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745
744
“집중해 주시길 바랍니다.”
바하무트 대장이 휘하 장성들에게 부탁했지만, 역시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따 저녁에 와인 어떻소?”
“거 좋지.”
“내 지휘부로 오시오. 거하게 대접해 드리리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자발라 왕국군의 고위급 장성들은 대부분 사관 학교 출신이거나, 혹은 맥캘란 왕국의 기사 아카데미에 유학을 다녀온 유학파이거나, 혹은 고위급 귀족의 자제들이었다.
그리고 자발라 왕국군의 군내 파벌은 그렇게 3파전으로 갈려 있었다.
그러나 바하무트 대장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왕립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던 중 장교로 임관하여 군 생활을 시작한 케이스였다.
즉, 군부 내에서도 철저히 하급 장교로만 복무하는 계층 출신인 것이다.
용케도 중장까지 진급한 게 기적이라고나 할까?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집중해 주시길 바랍니다.”
무려 세 번을 말했지만, 자발라 왕국군의 고위급 장성들은 총사령관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들끼리 떠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기를 몇 분여….
“헌병대.”
바하무트 대장이 입을 열었다.
“예, 총사령관님.”
“저들을 모두 체포하라.”
그 순간.
“……?”
“……?”
“……?”
자발라 왕국군의 고위급 장성들은 자신들이 무슨 소리를 들은 건가 싶어 바하무트 대장을 돌아보았다.
당황하긴 헌병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무려 장성들을 체포하라는데 섣불리 명령에 따르기가 어디 쉽겠는가?
“뭣들 하는가! 당장 저들을 모두 체포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때, 바하무트 대장이 버럭 소리쳤다.
“어이! 바하무트 대장! 지금 미친 거요?”
“허! 꼴에 총사령관 자리에 올랐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
장성들은 바하무트 대장의 외침에 오히려 기가 막힌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
그러나….
슥, 스윽!
바하무트 대장의 뒤로 하얀색 군복을 입은 청년들이 등장하자, 장성들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자발라 왕국군 내에서 하얀색 군복이 의미하는 건 딱 하나였다.
수은 기사단.
오직 총사령관의 명령대로만 움직이는 직속 부대로, 그 전투력은 일반 기사들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라고 했다.
심지어, 철혈 기사들조차 수은 기사단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라고도 했다.
장성들은 그런 수은 기사단들이 바하무트 대장의 양옆으로 등장하자 입을 꽉 다물어 버렸다.
“선택지를 드리겠습니다.”
바하무트 대장이 장성들에게 말했다.
“상관모욕죄에 명령 불복종으로 즉결 처형을 당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회의에 성실하게 참여하시겠습니까.”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에, 장성들은 입을 꽉 다문 채 자리에 앉았다.
“절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잘 압니다.”
바하무트 대장이 대수로울 것 없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곧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망자로 보시겠지요. 하지만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 하나 못 들어주겠냐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아직은 제 목이 날아가지 않았으니, 부디 제가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총사령관으로서 대우해 주시길 바랍니다.”
바하무트 대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지도로 시선을 돌렸다.
‘쯧쯧.’
‘며칠 동안만이라도 총사령관 노릇이나 실컷 하다가 죽고 싶다는 건가?’
‘까짓것 어차피 죽을 놈인데, 대충 구색이나 맞춰주자.’
자발라 왕국군의 장성들은 속으로 혀를 차며 일단은 바하무트 대장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일단 우리 군의 전략은… 강철 함대가 완성되기 전까지….”
그때, 바하무트 대장이 입을 열었다.
“여기, 여기, 여기, 여기, 여기. 이렇게 총 5개의 성을 적들에게 넘겨주는 것입니다.”
그 말이 끝나던 순간.
“뭣이!”
“지금 그게 제정신이오!”
자발라 왕국군 지휘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바하무트 대장이 가리킨 5개의 성들을 내어준다면, 프로아 연합군이 자발라 왕국의 수도인 페이오그까지 순식간에 쳐들어올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
지크는 나인테일을 군수 공장에 침투시켜 각을 보는 한편, 계속 군대를 운용해 자발라 왕국의 심장부인 수도 페이오그를 향해 진격해 나갔다.
