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70
069
정적이 감돌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왕이란다.
왕이 맞단다.
저 새파란 애송이 모험가가 황제가 직접 임명한 프로아 영지의 새로운 지배자란다.
당연히 거짓말일 줄로만 알았건만….
‘미친! 진짜 왕이었어?’
‘저 애송이 모험가가 새로 부임한 왕이었다고?’
‘아 XX! 진짜 X됐네!’
‘살다 살다 별일이 다 있네! 아오!’
‘뭔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덕분에 모두의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은 물론이었다.
그들이 저질렀던 여러 행동들은, 불경죄로 처단코자 한다면 얼마든지 목을 치는 게 가능한 것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주, 주군이시여! 소신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특히, 지크를 죽이고 볼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로난의 경우에는 머리를 땅에 처박으며 거의 석고대죄에 가까운 사죄를 해야만 했다.
‘휴우. 오스칼 저 융통성 없는 년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될 때도 있군. 저 계집이 아니었으면 왕의 목을 칠 뻔했잖아?’
내심 오스칼의 등장에 감사(?) 아닌 감사를 하면서….
“신 오스칼이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를 뵙습니다.”
오스칼이 재차 지크에게 예를 취했다.
“아, 예. 뭐….”
지크는 다소 민망해했다.
‘어색해 죽겠네.’
아무리 게임 속이라지만 왕이니 전하니 하는 극존칭을 받아 가며 이러한 대접을 받자니 아무래도 낯설었다.
“그만 일어나시고.”
지크가 오스칼에게 말했다.
“어쨌든 반갑습니다. 오스칼, 경. 로난 경도요.”
“전하.”
오스칼이 지크를 향해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신 오스칼이 감히 전하께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예? 어떤 부탁이신지?”
“감히 바라옵건대, 부디 저를 포함해 전하께 불경죄를 저질렀던 모든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아, 그거요.”
지크가 피식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냥 없던 일로 하죠. 몰라서 그랬던 거니까 이번 한 번만은 좋게 좋게 넘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게 정말이십니까?”
“물론입니다.”
지크가 손수 오스칼을 일으켜 세워주며 대답했다.
“저 같았어도 믿기 힘든 상황이었으니까, 그냥 넘어갑시다.”
“신, 오스칼. 프로아 전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주군이시여.”
오스칼이 다시금 지크에게 고개를 깊이 숙였다.
“베, 베풀어 주신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로난 역시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사, 살았다!’
‘어휴. 진짜 X될 뻔했네.’
‘목 날아가는 줄 알았네.’
‘미친. 진짜 왕이었다니.’
경비병들 역시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크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만약 지크의 성질이 조금만 더러웠어도, 목이 열 번은 더 날아갔을 테니까.
“일단 좀 들어갈까요? 베르봉 백작님을 만나야 해서.”
“제가 모시겠습니다, 전하.”
오스칼이 지크의 곁으로 따라붙었다.
‘뭔가 듬직하네. 부하들도 챙길 줄 알고.’
지크는 그런 오스칼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
지크는 카제인 성의 연회장에서 베르봉 백작과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프로아 전하. 신은 이곳의 영주인 베르봉이라고 합니다.”
“예, 안녕하십니까.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라고 합니다.”
“먼 길 오시느라 출출하셨을 터, 전하를 위해 준비한 음식들이옵니다.”
베르봉 백작이 긴 식탁 위에 놓인 산해진미들을 지크에게 권했다.
“감사합니다. 베르봉 백작님께서도 드시죠.”
지크가 베르봉 백작에게 인사를 한 후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프로아 전하.”
“예?”
“신 베르봉은 전하의 부임을 진심으로 반기는 바입니다.”
“별말씀을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온데… 소인에게 약간의 시간을 주실 수 있으시겠사옵니까?”
“시간이요?”
“프로아 전하께서 부임하신 걸 모르는 신민들이 많사옵니다. 이에 소인은 이 사실을 널리 알리고, 조촐하게나마 즉위식을 거행하려 하옵니다.”
“으음.”
“최소한의 의전마저 행하지 않는다면, 어찌 왕위에 등극하셨다 말할 수 있으시겠사옵니까? 아니 그렇사옵니까?”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최소한 일주일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사옵니다.”
“일주일이라….”
“부디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하시죠.”
딱히 거절할 명분이 없었으므로, 지크는 베르봉 백작의 청을 받아들였다.
