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659
658
“위대하신 분의 은혜가 하해와 같사옵니다!”
“하해와 같사옵니다!”
그렇게 지크와 게이머들은 무사히 죽을 위기를 넘기게 되었다.
[헌데 너희들은 어찌 이곳에서 싸움을 벌였던 것이냐?]불카누스가 지크에게 물었다.
“예, 위대하신 존재시여. 저희는 생명의 간헐천을 두고 이권다툼을 벌이고 있었사옵니다.”
[생명의 간헐천?]“예, 저기 저 커다란 호수 말이옵니다.”
지크가 중장비들이 버려져 있는, 그러니까 아반트와 이 도망가고 난 을 가리키며 그간의 자초지종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껄껄껄!]그러자 불카누스가 대뜸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문제는 그다음.
“윽!”
“크으윽!”
“시, 심장이… 컥!”
불카누스의 웃음소리에 강력한 초저주파(超低周波)가 실린 탓에, 게이머들은 고통스러워했다.
마치 호랑이의 포효를 듣고 오금이 저리는 것처럼 말이다.
과연 998레벨의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이었다.
“어찌 웃으시옵니까?”
[저 생명의 간헐천이란 내 육체로부터 뿜어져 나온 마나가 스며들어 생긴 것이다.]“예?”
[흠흠. 본체로는 이야기를 나누기가 불편하구나.]불카누스는 지크를 내려다보기가 목이 아팠는지, 곧장 폴리모프 마법을 부려 인간의 형상으로 변신했다.
‘어? 대장장이 신 불카누스의 모습이잖아?’
지크는 불카누스가 폴리모프한 모습이 대장장이 신을 묘사한 그림이나 석상과 꽤나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고대인들은 대장장이 신 불카누스가 레드 드래곤이었단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사실 너희가 생명의 간헐천이라 부르는 곳은, 나의 무덤 위에 고인 웅덩이이다.”
“예?”
“사실 이곳 전체가 나의 무덤이니라.”
불카누스가 이곳 을 슥 돌아보곤 말했다.
“무덤…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무덤이라 하심은….”
“말 그대로 무덤이다. 나는 창세기에 태어난 태초의 드래곤이자 모든 레드 드래곤들의 조상이니라. 나의 시대는 갔고, 나의 숙명 역시 끝났다. 그러니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감이 옳다.”
“헌데 어찌하여 아직 살아계시는지요?”
“그것은….”
불카누스가 멋쩍은지 뒤통수를 긁적였다.
“내가 본의 아니게 신앙의 대상이 되어 반쯤 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
“죽어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나의 강력한 육체가 좀처럼 흩어지지 않더구나.”
“그, 그러셨습니까.”
“나는 이곳 지하에 거대한 무덤을 만들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내 육체가 조금씩 흩어지게 해놓았다.”
“아!”
“그런 나로부터 뿜어져 나온 마나와 화속성 에너지가 이곳을 화산 활동이 벌어지는 지대처럼 만들었던 모양이다. 너희가 생명의 간헐천이라 부르는 곳도 사실은 흩어진 나의 생명력이 스며들었던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 그랬던 것입니까?”
“내가 내 무덤을 화산 지대 위에 지을 머저리일 리가 없지.”
“하기야, 위대하신 존재께서 그러실 리가 없겠지요.”
지크가 불카누스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그럼 위대하신 존재께서는 육체가 다 흩어지시면 신이 되시는 겁니까?”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 싶구나. 육체만 흩어진다면….”
“하하. 위대하신 존재께서는 돌아가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모양입니다. 하하하….”
지크가 멋쩍은 듯 웃을 때였다.
“저어….”
용설화가 를 든 채로 조심스레 다가왔다.
‘아! 맞다!’
지크는 그제야 용설화에게 전직 퀘스트가 떠올랐던 걸 기억해냈다.
‘설화 퀘스트 내용이 생명의 간헐천 지하에서 고대의 대장장이 신을 만나는 거였잖아?’
이미 퀘스트가 가리키는 대장장이 신이 불카누스라는 게 밝혀진 상황.
용설화의 전직은 이미 예정된 일이라고 봐도 좋았던 것이다.
***
“미천한 존재가 위대하신 분을 뵙사옵니다.”
용설화가 다소곳하게 불카누스를 향해 예를 올렸다.
“너는 누구냐.”
불카누스가 살짝 놀라며 용설화에게 물었다.
“어떻게 나의 갈비뼈를 가지고 있느냐?”
“우연한 기회에 얻게 되었사옵니다.”
“으음!”
