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7
006
태성은 쿤룬산 모처에 있는 정자에 술상을 놓고 사부와 마주했다.
“제자야.”
“예, 사부님.”
“한잔 따라 보아라.”
“예.”
태성이 최대한 공손하게 사부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너도 받거라.”
“예.”
사부 역시 태성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껄껄! 내 평생 제자에게 술도 받아보는 날이 오는구나!”
“여태 제자가 없으셨습니까?”
“제자로 삼으려고 했던 놈들은 꽤 많았지.”
“근데 왜 저를 선택하셨습니까.”
“그건 네 녀석이 별 볼 일 없는 쓰레기여서다.”
“예?”
태성은 사부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네 녀석의 자질은 정말이지 형편없더구나. 물론 평범한 놈들보다야 나은 수준이긴 했지만, 천재라는 놈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쓰레기라고 할 수가 있겠지.”
“틀린 말씀은 아니십니다만… 그게 어째서 절 선택하신 이유가 될 수 있습니까?”
“별 볼 일 없는 네놈이 천재라고 불리는 놈들을 쳐부수는 걸 보고 싶었다.”
“……!”
“약자의 반격을 보고 싶었던 게야.”
그렇게 말하는 사부의 입가엔 기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인간이란 무릇 날 때부터 출발선이 다르기 마련이다. 누군 천재로 태어나고, 누군 머저리로 태어나는 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 아니겠느냐?”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태성은 사부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누구라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으니까.
“근데 저보다 쓰레기도 더 많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다.”
“굳이 어중간한 쓰레기인 절 선택하신 이유는 뭡니까?”
“네 녀석에게서 포기를 모르는 근성과 승리를 향한 갈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
“개같이 짓밟히면서도 도무지 포기를 모르더구나. 그리도 털렸으면 그만할 법도 하련만, 네 녀석은 꿋꿋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으음.”
“본좌가 본 네 녀석은.”
사부가 인자한 눈빛으로 태성을 바라보았다.
“절대 이기지 못할 적들을 상대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승리에 대한 갈망에 가득 찬 녀석이었다. 가진 능력은 쥐뿔도 없는 주제에 말이다.”
“하하….”
“그래서 본좌는 네 녀석을 제자로 삼기로 했다. 이기는 놈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예?”
태성은 사부의 말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사부는 강한 놈이 아닌, 이기는 놈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이기는 놈… 말씀이십니까? 강한 놈 말고요?”
“그렇다.”
사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널 강한 놈이 아니라 이기는 놈으로 만들어줄 예정이다.”
“적들보다 강해지지 않고 어떻게 이깁니까?”
태성이 물었다.
“저는… 강해질 수 없습니다. 사부님이 말씀하셨다시피 제게는 재능도, 돈도, 운도 없으니까요. 이런 제가 어떻게 강해질 수 있습니까?”
그러자 사부가 답했다.
“이기기 위해 반드시 적보다 강해질 필요는 없느니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쯧쯧. 이런 멍청하고 어리석은 놈 같으니. 약해지게 만들면 되지 않느냐, 약해지게! 적들을 네놈보다 약해지게 만들면 될 것을!”
순간 태성은 둔기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보다 강한 적을, 나보다 약해지게 만든다.
그리고 패 죽인다.
한 방에.
여태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방법이었다.
“받아라.”
그때, 사부가 태성을 향해 낡디낡은 책 한 권을 내던졌다.
“이게… 뭡니까?”
“비급이다.”
“비급요?”
“그 책에 디버프 마스터의 시작과 끝이 있을 것이다.”
디버프 마스터.
태성이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의 클래스였다.
***
디버프.
그게 사부가 태성에게 제시한 무적이 되는 방법이었다.
“적들을… 저보다 약해지게 만들란 말씀입니까?”
비급을 받아든 태성이 물었다.
“그렇다.”
사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야.”
“예, 사부님.”
“이 세상엔 나보다 강한 존재가 수도 없이 존재하기 마련이니라. 아, 물론 본좌는 아니다.”
“예?”
“지금의 본좌는 대적할 자가 없는 존재이니라. 껄껄껄!”
사부가 스스로 자화자찬을 시전했다.
‘그럴 만도 하지.’
태성은 그런 사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었다.
“제자야.”
“예.”
“네놈이 암만 노력해 봤자 이 세상엔 너보다 운 좋은 놈, 재능 있는 놈, 돈 많은 놈, 때를 잘 타고난 놈 하나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노력? 그딴 건 강자들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자신들보다 열등한 존재들이 아등바등하는 걸 보고 낄낄거리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말이니라.”
노력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부의 말에, 태성은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었다.
태성이 아무리 노력해도 운 좋은 놈, 재능 있는 놈, 돈 많은 놈, 타이밍 잘 맞은 놈을 이겨 본 경험이 없었으니까.
