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731
730
왜였을까?
덜커덩, 덜커덩!
저 멀리 시체를 가득 실은 수레는 유독 지크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시체가 담긴 수레….”
지크는 그런 수레들에 반쯤 넋이 나가서, 자발라 왕국군 진영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뀨! 주인 놈아! 무슨 생각 하냐!”
“아니….”
지크가 햄찌의 물음에 입술을 떼었다.
“저 수레 안에 숨어 들어가면 어떨까?”
“뀨우?”
“어차피 시체잖아? 딱히 검사 같은 걸 하겠어?”
“뀨우! 그건 그렇다!”
“그리고 땅에 묻지도 않을걸? 요즘 날씨가 선선해서 빨리 안 썩으니까. 대충 한 군데 모아 놓았다가 본국으로 보낼 거 같은데? 저렇게 걷어간 시체들을 굳이 태울 것 같지도 않고.”
“아마 그럴 거다! 뀨우!”
“저게 하이패스 아냐? 적진으로 침투할 수 있는?”
“뀨우?!”
“이거 괜찮은데??”
지크는 본능적으로 자발라 왕국군의 시체를 가득 실은 저 수레들이 이 가망 없는 전쟁을 이길 수 있는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저 수레에 숨어서 자발라 왕국군 진영 한복판에 침투한다면?
그런 다음, 자발라 왕국군이 세상 모르게 자는 야간에 사이 뭔가 일을 꾸민다면?
‘이거다.’
지크는 그 생각이 떠올리자마자 바로 옆에 있던 장교를 돌아보았다.
“부관.”
“예, 전하.”
“지금 즉시 전술 회의를 소집할 테니, 연합군 수뇌부들은 즉시 집합하라고 전하세요.”
“즉시 전달하겠습니다.”
지크는 전술 회의를 소집한 직후 통신실로 가 크반트를 향해 통신을 걸었다.
“크반트 님, 지금 바쁘세요?”
– 예, 전하. 지금 장병들을 위한 장비를 제작하느라 좀 바쁩니다.
크반트는 프로이센의 공방에서 열심히 전쟁 물자들을 제작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양이었다.
하긴, 바쁠 만도 했다.
지난번 전투에서도 크반트가 보내준 아이템 덕분에 데시마토 공작이 대활약을 펼칠 수 있지 않았던가?
크반트야말로 후방에서 10인분, 아니 100인분 이상을 해내고 있는 진정한 영웅이라고 봐도 좋았다.
“고생하시네요. 근데 그거 잠시 중지하시고, 폭탄 좀 만들어 주세요.”
– 폭탄… 말씀이십니까?
“작고 가벼울수록 좋아요. 당연히 파괴력이 크면 더 좋고요.”
– 가능이야 하겠지만, 제작 단가가 만만치 않을 겁니다. 고농축 마정석을 이용해야 하는데….
“상관없어요.”
지크가 크반트의 말을 자른 후 말했다.
“지금 빨리 부탁해요. 빠르면 빠를수록,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 정확히 어떻게 사용하실 겁니까?
“자발라 왕국군 진영에 설치해 터뜨릴 겁니다.”
– 예?
“그게 그러니까….”
지크는 크반트에게 자신이 떠올린 작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 흐음.
크반트는 지크의 작전을 듣고 잠시 생각을 해보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 맡겨 주시지요.
“얼마나 걸립니까?”
– 이틀 정도면 충분히 많은 양을 생산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 제작 단가는 국방비의 30퍼센트 이상 잡아먹을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지금 돈이 문제인가요. 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
지크는 이렇게 된 마당에 돈이 얼마나 들든 신경 쓰지 않았다.
“괜찮으니까 빨리 부탁드려요.”
– 알겠습니다. 만드는 족족 보내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지크는 크반트에게 폭탄 제조를 의뢰한 후 곧바로 전술 회의에 참석했다.
그러고는 연합군 수뇌부들을 모아놓고 자신이 떠올린 작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여러분, 저한테 반격할 좋은 방법이 하나 떠올랐는데요….”
지크가 떠올린 작전을 들은 프로아 연합군 수뇌부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감탄해 마지않았다.
“오오!”
“사위! 그거 대단히 좋은 방법일세!”
