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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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프로아 왕국에서 정상 회담에 응할 생각이 없다고 하옵니다.”
“뭐라? 아아! 이를 어쩐단 말인가!”
론진 3세는 보고를 받고 깊이 탄식했다.
“정상 회담에 응하지 않겠다는 건저들이 휴전 협정을 맺을 의지가 전혀 없다는 말이 아닌가!”
“그, 그렇사옵니다.”
오리스 대장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프로아 왕국은 휴전 협정을 맺을 의지가 없사옵니다. 어느 정도의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본국을 통째로 집어삼킬 생각인 듯합니다.”
“이를 어쩐단 말이냐! 이를 어째!”
론진 3세가 이렇듯 난리를 피우는 이유는, 전쟁이 너무나도 불리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방어만 한다면 버틸 만은 했다.
적어도 1년쯤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공격.
프로아 왕국군이 전략적 요충지를 모조리 점령해 버리는 바람에, 바이에리셔 왕국으로서는 어떠한 공격도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방어만 하자니 야금야금 병력을 갉아 먹히고 있어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피해가 누적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대로라면 전쟁이 장기전으로 흘러간다고 해도 결국은 바이에리셔 왕국이 패망하는 그림이 나올 게 뻔했던 것이다.
그래서 정상 회담을 요청하고 휴전 협정을 좀 맺어보려 했던 것인데, 프로아 왕국이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방법이 없겠는가! 방법이!”
“전하, 용기를 잃지 마소서.”
오리스 대장은 최대한 론진 3세를 달래려 애썼다.
“아직 전하의 군대가 고스란히 남아 있사옵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전하의 군대를 믿으소서.”
“하지만 상황이 너무나도 최악이질 않은가! 이대로 가면 본국이 망하는 건 시간문제란 말일세!”
“버텨 보겠나이다. 버티다 보면 기회가 올 것이옵니다. 6개월이면 어떻고, 1년이면 어떻사옵니까.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라 하였사옵니다. 그러니 굳세게 마음을 먹으소서.”
“아, 알겠소.”
론진 3세가 힘없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내 그대와 나의 군대를 믿고 한 번 버텨보리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한편, 지크는 미켈레로부터 걸려온 통신을 받고 있었다.
– 전하, 바이에리셔 왕국에서 휴전 협정을 제안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랬지. 근데 내가 거절했어. 이 자식들 아주 본때를 보여주려고. 나 잘했지?”
– 제정신이십니까?
“으응?”
지크는 미켈레가 자신을 칭찬하기는커녕, 오히려 퉁명스레 쏘아붙이자 당황했다.
“왜? 혼쭐을 내주면 안 돼?”
–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
– 이 시국에 혼쭐을 내주긴 뭘 내줍니까.
“이 시국…?”
– 마우레키온 제국이 공문을 보내왔습니다.
“뭐라고?”
– 제국의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당분간은 보호를 해줄 수가 없답니다.
“헉?”
–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을 테지만, 일단은 마우레키온 제국의 입장은 그렇습니다.
“그렇단 말은….”
– 예.
미켈레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 현재 마우레키온 제국은 엄청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제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본국을 보호해줄 여력이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거 큰일인데?”
– 큰일이지요. 대륙 전체의 정세가 큰 변화가 생길 예정입니다. 물론 별다른 특이 사항 없이 끝날 수도 있겠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럼… 우리 몸 사려야 한다는 거네?”
– 예, 전하. 지금은 제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으니 주변국들을 경계해야 할 때입니다. 현재 본국은 마우레키온 제국의 보호를 믿고 군사력의 90퍼센트를 바이에리셔 왕국과의 전쟁에 투입한 상황입니다. 만약 지금 상황에 공격을 당하기라도 한다면….
“빈집… 털이.”
지크가 미켈레의 말뜻을 알아듣고 말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정말이지 큰일이었다.
프로아 왕국이 순식간에 멸망할 수도 있는 것이다.
– 전하,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이쯤에서 휴전 협정을 맺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바이에리셔 왕국을 끝장내시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합니다만, 지금은 정말 상황이 안 좋습니다.
“그럴게.”
지크는 미켈레의 조언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지크는 수차례 빈집털이를 해본 였다.
