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75
074
“퀘스트… 메이커?”
지크가 천우진이 말한 클래스의 이름을 곱씹었다.
“퀘스트 메이커는….”
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히든 클래스다. 하이브에서 부여한 내 콜네임은 더블 오 제로(000)고.”
“그럼 니가….”
“내가 이 게임에서 에픽 코드를 최초로 부여 받은 히든 플레이어란 소리겠지?”
“그랬군.”
지크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저 자식이면 왠지 그럴 만하지.’
그간 천우진이 그의 감각을 완벽하게 속여 넘겼던 걸 떠올려 보면, 히든 클래스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퀘스트가 메이커가 정확히 뭐 하는 클래스인데?”
“뭐긴. 말 그대로 퀘스트를 만들어 내는 거지.”
“퀘스트를 만들어 낸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거.”
천우진이 자신의 두 눈, 각각 붉은색과 파란색을 띤 오드아이를 가리켰다.
“눈?”
“태극안. 삼라만상의 이치를 꿰뚫는 눈이다. 퀘스트 메이커의 상징이고, 밥줄이지.”
“그걸로 뭘 하는데?”
“내가 이 두 눈으로 어떠한 사건, 사고를 접하게 되면, 눈앞에 퀘스트를 생성하겠냐고 묻는 알림창이 떠올라. 난 거기서 선택을 할 수 있지. 퀘스트를 생성할지, 말지.”
“생성하면?”
“그다음엔 그 퀘스트를 수행할 만한 플레이어를 찾아야지. 잘 골라야 해. 퀘스트가 실패하면 그 대가가 고스란히 나한테 돌아오니까.”
“성공하면?”
“경험치가 올라.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아주 많이.”
“으음.”
“그래서 난 늘 사건, 사고를 찾아다녀야만 해. 퀘스트를 만들기도 해야 하고, 퀘스트를 맡길 만한 플레이어도 찾아야 하니까.”
“거 되게 귀찮은 직업처럼 들리는데?”
“귀찮은 것처럼? 아니. 귀찮지. 전 대륙을 쏘다녀야 하니까. 1분 1초가 아쉬운 클래스야, 퀘스트 메이커는.”
지크는 퀘스트 메이커를 뭔가 매력적인 클래스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막상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단 생각을 했다.
퀘스트를 생성하고, 부여한 뒤 클리어 여부에 따라 경험치를 얻는단 성장 메커니즘 자체는 대단히 흥미로웠지만, 결국은 거기까지였다.
‘혼자서는 절대 성장할 수 없겠군.’
성장 메커니즘상 퀘스트 메이커의 레벨 업은 100퍼센트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벨은 좀 많이 올렸냐?”
“아주 많이. 대충 플레이어 중에서는 내 위로 몇 명 없을 거다. 많아야 한 3, 4명 정도?”
“미친.”
천우진의 말을 들은 지크는 어이가 없었다.
“어쩐지 랭커 같더라니 한 자릿수였어?”
“그건 아니고. 난 랭킹에 집계되지 않아서.”
“왜?”
“랭킹이 믿을 만한 지표가 못 된다는 건 너도 알 텐데? 생각보다 숨겨진 고레벨들이 많아. 다 각자의 이유가 있어서 조용히 플레이하고 있을 뿐이지.”
“그렇군. 그럼 너 엄청 세겠네.”
“엄청 세지.”
천우진이 피식 웃었다.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는 내가 플레이어 중에서 최강일걸?”
“한두 달에 한 번? 그건 또 뭔 소리야.”
“퀘스트 메이커는 성장이 빨라. 그리고 강해. 대신에 조건부야. 전력을 100퍼센트 발휘하려면 스택을 쌓아야 해. 내가 퀘스트를 준 플레이어들이 퀘스트를 클리어할 때마다 포인트가 쌓이거든? 그 포인트들을 모아서 내 진정한 힘을 개방하는 식이지.”
“난 못 하겠다, 그런 거.”
지크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생각하기에, 퀘스트 메이커는 메리트가 많은 만큼 이래저래 걸리는 게 많은 클래스였기 때문이다.
“못 하겠지. 이건 나 같은 인간한테나 어울리는 클래스라.”
“나 같은 인간이 뭔데.”
“현실이 지루한 인간.”
“…….”
“뭘 해도 지루해서 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뭐, 그런.”
“난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다.”