“만약 성공만 한다면… 저 빌어먹을 자식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을 겁니다.”
“해볼 만하군.”
“들키지만 않는다면… 엄청난 성과를 이룩할 수 있을 겁니다.”
프로아 연합군 수뇌부들의 의견은 만장일치였다.
사실 누구 하나 반대표를 던지기도 힘든 상황이긴 했다.
왜?
희망이 없었으니까.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든데 아무것도 안 하고 말라 죽느니, 차라리 지크가 제안한 작전이라도 시도해 보는 게 나았기 때문이다.
최선의 방어는 곧 공격이란 말도 있지 않던가?
뭐라도 할 수 있을 때 해서 적들을 뒤흔들어 놓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었다.
“좋습니다. 추진해보죠.”
“전하.”
그때, 총사령관 오스칼이 지크에게 물었다.
“작전명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작전명이라….”
지크가 잠깐 생각을 해보고는 대답했다.
“트로이, 트로이로 하죠.”
지크는 트로이 목마를 떠올리며 이번 작전의 명칭을 로 정했다.
***
지크는 프로아 연합군 수뇌부들로부터 에 대한 동의를 얻자마자 남부 전선에 투입되어 있던 나인테일을 불러들였다.
“전하를 뵈어요.”
나인테일은 워프 게이트를 타고 요새에 도착하자마자 지크를 찾아왔다.
“지난번엔 진짜 수고했어. 그리고… 미안해.”
지크는 나인테일에게 사과부터 했다.
그녀는 괴도 나인테일로서 명성을 날릴 당시에도 살인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드빌 국왕을 시작으로 손에 피를 묻히기 시작했으니, 지크로서는 나인테일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게 당연했다.
“전 괜찮아요.”
나인테일이 웃었다.
“제 조국인걸요.”
“조국?”
“그럼요. 사랑하는 제 조국이죠.”
“아….”
지크는 어느덧 어두운 과거를 씻어내고, 한 나라의 정보국장으로 성장한 나인테일을 바라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편, 나인테일은 지크에게 오히려 고마워했다.
‘도둑년에 불과했던 저를 이렇게 바꾸어 주셔서 고마워요, 나의 왕이시여.’
괴도 나인테일이 비록 전설적인 존재이긴 했지만, 그래도 도둑은 도둑.
결국엔 범죄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크를 계기로 범죄자에서 벗어나 한 나라의 정보를 책임지는 정보국장 자리에 올랐다.
또, 때로는 직접 공작 활동에 나서서 국가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범죄자였던 나인테일로서는 새 삶을 얻게 된 셈이었다.
“아무튼, 무슨 일로 부르셨죠?”
“자발라 왕국군 진영에 침투해야 하는데, 변장에 능한 사람이 필요해.”
“제대로 찾으셨네요. 작전 내용이 뭐죠?”
“그게 그러니까….”
지크가 나인테일에게 자신이 떠올린 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
그로부터 이틀 후.
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요새 공성전은 계속되었다.
그럴수록 프로아 연합군은 점점 더 지쳐만 갔다.
네 번째 전투까지는 지크와 마스터 3인방, 그리고 그레이트 위저드인 데시마토 공작의 대활약으로 대승을 거두었다.
그렇지만 다섯 번째 전투부터는 아니었다.
제아무리 마스터급의 강자라 할지라도 결국 인간인 이상, 점점 더 빨리 한계에 도달하기 마련이었다.
가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지쳐갈 무렵.
“아… 죽겠다….”
“전하, 트로이 작전의 준비가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지크는 일곱 번째 전투가 끝난 직후 성벽 위에 대자로 뻗어 있던 중 오스칼의 보고를 받았다.
“그래요?!”
보고를 받은 지크의 얼굴이 환해졌다.
미켈레가 약속했던 시간이 아직 하루가 더 남았기에, 최소한 내일 오전까지라도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의 준비가 끝났다는 것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예, 전하.”
오스칼이 저 멀리 수레들을 가리켰다.
“이제 반격의 시간입니다.”
“드디어! 바로 가죠!”
지크는 지친 와중에도 의 준비 완료 소식을 듣고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편, 자발라 왕국군 소속의 레종 대령(✹✹✹)은 병사들을 이끌고 요새 앞에서 아군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었다.
