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682
681
서큐버스(Succubus).
인간들의 꿈에 나타나 정기를 흡수하는 마족인 몽마(夢魔)의 여성형을 일컬어 그렇게 불렀다.
서큐버스는 인간 남성들의 꿈에 나타나 야한 꿈을 꾸게 만들어 정기를 흡수하거나, 혹은 실제로 관계를 맺는 중 생명력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능력이 있는 마족이었다.
쾌락과 동시에 끔찍한 죽음을 안겨주는, 마치 가시 돋친 장미와도 같은 마족인 것이다.
때문에, 서큐버스의 복장은 대개 노출이 심한 게 당연했다.
왜?
이성을 유혹해야 하니까.
반대로, 몽마의 남성형 개체인 인큐버스(Incubus)의 경우 여성들이 좋아하는 형상으로 나타나곤 했다.
“서큐버스로 위장한 거라고?”
“보면 모르시겠어요?”
나인테일이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머리 위에 난 뿔을 가리켰다.
“어? 뿔까지 달고 왔네?”
“전 지옥의 성에서 근무하는 서큐버스 간수로 위장할 생각이니까요.”
“아, 그렇구나.”
지크가 나인테일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인큐버스로 위장하면 되는 건가? 근데 남자는 어떤 옷을 입어야 야한 거야? 인큐버스를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호호호!”
나인테일이 지크의 말을 듣고는 웃었다.
“전하께선 위장하실 필요가 없어요.”
“응? 왜?”
“그야….”
나인테일이 이상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전하께선 간수가 아니라 죄수로 위장하실 예정이시니까요.”
“응? 죄수? 내가?”
“네.”
“왜? 나도 간수하면 안 돼?”
“안 돼요.”
“왜???”
“작전이 그러니까요.”
“그런 게 어디 있어!”
“이번 작전은 전적으로 제게 맡겨 주시기로 한 거 아니었나요?”
“그건 그런데….”
“믿고 따라오세요. 제가 작전을 성공시킬 테니까요.”
“아, 알겠어.”
지크는 자신이 죄수 역할을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지만, 나인테일의 지휘를 믿고 따르기로 했다.
제아무리 지크가 왕이라지만, 이번에 크반트를 에서 탈옥시키는 작전의 지휘관은 어디까지나 나인테일이었기 때문이다.
왕인 지크는 작전의 지휘관인 나인테일을 존중하고, 그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따를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럼, 가실까요.”
“응.”
“잠깐만 뒤돌아보세요.”
“이렇게?”
바로 그 순간.
철컹철컹!
나인테일이 지크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위장은 확실히 해야겠죠?”
“그, 그렇지.”
“자, 그럼 가요.”
“응.”
그렇게 지크는 서큐버스 간수로 위장한 나인테일의 손에 이끌려 으로 향했다.
***
아반트는 비머리언 공방을 장악한 직후 모든 아이템들의 가격을 25퍼센트 할인하는 할인 행사를 기획했다.
사실 프리미엄 브랜드인 비머리언 공방에게 있어 할인 행사는 단기적으로는 매출 상승에 큰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 보자면 오히려 적자였다.
프리미엄 브랜드는 성능뿐 아니라 명품으로써의 이미지도 매우 중요했다.
그런 프리미엄 브랜드에게 있어 할인 판매란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치는 주된 요인 중 하나였다.
처음이야 할인 판매를 통해 매출의 극대화를 노릴 수 있지만, 할인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이 더 이상 제값을 주고 사지 않으려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반트는 그걸 뻔히 알면서도 할인 판매를 강행했다.
심지어, 값이 매우 비싸서 악성 재고로 남아 있던 아이템들의 경우 최대 50퍼센트의 할인을 해주는 등의 과감한 판매 정책을 펼치기까지 했다.
“수석 대장장이님. 할인 폭이 너무 큽니다.”
킨크는 아반트에게 우려를 표시했다.
“이대로라면 본 공방의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상관없다.”
“예?”
“쓰레기들을 처분하려면 할인 판매라도 해야 하는 것이겠지.”
“예? 쓰레기 말씀이십니까?”
“킨크.”
“예, 수석 대장장이님.”
“넌 지금 할인 판매하는 아티펙트들이 비머리언 공방의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거야….”
“나는 그것들을 위대한 비머리언 공방이 만들어낸 제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그것들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아반트가 딱 잘라 말했다.