“다 각자 살아온 배경이 다르니까. 어쨌든, 이제 내가 널 찾아온 이유 정도는 알았겠지.”
천우진이 지크에게 물었다.
“나한테….”
“그래, 퀘스트를 주려고 왔다. 때마침 너한테 어울리는 퀘스트를 생성했거든.”
그렇게 말한 천우진이 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을 띄워 올렸다.
***
[알림 : 퀘스트 메이커 이 당신에게 퀘스트를 부여합니다!]뒤이어 퀘스트의 내용이 떠올랐다.
[납치된 인재들]•분류 : 스페셜 퀘스트
오즈릭 교단에 납치된 각계각층의 인재들을 구출하라!
•진행률 : 0%
•보상 :
– B등급 초월의 돌 × 1
– 메타모포시스 마스크 × 1
공교롭게도, 천우진이 부여한 퀘스트의 목표는 오즈릭 교단의 행사를 방해하는 일이었다.
“오즈릭 교단?”
“그래.”
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했던 말 기억하겠지. 나는 이 세계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움직인다고.”
“그런 말을 하긴 했지.”
“오즈릭 교단은 이 세계의 평화와 안녕을 위협하는 여러 세력 중 하나야. 놈들의 목표는 이 세계에 혼돈의 신 네사로즈를 강림시키는 것. 나는 수호자들의 일원으로서 놈들을 막고자 하는 거다.”
“좋지.”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즈릭 교단은 제네시스 길드에 이은 지크의 주적이었다.
오즈릭 교단은 웨펀 마이스터 샤키로의 원수이자 퀘스트의 표적 중 하나인 혈마 베르세르크의 후예 붉은 추기경 블라디미르가 소속되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지크가 천우진에게 물었다.
“붉은 추기경도 거기 있냐?”
“그럴 리가.”
천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붉은 추기경이 거기 있었으면 애초에 널 보낼 생각도 안 했어. 붉은 추기경은….”
“마스터니까.”
지크가 천우진의 말을 받았다.
“알아?”
“글쎄? 붉은 추기경이 마스터고, 이름이 블라디미르라는 것 정도?”
“그걸 니가 어떻게 아는 거지? 붉은 추기경에 대한 정보는 우리 수호자들 사이에서도 극비 사항인데.”
“다 아는 방법이 있지.”
그렇게 말하는 지크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너도 궁금해 봐라.’
천우진의 표정에서 처음으로 물음표가 떠오른 게 못내 재미있었다.
“설마 붉은 추기경이랑 마주쳤던 건 아니겠지?”
“노코멘트.”
“…….”
“알고 싶으면 니가 아는 걸 더 내놓던가.”
“…설마 복수하는 거냐.”
“좋을 대로 생각해라. 아무튼, 납치된 인재들을 구출해내면 된다는 거지?”
“그래.”
“근데 오즈릭 교단이 왜 사람들을 납치한 거냐?”
“어떤 세력이든 일정 이상의 규모가 되면 능력 있는 사람이 필요해. 행정이면 행정, 회계면 회계, 영업이면 영업. 그건 오즈릭 교단이라고 예외가 아냐. 놈들의 교세를 확장하고 비밀리에 굴리고 있는 사업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각계각층의 인재가 필요할 수밖에 없거든.”
“그래서 납치를 했다?”
“납치 후 세뇌. 세뇌 작업 완료 후 업무 전선 투입. 그게 오즈릭 교단의 방식이다. 사실상 납치와 세뇌가 아니면 인재를 영입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도 하고.”
“하긴. 정상인이라면 그따위 사이비 종교에서 일할 리 없겠지.”
“바로 그거야.”
“언제 출발하면 돼?”
“내일 아침. 위치는 이거 보고 참고하고.”
천우진이 지크에게 지도를 넘겨주었다.
“먼가?”
지크가 천우진이 넘겨준 지도를 펼쳐보았다.
그런데.
“뭐야.”
지크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기….”
“그래.”
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니 집 안방이다.”
오즈릭 교단이 인재들을 납치해서 세뇌하는 장소는 다름 아닌 지크의 집 안방, 그러니까 프로아틴 지방이었다.
***
다음 날 오전.
“오스칼 경.”
“예, 전하.”
“잠시 다녀올 곳이 있어서 그런데, 2, 3일만 저 대신 업무 좀 봐주세요.”
지크는 오스칼에게 업무를 떠넘기고 카제인 성을 나섰다.
“제게 업무를 맡기시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십니다.”
