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726
725
“난 도둑이지 암살자 같은 건 아닌데.”
시녀가 드빌 국왕의 귓가에 속삭였다.
“넌 좀 별로네.”
“커, 커헉!”
“조용히 죽어.”
시녀는 드빌 국왕의 목에 단검을 꽂아 넣은 채 그의 머리를 욕조 아래로 힘껏 눌렀다.
꼬륵, 꼬르륵!
드빌 국왕은 목에서 피를 철철 흘리느라 발버둥조차 치지 못한 채 욕조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러자 하얀 거품이 가득하던 욕조 안은 드빌 국왕의 피로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로부터 약 1분 뒤.
“휴.”
시녀, 아니 나인테일은 욕조 아래에 가라앉은 드빌 국왕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나 이런 거, 적성에 안 맞는데….”
나인테일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볼멘소리를 중얼거리며 드빌 국왕이 들어 있는 욕조 위에 천을 덮어놓았다.
‘어쩔 수 없지. 내 조국이 망하게 놔둘 순 없으니까.’
나인테일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조심스레 드빌 왕자의 천막을 나섰다.
음지에서 양지로!
어느새 나인테일은 범죄자라는 어두운 과거를 훌훌 벗어던지고, 조국의 국익을 위해 스스로의 목숨마저도 기꺼이 내던질 수 있을 정도의 애국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전하께서는 피로로 인해 잠에 드셨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깨우지 말란 말씀을 남기셨으니, 각별히 주의해 주셔요.”
“알겠습니다.”
경비병들은 그런 나인테일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내일 아침까지 여덟 시간은 더 남았어. 부지런히 움직이면 꽤 도움이 될 거야.’
나인테일은 지체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겨, 이번엔 새롭게 바이에리셔 왕국군의 육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루미녹스 대장의 천막으로 향했다.
그건 나인테일에게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그녀는 은신, 잠입, 변장의 달인.
군영 하나쯤 휘젓고 다니는 건 그녀에게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인테일은 바이에리셔 왕국군 진영을 순회공연(?)하며 드빌 국왕을 포함한 군 수뇌부들을 제거하기에 나섰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다.
“구, 국왕 전하께서 승하하셨다!”
“암살이다! 암살!”
“루미녹스 총사령관님이 암살을 당하셨다!”
“암살자다! 암살자!”
바이에리셔 왕국군 진영에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드빌 국왕부터 루미녹스 총사령관, 군단장들, 사단장들, 심지어는 전쟁에 함께 나섰던 고위급 귀족들까지 거의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발견되었던 것이다.
한편, 나인테일은 바이에리셔 왕국군 진영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어느 숲속에서 대원들과 접선했다.
밤새도록 바이에리셔 왕국의 수뇌부들을 죽이고 다닌 건 비단 나인테일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나인테일은 대원들을 격려해 주었다.
“전하께서 매우 기뻐하실 거예요. 임무를 완수했으니, 이제 복귀하도록 해요.”
그렇게 나인테일과 대원들은 그야말로 전설적인 무훈(武勳)을 세운 채 아군 진영으로 복귀했다.
작전에 참여한 전원, 최소 3계급 특진에 국가 영웅으로 추대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위대한 전공이었다.
***
지크는 추락하는 의 잔해들을 피해 무사히 본진으로 복귀한 직후 기쁜 소식을 받아보았다.
“전하! 나인테일 국장과 프로아 포스 대원들이 바이에리셔 왕국의 드빌 국왕을 포함한 군 수뇌부들을 암살하는 데 성공했다고 하옵니다!”
“오!”
“현재 바이에리셔 왕국군은 군대를 철수시켜 가장 가까운 영지로 되돌아갔다고도 했사옵니다. 현재 드빌 국왕에 이어 왕위에 오를 계승권을 가진 자가 없기에, 바이에리셔 왕국군이 다시 쳐들어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사옵니다!”
“아아, 믿고 있었다고.”
사실 지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인테일과 대원들을 보내 바이에리셔 왕국군 수뇌부의 암살을 시도해 보았다.
최소한 드빌 국왕만 암살하는 데 성공한다면, 다음 왕위 계승권을 가진 후계자가 없는 바이에리셔 왕국으로서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걸 노린 것이다.
“오스칼 경.”
“예, 전하.”