“그 쓰레기들에는 본 공방의 혼이 담겨 있지 않다. 오직 살상력만을 추구하던 본 공방의 스타일이 전혀 녹아들어 있지 않지. 본 공방의 본질을 잃은 아티펙트가 쓰레기가 아니면 무엇이겠느냐?”
“수석 대장장이님…!”
킨크가 감동받았단 표정으로 아반트를 바라보았다.
“역시… 역시 아반트 님이야말로 본 공방의 진정한 수석 대장장이이십니다.”
“그렇다.”
아반트는 킨크의 칭찬에 굳이 겸손해하지 않았다.
“나야말로 이 비머리언 공방의 진정한 수석 대장장이이며, 본 공방의 오랜 숙원을 이룰 유일한 자다.”
“역시…!”
“나는 본 공방에 쌓여 있는 쓰레기들을 모조리 팔아치우고, 새로운 아티펙트들을 제조할 것이다. 본 공방의 혼이 고스란히 담긴, 극강의 살상력을 추구하는 그런 아티펙트들을 말이다.”
“예! 수석 대장장이님!”
“아, 그리고.”
아반트가 덧붙였다.
“강력한 모험가들을 모집해라, 킨크.”
“예? 모험가들을 왜 모집합니까?”
“진정한 비머리언 공방의 아티펙트들을 홍보해줄 모험가들 말이다.”
“……!”
“나는 이번 할인 판매가 끝나면, 강력한 모험가들에게 본 공방의 진정한 힘이 담긴 아티펙트들을 선물해줄 생각이다. 그들은 우리가 선물해준 아티펙트들을 가지고 대활약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전 대륙이 본 공방이 만들어낸 아티펙트의 위력에 전율할 테지.”
“오오!”
“과거 악마의 무기라고 불렸던 본 공방의 아티펙트들이 다시금 부활하는 것이다.”
“크흑! 수석 대장장이님! 흑! 흑흑!”
킨크는 아반트의 말에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만큼 은 아이템의 살상력에 집착했다.
아이템의 명성이 주인의 명성을 뛰어넘는, 오직 비머리언 공방의 이름값만 드높아지기를 원했던 것이다.
“킨크.”
“예! 수석 대장장이님! 흑흑!”
“모험가들이 우리의 아티펙트를 이용해 도륙을 내버릴 상대도 필요할 테지.”
“그렇습니다. 본 공방의 진정한 아티펙트들의 우월함을 보여주려면, 그 성능을 증명해줄 상대가 필요하겠지요.”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
“그리고 프로아 왕국이 그 실험 대상이 될 것이다.”
그게 아반트의 생각이었다.
아반트는 모험가들이 살상력을 극대화시킨 비머리언 공방의 아이템을 이용해 지크와 프로아 왕국을 짓밟도록 할 생각이었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수석 대장장이인 아반트 체제하에서의 비머리언 공방이 어떻게 변했는지, 또 아이템의 성능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진화했는지를 전 대륙에 보여주려는 것이다.
지크도 잡고, 아이템도 홍보하고.
아반트로서는 일석이조의 효과였다.
“크으! 역시 아반트 님의 지혜란 정말이지 가늠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별것 아니다. 이 정도는 해야 비머리언 공방의 수석 대장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존경스럽습니다.”
“고맙다, 킨크.”
아반트는 자신의 가장 충실한 심복을 향해 씩 웃어 보이고는, 말을 이었다.
“모험가들을 모집하되,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에게 적대적인 이들 위주로 모아봐라. 사적인 감정까지 더해지면, 더욱 잔혹하게 그 애송이와 코딱지만 한 시골 영지를 짓밟을 테니.”
“예! 수석 대장장이님!”
킨크는 그렇게 소리쳐 대답하고는 곧장 아반트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비머리언 공방의 새로운 아이템들로 무장하고 지크와 프로아 왕국을 짓밟아줄 게이머들을 모집하기 위해서….
***
은 뉘르부르크 대륙의 동남쪽 어느 무인도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실 이 자리한 무인도는 섬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바다 위에 떠 있는 성(城)이라고 봐도 좋았다.
즉, 은 무인도 위에 통째로 지어졌을 정도로 거대했던 것이다.
“어우야. 안개 보소.”
지크는 으로 향하던 도중 눈앞을 가득 메운 안개에 눈살을 찌푸렸다.
“여긴 뭐 이렇게 음침해?”
“밤이니까요.”