오스칼은 지크의 업무를 대신하는 게 그리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에이. 아직은 크게 할 것도 없잖아요.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만 좀 지켜주세요.”
“하, 하지만….”
“잘 부탁해요, 오스칼 경.”
그렇게 말한 지크가 오스칼에게 서류 더미를 떠넘겼다.
180도 다른 말과 행동이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오스칼에게 서류 더미를 떠넘긴 지크가 재빨리 집무실을 나섰다.
“휴. 전하.”
오스칼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소신은 문서 작업 같은 건 할 줄 모르옵니다.”
평생 펜이 아닌 검만 쥐고 살아온 자의 한탄이었다.
***
카제인 성을 나선 지크는 말에 올라타 천우진이 준 지도를 따라나섰다.
약 한 시간 정도를 달렸을 무렵.
“여기 어디쯤인데.”
큰 버드나무가 있는 갈림길에 도착한 지크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내가 너무 빨리 온 건가?”
지크가 멈춘 이유는, 이곳이 집결 장소였기 때문이다.
카제인 성을 기준으로 서남쪽.
버드나무 갈림길에서 지원 병력과 합류할 것.
5분 정도 지났을까?
“형님!!”
누군가 나타나 지크를 향해 소리쳤다.
“어?”
지크가 자신을 ‘형님’이라 부른 사람을 돌아보았다.
“승구…?”
그 사람의 정체는 천하제일생존대회에서 지크가 자비를 베풀고, 또 어머니의 병원비를 대주었던 모험가 승구였다.
“예, 형님! 접니다! 저예요!”
“그쪽이 왜…?”
“천우진인가 뭔가 하는 놈이 여기로 오면 형님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해서 달려왔습니다!”
“뭐야. 니가 지원 병력이었어?”
지크는 어이가 없었다.
“넌 1렙이잖아?”
“천우진이 형님께서 자멸의 오라를 풀어주실 거라고….”
“내가?”
“천하제일생존대회의 우승 상품으로 자멸의 오라를 해제하는 포션을 두 개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니었습니까?”
사실 두 개를 받은 게 아니라 한 개를 받은 거였지만, 그건 천우진의 거짓말인 것 같았다.
“쩝.”
그제야 천우진의 의도를 이해한 지크가 입맛을 다셨다.
‘제 것도 아니면서.’
천우진은 지크가 승구에게 자멸의 오라를 푸는 포션인 ‘증명의 엘릭서’를 주길 원하고 있었다.
‘얘한테 줄 가치가 있나? 나한테는 필요 없는 물건이긴 한데….’
그때였다.
“아, 맞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형님!”
“그럼 뭐가 중요한데? 아니, 왜 자꾸 형님이라고 부르는 건데?”
“절부터 받으시죠!!”
승구가 지크를 향해 넙죽 엎드려 절했다.
“아니, 갑자기 왜 이래….”
“형님께서 저희 어머니 수술비 지원해주신 거 알고 왔습니다! 형님! 정말 감사합니다! 형님은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평생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쥐새끼가 있네, 쥐새끼가 있네.”
지크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째 누가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지크가 승구를 도울 수 있었던 것도 천우진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고.
“쥐, 쥐새끼요?”
“그냥 혼잣말이니까 신경 쓰지 마.”
“예, 형님!”
승구가 다시 지크에게 넙죽 엎드렸다.
“형님. 형님은 진짜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구라 안 치고 평생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개처럼 부려 먹어 주십쇼!! 정말입니다!!”
“뭘 개처럼 부려 먹어 달란 거야….”
“뭐든 시켜만 주십쇼!! 다하겠습니다!! 여자 번호 따 오라면 따 오고!! 빵 사 오라면 사 오고!! 김일성이 목 따 오라면 따 오겠습니다!!”
이미 수십 년 전에 뒈진 김일성의 목을 무슨 수로 따 오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승구의 말은 진심이었다.
‘이 형님 덕분에 엄마가 사셨다. 형님은 우리 가족의 은인이시다. 내가 모셔야지. 암, 그렇고말고.’
어머니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승구에게 있어 지크는 신보다도 더 위대한 존재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승구가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런 승구는 보며 지크가 한 생각은 딱 하나였다.
‘내가 더 어린 것 같은데….’
승구의 나이가 정확히 몇인지는 모르겠지만, 액면가만큼은 30대 후반이 족히 되어 보였기에 한 생각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