“오오. 소인의 청을 들어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그럼 준비가 되는 동안 전하께오선 그저 푹….”
“그 전에.”
지크가 베르봉 백작의 말을 잘랐다.
“예?”
“이곳 프로아틴 지방에 대한 현황을 보고받았으면 하는데요.”
“보고를 받으시겠단 말씀이시옵니까?”
“예.”
“어떤 보고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뭐… 전체 인구라든지, 마을의 숫자가 몇 개는 되는지, 병력은 얼마나 있으며, 한 해 총생산량, 세금 같은 것들 정도요?”
“크흠!”
“상세한 보고는 나중에 받을 테니까, 일단은 간략한 보고만 해주시죠. 보고서라도 하나 올려주면 좋고요.”
“아, 알겠사옵니다. 소인이 문관들을 시켜 보고서를 올리라 말해 두겠사옵니다.”
그 순간.
‘이 애송이가?’
지크를 바라보는 베르봉 백작의 눈매가 순간 가늘어졌다.
“그럼, 식사하시죠.”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지크는 나이프를 들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스테이크를 썰 뿐이었다.
***
조촐한 연회가 끝난 후.
지크는 시녀들의 안내를 받아 성에서 가장 좋은 손님용 방으로 향했다.
지크가 군주의 침실을 사용하지 못한 이유는, 베르봉 백작이 짐을 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전하의 전담 시중을 맡게 된 엘리제라고 하옵니다. 필요하실 때는 언제든 불러 주시옵소서.”
앳된 얼굴을 가진 엘리제란 이름의 시녀가 지크의 침대 머리맡에 물과 위스키가 담긴 쟁반을 놓아주었다.
“그럼, 편히 쉬시어요.”
“고마워요.”
엘리제가 침실을 나선 후.
“이건 상이 아니라 똥이야.”
지크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황제는 치사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었다.
기왕 줄 거면 좋은 인프라가 갖추어진 땅을 줄 것이지, 이게 뭐란 말인가?
척박하기 짝이 없는 지형.
적은 인구.
형편없는 제반 시설.
심지어, 쓸 만한 인재마저도 몇 되지 않았다.
“강남은 못 줘도 강북 번화가라도 줬어야지. 이건 뭐 저기 어디 산골 마을 하나 던져준 격이네.”
하지만 투덜거려 봤자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어떻게든 잘 일궈보자. 여긴 내 땅이니까.”
지크는 성장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영지의 발전에 힘써 보기로 했다.
왜?
그는 혼자였으니까.
두 번 다시 길드에 몸담지 않겠노라고 다짐한 이상, 영지라도 있어야 제네시스 길드라는 거대 세력의 압박에서 버틸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시간도 넉넉했다.
황제란 놈은 치사하긴 했지만, 3년 동안 영토를 보호해 주기로 약속한 상태인지라 제네시스 길드가 쳐들어올 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단은 즉위식 끝나면 근처 던전들부터 싹 다….”
그렇게 중얼거리던 지크가 돌연 커튼이 쳐진 테라스를 향해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그리고는 마법의 벨트인 메긴기요르드의 권능을 이용해 창을 소환해내고, 그것을 테라스로 냅다 던졌다.
쒜에에엑!
창이 테라스를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갔다.
채앵!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어?”
침입자의 얼굴을 확인한 지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몰래 그의 침실 테라스로 숨어든 자가 다름 아닌….
“오스칼 경?”
믿음직스러워 보였던 그의 기사 오스칼이었기 때문이다.
“신 오스칼, 프로아 전하를 뵙습니다.”
오스칼이 지크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아니. 왜 오밤중에 테라스로….”
“전하께 은밀히 드릴 말씀이 있어….”
“은밀히요?”
“예, 전하.”
“어떤? 아니, 그 전에. 피 나잖아요.”
지크가 황급히 오스칼을 향해 다가섰다.
오스칼의 손아귀에선 시뻘건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지크가 던진 창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창날이 그녀의 손을 살짝 스쳤기 때문이다.
“은밀히 할 말씀이 있으면 미리 귀띔이라도 해줄 것이지….”
“저는 괜찮습니다, 전하. 저는 기사. 이까짓 상처쯤 아무것도….”
“가만히 있어 봐요.”
그렇게 말한 지크가 인벤토리에서 포션과 붕대를 꺼내 오스칼의 손에 감아주었다.