나인테일이 그것도 모르냐는 듯 대답했다.
“아니, 아무리 밤이라도 그렇게 앞이 하나도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자욱한데?”
“원래 그래요.”
“아?”
“이 길을 쭉 따라가다 보면 곧 나루터에 도착할 거예요.”
나인테일이 녹이 잔뜩 슨 가로등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응.”
그렇게 나인테일을 따라 안개를 뚫고 걸어가길 한참여.
[뉘르부르크 대륙 동남쪽 : 악마의 나루터]지크의 눈앞에 현재 위치를 알리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거의 다 온 건가?’
비록 자욱한 안개에 가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귓가에 은은한 파도 소리와 코끝에서 짠내가 느껴지는 걸 보니 나루터에 거의 도착한 듯했다.
그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 누구인가.
안개 너머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더 걸어가 보니 모자를 푹 눌러쓴 뱃사공이 낡아빠진 나룻배에 걸터앉은 채 곰방대로 담배를 뻑뻑 피워대고 있었다.
“이번에 지옥의 성에 새로 근무하게 된 록산나라고 해요. 당신이 뱃사공 베르길리우스로군요.”
“신참이로군. 서큐버스인가?”
“맞아요.”
“끌끌. 몽마왕께서는 잘 계시는가?”
“저야 모르죠.”
나인테일이 어깨를 으쓱했다.
“저 같은 하급 서큐버스가 높으신 분들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알면 이상한 거 아닌가요?”
“음. 그것도 맞는 말이군. 후우.”
뱃사공 베르길리우스가 담배 연기를 훅! 하고 뿜어내었다.
“어쨌거나 환영한다, 신참. 여기만큼 꿀보직도 없을 게야. 일일이 인간들과 계약을 맺고 소원을 들어줄 필요 없이, 가만히 근무만 서다 보면 알아서 영혼을 수집할 수 있으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호호호.”
“죄수인 모양이군.”
베르길리우스가 힐끔 지크를 바라보며 물었다.
“죄목이 뭔가?”
“이 자식은 사기꾼이에요.”
“사기꾼? 여긴 고작 사기 좀 친 것만으로는 오기 힘든 곳인데?”
“그 사기라는 게 자신의 말만 따르면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며 가난한 백성들의 등골을 빨아먹은 거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을까요?”
“음?”
“이 자식이 친 사기에 넘어가서 전 재산을 잃고 자살한 사람이 세 자릿수를 넘어간다더군요.”
“허. 젊은 놈이 아주 악랄하구먼.”
“그렇죠? 이 자식은 반반한 얼굴을 이용해 뭇 여성들에게 혼인 빙자 사기까지 쳐가면서 돈을 뜯어낸 놈이에요.”
지크는 나인테일을 통해 자신의 죄목(?)을 들으며 내심 억울해했다.
‘야 이. 차라리 폭행이나 절도가 낫지, 사기꾼은 너무 구질구질하잖아.’
지크는 자신의 죄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므로 잠자코 있었다.
“그렇군. 하긴, 사기는 어쩌면 다른 의미에서의 살인일 수 있지. 돈 없는 인간의 삶은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비참한 것이니.”
“맞아요.”
“어쨌든 알겠네. 타게.”
“감사해요. 여기, 뱃삯이에요.”
나인테일은 그렇게 말하며 베르길리우스를 향해 보라색으로 빛나는 동전 세 닢을 내밀었다.
[소울 코인]마계에서 유통되는 마족들의 화폐.
마족들은 이 화폐와 생명체의 영혼을 교환할 수 있다.
•타입 : 화폐(주화)
•등급 : 유니크
•특이 사항 : 오직 마계에서 마족들에게만 유통되는 주화이므로, 인간들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에 불과하다.
단, 이 주화를 가지고 마족과 거래하는 건 가능하다.
‘도대체 마족들의 화폐는 어떻게 가지고 있는 거야?’
지크는 나인테일이 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러는 사이.
“그럼, 출발하겠다.”
베르길리우스가 천천히 노를 젓기 시작하고, 낡아빠진 나룻배가 물살을 가르며 마치 안개 속으로 마치 빨려 들어가듯 나아가기 시작했다.
‘크반트 님, 조금만 기다리십쇼.’
지크는 나룻배 위에 걸터앉은 채 지금쯤 에 갇혀 고통 받고 있을 크반트를 떠올리며, 그를 반드시 구출해 내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