“나인테일 국장에게 백작의 작위를 내리고, 나머지 프로아 포스 대원들의 작위도 한 계단 상승시켜 주고, 계급도 3계급 특진시켜 주도록 하세요.”
“그리하겠사옵니다.”
“그리고 국가 영웅으로서 국가무공훈장을 수여하겠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렇게 지크는 나인테일과 대원들의 상훈에 대해 언급하고는, 전략 회의를 이어나갔다.
“시작이 좋습니다. 적들의 남부 전선에서 나인테일 국장과 프로아 포스 대원들의 승리로, 후방은 잠시나마 숨 돌릴 시간을 벌었습니다.”
지크가 연합군 수뇌부들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제 시작입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적들의 침공이 있을 예정이니, 방심하지 않고 잘 싸워나가 보겠습니다.”
그러자 연합군 수뇌부들이 미소를 지으며 지크를 향해 한마디씩을 건넸다.
“승리를 믿어 의심치 마셔요.”
“동생! 이 형님만 믿게!”
“대족장님은 승리하실 것입니다.”
지크는 그런 수뇌부들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 전쟁… 이길 수 있을까.’
지크의 가슴 속에서 승리는 여전히 의문 부호로 남아 있었다.
무려 50만.
비록 적들의 가장 무시무시한 전력인 를 전멸시키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했다.
없이도 자발라 왕국의 군사력은 프로아 연합군을 압도하고도 남을 만큼 무시무시했던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딱히 어떠한 전략이나 계략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오직 힘 대 힘.
마치 쓰나미처럼 들이닥칠 적들을 상대로 그저 막아내는 것밖엔 답이 없었던 것이다.
“회의 마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며 공성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뀨. 주인 놈아.”
햄찌가 지크를 으슥한 곳으로 끌어당긴 후 물었다.
“많이 걱정되냐? 뀨우?”
“걱정 안 된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뀨우!”
“근데 어쩌냐? 이 악물고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데.”
“뀨!”
“걱정 마, 나 이런 거 잘해.”
지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부터 이런 거 잘했어.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거.”
“뀨우?”
“그때랑 지금은 좀 다르긴 하지만….”
그땐 잃을 게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잃을 게 너무나도 많았다.
그게 지크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어쨌든. 이겨내야지.”
“뀨우! 그렇다! 주인 놈 위기 극복한다! 뀨!”
“밥이나 먹으러 가자. 배고파.”
“뀨!”
지크는 햄찌와 함께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가 전멸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은 당연히 자발라 왕국에게도 전해졌다.
하지만 프레드릭 국왕은 극대노하지 않았다.
“아군 공중전 편제에 구멍이 많았던 모양이지.”
프레드릭 국왕은 벌벌 떠는 전령을 앞에 둔 채 보고서를 읽으며 가 전멸한 이유를 깨닫고 입을 열었다.
“다행이라 할 것이다.”
자발라 왕국의 대소신료들은 그런 프레드릭 국왕의 발언에 의아해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전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프레드릭 국왕은 그런 대소신료들의 의문에 대답했다.
“본국의 강철 함대의 약점이 프로아 같은 약소국과의 전쟁에서 드러났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만약 본국과 비슷한 국력을 지닌 국가와의 전쟁에서 이 사달이 났다면, 본국은 큰 위기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니 참으로 다행이라 할 일이 아닌가?”
프레드릭 국왕은 극대노하기는커녕, 오히려 의 전멸을 스스로 피드백하고 있었다.
“전하의 혜안이 실로 놀랍사옵니다!”
“전하께서는 진정한 성군이시옵니다!”
자발라 왕국의 대소신료들은 그런 프레드릭 국왕의 지혜로움에 감탄하며, 그를 칭송했다.
“강철 함대를 새로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프레드릭 국왕이 한 신하에게 물었다.
“넉넉잡아 한 달. 빠르면 2주일이면 충분히 생산이 가능하옵니다.”
“새로운 강철 함대를 호위할 공중 병력 또한 필요하다.”
“새 편대를 꾸리겠사옵니다.”
“바로 생산하라.”
“예, 전하.”
그게 강대국의 힘이었다.
라는 엄청난 전력을 잃었지만, 프레드릭 국왕은 동요하지 않았다.
왜?
또 생산해내면 되니까.
그간 자발라 왕국이 의 숫자를 늘리지 않았던 이유는, 제작비가 비싸서가 아니었다.
