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710
709
“한태성 선수! 여기 좀 봐주시죠!”
“한태성 선수!”
“오빠!”
“형! 사랑해요!”
“경기 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자들과 팬들은 태성의 차량이 경기장 앞 레드 카펫 앞에 도착하자 환호했다.
하지만 태성은 그런 기자들이나 팬들에게 어떠한 호응도 해주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태성은 일상에서도 팬들에게 성심성의껏 팬 서비스를 해주느라 자신의 사생활이 침해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오늘의 태성은 달랐다.
“…….”
태성은 굳은 표정으로 레드 카펫을 지나쳐 포토라인까지도 지나쳐 버렸다.
저벅저벅-
그러고는 곧장 선수 대기실로 향했다.
그 어떤 말도, 제스처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버린 것이다.
“아, 뭐야.”
“팬 서비스 좋다더니 왜 저래?”
“너무 긴장했나?”
“표정이 안 좋던데.”
“건강상의 문제라도 생긴 건가.”
기자들과 팬들은 그런 태성의 태도에 의구심을 자아냈다.
하지만 태성은 기자들과 팬들이 어떻게 말하든, 어떻게 생각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꽈악!
대기실로 향하는 태성의 두 주먹은 당장 뭐라도 칠 기세로 꽉 쥐어져 있었다.
그러던 중.
“한태성.”
태성은 한때 자신의 숙적이었던 채형석과 대기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딱 마주쳤다.
“오늘….”
채형석이 무어라 말하며 태성의 성질을 긁어 놓으려던 때.
쾅!
태성의 손아귀가 채형석의 목을 움켜쥐고, 벽에 처박았다.
“커, 커헉!”
채형석은 태성의 무지막지한 힘에 캑캑거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 한태성… 너 이 새끼… 미쳤….”
“그래, 나 지금 미쳤다.”
태성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채형석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눈깔이 좀 뒤집힌 상태거든.”
“그게… 무슨 개소ㄹ….”
“오리발 내밀래?”
“……?”
“추하다, 추해.”
태성이 경멸에 찬 시선으로 채형석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까지 이기고 싶었냐?”
“무, 무슨….”
“거기서 더 밑바닥까지 떨어질 데가 있었다는 게 놀랍네.”
“뭐 이 새끼야…?”
“가던 길 가라.”
태성은 그렇게 말하고는 채형석을 밀쳤다.
“그런다고 포기할 것 같냐? 기권이라도 할 줄 알았나 본데, 너 사람 잘못 봤어.”
“……?”
“더러운 새끼.”
태성이 그 말을 남기고 사라지고.
“뭐, 뭐라는 거야?”
채형석은 태성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살벌하게 화를 내는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해서,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멍을 때렸다.
“저 새끼 갑자기 왜 저래? 뭐 잘못 처먹었나?”
채형석은 진심으로 태성의 돌발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했다.
태성에게 멱살이 잡혀 벽에 밀쳐진 것에 화를 낼 정신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
덜컥!
대기실 문이 열리고.
“오빠….”
“태성 오빠….”
“형님….”
“태성 씨….”
먼저 와있던 용설화, 고스란, 승구, 그리고 데이토나가 태성을 바라보며 어쩔 줄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
“뭐야? 다들 표정이 왜 그래? 초상집 분위기야, 왜.”
태성은 그렇게 말하고는 대기실 소파에 몸을 뉘었다.
“형님….”
승구가 그런 태성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말했다.
“이거 아무래도 경기 중단을 신청하시는 게….”
승구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불과 30분 전 일어난 사건 때문이었다.
30분 전.
태성이 강변북로를 달리고 있을 무렵, 사건은 벌어졌다고 했다.
[야, 태성아. 너네 대기실에….] [대기실? 무슨 대기실?] [무한의 전장에 니네 길드 대기실.] [그게 뭐?] [웬 NPC 하나가 거기 들어가서 폭탄을 터뜨렸다고 하더라….] [뭐?] [다… 죽었대. 너네 길드원… 한 2~30명 빼고 다.]그 순간 태성은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테러.
경기 시작 전 길드원들이 폭탄 테러에 의해 모조리 사망해버린 것이다.
