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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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간디도 아니고….”
지크는 아반트의 말에 어이를 상실했다.
는 과거 세기의 명작 PC 게임인의 명대사였다.
인도 문명의 지도자인 비폭력주의자 마하트마 간디.
그가 압도적인 국력을 앞세워 플레이어를 향해 금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게 백미라면 백미랄까?
그 명대사를 가상 현실 게임 시대인 지금 BNW 속에서 듣게 될 줄이야….
– 간이가 뭐냐?
“있어, 존나 센 놈.”
– ……?
“니가 말해준다고 알겠냐?”
– 애송이 놈이 끝까지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리겠다는 건가?
“됐고. 내가 딱 경고할게.”
지크가 아반트를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말로 할 때 3일 내로 크반트 님 데려와. 그리고 조용히 꺼져. 내 눈에 안 띄게 숨으라고. 그럼 목숨은 살려줄게.”
– 껄껄!
아반트는 지크의 경고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은 채 가소롭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 기어이 피를 보고야 말겠다는 소리로군. 오냐, 네놈이 그걸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마.
“말했다. 조용히 꺼지라고.”
– 크흐흐! 그 주둥이가 언제까지 살아서 나불대나 내 두고 보도록 하겠다. 큭큭큭!
“그래, 두고 보자.”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반트와의 통신을 끊어버렸다.
지크는 아반트와의 통신을 마친 후 곧바로 미켈레, 그리고 나인테일이 기다리는 회의실로 향했다.
“일이 틀어져도 단단히 틀어진 것 같아.”
지크가 입을 열었다.
“저쪽에선 내가 가진 이 무기를 원해.”
지크가 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줘 버리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럼 에스파드리유 지방의 개발 사업도 재개될 테고, 비머리언 공방과 다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이에리셔 왕국과의 외교 관계도 정상 궤도에 오르겠지요.”
미켈레가 이성적인, 지극히 계산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저 역시 같은 의견이에요.”
나인테일이 미켈레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 무기가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에는 넘겨주는 편이 단기적으로는 이득이에요.”
“그렇겠지.”
지크 역시 그 사실을 인정했다.
의 현재 가치는 그렇게 엄청나게 높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잠재력만큼은 나라 하나와 맞바꾸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정도였다.
“바이에리셔 왕국과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은 마음들, 알아. 에스파드리유 지방 개발 건도 그렇고. 근데 말야….”
지크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양보하고 피하잔 소릴 할 거야?”
“예?”
미켈레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힘을 왜 키워.”
지크가 그런 미켈레를 향해 물었다.
“우리 스스로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켜내자고 키우는 거 아냐?”
“맞습니다.”
“계속 양보하고 손해 보고 이리저리 끌려다닐 생각은 아니겠지?”
“그건….”
“이번 사건, 본국과 나에 대한 명백한 모독이고 도발이야.”
“맞습니다.”
“이번만큼은 절대로 그냥 안 넘어간다. 비머리언 공방의 새로운 수석 대장장이와 바이에리셔 왕국은 본국의 이익을 침해하고, 국왕인 나를 모독했어. 대가를 치르게 해줄 거다.”
“으음.”
“전쟁은 최대한 피해야겠지만, 상황에 따라 국가 간 전면전도 불사한다.”
“……!”
“수틀리면 바로 전쟁이야. 전군에 전투준비태세 갖추라고 해.”
“저, 전하….”
미켈레는 지크가 빠르게 결단을 내리자 살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지크는 어지간하면 전쟁은 피하자는 주의였다.
지크 개인의 행동으로 인해 프로아 왕국이 전쟁에 휩싸이는 걸 극도로 경계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지크는 의 소유권 문제를 떠나, 이번 사건을 프로아 왕국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와 업신여김으로 여겼다.
지크는 그 꼴을 더는 두고 보지 않으려는 거였다.
다른 국가가 프로아 왕국의 국익을 침해하고, 무시하지 못하도록 전면전도 불사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해볼 만하잖아? 바이에리셔 왕국이 손꼽히는 강대국도 아니고.”
“그건 맞습니다.”