그 과정은 매우 쉬웠다.
연전연승.
지크가 이끄는 프로아 연합군은 공중 전력의 압도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적들의 요새를 순식간에 점령해 나갔다.
총 7개의 요새를 점령하는 동안 프로아 연합군의 사망자는 단 둘에, 부상자는 100여 명이 고작이었다.
그러는 동안 지크의 신성력 역시도 빠르게 증가했다.
[알림 : 당신의 신성력이 영구적으로 3 상승하였습니다!] [알림 : 당신의 신성력이 영구적으로 1.5 상승하였습니다!] [알림 : 당신의 신성력이 영구적으로 19 상승하였습니다!] [알림 : 당신의 신성력이 영구적으로 2.222 상승하였습니다!](중략)
[알림 : 당신의 신성력이 영구적으로 1 상승하였습니다!]증가한 신성력만큼 지크의 귓가를 파고드는 목소리도 늘어만 갔다.
– 간절히… 전하께서… 부탁드립니다….
– 바라옵건대… 보호….
– …주세요.
지크는 눈앞에 떠오르는 신성력 증가 알림창과 귓가를 파고드는 목소리들에 정신머리가 없어서, 골머리를 앓았다.
“으으.”
“뀨! 주인 놈아! 왜 그러냐!”
햄찌가 괴로워하는 지크에게 물었다.
“말했잖아. 전에 그거. 으으.”
“뀨우! 주인 놈 굿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뀨우! 귀신 들렸다! 귀신 들렸어! 뀨우!”
“야 이!”
지크가 햄찌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막말을… 크윽!”
“뀨, 뀨우?!”
“으윽! 해, 햄찌야….”
“뀨우! 주인 놈아! 괜찮냐!”
“너….”
“뀨?”
“내가 아직도 지크로 보이니?”
“뀨우우우우우우우?!”
“이리 와! 이 자식아!”
지크가 그렇게 소리치며 햄찌를 덮쳐 간지럽히고 귀를 잡아당기는 등 장난을 치고 있을 때였다.
“잠깐 시간 좀 되니?”
의 레전드 프로게이머 출신인 김기태가 지크의 막사를 찾았다.
“아! 선배님!”
지크는 햄찌를 괴롭히다 말고 김기태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어? 레벨도 많이 오르셨네요? 벌써 220을 찍으셨네?”
“뭘 이런 걸 가지고. 하핫!”
김기태는 자신의 게임 재능이 뛰어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어느새 고레벨 게이머의 기준점인 200레벨을 훌쩍 넘어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할 말이 있어서 왔는데. 시간 괜찮아?”
“물론이죠.”
“계속 쳐들어가야겠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여기서 더 들어갔다간 큰일 날 것 같아서 말야.”
김기태가 지도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여기가 수도 페이오그지?”
“그렇죠?”
“우리가 지금 여기까지 점령했으니까. 앞으로 성 세 개만 더 먹으면 적들의 수도 코앞이잖아.”
“맞죠.”
“아무리 공중 전력이 압도적이라고 해도, 여기까지 들어갔다간….”
그 순간.
‘어?’
지크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고 얼굴을 굳혔다.
자발라 왕국의 수도 코앞까지 손쉽게 진격해 들어가는 건 좋았다.
하지만 그 뒤가 문제였다.
만약 자발라 왕국의 수도 페이오그 코앞까지 쳐들어갔다가, 업그레이드된 강철 함대라도 뜬다면?
결과는 뻔했다.
‘포위… 그리고 전멸.’
지크는 오싹 소름이 돋는 걸 느끼고 김기태를 바라보았다.
사실 지크는 적들의 공중 전력에 공백이 생긴 틈을 타 최대한 전략적 요충지를 많이 확보하려 했다.
때문에, 전광석화처럼 자발라 왕국의 수도 페이오그를 향해 진격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나 김기태의 지적에 다시 지도를 보니 그건 틀린 판단이었다.
어쩌면 사지(死地)로 들어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거… 큰일 날 뻔했네요.”
지크가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말했다.
“나도 이상하다 싶어서 생각을 좀 해봤었거든.”
김기태가 말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일부러 우리 군을 끌어들이려는 전략인 거야. 일부러 성을 내주면서 시간을 끌고, 강철 함대가 완성되는 순간 우릴 끝장내려는 거지.”