“이 망치가 위대하신 분의 갈비뼈로 만들었단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듯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나 역시 나의 후예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느니라.”
“예? 제가 위대하신 분의 후예입니까?”
용설화는 불카누스가 자신의 후예라고 말하자 놀랐다.
“당연한 말을. 그 망치를 가진 자가 곧 나의 후예이니라.”
“여, 영광이옵니다.”
“헌데 넌 나의 망치를 가졌지만, 나의 기술은 가지지 못하였구나.”
“예?”
“그런 실력으로 어떻게 대장장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어찌 나의 후예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송구스럽사옵니다.”
“너는 나의 갈비뼈로 만든 망치를 가진 자. 그러니 내 너에게 나의 기술을 알려주도록 하겠노라.”
“그, 그게 정말이시옵니까?”
“물론이니라.”
불카누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용설화의 이마에 자신의 손을 슬쩍 올려놓았다.
“나의 후예여. 나의 후예다울지어다.”
그 말이 끝나던 순간.
스으으!
용설화가 핑크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번쩍!
뒤이어 전직 이펙트가 떠오르고, 용설화의 눈앞에 알림창들이 주르륵 떠올랐다.
[알림 : 축하드립니다!] [알림 : 용설화 님이 레전더리 클래스인 에서 히든 클래스인 로 전직하셨습니다!] [알림 : 에픽 코드 발동!] [알림 : 가 발동되었습니다!] [알림 : 당신은 에픽 코드를 부여받은 특별한 게이머입니다!] [알림 : 에픽 코드를 부여받은 게이머는 이 게임의 메인 시나리오를 담당할 주역 중 하나입니다!]용설화는 자신이 히든 클래스인 로 전직하자 너무나도 놀랐다.
“오, 오빠!”
용설화가 지크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응?”
“저 전직했어요!”
“뭐로?”
“히든 클래스요!”
“뭐?! 진짜???”
“네! 보여드릴게요!”
용설화는 그 누구보다 지크에게 먼저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을 보여주었다.
또한, 란 클래스에 대한 설명창도 같이 띄워주었다.
[용의 대장장이]태초의 드래곤이자 최초의 레드 드래곤이며 모든 레드 드래곤들의 조상인 홍염의 불카누스의 후예.
•역할군 : 근접 딜러, 서포터, 대장장이, 마법사, 연금술사
•설명 : 대장장이 계열 클래스의 끝판왕. 궁극의 대장장이로써, 차후에 각성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상위 클래스로 전직할 수 있다.
스스로 만들어낸 무기를 이용해 전투를 수행하는 물리공격형 근접 딜러이다.
•주무기 : 둔기
•주방어구 : 가죽 방어구
[잠재력]•공격 : ■■■■■■■■□□
•방어 : ■■■■■■■■□□
•민첩 : ■■■■■■■■□□
•유틸 : ■■■■■■■■■■
•제작 : ■■■■■■■■■■
“오오!”
지크는 용설화의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과 클래스에 대한 설명창을 보고 매우 놀라워했다.
“히든 클래스! 축하해!”
“고마워요! 오빠! 다 오빠 덕분이에요!”
지크는 용설화의 히든 클래스 전직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위대하신 존재시여, 감사합니다.”
“껄껄!”
“위대하신 존재시여.”
지크가 조심스레 불카누스에게 물었다.
“불미스러운 일로 잠에서 깨셨는데, 다시 잠드십니까?”
“으음. 그래야지.”
“아쉽습니다.”
“음?”
“비록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뵙게 되었으나, 이렇듯 위대하신 존재의 존안을 뵌 것도 무한한 영광이라 하겠지요.”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미천한 존재여.”
“실례되지 않는다면, 누추하나마 제가 다스리는 왕국에 위대하신 분을 초대하고 싶어서 말씀드려 보았습니다.”
“초대? 나를?”
“예, 위대하신 존재시여.”
“으음! 초대라!”
“위대하신 존재께서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정성껏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서….”
“허!”
불카누스가 그런 지크의 말에 혀를 내둘렀다.
“이런 예의 바른 녀석을 보았나?”
“그, 그렇습니까?”
“껄껄! 예의를 아는 자로다, 예의를 아는 자야. 미천한 인간치곤 기특하기 짝이 없구나!”
“과찬이십니다.”
“좋다! 내 너의 왕국에 들러보도록 하겠다!”
“영광, 또 영광이옵니다. 최선을 다해 확실하게 모시겠습니다!”
지크가 비열한 표정을 지으며 손바닥을 슥슥 비볐다.
‘오빠 왠지….’
