 경악했다.
고작 한 번 본 동작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그걸 다른 격투술에 응용해서 사용할 줄이야?
“와! 선배님! 이 기술 엄청나게 유용한데요? 진짜 모르면 크게 당하겠어요.”
“그, 그렇지?”
“예!”
“하하… 하하하….”
“더 가르쳐 주십시오!”
“무, 물론 그래야지!”
한상기는 지크의 무시무시한 학습 속도에 땀을 삐질 흘렸다.
‘이거 순식간에 밑천 거덜 나는 거 아냐? 아니지. 권총 사격술이야 그렇다 치고. 저격술은 쉽지 않지.’
한상기는 살짝 불안했지만, 저격술을 믿고 자신감을 갖기로 했다.
저격술이야 가르쳐 준다고 바로바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밑천이 거덜 날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흠흠! 그럼 이제 본격적인 사격술을 배우러 가볼까?”
“예! 선배님!”
지크가 해맑게 웃으며 한상기의 뒤를 졸졸 따랐다.
***
지크와 한상기는 프로아 왕국 뒷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 보십시다.”
한상기는 아공간 인벤토리를 열어 게임 BNW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총과 활을 꺼내놓았다.
“음? 뭐죠?”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뭐다?”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죠?”
“사격술을 배우기 전에, 각 무기를 먼저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음.”
지크가 잠깐 생각을 해본 뒤에 말했다.
“각 무기별로 소리도 다르고, 사거리도 다르고, 투사체가 그리는 궤적이 다르단 말씀이시죠?”
“그, 그렇지! 옳지!”
“그러니까 이 무기들을 한 번씩 써보고, 소리를 외울 필요가 있겠네요? 그래야 적이 어디서 저를 쏘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그, 그것도 맞지!”
“그럼 외워보죠.”
“그, 그럴까?”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지크는 각 원거리 무기들이 내는 소리와 특유의 궤적, 그러니까 투사체의 운동 특성을 외우는 시간을 가졌다.
그로부터 세 시간 후.
“맙소사….”
한상기는 각 무기들의 특성을 완벽하게 외웠다는 지크의 말에, 일종의 쪽지 시험을 쳐 보았다가 경악해 버렸다.
왜냐하면, 지크가 그 짧은 시간 동안 각 무기의 특성을 완벽하게 외웠기 때문이다.
“와! 이제 어지간한 원거리 무기에는 안 당하겠어요! 멀리서 쏴도 금방 위치를 알아낼 수도 있을 테고요!”
“그렇지….”
“그럼 이제 사격술도 가르쳐 주십니까?”
“그, 그래야지….”
한상기는 바짝 긴장했다.
지크는 마치 스펀지라도 되는 것처럼, 각종 팁과 노하우를 빨아들이고 있어서 사격술까지도 빠르게 배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아니었다.
“일반적인 사격은 군대에서 배운 걸 써먹어도 충분해.”
“예, 선배님.”
“하지만 저격은 달라.”
“어떤 점에서 다르죠?”
“저격을 잘 하려면 기본적으로 환경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하거든.”
“음?”
“총알의 운동 특성은 풍향, 풍량, 습도, 고도차, 온도, 기압 같은 환경적 요인에 따라 달라져.”
“지, 진짜요?”
지크는 이번에는 깜짝 놀랐다.
단순히 잘 쏘면 되는 줄만 알았지, 기후와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건 몰랐기 때문이다.
“몰랐어? 물리 시간에 졸았나?”
“제, 제가 문과라서… 하하하….”
지크는 자기가 무식한 주제에 괜한 문과생들을 욕보이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흠! 그럼 쉽지는 않겠어!”
“그래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좋아, 좋아!”
사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지만, 한상기는 지크가 은근히 애를 먹는 것 같은 모습에 입이 쭉 찢어져라 좋아했다.
‘암! 그렇고말고! 아무리 게임 재능이 뛰어나도 그렇지! 내 밑천을 눈 깜짝할 사이에 빼먹는 건 말이 안 되지!’
한상기는 두려웠다.
지크가 한 게임에서 레전드를 찍었던 자신을 순식간에 뛰어넘을 것 같아서 괜스레 무서워졌던 것이다.
“관측 장비는 대충 게임 인터페이스 보면 현재 위치랑 기온 같은 건 표시되니까, 그걸로 대신하고.”
“예, 선배님.”
“다양한 환경에서 쏴봐야 해. 그래야 감이 생겨.”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해볼까?”
“예!”
지크는 살짝 자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일정 수준이 될 때까지는 노력해 보기로 했다.
왜?
그런 근성이 지크의 가장 큰 무기였으니까.
***
지크는 한상기에게 사격술을 지도받는 한편 프로아 왕국의 내정에 힘썼다.
마지막 남은 소울의 위치가 확인될 때까지는 딱히 할 일이 없었기에, 이렇듯 내정을 다지는 데 시간을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던 중.
“태성아. 내가 한마디 해도 될까?”
의 레전드 출신인 김기태가 지크를 찾아와 말했다.
“어? 선배님! 물론이죠! 말씀만 하세요!”
