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684
683
그로부터 몇 시간 후.
“크흐흐! 지금쯤이면 시체가 되어 있겠군!”
F4구역의 간수인 마족 마몬은 지금쯤이면 신참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흉악한 범죄자인 윌리 해링턴은 나약한 신참이 들어오는 족족 어떻게 해버린 뒤 목을 졸라 죽여 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간수들은 윌리 해링턴을 좋아했다.
간수들이 직접 인간을 죽이는 건 금지되어 있었기에, 윌리가 다른 죄수들을 죽여주는 게 무척이나 고마웠기 때문이다.
간수들의 입장에선 가만히 앉아서 윌리의 손에 죽은 죄수의 영혼을 수확할 수 있었으니,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격이었다.
“안 그래도 요즘 영혼 수확이 영 시원찮아서 걱정이었는데 마침 잘됐군.”
마몬은 공짜로 영혼을 수확할 생각에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윌리의 감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으응?”
마몬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광경에 당황했다.
감방 안은 예상했던 것과 180도 달랐다.
침대 위.
스륵, 스르륵!
어리숙하게만 보였던 신참이 곤히 잠든 채 선명해졌다 희미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반대로, 흉악한 범죄자인 윌리 해링턴은 아랫도리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쓰러져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아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
화륵, 화르륵!
쓰러진 윌리 해링턴 등짝 위로 자그마한 푸른색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윌리의 영혼?!”
마몬은 푸른색 불꽃이 윌리 해링턴의 영혼이라는 걸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본래대로라면 윌리 해링턴이 코를 골며 잠들어 있고, 신참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어야 정상이었을 텐데….
“설마….”
윌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잠든 신참, 그러니까 지크를 돌아보았다.
설마 하니 이런 새파란 애송이가 몸무게 150킬로그램은 거뜬히 나갈 윌리를 죽여 버린 뒤 천하태평하게 잠을 퍼질러 잔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애송이가 정말로….”
바로 그때였다.
“괜히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걸 건드린 모양이군요.”
나인테일이 슥 하고 나타나 마몬을 향해 말을 걸었다.
“영혼이 좀 급하셨던 모양이죠? 저런 흉악범의 감방에 제 죄수를 집어넣은 걸 보면?”
“크, 크흠!”
“어쩌죠? 아까운 죄수 하나를 잃으셨네요. 영혼 수집을 시키기에 알맞은 사냥개였을 텐데. 죽어 있는 꼬락서니를 보니 발정 난 사냥개였던 모양이네요?”
나인테일이 윌리의 시체를 힐끔 보더니 견적 나온다는 듯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도, 도대체 저 애송이는 뭐지?”
마몬이 나인테일을 향해 물었다.
“어떻게 윌리를….”
“겉보기엔 솜털이 뽀송뽀송한 애송이로 보이시겠죠. 뺀질뺀질한 일개 사기꾼쯤으로.”
“아니었나?”
“일개 사기꾼이었다면 여기까지 왔을까요?”
“그건….”
“아주 흉악한 놈이에요. 전공은 사기지만, 전투력이 어마어마해요. 용병으로 일하기도 했으니까요.”
“겉보기와는 달리 강한 놈이었던 모양이로군.”
“강하죠. 저 자식이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게 천만다행일 정도로요. 저 강한 전투력을 가지고도 동료들의 뒤통수를 서슴없이 후려치는 비열함도 갖추었으니까요.”
“그, 그렇군. 내가 실수했어. 그렇게 강한 놈이었을 줄 몰랐다.”
마몬이 땀을 삐질 흘리며 혀를 내둘렀다.
“그나저나 윌리의 영혼은….”
“당연히 당신이 가지셔야죠. 여긴 당신이 일하는 구역이니까요.”
나인테일은 선심 쓰는 척 윌리의 영혼을 선뜻 마몬에게 양보했다.
어차피 인간인 나인테일은 윌리의 영혼을 보는 게 불가능한 데다가, 이참에 마몬과의 좋은 관계를 쌓아두는 편이 작전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으음? 내가 너의 죄수를 훔쳐 먹으려고 했는데도 순순히 양보를 하겠다?”
“전 신참 간수예요. 당신은 고참이고요. 예의를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그리고….”
나인테일이 은근슬쩍 마몬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야릇한 미소와 눈빛을 보냈다.