용설화는 그런 지크의 모습이 나이트클럽의 웨이터가 VIP고객을 대하는 것처럼 보여서, 제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그래서였을까?
띠링!
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 축하드립니다!] [알림 : 새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그 효과는 다음과 같았다.
[비열한 간신배]자신보다 윗사람이나 강한 존재에게 아부를 잘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
타입: 칭호
•등급 : 유니크
•효과 : NPC에게 아부할 시 상대방이 넘어올 확률 +25%
“…아.”
지크는 새로 획득한 칭호인 를 바라보며 울상을 지었다.
그저 살기 위해 아부를 했을 뿐인데 라는 부정적인 칭호가 주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
그렇게 의 소유권을 놓고 벌어진 전쟁은 길드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불카누스가 잠시 무덤에 새는 누수-사실 드릴이 뚫은 구멍을 타고 생명수가 새는 거였다-를 메꾸러 간 사이.
“조카, 수고했어.”
“오빠, 정말 고생하셨어요.”
지크는 용태풍과 용설화로부터 진심이 담긴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
“서로 돕고 살아야죠.”
지크가 웃으며 말했다.
“참, 난 드래곤 님 모시고 프로아 왕국으로 갈 건데 설화 너도 올래?”
“아니에요.”
용설화가 고개를 저었다.
“새 클래스도 얻었는데, 스킬도 알아보고 그래야죠.”
“그런가?”
“네, 오빠.”
사실 용설화는 지크를 따라가고 싶었다.
그러나 용설화는 매우 현명한 여자였으므로, 지크보다 더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오빠의 아내가 눈치챌 수도 있어. 그녀가 불편해하면, 오빠도 날 불편해하면서 멀리할 거야. 그러니까 프로아 왕국에는 얼씬도 하지 말자. 오빠의 게임 라이프를 방해하면 안 돼.’
용설화는 지크가 게임 속에서 NPC들과 맺고 있는 관계까지 생각하고, 또 배려했던 것이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당사자인 지크는 그런 용설화의 속 깊은 생각을 미처 읽지 못했지만.
“뀨. 주인 놈아.”
그때, 햄찌가 지크에게 물었다.
“괜찮겠냐?”
“응?”
“프로아 왕국에 저 레드 드래곤을 데려가도 되는 거냐! 뀨우!”
“글쎄.”
지크가 어깨를 으쓱였다.
“잘 대접만 하고 비위만 맞춰주면 별문제 없지 않을까? 뭔가 돈 될 만한 걸 얻을 수도 있겠지.”
“뀨우?”
“어차피 사부님 계셔서 상관없어.”
지크는 사부가 998레벨의 불카누스에게 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좀 기대가 됐다.
스스로 무적을 자처하는 사부와 998레벨의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을 만나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던 것이다.
“흐흐. 형님.”
승구가 다가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사악하십니다.”
“으응? 내가?”
지크가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왜? 나 아무 짓도 안 했는데?”
“흐흐. 형님. 저는 다 압니다.”
“뭘?”
“사실….”
승구가 지크의 귓가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레드 드래곤을 프로아 왕국에 데려가셔서….”
“……?”
“어르신에게 맞아 죽게끔 하시려는 거 아닙니까? 드래곤의 시체를 날로 챙기시려고….”
승구는 이른바 차도살인(借刀殺人)을 말했다.
타인을 이용하여 적을 죽이는 것 말이다.
“내, 내가?”
“형님, 다 압니다. 괜히 아닌 척하지 마시죠.”
“아닌데?”
“에이~.”
승구는 지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저한테까지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러자 햄찌가 그제야 지크의 의도를 읽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뀨! 주인 놈아! 주인 놈 진짜 똑똑한 쓰레기다! 인성 오진다! 오져~! 뀨우!”
지크는 억울했다.
“야, 이! 아니라니까!”
하지만 햄찌와 승구는 지크의 말을 결코 신뢰하지 않았다.
“뀨! 주인 놈! 비열함의 끝판왕이다!”
“크으! 형님! 오늘도 한 수 배우고 갑니다!”
그때였다.
번쩍!
무덤의 누수를 막으러 갔던 불카누스가 텔레포트해서 나타났다.
“헉? 위대하신 존재를 뵙습니다!”
지크가 황급히 불카누스를 향해 예를 취했다.
“그래, 예의 바른 인간아. 너희 왕국이 어디냐?”
“여기입니다.”
지크가 지도를 펼쳐 프로아 왕국의 위치를 불카누스에게 보여주었다.
“그래? 그럼 가자꾸나. 워프!”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번쩍!
섬광이 번뜩이며 지크 일행과 불카누스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