“한 번쯤은 확실하게 보여줄 때가 됐어. 그리고 크반트 님은 본국의 중요한 사업적 파트너야. 그간 본국이 비머리언 공방이 가진 기술력을 이용할 수 있었던 이유가 크반트 님의 입김 덕분이라는 걸 잊어선 안 돼. 국익? 좋지. 비즈니스가 아무리 냉혹한 세계라지만, 때론 의리도 지킬 줄 알아야 되는 거야.”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어차피 아반트는 비즈니스를 떠나서 그냥 나와 본국을 노골적으로 싫어해. 크반트 님 문제가 아니더라도, 굳이 그런 상대와 일할 필요는 없다는 거지.”
“알겠습니다.”
미켈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면전, 준비하도록 하지요.”
“어디까지나 최후의 방법이니까, 너무 긴장하지는 말고. 일단은….”
지크가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말했다.
“크반트 님부터 구출해내자.”
지크는 크반트가 감옥에 갇혀 있게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
은 뉘르부르크 대륙에서도 악명 높은, 거의 최상급의 보안을 자랑하는 감옥이었다.
은 오래전 뉘르부르크 대륙의 여러 국가들이 공동으로 투자해 만들어낸 일종의 공공시설로써, 어느 국가에도 소속되지 않은 공용 감옥이었다.
그런 에는 마계 출신의 마족들이 간수와 교도소장을 지내고 있었다.
마족들은 인간, 그러니까 NPC들을 대신해 감옥을 운영하는 대가로 수감자들이 죽으면 그 영혼을 수확해갔다.
즉, 봉급을 돈이 아니라 수감자들의 영혼으로 받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크가 나인테일에게서 에 대한 정보를 듣고는 말했다.
“여기선 마나를 사용할 수 없다고?”
“네, 전하.”
“헐.”
지크는 내부에서는 마나를 사용할 수 없단 이야기를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마나는 곧 힘의 원천.
NPC나 게이머나 마나가 있기 때문에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있는 것이지, 마나의 사용이 불가능하다면 육체적 능력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모험가들은 스탯 포인트를 투자해 육체를 강화시키기에, 평범한 NPC 인간보다야 압도적으로 강력한 괴력을 뿜어낼 수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나만 사용할 수 없는 게 아니에요.”
“그럼?”
“지옥의 성은 굉장히 복잡해서, 간수들조차 각자 맡은 구역이 아니라면 길을 잃기 일쑤죠.”
“으음.”
“곳곳에 쁘띠 케로베로스란 머리 셋 달린 개들이 지키고 있어요. 그들의 후각은 매우 예민해서, 침입자의 냄새를 금방 알아차리고 짖어대죠.”
“쁘띠 케로베로스? 그건 뭐야?”
“케로베로스의 새끼라고 보시면 돼요.”
“아, 그렇구나.”
“그리고 간수들 중에서….”
나인테일의 입에서 에 대한 정보들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잠깐.”
지크는 잠자코 나인테일의 말을 한참 동안이나 듣고 있다가 뭔가 이상하다 싶어 입을 열었다.
“아니, 도대체 그걸 다 어떻게 아는 건데?”
그러자 미켈레도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지 입을 열었다.
“국장님은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그러자 나인테일이 우물쭈물 머뭇거리며 동공지진을 일으켰다.
“어… 그게 말이죠. 음. 그러니까. 제가 소녀였을 때. 무슨 말이냐면. 나인테일이 되기 전이었겠죠? 그때. 뭐랄까. 으음.”
“설마 소녀였을 때 수감되었다가 탈출했단 얘기는 아니지?”
“호호호… 그, 그럴 리가요. 호호. 호호호….”
“맞네.”
“호호호….”
“떡잎부터 남달랐구먼.”
지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 나이에 저기 수감될 정도면….”
“나, 나쁜 길로 잘못 들어서 그런 거예요!”
“그게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타고난 도둑….”
“아니라구욧!”
나인테일이 소리를 빽! 하고 질렀지만, 지크와 미켈레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도둑놈!’
‘앞으로 귀중품을 잘 간수해 둬야겠군.’
지크와 미켈레는 나인테일을 타고난, 도둑 그 자체로 인식하고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고작 소녀의 몸으로 그런 지옥 같은 감옥에 수감될 정도라면, 나인테일은 도둑질에 타고났다고 봐야 했던 것이다.
“뭐, 화려한 과거야 그렇다 치고. 어쨌든 지옥의 성을 탈옥했단 거잖아?”