그래서 빈집털이의 무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지금처럼 빈집털이를 당했다간 폭삭 망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서는, 섣불리 움직이기보다는 차라리 가만히 웅크려 있다는 게 낫다는 걸 경험으로써 아는 것이다.
“그럼 지금까지 점령한 지역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휴전 협정에 들어가지, 뭐.”
– 현명하신 선택이십니다.
“알겠어. 특이 사항 있으면 또 보고하고.”
– 예, 전하.
“에라이.”
바이에리셔 왕국을 끝장낼 생각이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돌아갈 줄이야.
하지만 욕심을 부렸다간 혹시 모를 빈집털이에 당할 수도 있었으므로, 지크는 이쯤에서 전쟁을 끝마치기로 했다.
“통신병.”
“예, 전하.”
“바이에리셔 왕국에 통신을 걸어서 정상 회담에 응할 생각이 있다고 전하세요.”
“알겠사옵니다.”
“쩝.”
지크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
이틀 후.
지크는 제3국인 에서 론진 3세와 정상 회담 자리를 가졌다.
론진 3세는 전과는 180도 다른 태도로 지크를 대했다.
“아이고, 오시었소. 지크프리트 국왕. 이렇게 만나니 반갑소이다.”
론진 3세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줄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지크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물론 론진 3세의 속은 겉과는 달리 그리 좋지 못했다.
‘이런 빌어먹을… 내가 이따위 천한 모험가 출신의 애송이에게 고개를 숙이다니… 평생의 치욕이로다. 평생의 치욕이다! 이노옴. 두고 보자. 내 반드시 오늘날의 치욕을 되갚아줄 터이니!’
론진 3세는 속으로 한탄하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지만, 최선을 다해 접대용 미소를 지으며 지크에게 살갑게 굴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소이다. 어떻게 차라도 한잔하시겠소?”
“좀 낯서네요?”
지크가 론진 3세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분명 2주일 전까지는 저한테 막 쌍욕을 퍼부으셨던 것 같은데.”
“그, 그건! 하하! 하하하!”
론진 3세는 지크가 자신의 행동을 비꼬자 땀을 삐질 흘리며 멋쩍은 듯 웃었다.
그리고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때는 솔직히 과인이 좀 심했소이다. 과인이 욱하는 성질이 있어서 그런 것이지, 마음에 깊이 담아 두지는 마시구려. 내 어디 진심이었겠소? 그저 잠깐 화가 나 이성을 잃은 것이지.”
“진심이었던 것 같은데요?”
“허! 그 무슨 말이오! 진심이라니! 사실이 아니라오! 하하하!”
“그래요?”
“그렇소이다! 하하하하!”
“뭐, 일단 그렇게 알고 있죠.”
지크는 퉁명스레 대답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뒤이어 회담이 시작되었다.
회담의 내용은 간단했다.
양국 간 휴전 협정을 맺는 대신 약간의 타협만 해주면 되었다.
“전쟁 비용에 대한 배상금은 안 받죠.”
“그, 그게 정말이오?”
론진 3세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배상금을 줄 생각에 피가 마르다가 지크가 선뜻 호의를 베풀자 매우 놀랐다.
“물론이죠.”
“그, 그렇게만 해준다면 과인은 그대에게 매우 감사할 것이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무엇이오? 그 조건이란 게?”
“왕자를 볼모로 보내세요.”
“……!”
“그래야 서로 믿고 휴전 협정을 맺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그건 좀….”
론진 3세는 슬하에 왕세자 하나밖에 없었다.
그런 왕세자를 프로아 왕국에 볼모로 보낸다면, 다음 왕위 계승이 암울해지는 것이다.
물론 지크도 그런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왕세자를 볼모로 요구한 거였다.
어설픈 휴전 협정 따위, 맺어 봐야 뒤통수를 맞을 수 있으므로 확실한 안전 장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보시오, 지크 국왕. 내 자식이라고는 왕세자 하나밖에 없소. 그런 아이를 볼모로 보내기는 좀….”
“그래요? 그럼 계산기를 좀 두들겨 보죠.”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이 가져온 서류를 들여다보며 계산기를 튕기는 듯한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자, 잠깐!”
론진 3세가 그런 지크의 모습에 크게 당황하며 소리쳤다.
“이보시오! 지크 국왕!”
“왜요?”