“전 사내 연애를 그리 나쁘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 그런!”
마몬은 나인테일의 유혹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서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몬은 지난 몇십 년 동안 오직 강해지겠다는 일념 하에 이곳 에 들어와 악착같이 영혼을 수집했던 마족이었다.
그런 마몬에게 있어 나인테일이란 수십 년 만에 찾아온 이성의 유혹이었으니, 심장이 벌렁벌렁 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나인테일의 미모와 섹시함이 워낙에 뛰어났기에, 그 효과는 더더욱 컸다.
“일단 영혼을 수확하시고, 잠시 마실 것 좀 가져다주실래요? 목이 좀 마르네요.”
“아, 알겠다.”
마몬은 벌게진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는 윌리의 영혼을 수집한 뒤 서둘러 마실 것을 가지러 갔다.
“좀 귀엽네. 훗.”
나인테일은 마몬이 사라지자 감방의 자물쇠를 열고 윌리의 시체를 살짝 지르밟은 뒤 곤히 잠들어 있는 지크를 흔들어 깨웠다.
***
“하아아아아아암!”
지크는 나인테일의 목소리에 기지개를 쫙 펴며 잠에서 깨어났다.
“벌써 왔어? 하아암.”
“팔자 좋으시네요. 신하는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왔는데.”
나인테일이 지크가 누워 있던 침대에 걸터앉으며 투덜거렸다.
“이거 신고 오래 걸으니까 발도 아프다고요.”
“큭. 그러게 누가 위장을 그렇게 요란하게 하래?”
지크가 피식 웃으며 나인테일을 놀렸다.
“그나저나 뭐 알아낸 거라도 있어?”
“아직 확실하게 알아낸 건 없어요.”
나인테일이 고개를 저었다.
“대신 겸사겸사 탈출 루트를 생각해놓긴 했죠. 구조가 좀 바뀌었더라고요. 사전에 지형지물을 파악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죠.”
“그건 그렇지.”
“전하께선 뭐 하셨어요? 이 쓰레기 같은 자식을 때려죽이시고 속 편하게 낮잠이나 주무신 거예요?”
“이게 누굴 뭐로 보고.”
지크가 콧구멍을 크게 벌리며 눈을 부라렸다.
“난 이미 크반트 님이 어디 갇혀 있는지 알아냈거든?”
“네? 어, 어떻게요?”
나인테일이 화들짝 놀랐다.
“안알랴줌ㅋ.”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영업 비밀이라서 안 알려줄 거야.”
“……?”
“아무튼, 난 앉아서 지옥의 성 전체를 볼 수 있어.”
“에이, 거짓말.”
“진짠데?”
“정말요?”
“응.”
“말도 안 돼….”
“돼.”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인테일에게 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거 저한테 딱 어울리는 아티펙트네요.”
“그렇긴 하지.”
“저 주시면 안 돼요?”
“응, 안 돼.”
“흥.”
“됐고, 일단 위치는 파악했으니까. 어떻게 구출할지 계획이나 좀 세워보자.”
“알겠어요.”
나인테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치를 파악했다고는 해도, 구출해내서 탈출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거예요.”
“그건 나도 알지.”
“일단 지하 20층은… 전 솔직히 그런 곳이 존재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래?”
“20층 깊이면 수십 년 전부터 팠어야 정상이잖아요.”
“하긴. 그건 그래.”
“20층에서 노역을 한다거나 또 다른 감방이 있단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으음. 뭐지.”
“일단 좀 알아봐야겠네요.”
“알아보긴 해야 해. 지도를 보면 경비도 삼엄하거든. 평범한 곳에 갇혀계신 게 아닌 것 같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럼 일단은 나보다 니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지크가 그렇게 말하려던 때였다.
저벅저벅-
저 멀리서 마몬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몬이 와요.”
“나 자는 척 할게.”
지크는 재빨리 다시 침대 위에 누워서 자는 척을 했다.
***
‘도대체 어디에 갇혀 계신 걸까. 20층에 같이 갇혀 있는 죄수들이 못 해도 5,000명은 되는 거 같은데.’
지크는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면서 크반트가 갇혀 있는 을 지켜보았다.
지하 20층으로 가는 길은 오직 하나.
모르긴 몰라도, 승강기를 통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같았다.