“내가 우연히 에스파드리유 지방 재개발 사업에 관한 기획안을 봤는데 말야….”
김기태가 를 꺼내 펼쳐 보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여기 요새 위치랑 군사 시설 위치가 별로인 것 같아서.”
“예?”
“그러니까 방어할 땐 좋은데, 병력 운용이 좀 까다로울 것 같아. 차라리 여기 이 요새의 위치를 이쪽으로 옮기고….”
“어?”
지크는 김기태의 설명을 들다가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깜짝 놀랐다.
심시티.
예컨대, 건물로 좁은 입구를 막는다거나 병력의 생산과 이동 경로를 원활하게 만드는 기술.
심시티는 얼핏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때때로 그 어떤 전략 전술보다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만들어주곤 했다.
특히, 김기태가 플레이했던 게임인 와 같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RTS)에서 심시티는 프로게이머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 심시티를 지적하시는 거 맞죠?”
“바로 그거지.”
김기태가 웃으며 말했다.
“도시 계획을 작성한 사람한테는 미안하지만, 내 의견을 좀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서.”
“당연하죠!”
지크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프로아 왕국의 국토부 장관이 된 미노디에르 자작을 불러들였다.
“신 미노디에르, 전하를 뵙습니다.”
“어서 오세요, 미노디에르 장관님.”
“어쩐 일로 소신을 부르셨사옵니까?”
“그게 그러니까….”
지크는 미노디에르 자작에게 에 대한 김기태의 의견을 들려주었다.
“흠.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미노디에르 자작은 자신의 도시 계획안이 지적을 받자 살짝 기분이 나쁜 것처럼 보였지만, 일단 김기태의 의견을 참고해 설계도를 살펴보았다.
그로부터 5분 뒤.
“오오!”
미노디에르 자작은 김기태가 수정한 계획서를 보고 크게 감탄했다.
“전하! 맞사옵니다! 시설물 배치는 이게 맞사옵니다!”
“그래요?”
“예! 전하! 특히나, 자원과 병력의 이동 경로와 요새의 배치가 완벽하옵니다! 전략 전술적으로 이보다 더 좋은 도시 계획은 없사옵니다!”
“역시.”
지크가 김기태를 돌아보았다.
“선배님, 대단하십니다.”
“하하! 뭘 이런 걸 가지고!”
“여기 미노디에르 자작이 본국의 국토부 장관인데, 같이 이야기를 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나야 좋다. 안녕하십니까, 김기태라고 합니다.”
김기태가 미노디에르 자작에게 악수를 청했다.
“미노디에르라고 합니다.”
미노디에르 자작 역시 김기태가 내민 손을 맞잡으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수정해주신 계획안, 잘 보았습니다.”
“하하! 별말씀을.”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요.”
“그게 그러니까….”
김기태와 미노디에르 자작은 통성명을 하자마자 서로가 가진 지식을 나누며 열띤 토론을 펼쳤다.
“와우.”
지크는 그런 김기태와 미노디에르 자작이 죽이 잘 맞는 걸 보곤 은근슬쩍 자리를 피해주었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힘을 합쳐준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 앞으로의 도시 계획과 군사 시설 설치가 더욱 효율적으로 이뤄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역시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분들이셔.’
지크는 레전드들을 모시게 된 것을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
그로부터 이틀 후.
‘집중. 숨 참고. 심장 박동 줄이고. 근육 움직임은 최소화하고.’
지크는 언덕 위에 엎드린 채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고블린을 지켜보고 있었다.
“뀨! 주인 놈아!”
햄찌는 베레모를 쓴 채로 지크의 옆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고블린을 지켜보며 부사수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습도, 온도, 둘 다 괜찮다. 바람이 남동풍이긴 한데, 약해서 괜찮을 거다. 뀨우!”
“그래? 알겠어.”
지크는 부사수 햄찌의 말에 스코프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우웅!
그러자 지크의 시력과 스코프의 성능이 더해져 1킬로미터 밖 고블린이 엄청나게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셋, 둘. 하나.’
지크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성이 울려 퍼지고.
펑!
1킬로미터 밖에 있던 고블린의 머리통이 마치 수박 터지듯 펑! 하고 터졌다.
약 일주일.
지크는 본격적으로 사격술을 배운지 불과 일주일 만에 1킬로미터라는 장거리 저격을 성공시켰다.
물론 라는 캐릭터의 스펙이 워낙에 뛰어난 덕분에, 다른 게이머들보다 육체 컨트롤도 정교하고 멀리 있는 것도 더 잘 보인다는 이점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야호!”
지크는 저격에 성공한 직후 벌떡 일어나 환호했다.
“뀨! 주인 놈아! 잘했다!”
“너도 수고했다!”
지크는 햄찌와 얼싸안으며 1킬로미터 저격을 자축했다.
그리고 한상기는….
“마, 말도 안 돼….”
지크의 1킬로미터 저격에 경악했다.
지크가 권총 사격술을 30분 만에 마스터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그 어렵다는 초장거리 저격을 불과 일주일 만에 해낼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