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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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대…!”
크반트는 방금 전 자신의 식판에 수프를 따라주었던 사내를 알아보고 입술을 떼었다.
그런 크반트의 앞.
그리도 그리워하던 남자가 머리에 머릿수건을 쓰고, 입에 마스크를 쓴 채로 웃고 있었다.
“지, 지크ㅍ….”
“쉿.”
지크가 손가락을 일자로 세워 제 입술을 가리며 조용히 하란 제스처를 취했다.
“반가우신 건 알겠는데, 티는 내지 말아줄래요? 보는 눈들이 좀 있잖아요.”
지크가 눈짓으로 슬쩍 주변을 가리켰다.
조금 전 크반트가 식판을 떨어뜨린 덕분에, 몇몇 죄수들의 시선이 쏠려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조용히 식판 다시 챙기시고, 식사 다 하시고 설거지하는 곳으로 오세요.”
“아, 알겠소.”
크반트는 지크의 말에 서둘러 식판을 새로 가져다가 점심 식사거리들을 담은 뒤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고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도 정신없이, 뜨는 둥 마는 둥 대충 먹은 뒤 지크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달그락, 달그락!
지크는 수돗가에서 죄수들이 놓고 간 식판을 닦고 있다가 크반트가 다가오자 고무장갑을 벗고 씩 웃어 보였다.
“어떻게 콩밥은 입에 맞으세요?”
“아니! 지크 국왕! 여기가 어디라고 이렇게 온 게요!”
“쉿. 목소리 좀 낮추시죠? 목소리 큰 거 자랑하세요?”
“미, 미안하오.”
“그나저나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네요.”
지크는 크반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멀쩡한 걸 보고 놀랐다.
아니, 크반트뿐만이 아니었다.
이곳 지하 20층에 수감되어 있는 죄수들의 컨디션은 무척이나 좋아 보였다.
실제로, 식사의 양과 질도 엄청나게 좋았고.
“운이 좋았소. 꼴에 이런저런 재주가 있어서 그런지 요긴하게 부려 먹히고 있다오. 아무래도 고급 인력이다 보니 대우도 좋더구려.”
“다행이네요.”
“그런데….”
크반트가 눈시울을 붉혔다.
“설마 이 늙은 드워프를 구하러 여기까지 온 것이오? 정녕?”
“당연하죠.”
“지크프리트… 국왕….”
“크반트 님이 저와 프로아 왕국에 해주신 것, 모두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크의 그 말은 진심이었다.
물론 지크가 전설의 대장장이인 헤르베르트의 유작인 의 주인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잘해준 것도 있긴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크반트는 지크를 더욱 배려해 주었다.
지크의 잠재력을 알아보았기에, 여러 가지 편의를 봐주고 프로아 왕국에 기술 지원을 아낌없이 해주었다.
그런 크반트를 지크가 어떻게 외면하겠는가?
“당연히 구하러 와야죠.”
“지크 국왕….”
크반트는 그런 지크에 감동받아 정말로 울기 시작했다.
“울지 마시고요.”
“하지만… 어떻게 울지 않을 수가 있겠소. 나는 모든 것을 잃은 일개 드워프일 뿐인데… 크흑.”
“크반트 님….”
“공방의 원로들 모두 강제로 은퇴를 당했소. 훌륭한 대장장이들이 나를 지지하고 따랐단 이유로 죽거나 노예가 되어 끌려갔소이다. 경영진들 역시 강제로 은퇴를 당해서 가택 구금을 당했소. 왕국도 아반트가 세율을 올려 주겠다니 우릴 버렸소이다.”
구구절절 기구했다.
뉘르부르크 대륙 3대 공방인 비머리언을 이끌던 수석 대장장이와 그 수뇌부들이 이렇듯 비참한 신세가 되어 무너질 줄이야….
“난 아무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을 줄 알았소. 하지만 그대만큼은, 그대만큼은 이렇듯 나를 구하러 와주었구려.”
“제가 아무리 상도덕 없기로 소문난 놈이라지만, 이 정도 의리쯤은 있죠.”
지크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전 크반트 님과 일하는 게 좋습니다.”
“지크 국왕….”
“일단 좀 기다리세요.”
지크가 크반트에게 당부했다.
“오늘은 잘 계신지 확인 차 온 거고, 조만간 다시 올 겁니다. 그때 모시고 나갈게요. 그러니까 이삼일 정도 몸조심하고 계세요.”