“이, 이러지 않으셔도….”
“몸 함부로 굴리지 마요. 오스칼 경은 내 신하니까.”
“전하….”
“그래서 은밀히 하실 말씀이란 게 뭔데요?”
“그것이….”
오스칼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전하께선 정녕 이 땅의 지배자가 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전하. 이곳은 어설픈 마음가짐으로는 통치할 수 없는 곳입니다. 프로아틴 지방은 척박한 땅… 지난 200년간 누구도 이 땅의 주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음.”
“만약 전하께서 그저 그런 군주가 되실 생각이시라면, 저는 감히 말씀드릴 것입니다.”
“뭐라고요?”
“떠나시라고.”
오스칼의 푸른 눈동자가 시리게 빛났다.
***
“기사된 자로서 감히 군주께 올릴 말씀이 아니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드려야만 하는 말씀입니다. 전하. 만일 전하께서 이 땅을 통치하심에 있어 혹여나 어설픈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으시다면….”
“그만.”
지크가 오스칼의 말을 잘랐다.
“그런 걱정일랑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네요, 오스칼 경. 여긴 이제 제 땅입니다. 어설프게 통치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 말씀, 소신이 믿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정녕 한 치의 거짓도 없으신 것입니까?”
“당연한 말씀을.”
“그러시다면, 전하께서는 베르봉 백작을 조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으음.”
지크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 말씀은 조금 못 미더운데요. 오스칼 경께서는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베르봉 백작의 신하였는데.”
“저는 베르봉 백작에게 충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뭐에 충성하셨죠?”
“제 충성은 이 땅, 이 영지를 향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베르봉 백작은 충성을 바칠 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어째서요.”
“그는 모험가들과 결탁해 엘프들을 매매하고 있습니다.”
“……!”
“또한, 지나치게 높은 세율을 매겨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중이기도 합니다.”
내부 고발이었다.
***
베르봉 백작은 철저하게 부패한 인물이었지만, 나름 유능한 인물이기도 했다.
중앙 정부에서 쫓겨나 프로아 영지로 부임해온 그는,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엘프 사냥꾼들과 결탁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베르봉 백작이 엘프 사냥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엘프 사냥꾼들은 카제인 성 주변의 몬스터들을 퇴치해 주었다.
또, 엘프 사냥꾼들에게 치안 유지비 명목으로 용돈을 쥐여 주기까지 했다.
게다가 뱀파이어 로드와 한 달에 한 번씩 영지민 열 명을 산 채로 바치기로 하는 계약을 맺음으로써, 뱀파이어들의 습격을 어느 정도 억제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현실이랑 다른 게 뭐야?’
오스칼의 설명을 들은 지크는 어이가 없었다.
부패한 권력과 조폭들의 커넥션이라니?
이건 완전 현실과 판박이가 아닌가?
괜히 BNW가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게임이 아닌 모양이었다.
“음. 그렇다 이거죠.”
지크가 살짝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베르봉 백작부터 제거해야겠네요.”
“전하, 그건 안 될 말씀입니다. 베르봉 백작이 부패한 인물이긴 하지만, 그에 대한 백성들의 평판이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왜요. 부패한 놈이긴 해도 그 자식 덕분에 치안이 유지가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예.”
“아, 그래서 뱀파이어 로드한테 사람을 산 채로 가져다 바치는구나.”
지크가 으르렁거렸다.
“지금 그걸 내버려 두라고요?”
“내버려 두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차근차근….”
“어느 세월에요?”
지크가 다소 날카로운 말투로 되물었다.
“오스칼 경.”
“예, 전하.”
“시간은 소중한 겁니다.”
“소신도 압니다만….”
“그리고 베르봉이 부정부패를 저질러서 유지한 치안은요, 결국에는 백성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거 아닙니까? 높은 세율은 누가 다 부담하죠? 뱀파이어 로드에게 공물로 바쳐지는 건 누구 목숨이고요? 결국 책임은 백성들이 지는 거고, 꿀은 베르봉만 빠는 꼴인데?”
“저, 전하!”
“갑시다.”
지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전하! 어디 가십니까!”
“어디 가냐고요?”
지크가 오스칼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베르봉 머리통부터 부숴놓고 생각해 보려고요.”
그 순간.
‘마, 망했어!’
오스칼은 새로운 왕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또라이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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