“네놈이 강해졌다고 치자꾸나. 그럼 넌 네놈보다 운 좋고 재능 있고 돈 많고 때를 잘 타고난 놈을 이길 수 있겠느냐? 네놈보다 더 강한 놈을?”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럼 그땐 패배하겠느냐? 또다시 짓밟히겠느냐?”
“그건 싫습니다.”
“그럼 그 자식을 너보다 약해지게 만든 뒤에, 패 죽이면 되겠구나. 좀 약하면 어떠냐? 이기면 그만인 것을. 그리하면 사람들을 널 가리켜 강자라고 평가할 것이다.”
“이기는 놈이 강한 놈이다. 이 말씀입니까?”
“바로 그거다. 세상은 강한 놈을 기억하지 않는다. 이기는 놈을 기억할 뿐이니라. 그리고 이기는 놈이 강자로 포장되는 법이지.”
태성은 사부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반박할 생각도 없었다.
이따금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물에 콩 나듯 벌어지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었다.
계속 이기는 자.
가끔은 지더라도 꾸준히 이기는 자.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가리켜 ‘강자’라고 불렀다.
강한 놈이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놈이 강자라는 사부의 논리가 궤변이 아닌 현실인 이유였다.
***
“먼 옛날.”
사부의 시선이 아득히 먼 과거로 향했다.
“이 사부에게도 너와 같은 시절이 있었느니라.”
“예? 저 같은 시절요?”
“물론 난 너처럼 쓰레기는 아니었다.”
“아, 예….”
“천재였지. 젊은 시절. 본좌는 대륙에서 제일 강한 8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난 꼴찌였다.”
“사부님이 꼴찌셨다고요?”
태성은 사부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저렇듯 강한 존재가 꼴찌일 수가 있다는 게 무척이나 신기했다.
“놈들은 나보다 더 천재였다.”
“허….”
“정말 미치도록 이기고 싶었느니라.”
“그래서 이기셨습니까?”
“못 이겼다.”
“…….”
“내가 암만 발버둥 쳐 봐야, 놈들을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본좌는 8인의 강자 중 언제나 꼴찌였다.”
“지금도 그렇습니까?”
“흥! 본좌가 누구한테 질 것 같으냐?”
태성의 물음에 사부가 콧방귀를 뀌었다.
“아닙니다.”
“미치도록 노력했다. 이곳 쿤룬산에 틀어박혀 오직 수련만 했느니라.”
“허….”
“그리고 최강의 힘을 손에 넣었다. 놈들을 나보다 약하게 만들어서 패 죽인다는 구상을 현실로 이루는 데 성공한 것이지.”
“그래서 이기셨습니까?”
태성의 눈에 호기심이 깃들었다.
“못 이겼다.”
사부의 얼굴이 씁쓸해졌다.
“예?”
“하산하고 보니, 글쎄 500년이나 지나버린 뒤더구나.”
“…맙소사.”
“급히 놈들을 수소문해 보았지만, 한 놈도 빠짐없이 늙어 뒈져 버렸더구나. 본좌가 너무 수련만 하느라 그만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렸던 게야.”
“사부님….”
태성이 안타깝다는 듯 사부를 바라보았다.
무적의 힘을 손에 넣으면 뭐 하겠는가?
그토록 염원하던 승리를 단 한 번도 거머쥐지 못했는데.
‘사부님…!’
태성은 사부의 마음이 얼마나 허탈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그 비급 안에 든 본좌의 깨달음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되었다. 절대로 이길 수 없었던 놈들을 이기기 위해 만든 기술들이었건만.”
사부가 씁쓸한 목소리로 디버프 마스터란 클래스의 유래를 태성에게 말해주었다.
디버프 마스터.
젊은 시절의 사부가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는 적들을 이기기 위해 고안해낸 방법이었다.
태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자기보다 운빨, 렙빨, 템빨, 스킬빨, 재능빨 좋은 놈들을 이기는 방법이기도 했다.
태성에게도 이길 수 없었던 적들이 있었다.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흠집 하나 낼 수도 없었던 강자들이.
‘이거라면 이길 수 있다.’
하지만 ‘디버프’라는 특성을 십분 발휘한다면, 그들을 이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였다.
드디어 미치도록 이기고 싶었던 놈들을 이길 수단이 생긴 것이다.
“제자야.”
그때, 사부가 태성을 향해 말했다.
“예, 사부님.”
“뭐든 좋다.”
“예?”
“입신양명도 좋고, 부귀영화도 좋다. 욕망을 채우는 건 나쁜 것이 아니니라. 무적자에게는 그러한 것들을 누릴 권리가 있는 것이다. 마음껏, 자유롭게 살도록 하여라.”
“예! 사부님!”
태성도 그러고 싶었다.
가난이란 지긋지긋한 굴레를 벗어던지고 싶었다.
좋은 밥 먹고, 좋은 옷 입고, 좋은 차를 타고 싶었다.
하지만 능력이 없어서, 흙수저라서 그러지 못했던 게 못내 한스러웠다.
