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734
733
프로아 연합군이 요새에서 자발라 왕국군의 총공격에 대비하고 있을 무렵.
“하아, 하아.”
카렐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손에 쥔 검을 놓아버렸다.
기사에게 있어 검을 손에서 놓는다는 건 목숨을 놓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
그러나 카렐은 검을 놓아버린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털썩!
카렐은 검을 놓아버린 후 아예 선 자리에 주저앉은 뒤 대자로 뻗어버렸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그런 카렐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입고 있던 갑옷은 걸레짝.
머리는 온통 헝클어진 채 피딱지가 엉겨 붙어 있었고, 얼굴에는 핏자국과 그을린 자국이 가득해 거지꼴이 따로 없었다.
명색이 총사령관인 카렐이 이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다는 건 그만큼 전투가 격렬했다는 걸 뜻했다.
최고 지휘관인 총사령관이 직접 검을 들고 적들과 싸운다는 것 자체가 전쟁에서 패배하기 직전에나 가능할 법한 일일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렐은 대자로 뻗어 누운 채 웃어댔다.
“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 하하하하!”
그런 카렐의 웃음이 의미하는 건 다름 아닌 전투에서의 승리였다.
“이겼다!”
“우리가! 우리가 이겼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프로아 왕국, 만세!”
“만세!”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 만세!”
“만세!”
남부 전선에서는 프로아 왕국군 장병들이 내지른 승리의 함성이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있었다.
승리.
카렐이 지휘하는 프로아 왕국군은 남부 전선에서 기어코 바이에리셔 왕국의 침공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바이에리셔 왕국군은 무리한 나머지 전체 병력의 70퍼센트를 잃는, 속된 말로 꼬라박아 버리는 병크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영토를 회복하겠단 욕심에 불리한 지형에서 무리하게 전투를 벌이다 오히려 병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고생… 하셨… 습… 니다.”
그랭구아르가 핏기 없는 얼굴을 하고 다가와 카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런 그랭구아르는 목소리는 차라리 쇳소리에 가까울 정도로 갈라져 있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랭구아르는 음파를 이용해 적들에게 광범위한 피해를 주는 게 가능한 광역 딜러.
덕분에 그랭구아르는 지난 며칠 동안 벌어졌던 전투에서 거의 쉬는 시간 없이 노래를 불러대었고, 그 결과 성대가 심각하게 손상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바이에리셔 왕국군을 대량으로 학살할 수 있었으니, 그랭구아르야말로 이번 승리의 일등 공신이라고 봐도 좋았다.
물론 그랭구아르만 고생한 건 아니었다.
람보르기니.
패왕 브라움의 후예 세스크.
웨펀 마에스트로들.
용설화, 고스란, 승구, 데이토나와 길드원들.
용태풍과 길드원들.
김기태, 한상기, 김한용, 박기돈으로 이루어진 프로게이머 레전드 4인방까지.
남부 전선에 투입되었던 이들 모두가 몇 날 며칠을 싸우느라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젠 상관없었다.
왜?
이겼으니까.
바이에리셔 왕국군은 엄청난 피해를 입고 물러갔고, 더 이상은 프로아 왕국을 위협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은 터라, 또 다시 군대를 일으켰다간 그나마 남은 국력마저 모조리 소모해버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카렐이 웃으며 그랭구아르가 내밀어준 손을 맞잡고 몸을 일으켰다.
“보고, 보고를. 전하께 승전보를 전하러 가겠습니다.”
카렐은 그렇게 말한 뒤 승전 소식을 알리기 위해 통신실로 향했다.
***
같은 시각.
라이언베르트가 이끄는 노르드족의 해병대는 에서 자발라 왕국의 함대와 수상전을 벌이고 있었다.
펑, 퍼엉!
자발라 왕국의 함대는 노르드족이 탑승한 를 향해 연신 포탄을 발사했지만, 단 한 발도 명중시키지 못했다.
는 거친 바다에서도 엄청난 기동성을 자랑하기로 유명했다.
또한, 배의 무게 중심이 불가사의할 정도로 완벽하게 잡혀 있어서 큰 파도가 몰아쳐도 선체의 중심을 유지하는 게 가능했다.
괜히 를 탄 노르드족이 북해의 지배자로 불렸던 게 아닌 것이다.
반면, 소형 쾌속정인 엔 군함을 파괴할 만한 강력한 함포가 탑재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자발라 왕국군의 군함을 침몰시키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라이언베르트는 의 엄청난 기동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을 자발라 왕국의 군함에 부착한 뒤 재빨리 도망치는 전술을 사용했다.