‘흠. 다음이 마지막 전투가 되겠군.’
레종 대령은 저 멀리 보이는 프로아 연합군 장병들의 몰골을 보고 이 전쟁이 곧 끝나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성벽 위.
프로아 연합군 장병들의 몰골은 그야말로 볼만했다.
멀리서 봐도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어서, 도저히 사람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하기야, 지난 4일 동안 무려 일곱 차례의 전투를 치렀으니 사람인 이상 온몸이 걸레짝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지독한 놈들 같으니. 약소국 주제에 본국의 병력을 20만 명이나 전사하게 만들 줄이야. 요새 함락에 성공하면, 단 한 놈도 살려두지 않고 학살을 벌여도 시원치 않을 놈들이다.’
레종 대령이 그렇게 생각할 무렵.
끼이익!
성문이 열리고 총사령관 오스칼이 프로아 연합군 장병들을 데리고 요새를 나섰다.
덜컹덜컹!
그런 오스칼의 등 뒤에는 검은색 천이 덮인 수레 수십여 대가 뒤따르고 있었다.
“오스칼 총사령관 각하 아니십니까.”
레종 대령은 프로아 연합군이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걸 눈치채고 선뜻 발걸음을 옮겨 오스칼에게 인사를 건넸다.
“레종 대령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각하.”
“귀국 장병들의 시신입니다. 성벽 위에 올랐다가 전사한 장병들의 시신이니, 가져가십시오.”
“허….”
레종 대령은 비록 적이었지만, 오스칼을 깊이 존경했다.
‘과연 고결한 기사라더니, 헛소문이 아니었군.’
레종 대령은 내심 오스칼에게 감탄하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총사령관 전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
오스칼은 레종 대령이 건넨 감사의 인사를 굳이 지크에게로 돌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크의 신용도는 제로에 가까웠기에 레종 대령이 의심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럼, 하던 작업은 마저 하시지요.”
“알겠습니다, 각하.”
“전 이만.”
오스칼이 떠나고.
“뭣들 하나! 어서 아군의 시신을 수습하라!”
레종 대령은 잠시 작업을 멈춘 병사들에게 소리쳐 명령했다.
그런 뒤 혹시나 싶어 병사들을 시켜 프로아 연합군이 건네준 수레들을 살펴보도록 지시했다.
“특이 사항 있나?”
“없습니다. 아군의 시신이 맞습니다.”
수레를 살펴본 병사가 레종 대령에게 보고했다.
“알겠다. 작업이 완료되면 함께 가져가도록.”
“예!”
그렇게 전사자들의 시신을 수습하려는 자발라 왕국군의 작업은 계속되었다.
“후우. 맛 좋군.”
작업을 관리 감독하던 레종 대령은 시신이 실린 수레의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러던 중.
스윽.
수레에 실려 있던 시체 하나가 마치 좀비처럼 일어나더니 레종 대령의 입을 틀어막았다.
푹!
그러고는 레종 대령의 목에 단검이 깊숙이 꽂혔다.
“……!”
레종 대령은 그렇게 자발라 왕국군의 시체로 위장하고 있던 대원의 손에 쥐도 새도 모르게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다.
문제는, 레종 대령이 죽는 것을 본 자발라 왕국군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
보초를 세워놓았던 병사들을 오직 전방, 그러니까 요새 쪽을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병사들 역시 아군의 시체더미를 치우고 수레에 싣느라, 미처 레종 대령에 대해 신경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슥, 스윽!
대원은 죽은 레종 대령을 수레 안쪽으로 깊숙이 밀어놓은 후 언제 일어났냐는 듯 다시 시체 행세를 했고.
스윽.
뒤이어 수레 밑에 숨어 있던 나인테일이 완벽하게 레종 대령으로 분장을 한 채 나타났다.
그러고는 완벽한 음성 변조와 위장으로 레종 대령을 100퍼센트 재현해내며, 자발라 왕국군들을 지휘해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대충 실어라! 떨어져 나간 팔다리의 주인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일단 실어라! 어서!”
“예!”
그로부터 약 한 시간 후.
“아군 진영으로 귀환한다!”
“예!”
나인테일은 작업이 끝나자, 자발라 왕국군들을 이끌고 적진으로 향했다.
수백여 대의 수레를 이끌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