‘길이 하나밖에 없어서 숨어들어 가기는 불가능해. 어떻게든 저길 통과해야 크반트 님과 만날 텐데.’
지크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나인테일은 마몬을 휘어잡는 데 주력했다.
“친절하시군요.”
“뭘 이런 걸 가지고. 마실 것 하나 가져다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닐 테지.”
“그런가요? 나쁜 남자들만 봐오다 자상한 남자를 보니까 좀 낯서네요.”
“내, 내가 자상하다는 건가?”
“물론이죠. 갓 걸음마를 뗀 직장 후배에게 이렇듯 살갑게 대해주는 상사가 얼마나 있을까요?”
“크, 크흐으음!”
나인테일은 특유의 거짓말과 애교, 그리고 야릇한 제스처를 동원해 마몬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미인계.
그건 나인테일이 가진 가장 큰 무기 중의 하나였다.
타고난 미모를 가진 여성의 특권이라면 특권이랄까?
“제게 이곳에 대한 얘기들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처음이라 잘 적응이 안 되네요.”
“무, 물론이다!”
“와인이라도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할까요?”
“아직 근무 시간이 한참….”
“저 오늘 조금은 취하고 싶은데.”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 벌써 근무가 끝나다니.”
“갈까요?”
“이쪽으로.”
그렇게 나인테일과 마몬이 사라지고.
“이야. 쟤는 진짜 조졌네.”
지크는 나인테일이란 개미지옥에 빠진 마몬을 동정하며, 을 통해 이곳 을 끊임없이 관찰했다.
‘이거 하루 이틀 걸릴 일이 아닐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지크는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을 받으며, 다시 침대 위에 몸을 뉘였다.
당분간은 에 수감된 범죄자로서 살아야 할 것 같았기에, 이참에 그동안 못 자둔 잠이라도 실컷 자려는 것이다.
그날 밤.
F4구역에 수감되어 있던 범죄자들은 신참의 신고식-이라고 쓰고 혼쭐이라고 읽는다-을 위해 각자의 감방을 나섰다.
흔한 일이었다.
범죄자들의 세계에선 선배 수감자들이 새로 들어온 수감자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거나, 혹은 어떻게 해버리는 등 괴롭히는 게 일상이었다.
현실의 교도소나 게임 속 마족들이 운영하는 교도소나 범죄자들의 행동 패턴은 크게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족 간수들은 그런 수감자들이 각자의 감방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자물쇠를 열어주었다.
왜?
신고식 도중 누가 죽기라도 한다면 영혼을 수집할 수 있을 테니까.
그게 신참이 됐든, 신참에게 죽은 기존 수감자가 됐든 말이다.
“아주 확실하게 조져놔야 해.”
“보통 놈은 아니다. 윌리를 죽였다니까, 봐주면 안 돼.”
“아주 박살을 내놓아야 앞으로 기고만장해서 까불지 못할 것이다.”
선배 수감자들은 지크의 감방으로 향하며 나름대로 각오를 다잡았다.
그런데.
“어딜 그렇게들 가시나.”
선배 수감자들은 문득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하암~!”
고개를 돌려보니 오늘 들어온 신참, 그러니까 지크가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피곤하다는 듯 입을 쩌억! 벌리며 하품을 하고 있었다.
[오늘 밤 수감자들이 전하를 찾아갈 거예요. 그리고 집단으로 구타하려고 하겠죠. 그중 몇몇은 전하의 엉덩이를 노릴 수도 있고요.] [윽!] [일종의 신고식이랄까요? 마몬을 꼬드겨서 미리 감방의 자물쇠를 풀어 놓을 테니까, 미리 대비하고 계세요.]지크는 나인테일의 도움으로 수감자들의 행동 패턴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단 구역장이 되세요.] [구역장?] [구역에서 가장 주먹이 센 수감자를 구역장이라고 불러요. 구역장은 여러모로 혜택도 많고, 죄수들이 믿고 따르니까 될 수 있으면 되는 게 좋아요. 범죄자들의 세계는 철저히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니까, 힘이 세 보이면 살기 편하거든요.]지크는 나인테일이 가르쳐 주었던 에서의 생존 방법(?)을 떠올렸다.
으득!
그러면서 주먹을 으스러지라 세게 움켜쥐고, 자신을 습격하려던 죄수들을 차례차례 분쇄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