“거 잠깐만 과인의 말을 들어 보시오. 사람이 왜 그리 성질이 급하오?”
“싫다고 하신 거 아닌가.”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지 않소이까? 일단 진정하시오.”
론진 3세는 어디서 들었는지, 한국의 속담을 들먹이며 지크를 달랬다.
“진정 볼모를 원하시오?”
“그래야 믿을 수 있죠.”
“크흠.”
“왕세자를 보내시죠. 그럼 깔끔하게 휴전하는 겁니다. 물론 비머리언 공방의 유통망은 본국이 가져가는 걸로.”
“허….”
“싫으시면 배상금을 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되겠죠.”
“배상금은… 도저히 여력이 없소….”
론진 3세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미 비머리언 공방을 잃어 나라 경제의 50퍼센트가 박살이 난 상황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천문학적인 액수의 배상금까지 낸다?
나라 경제가 완전히 박살이 날 게 뻔했다.
전쟁에서 져서 망하는 게 아니라, 경제가 박살이 나서 망하는 것이다.
“배상금도 못 내시겠다면, 저도 어쩔 수 없죠. 계속 싸우는 수밖에.”
“어쩔 수… 없구려.”
론진 3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지크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었다.
“왕세자를 볼모로 보내겠소.”
결국, 론진 3세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 왕세자를 프로아 왕국에 보내기로 했다.
“사인하시죠.”
그러자 지크는 기다렸다는 듯 가져온 서류를 론진 3세에게 내밀었다.
“크흑.”
“전하….”
“아아….”
론진 3세와 함께 회담장에 온 오리스 대장을 포함한 군 장성들, 그리고 기사들은 이 굴욕적인 평화 협정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비통해했다.
그러던 중.
“전하! 긴급히 보고드릴 것이 있사옵니다!”
“전하! 멈추십시오!”
프로아 왕국의 전령과 바이에리셔 왕국의 전령이 동시에 회담장 안으로 뛰어 들어와 각각 지크와 론진 3세의 귓가에 자신들이 가져온 소식을 속삭였다.
그로부터 정확히 30초 뒤.
“크핫핫핫핫핫!”
론진 3세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사인을 하려던 서류를 구기더니 갈기갈기 찢어버리기 시작했다.
***
론진 3세는 협정서를 찢어버린 직후 지크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이 빌어먹을 애송이 새끼야! 네놈은 이제 끝이다! 파멸이란 말이다! 크핫핫핫핫!”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굴욕적인 평화 협정서에 서명하려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갑작스러운 태세전환이었다.
“전하, 무슨 일이십니까.”
“저, 전하?”
바이에리셔 왕국의 수뇌부들은 론진 3세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크게 당황했다.
“다 끝났노라! 이 전쟁은 우리가 무조건 이길 것이다! 다들 아무 걱정하지 마라!”
“전하!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자발라 왕국이 저 망할 자식의 코딱지만 한 나라에게 선전 포고를 하였다! 크핫핫핫핫! 이제 저 빌어먹은 애송이는 망했다, 이 말이다! 크핫핫핫핫!”
그게 론진 3세가 협정서를 찢어버린 후 갑자기 태세 전환을 한 이유였다.
빈집털이.
지크가 우려했던 대로, 마우레키온 제국이 혼란한 틈을 타 바로 옆 동네의 강대국인 자발라 왕국이 침공해온 것이다.
지크는 역시 전령을 통해 그 소식을 전해들은 뒤였기에, 론진 3세의 태세 전환에 딱히 놀라지 않았다.
그저 기분이 더러워서 표정이 굳었을 뿐….
“네 이노오오옴!!!”
그때, 론진 3세가 지크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
“이제 네놈은 끝이다! 이놈! 하늘이 무섭지도 않았느냐? 결국엔 이렇게 벌을….”
론진 3세가 한창 신이 나 지크에게 의기양양하게 퍼부어대던 순간.
타앙!
어느새 리볼버 형태로 변한 의 총구가 불을 뿜고, 뒤이어 론진 3세의 얼굴에 주먹만 한 구멍이 생겼다.
“……!”
“……!”
“……!”
바이에리셔 왕국의 수뇌부들은 그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
충격 그 자체.
설마하니 정상 회담에 나와 상대 정상의 얼굴에 총알을 박아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