가난에 치여 스러지는 자신의 청춘을 바라보는 심정이란,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 서러움이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사부를 만나고, 인생 역전의 발판이 열렸다.
도무지 밑도 끝도 없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동아줄이 드리운 것이다.
“하지만 조건이 있느니라. 네 녀석에게는 본좌의 제자로서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뒈져버린 자식들의 후예들을 격파하도록 하여라. 뒈지기 전에 각자 후계자쯤은 만들어 놓고 관에 들어갔을 터, 너는 그 자식들의 후예를 본좌가 창안한 기술로 격파해야만 한다. 알겠느냐?”
그때였다.
띠링!
태성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 퀘스트 이 발생하였습니다!] [알림 :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YES.]태성은 망설임 없이 사부가 준 퀘스트를 수락했다.
“예, 사부님. 제자, 반드시 그들의 후예를 격파하여 사부님의 강함을 대신 증명하겠습니다!”
물론 사부의 명을 받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자 퀘스트 내용이 눈앞에 떠올랐다.
[사부의 한]•분류 : 퀘스트
500년 전 대륙을 주름잡던 8인의 강자 중, 스승 데우스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후예들을 격파하라.
•진행 상황 : 0%
– 뇌신 바즈라의 후예
– 검성 무르시엘라고의 후예
– 대현자 지그하르트의 후예
– 혈마 베르세르크의 후예
– 법왕 마우그리스의 후예
– 신궁 윈드포스의 후예
– 패왕 브라움의 후예
퀘스트 내용 자체는 간단했다.
과거 사부가 이길 수 없었던 자들의 후예를 이기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태성이 물었다.
“제가 그들의 후예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습니까?”
“그건 본능이다.”
사부가 답했다.
“너는 본좌의 유일무이한 제자로서 본능적으로 그들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예, 사부님.”
“그리고.”
사부가 덧붙였다.
“지금부터는 이름을 바꾸어 활동해라.”
“예? 이름을요?”
“너는 본좌의 유일무이한 후계자이니, 그에 걸맞은 이름을 써야지 않겠냐? 앞으로는 지크프리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도록 하여라.”
“지크프리트요?”
“왜, 싫으냐?”
“아닙니다.”
“그럼 뭐가 문제더냐?”
“그게….”
태성은 NPC인 사부에게 BNW가 닉변이 안 되는 게임이라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름이란 게 바꾼다고 바뀌는 게….”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알림 : 플레이어의 아바타 이름이 에서 로 변경되었습니다!]태성은 제 눈을 의심했다.
‘이거 실화인가?’
사부는 플레이어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시스템의 룰마저 보란 듯 비웃어주고 있었다.
이쯤 되면, 사부가 자신을 ‘나는 전지전능한 신이다!’라고 외쳐도 믿음이 갈 지경이었다.
“시끄럽고, 넌 지금부터 지크프리트다! 알겠느냐?”
“예, 사부님!”
태성, 아니 지크프리트가 대답했다.
“사부님께서 내려주신 이름, 잘 쓰겠습니다.”
“아무렴, 그래야지. 너는 본좌가 준 이름으로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당당히 거머쥐어야만 한다. 알겠느냐?”
“예!”
“그래, 박력이 넘쳐서 좋구나. 자, 그럼 이제 세상으로 나가라.”
“벌써 갑니까?”
“가르칠 것은 다 가르쳤다고 하지 않았느냐? 앞으로는 그 비급을 보고 홀로 수련토록 하여라. 그 안에 모든 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부님. 전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홀로 수련하다 한계에 부딪히면 어떡합니까?”
“그땐 본좌를 다시 찾아오면 되지 않느냐.”
“예?”
지크는 사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돌아가시는 것 아닙니까?”
“엥?”
사부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뭔 개소리냐?”
“아니….”
지크가 자기 생각을 말했다.
“방금 사부님께서 내려주신 사명이… 마치 유언처럼 들려서 말입니다….”
지크가 소설 속 ‘사부’란 존재들의 행동 패턴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흔히들 제자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곤 하던 사부들의 모습 말이다.
하지만 이 사부는 달랐다.
“아직 정정하다만?”
사부는 흔한 클리셰마저 보란 듯 비웃어주는 기염을 토하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본좌는 마음만 먹으면 앞으로 1,000년도 더 살 수가 있다. 네놈보다 오래 살 테니 걱정하지 말고 어서 하산이나 해라!”
“네!”
지크의 표정이 밝았다.
고정관념이 깨진 것보다, 사부가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욱 기뻤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고, 가서 저 드넓은 대륙에서 너의 뜻을 마음껏 펼쳐보도록 해라! 그리고 본좌의 명도 잊으면 안 된다!”
“예! 사부님!”
“자, 가라!”
사부가 지크의 발밑에 원형의 마법진을 생성했다.
번쩍!
그러자 지크의 몸이 빛에 휘감기더니 이내 곧 자취를 감추었다.
하산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