그게 태성이 굳은 표정으로 포토라인까지 무시하고 대기실로 곧장 직행했던 이유였다.
또한, 채형석을 때려눕힐 뻔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왜?
태성은 이 비열한 테러의 배후가 패배자 3인방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형님….”
“왜.”
태성은 승구가 울상을 짓자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그 이유를 물었다.
“표정 왜 그래?”
“그간 준비 열심히 하셨는데….”
“그게 뭐.”
“이 개 같은 자식들….”
승구는 울상을 짓다가 문득 화가 치밀었는지 울분에 찬 표정으로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형님, 이렇게 된 거 제가 총대 매겠습니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을 그냥 다….”
“헤이, 승구 씨. 참아요, 참아.”
그러자 데이토나가 재빨리 승구를 뜯어말렸다.
데이토나는 한국어 패치가 꽤 잘된 외국인이었기에, 제법 능숙한 한국말로 승구를 달랬다.
“참아.”
태성 역시 승구를 말렸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고, 쟤네가 한 짓이라는 증거도 없잖아.”
“형님, 아무리 그래도….”
“해보자.”
태성이 딱 잘라 말했다.
“질 때 지더라도, 해봐야지.”
“하지만….”
“경기 못 미룬다는 거 알잖아.”
태성의 말대로, 게임 BNW 방송 경기는 지연이 불가능했다.
특히나, 방송 경기에 참가하는 게이머들이 게임 내에서 죽은 걸 가지고 미루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다.
BNW는 MMORPG 장르의 게임.
즉, 대회용 계정이 아닌 평소 플레이하던 계정을 가지고 경기를 치르는 만큼 캐릭터의 관리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던 것이다.
괜히 방송 경기를 치르기 전에 캐릭터의 생존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란 말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대회 직전 캐릭터가 죽는 건 오롯이 게이머의 과실로 간주했다.
지난 당시 오즈릭 교단이 이 점을 이용해 태성을 함정에 빠뜨리지 않았던가?
“이대로 기권해 버리면 몰수패야. 위약금은 상상할 수도 없겠지. 보통 세 배에서 열 배쯤 되니까.”
“그럼….”
“해봐야지. 어쩌겠어.”
태성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말했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겠지만… 맵 운만 좀 따라주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겠지.”
에 등장하는 맵 테마는 총 13개.
그중 한두 개의 맵은 진영에 따라 오히려 소수 병력이 게릴라전을 펼치는 게 유리한 측면도 있었다.
“야간 공성전 같은 테마만 나와 준다면… 거기서 우리가 공격이면… 그럼 할 만하겠지.”
태성은 그 확률이 엄청나게 낮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애써 긍정적인 말로 팀원들을 위로했다.
“…….”
“…….”
“…….”
“…….”
승구, 용설화, 고스란, 그리고 데이토나는 그런 태성의 투지와 긍정적인 마인드에 잠시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형님, 죽어도 같이 가겠습니다.”
“해봐요, 오빠.”
“기왕 하는 경기인데, 최선을 다해야겠죠.”
“난 언제나 태성 씨 편입니다. 브로.”
승구, 용설화, 고스란, 그리고 데이토나는 비록 질 게 뻔한 경기일지라도 태성과 함께 출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래, 해봅시다.”
태성은 역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불과 3분 앞으로 다가온 경기에 대한 투지를 불살랐다.
‘그래, 언제는 유리하게 싸운 적 있었어? 옛날 옛적 생각나고 좋네.’
태성은 과거 제네시스 길드에게 쫓기던 시절을 떠올리며 악에 받친 미소를 지었다.
그때 그 시절.
가진 것이라고는 오직 승부욕과 멈출 줄 모르는 근성뿐이던 그때의 미소를 말이다.
***
같은 시각.
게임 속 세상인 뉘르부르크 대륙 은 난리도 아니었다.
전쟁의 신 콜로서스 교단은 이 예상하지 못한 폭탄 테러에 비상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경기가 중단되는 일은 없었다.