“알겠소.”
크반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날 구하러 오겠다는데, 그깟 이삼일을 못 기다리겠소이까? 껄껄!”
“그나저나….”
지크가 눈살을 찌푸리며 크반트에게 물었다.
“도대체 여기서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아!”
크반트는 지크의 질문을 받고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탄성을 내질렀다.
“맞소! 지금 나 같은 늙은 드워프를 구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오!”
“예?”
“큰일이오! 큰일이 났소이다!”
“예? 도대체 무슨 말씀이시죠?”
“이곳 지옥의 성 지하 20층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 아시오?”
“모르니까 여쭤봤겠죠?”
“나를 포함해서 이곳 지하 20층에 수금된 죄수들은….”
“……?”
“마계로 통하는 땅굴을 파는 중이오.”
크반트의 입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
같은 시각.
마족들이 사는 세계인 마계.
이 지배하는 마계 제5구역에 자리한 에서는 회의가 한창이었다.
의 어전 옥좌에는 한 개의 머리에 다섯 개의 얼굴을 가진 악마가 앉아 있었는데, 그가 바로 이었다.
단탈리온은 마왕들 가운데서도 순수 전투력이 최하급이었다.
하지만 다른 마왕들은 자신들보다 약한 단탈리온을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하지 못했다.
왜?
그만큼 악랄했으니까.
단탈리온은 거짓말에 능한 데다가, 지능이 매우 뛰어났으며, 또한 음모를 꾸미는 데는 도가 튼 마왕이었다.
다른 마왕들은 괜히 단탈리온을 깔봤다가는 그 사악하고 악랄한 음모에 놀아나 생고생을 하거나, 심지어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단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단탈리온은 예로부터 마계의 군대를 지휘해 수없이 많은 전공을 세운 전략가이기도 했다.
“그래서.”
단탈리온이 가진 총 다섯 개의 얼굴 중 아리따운 여성의 형상을 한 얼굴이 입을 열었다.
“작업은 얼마나 진행되었나요?”
“예, 전하.”
그러자 의 성주이자 교도소장인 벨리알이 단탈리온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며 보고했다.
벨리알은 의 총책임자로서 뉘르부르크 대륙과 마계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었다.
물론 정식으로 계약을 통해서 활동하는 게 아니니만큼, 뉘르부르크 대륙에서는 가진 능력의 10퍼센트도 채 발휘하기 힘들었지만 말이다.
“전하. 현재 지옥의 문을 열기까지 99.7퍼센트 가량의 작업이 완료된 상태이옵니다. 대략 열흘 안으로 악마의 문이 완전히 개방될 것이옵니다.”
“얼마 남지 않았군요.”
단탈리온이 미소를 지었다.
“지난 200년 동안 피땀 흘려 고생한 결실을 드디어 보는 모양이로군요.”
“그러하옵니다.”
“좋아요.”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얼굴, 지혜롭고 현명해 보이는 중년 남성의 얼굴이 입을 열었다.
“곧 지옥의 문이 열릴 것이다. 이에 과인은 명한다. 전군, 전투준비태세를 갖춘 채 중간계로 진격할 준비를 하라.”
“예! 전하!”
단탈리온이 명령을 내리자 마족 지휘관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쳐 대답했다.
그렇게 이 이끄는 마계 제5군단은 중간계, 그러니까 뉘르부르크 대륙 침공 준비를 위해 숨 가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예? 땅굴이요?”
지크는 제 귀를 의심했다.
“무슨 지구공동설도 아니고, 마계가 지하에 있는 겁니까?”
“지구공동설이 뭐요?”
“아, 그게….”
지크가 지구공동설에 대해 크반트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크반트가 말한 땅굴은 그런 의미가 아닌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오. 우리가 하는 작업은 마계로 통하는 문, 그러니까 지옥의 문을 열 수 있는 지맥에 게이트를 설치하는 것이라오.”
“지옥의 문을 열 수 있는 지맥이요?”
“그렇소.”
크반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지반에 음차원의 에너지가 소용돌이치는 곳이라오. 그렇기에 마계와 이 세계를 잇는 게이트를 열기에 안성맞춤인 것이지.”
“잘 이해는 안 가지만, 어쨌든 알겠습니다. 그럼 지옥의 문이 열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말 그대로 지옥의 문이 열리는 것이오.”