를 운용하는 데 들어가는 유지비용이 너무나도 비싸기 때문이었다.
그게 바로 강대국의 힘이었다.
쯤은 순식간에 새로 생산해낼 수 있는 경제력, 생산력, 인적 자원, 기술력 등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에게 선물을 하나 보내라. 본국의 공중 전력에 뚫린 구멍을 깨닫게 해주었으니 그에 따른 보답을 해야겠지.”
“예, 전하.”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가 만족할 만큼 보내도록.”
“명령, 받들어 모시겠사옵니다.”
프레드릭 국왕은 그 명령을 내린 후 다시금 명령을 내렸다.
“적진에 도착한 우리 군에, 만 하루의 휴식 시간을 준 다음 공격을 시작하도록.”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대소신료들이 그런 프레드릭 국왕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
지크는 자발라 왕국의 침공에 대비해 요새를 점검하던 중 프레드릭 국왕으로부터 선물이 도착했단 소식을 듣고 어전으로 향했다.
반짝반짝!
옥좌 앞에는 상당한 액수의 금은보화가 든 상자 여러 개가 놓아져 있었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를 뵙습니다. 저는 자발라 왕국의 프레드릭 국왕 전하께서 보낸 사신입니다.”
자발라 왕국의 신하가 지크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뭔가요, 이게.”
“프레드릭 전하께서 지크프리트 전하께 보내시는 선물입니다.”
“이유는.”
“프레드릭 전하께서는 본국이 보유한 공중 전력의 취약점을 알려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단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이에 지크프리트 국왕 전하께 선물을 보내신 것이지요.”
“고맙게 잘 받겠다고 전해 드리세요.”
“예, 전하.”
지크는 프레드릭 국왕이 보낸 선물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자발라 왕국의 사신이 돌아간 후.
“형님, 그 자식 완전 미친 거 아닙니까?”
승구가 지크에게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함대가 전멸했는데 선물을 보내긴 왜 보냅니까?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폭탄 같은 게 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폭탄 같은 거 없어.”
“예?”
“진짜 선물이야. 그냥 돈을 준 거라고.”
“그게 말이 됩니까?”
“돼.”
“어, 어째서?”
“이건 자랑하는 거야.”
“자랑… 말씀이십니까?”
“응.”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끄떡없다, 함대는 다시 만들면 된다, 나 돈 많다, 이렇게 자랑하는 거라고.”
“헉?”
“기특하니까 내가 푼돈이라도 좀 쥐여 줄게. 근데 너 밥은 먹고 다니냐? 이런 의미라고.”
“에이.”
승구는 지크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럴 리가 있….”
“그 뜻 맞아.”
지크가 승구의 말을 잘랐다.
“프레드릭 국왕은 보통이 아냐. 내가 여태껏 상대했던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달라. 강대국의 왕답게, 냉철하고 신중해. 그리고 생각도 깊어. 내가 여태껏 쳐부쉈던 놈들이랑은 클래스가 달라. 근본 있는 왕이야, 프레드릭 국왕은.”
“설마 그렇게 대단한 NPC겠습니까?”
“두고 보면 알겠지. 쉽지 않겠어, 이번 전쟁.”
지크의 그 말은 얼마 가지 않아 사실로 드러났다.
그로부터 이틀 뒤.
“옵니다!”
“적들이 옵니다!”
“온다!”
지크가 이끄는 연합군은 국경에 자리한 요새에서 자발라 왕국의 침공을 받았다.
성벽 위.
“형님! 옵니다!”
승구가 저 멀리 까마득하게 밀려오는 자발라 왕국군을 가리켰다.
“보고 있어.”
지크 역시 자발라 왕국군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대국과의 첫 대규모 전면전.
꽈악!
지크는 를 강하게 움켜쥔 채 다가오는 적들을 기다렸다.
그러던 중.
[알림 : 당신의 신성력이 영구적으로 5 상승하였습니다!] [알림 : 당신의 신성력이 영구적으로 10 상승하였습니다!] [알림 : 당신의 신성력이 영구적으로 6 상승하였습니다!] [알림 : 당신의 신성력이 영구적으로 0.5 상승하였습니다!](중략)
[알림 : 당신의 신성력이 영구적으로 13 상승하였습니다!]지크는 갑자기 눈앞에 알림창이 떠오르며, 신성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경험을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