V스포츠협회에 소속된 게이머들이 현실의 경기 규정을 들먹이며 경기를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을 운영하는 콜로서스 교단에서는 혹시나 모를 추가적인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성기사들이 무려 1,000명이나 투입시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콜로서스 교단에서는 주요 관객들을 모조리 퇴장시킨 후 귀가시켰다.
만약 추가적인 테러가 발생한다면, 관객들까지 그 피해에 휘말릴 수도 있었기에 그건 적절한 조치였다.
당사자인 게이머들이야 죽어도 경기를 강행한 자업자득이었지만, 애꿎은 관객들까지 휘말리게 하는 건 무리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과 의 세력전은 삼엄하기 짝이 없고, 또한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인 채 서막을 맞이하고 있었다.
“후후후.”
아반트는 텅 비어 버리다시피 한 객석에 앉아 저 아래 경기장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아반트의 곁에는 오른팔인 킨크가 좌불안석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수석 대장장이님.”
킨크가 아반트에게 물었다.
“정말 대피하지 않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추가적인 테러가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옥체를 보중하셔야….”
“괜찮다, 킨크.”
아반트가 그런 킨크를 안심시켰다.
“추가적인 테러는 없을 것이다.”
“예?”
킨크는 아반트가 호언장담하자 놀랐다.
“수석 대장장이님께서 그걸 어떻게….”
“킨크.”
아반트가 그런 킨크에게 주의를 주었다.
“말을 아껴라.”
“예?”
“우린 그저 그러려니 하고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와 그 동료들이 도륙 나는 것이나 구경하면 된다.”
“설마….”
킨크는 그제야 아반트의 말뜻을 이해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수석 대장장이님께서….”
“그럴 리가.”
아반트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내 손에 결코 피를 묻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저 내가 잘되길 바라는 사람이 있었던 것뿐 아니겠느냐?”
“하하… 하하하….”
“모쪼록 안심하고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그 빌어먹을 애송이가 처참하게 짓밟히는 것이나 감상하도록 하자.”
아반트는 그렇게 말하고는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을 한 모금 머금었다.
아반트의 목적은 오직 지크를 짓밟고 를 회수하는 것.
즉, 이번 방송 경기의 흥행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네놈은 덤비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 덤빈 것이다, 이 애송아.”
아반트는 지크를 향해 그렇게 중얼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
경기가 시작되었다.
태성은 동료들과 함께 경기장에 입장한 뒤 캡슐 안에 몸을 뉘였다.
“뀨… 주인 놈아, 정말 괜찮겠냐.”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햄찌가 지크를 향해 걱정스레 물었다.
“인마 뭘 걱정해.”
지크는 오히려 햄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근데 너 괜찮겠냐? 그냥 구경해.”
“뀨! 싫다! 햄찌 주인 놈이랑 함께할 거다!”
“너 죽는 거 싫은데.”
“뀨! 햄찌 죽으면 정령계로 가지 진짜 죽는 거 아니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다! 뀨우우우!”
“그래도.”
“싫다! 캬아아아악! 햄찌 데려가라!”
“짜식.”
지크는 그런 햄찌를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럼 적당히 몸 사려. 알겠지.”
“알겠다! 뀨우!”
그렇게 지크는 햄찌를 데리고 의 대기실로 향했다.
폭발의 흔적이 역력한, 사실상 반쯤 무너져버린 대기실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폭발에 휩쓸려 죽어버린 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던 것이다.
“기, 길마 형….”
“지크 님….”
그런 대기실에 남아 있던 27명의 길드원들은 지크와 운영진들을 바라보며 울상을 지었다.
“해봅시다.”
지크는 그렇게 말하며 살아남은 길드원들을 다독였다.
“포기할 수 없잖아요. 자자, 다들 얼굴 풀고요. 갑시다.”
지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길드원들을 이끌고 대기실을 나섰다.
그러나 티가 나진 않았어도, 지크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는 중이었다.
지금 이 순간.
지크는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면… 밀린다.’
채형석에게 바리캉으로 머리를 밀린다고 생각하니, 생각만 해도 오싹 소름이 끼쳤다.
‘이겨야 한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영혼을 팔아서라도 이겨야 해.’
지크는 그 생각으로 이번 경기에 임했다.
이번 경기는 단순히 승패를 떠나 모발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사투였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