엄청난 기동성을 자랑하는 이기에 가능한 전술이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자발라 왕국군의 함대 사령관은 노르드족이 딱히 이렇다 할 움직임 없이 가까이 접근했다가 저 멀리 도망치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까이 접근했으면 배에 올라와 전투를 벌일 법도 한데, 그냥 가버리는 게 어째 좀 이상했던 것이다.
물론 각 군함에는 왕국의 추가 병력들이 타고 있었으므로, 노르드족이 올라와서 싸움을 벌여 봤자 개죽음만 당할 뿐이었지만.
“이런 쥐새끼 같은 놈들. 북해의 지배자라더니, 이렇게 싱거운 놈들일 줄….”
바로 그때였다.
펑, 퍼엉!
함대 사령관이 타고 있던 군함 바닥에서 폭발이 일어나더니, 선체가 기우뚱! 하고 기울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일인가!”
“사령관님! 선체 바닥에서 폭발이 일어나 구멍이 뚫렸습니다!”
“뭣이?!”
함대 사령관이 놀라던 순간.
펑, 퍼엉!
함대의 다른 군함들에서도 역시 폭발이 일어나 선체가 휘청휘청 기울기 시작했다.
“……!”
함대 사령관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곧 사태를 파악하고 얼굴을 굳혔다.
“어쩐지 접근했다가 그냥 지나가더라니….”
“사, 사령관님! 전 함대! 침몰합니다!”
“…….”
“함대에 속한 모든 군함이 빠르게 침몰하고 있습니다!”
“전 병력… 탈출하라.”
사령관은 그렇게 명령을 내리고는 시가를 입에 물고 부싯돌로 불을 댕겼다.
그러고는 담배 연기를 폐 깊숙한 곳까지 힘껏 빨아들인 뒤 내뱉으며 말했다.
“후우. 본 사령관은 탈출하지 않겠다. 그러니 전 병력, 탈출하라.”
“사령관님!”
“함대가 침몰하는데 함대의 사령관인 내가 탈출할 수야 없는 노릇이지.”
“하, 하지만….”
“가라.”
함대 사령관이 단호하게 딱 잘라 말했다.
“나와 함께 수장될 아군 장병들이 어디 한둘이겠나? 이렇게 죽는 게 그나마 명예를 지킬 유일한 방법이 아니겠나.”
각 군함에는 비상 탈출용 구명정이 실려 있긴 했다.
그러나 육군 병력을 수송하던 도중이었기에, 구명정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즉, 함대의 침몰로 인해 수없이 많은 장병들이 에 수장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신속히 탈출하라.”
함대 사령관은 그 말을 남긴 뒤 묵묵히 시가를 피우며 글라스에 위스키를 따라 들이킨 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나 라이언베르트는 단순히 자발라 왕국군의 함대를 침몰시키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가자! 용맹한 노르드족의 전사들이여! 사냥 시작이다!”
라이언베르트는 노르드족 해병대원들을 이끌고 자발라 왕국의 함대가 침몰하고 있는 지역으로 향했다.
“모조리 죽여라!”
라이언베르트는 노르드족의 해병대원들에게 명령해 자발라 왕국군의 구명정을 공격하도록 지시했다.
“으악!”
“오, 오지 마!”
“으아아악!”
“살려 줘어어어어어어어!”
구명정에 타고 있던 자발라 왕국군들은 노르드족의 습격에 이렇다 할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고, 차가운 강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우리 노르드족은 단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는다! 모조리 죽여라! 모조리!”
“예!”
라이언베르트는 헤엄쳐 도망치는 적들까지 집요하게 쫓아가 죽이도록 명령했고, 이윽고 은 자발라 왕국군들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었다.
그야말로 피의 강.
라이언베르트와 노르드족 해병대원들은 강을 피로 물들일 정도로 잔혹하고, 집요하고, 또 기계적으로 자발라 왕국군들을 살육해 나갔다.
진짜 단 한 명의 생존자도 만들지 않겠다는 듯이….
***
한편, 프로아 왕국의 공군 총사령관인 코르크 중장은 자발라 왕국의 수송선이 지나가는 항로에 대기하고 있다가 출동했다.
“적 수송선 포착! 모조리 요격하라!”
코르크 중장은 프로아 왕국의 소형 전투기들을 이끌고 자발라 왕국군 수송선 편대의 뒤쪽으로 따라붙었다.