“그, 그러긴 했죠.”
“그럼 또 들어갔다가 나올 수도 있겠네?”
“쉽진 않겠지만 불가능하진 않겠죠? 경험이 있으니까요.”
“그럼 됐어.”
지크가 마음에 든다는 듯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가자, 크반트 님 구하러.”
“네?! 거길 가자고요? 또?”
“왜? 할 수 있다며?”
“그건 그렇지만….”
나인테일은 에 다시 가길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탈옥하긴 했어도 어린 나이에 충격을 받았겠지. 그래서 두려운 거고.’
지크는 그런 나인테일의 속마음을 귀신같이 꿰뚫어 보고는 슬쩍 떡밥을 던졌다.
“그때랑 지금은 다르잖아.”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그땐 죄수가 탈옥한 거지만, 지금은 다르지.”
“뭐가요?”
“일국의 정보국장이 국익을 위한 첩보 활동을 하러가는 거지, 범죄자로서 가는 게 아니니까.”
그 순간.
“……!”
나인테일의 얼굴이 순간 움찔! 하고 떨렸다.
‘흐흐. 걸려들었어. 흐흐흐.’
지크는 나인테일이 자신의 언변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깨닫고 속으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짐짓 진지한 척 말을 이어나갔다.
“금의환향이 이런 거 아냐? 니가 비록 전설적인 도둑이 되었다지만, 결국엔 범죄자였어. 하지만 지금은 어때? 한 국가의 정보력을 책임지는 정보국장까지 올라왔잖아. 작위도 백작이고.”
“그건 그렇죠.”
“뭔가 막 새롭지 않아?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새 사람이 되어서 그곳에 다시 간다는 게?”
“마, 맞아요!”
“그래도 가기 꺼려져? 꺼려지면 나한테 살짝 팁만 알려주면 내가 다 알아서….”
“가겠어요.”
“걸려들었어.”
“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 아무것도 아냐!”
“지금 절 낚으신 건가요?”
“아니라니까!”
지크는 순간 본심이 튀어나올 뻔한 걸 수습하느라 한동안 애를 먹어야만 했다.
***
그날 밤.
지크는 으로 가 크반트를 구출해내기 위해 나인테일과 길을 나섰다.
“뭐야, 얘 왜 안 와.”
지크는 나인테일이 약속 시간이 한참을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자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무서워서 포기하려고 한 건가?”
“무섭긴 누가 무섭다고 그러세요? 흥!”
그때, 등 뒤에서 나인테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왜 이렇게 늦….”
지크는 나인테일을 향해 감히 왕을 기다리게 만드느냐며 핀잔을 주려다가 순간 말문이 막혀 입을 떡! 하고 벌렸다.
“너, 너 뭐야!”
“네?”
“야 이! 민망하잖아!”
지크가 나인테일을 향해 소리를 빽! 하고 질렀다.
“너 복장 불량이야! 복장 불량! 도대체 누가 그러고 작전을 나가!”
“이게 뭐 어때서요?”
나인테일이 보란 듯 몸짓을 해 보이며 자신의 우월하고 섹시한 몸매를 드러내 보였다.
그런 나인테일의 복장은 뇌쇄적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아찔하게 야했다.
나인테일은 엉덩이 라인이 다 드러나는 가죽 숏팬츠와 허벅지까지 오는 스타킹에, 굽이 아주 높은 하이힐까지 신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의는 가슴골이 훤히 다 드러날 정도로 노출이 심한 데다가, 등 쪽은 다 파여서 등짝이 훤히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손에는 가죽으로 된 말총 채찍까지 들고 있을 정도였다.
“안 돼! 그 복장으로 무슨 작전이야! 가서 갈아입고 와!”
“왜죠?”
“복장 불량이라니까.”
지크가 인상을 와락 구긴 채 말했다.
“갈아입고 와. 타이즈는 이해해도 그 복장은 안 돼. 그리고 하이힐은 뭔데? 또각또각 발자국 소리 다 나잖아.”
“뭘 모르시는군요.”
“모르긴 뭘 몰라?”
“이거 위장이에요.”
“위장…?”
“서큐버스죠.”
나인테일이 가짜로 달아놓은 악마 꼬리를 지크에게 살랑살랑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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