크반트가 정말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지옥의 문이 열리면, 마족들이 그 어떤 페널티도 없이 이 세계로 넘어오는 게 가능하오.”
“어떤 페널티도 없이요? 그게 정확히 무슨 의미죠?”
“마족들은 우리 세계에서 본래의 힘을 낼 수가 없소. 애초에 마족이 이 세계에서 자유롭게 활보하려거든 여러 가지 제약이 걸려 있소이다. 예컨대, 강자와의 계약이라거나 고위급 마족의 경우 신물이라 부리는 악마의 병기들을 매개체로 사용해야 하오.”
“아, 그건 알죠.”
“그것도 아니라면 진정한 강자의 영혼을 통째로 집어삼켜서, 그 육체를 빼앗은 뒤 힘을 기르는 방법도 있겠지.”
“그럼 지옥의 문을 통과해서 이 세계에 강림하면… 그 제약들에 걸리지 않고 본래 힘을 다 사용할 수 있단 거네요?”
“그렇소.”
“그럼 지옥의 문이 완성되면 마계의 군대가 이 세계에….”
그 순간.
‘이거 보통 일이 아니잖아?!’
지크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마계의 군대가 그 어떤 제약도 없이 100퍼센트의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쳐들어온다?
그건 뉘르부르크 대륙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일이었다.
그리고 마족들만 넘어오겠는가?
그 강력하다는, 드래곤들조차 상대하기 버거워 한다는 마왕들까지 함께 넘어올 것이 아닌가?
“막아야 하오.”
크반트가 지크에게 힘주어 말했다.
“나를 구하는 것도 구하는 것이지만, 이 지옥의 문이 열리는 것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하오.”
“당연하죠.”
지크 역시 크반트의 의견에 동의했다.
‘베르단디의 미래를 지켜줘야 해.’
지크는 다른 무엇도 아닌 딸 베르단디를 위해서라도 뉘르부르크 대륙이 불바다가 되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
“제가 힘써 보겠습니다.”
“지크 국왕….”
크반트가 정말이지 깊은 눈빛으로 지크를 바라보았다.
“그대가 세계를 구하게 되겠구려.”
“이미 몇 번은 구한 것 같은데요?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으음?”
“아무튼, 몸 조심히 잘 사리고 계세요. 제가 방법을 생각해볼 테니까요.”
“알겠소.”
크반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몸조심하시오. 마나도 사용할 수 없을 터인데.”
“저야 알아서 잘하죠. 그런데 지옥의 문이 완성되려면 얼마나 남았죠?”
“열리기 거의 직전이오. 이 기세면 일주일 내에 열릴 것이오.”
“알겠어요. 또 봬요.”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지하 20층을 나서 식자재를 운반하는 수레로 향했다.
***
지크는 지하 20층에서 크반트를 만난 후 에 참가해 4강전에서 적을 쓰러뜨리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그날 밤.
“그, 그게 정말인가요?”
나인테일은 지크를 만나 이곳 의 비밀에 대해 전해 듣고 경악했다.
“응.”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만의 마왕 단탈리온. 결국 그 자식의 음모였어. 겉으로는 인간과 마족이 서로 윈윈하는 약속처럼 보였지만, 결국은 지옥의 문을 열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했다는 거지.”
“처음부터 뒤통수를 노렸다는 거네요?”
“응, 비열하게.”
지크가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난 뒤통수치는 놈들이 제일 싫더라.”
“네?”
“비즈니스를 했으면 상도덕을 지켜야지. 신뢰를 준 상대의 등에 칼을 꽂는 게 말이 돼? 믿음을 가지고 장난질치는 놈들은 아주….”
“그거 전하께도 적용되는 말씀이시죠?”
“응?”
지크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
“이상한 소릴 하고 있어.”
지크는 자신에게 믿음을 주었던 이들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쳐 왔다는 걸 걸 까맣게 잊었다는 듯, 아니 처음부터 그런 적 없었다는 듯 뻔뻔하게 시치미를 뚝 떼었다.
“아무튼, 이건 내 선에서 처리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지크가 말했다.
“지옥의 문이 열린다는 건 세계대전을 의미하잖아.”
“그렇죠.”
“그러니까….”
지크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나인테일을 향해 말했다.
“네가 밖으로 나가서 이 소식을 좀 전해줬으면 좋겠어.”
“어디로요?”
“그게 그러니까….”
지크가 나인테일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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