그런 다음 수송선을 향해 맹공을 퍼부어댔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소형 경비행선 편대와 와이번 라이더들로 구성된 비행단이 수송선을 호위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공중전은 처음에는 매우 치열하게 전개되는 듯했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자 프로아 왕국의 공군이 하늘을 점점 더 지배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프로아 왕국의 신형 전투기들은 슈퍼 비행선 우라칸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기체들이었기에, 그 성능이 무척이나 뛰어났다.
게다가 코르크 중장과 프로아 왕국의 공군 파일럿들은 마우레키온 제국 출신으로써, 대륙 어디서든 인정받는 실력자들이었다.
마우레키온 제국이 괜히 세계 최강대국이겠는가?
즉, 마우레키온 제국 출신인 코르크 중장과 프로아 왕국 파일럿들이 자발라 왕국의 파일럿들보다 몇 배는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진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전투 시작 20분 후.
펑, 퍼엉!
프로아 왕국의 공군은 수송선을 호위하던 자발라 왕국의 경비행선 편대와 와이번 라이더들을 모조리 격추시키는 데 성공했다.
기체의 우월한 스펙.
그리고 파일럿들의 압도적인 실력.
이 두 가지 요소가 공중전에서의 대승을 일구어냈던 것이다.
그 다음은?
“급하게 움직일 필요 없으니 천천히 요격하라. 적들은 샌드백에 불과하다.”
코르크 중장은 기동성이 허접하기 짝이 없는 수송선들을 가지고 놀다시피 하며 침착하게 한 척 한 척 요격에 나섰다.
수송선들도 함포를 탑재하고 있긴 했다.
그러나 애초에 병력 혹은 보급품의 수송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비행선들이었기에, 그 기동성이 일반적인 전투순양함보다 더 느렸다.
즉, 엄청난 기동성을 자랑하는 프로아 왕국의 신형 전투기들에게는 그저 덩치 큰 바보에 불과했던 것이다.
펑, 퍼엉!
그렇게 자발라 왕국군의 수송선들은 코르크 중장이 이끄는 프로아 왕국군의 전투기들에게 차례차례 요격을 당했고, 단 한 대도 빠짐없이 모두 격침되고 말았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
요새에서 벌어진 프로아 연합군과 자발라 왕국군의 전투는 그 여느 때보다도 치열하고, 또 처절하게 전개되었다.
양측 모두 총력을 기울인 전투이니만큼, 그 격렬함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던 것이다.
데시마토 공작은 가 완전히 방전될 때까지 마나를 빨아들인 뒤 고위급 광역 마법을 쏟아내며 엄청난 대량 살상을 일으켰다.
마스터 3인방 역시 자신들의 한계를 뛰어넘는 무력을 발휘하며 신들린 전투력을 선보였다.
지크 역시 자신이 가진 모든 디버프 필드들을 활용해 아군을 지원하는 한편, 마스터 3인방에 못지않은 엄청난 무력을 뿜어내며 그야말로 학살을 펼쳤다.
한편, 프로아 연합군 장병들은 지난 며칠 간 거듭된 전투로 인해 지쳐 있었고,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더는 버틸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으악! 으아악!”
“조금만… 조금만 더… 으악!”
“몸이… 움직이질… 크윽!”
프로아 연합군은 전투가 시작된 이후 빠르게 지쳐가며 하나둘 쓰러져 갔다.
그건 비단 지크와 마스터 3인방, 그리고 데시마토 공작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투가 시작된 이후 약 네 시간이 흘렀을 무렵.
털썩!
데시마토 공작은 지나친 마나의 소모를 버티지 못하고 결국 쓰러져 버렸다.
“크윽!”
로엔그린은 자잘한 상처를 입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고.
“악!”
구걸지존은 화살 한 발을 미처 피하지 못해 어깨에 관통상을 입은 채 고전했다.
“허억, 허억!”
나누크사는 자신의 도끼가 무거웠는지, 동작 자체가 눈에 띄게 느려져 있었다.
지크도 예외는 아니었다.
[알림 : 경고, 경고!] [알림 : 스태미나가 부족합니다!] [알림 : 상태 이상!] [알림 : 스태미나 부족으로 인해 에 걸렸습니다!] [알림 : 모든 능력치가 서서히 하락합니다!] [알림 : 이동 속도가 느려집니다!]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오르던 순간.
와르르르르르르!
요새의 성벽 한쪽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며 자발라 왕국군들이 성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