“맞습니다.”
지크는 김기태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이건 함정이었네요.”
“그렇지.”
“감사합니다, 선배님.”
지크는 김기태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선배님이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뭘 이런 걸 가지고.”
“아닙니다. 저도 아차 싶었네요. 이런 걸 놓치다니….”
지크 역시 사람인지라 완벽할 수 없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때때로 미처 모든 걸 살피지 못하고 실수할 수 있었다.
“그럴 수 있어.”
김기태는 그런 지크를 다독여 주었다.
“사람인 이상 어떻게 다 알아? 그러니까 참모들이 있는 거고.”
“예, 선배님.”
“골치 아프게 됐어. 수도까지 진격할 순 있어도, 강철 함대가 뜨면 우리가 전멸할 거야. 그렇다고 수도를 지금 방식대로 공략하는 건 불가능하고.”
지크와 마스터 3인방이 제아무리 강력하다고 한들, 수도인 페이오그의 대공포까지 무력화시킬 수 있을 리 없었다.
“이거 생각이 좀 복잡해지는데요? 으음.”
강철 함대가 완성되기 전에 수도인 페이오그를 점령하던지.
혹은 강철 함대가 만들어지고 있는 군수 공장을 파괴하고, 수도인 페이오그를 천천히 요리하든지.
프로아 연합군은 반드시 이 둘 중 하나의 목표를 달성해야만 했다.
지금처럼 일단 진격해 들어갔다가는 김기태가 지적한 대로 포위를 당한 뒤 전멸할 운명인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선배님.”
“일단 지도를 좀 보면서….”
그렇게 지크는 의 레전드인 김기태와 함께 이번 전쟁을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할지를 의논하게 되었다.
***
다음 날.
지크가 지휘하는 프로아 연합군은 자발라 왕국의 수도인 페이오그가 아닌 전혀 다른 방향으로 군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프로아 연합군은 페이오그를 등지고 남하했고, 이 소식은 곧장 자발라 왕국군의 총사령관인 바하무트 대장에게 전달되었다.
“…으음.”
바하무트 대장은 프로아 연합군이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단 보고를 받고 얼굴을 굳혔다.
“총사령관! 이대로 놔둘 생각이오?”
“이보시오! 저들이 남하한다고 하지 않았소! 어서 군대를 움직여야 하오!”
자발라 왕국의 장성들이 저마다 한 목소리를 높였다.
그도 그럴 것이, 수도인 페이오그까지는 진격하게 놔두자는 바하무트 대장의 전략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어차피 자발라 왕국군 입장에선 함대가 없는 이상 전투가 벌어지면 무조건 지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수도를 최후의 방어선 삼아 버티면서, 강철 함대가 합류할 때까지 시간을 번다는 바하무트 대장의 전략은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프로아 왕국군이 남하한다는 건 대륙에서 손꼽히는 곡창 지대인 를 노리는 게 확실했다.
“총사령관! 곧 추수철이오! 지금 스멕타 평야가 공격당하면 본국의 식량 상태가 어떻게 될지 모르시오?”
“곧 겨울이오! 추수 직전에 스멕타 평야를 공격당했다간 겨우내 식량 상태가 최악을 달릴 거요! 막아야 하오!”
의 크기는 엄청나게 넓어서 자발라 왕국에 유통되는 전체 식량 중 7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런 를 털린다면, 올 겨울 엄청난 대기근이 휘몰아칠 게 뻔했다.
최소 수십만.
많게는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바하무트 대장도 그걸 모르지 않았기에, 그 표정은 심각하기 짝이 없었다.
“이보시오! 총사령관! 이건 막아야 하오!”
“스멕타 평야를 잃으면 총사령관의 목이 날아가는 게 문제가 아니오! 자칫 잘못했다간 올겨울에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을지도 모른단 말이오!”
장성들이 바하무트 대장을 향해 소리쳐 의견을 내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파벌이니, 인맥이니, 서열 같은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군은….”
결국, 바하무트 대장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답변이라는 게 기가 막혔다.
“움직이지 않습니다.”
바하무트 대장은 를 잃는 것조차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말했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